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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쌓아 산을 만들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월30일 07시28분    조회: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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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허영철

동관시영성전기기계설비유한회사 허영철 리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리수봉 기자='흙이 쌓여 산이 되며 성공은 포기하지 않음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어쩌면 광동성 동관시영성전기기계설비유한회사 허영철(50.사진) 리사장을 두고하는 말인듯 하다. 허 사장은 현재 광동성조선민족련합회 부회장, 동관시조선족골프협회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허영철 리사장은 영성전기기계설비유한회사를 모체로 2개의 중한합자 자회사를 두고 있다. 그의 꿈은 성급을 뛰어넘어 국가급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다.

  허 사장은 2018년 전기기계(机电)항업에서 3억원의 공정액을 실현하여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 항업에서 공정액은 일반적으로 몇천만원 선이다. 여기에 비하면 영성(永星)회사의 공정액은 어마어마한 수자가 아닐수 없다. 이런 기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것이 아니다. 바로 흙을 쌓아 산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고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겨울이 돼야 상록수의 진가를 안다. 허 사장은 초중졸업후 1989년 군에 입대했다.륙군 포병으로 3년간 근무했다. 제대후 고향인 길림성 반석시의 한 향진병원 약방에 배치 받았다. 얼마후 반석시병원으로 전근했다. 량친 부모가 모두 의사였고 그는 병원 약방에서 일을 했다. 가정에서 고생을 모르고 호강하게 자랐던 그가 군에 입대해 단련을 받았고 어떠한 고생도 이겨낼수 있는 강한 성격을 가졌다. 이것이 후날 사업성공에 밑거름이 됐다.

  2001년 개혁개방 물결을 타고 많은 젊은이들이 오매에도 그리던 심천으로 진출했다. 막상 심천에 도착하고 보니 허허벌판에 아파트들이 일떠서고 여기저기서 땀흘리며 일하는 로동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도 조선족기업인 모 전기기계 회사에서 7년간 땀흘리며 열심히 일했다.

  "국가도 5개년 기획있지 않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2개의 5개년 기획을 세웠어요. 10년후 창업해서 자기 회사를 갖는것이였어요."

  "2000년 동관에 왔을때 월급이 300원이였지요. 잡비까지 합해서 500원이 되였어요. 지금 우리 회사 박대성 리사와 함께 세집에 들었는데 많이 어려웠지요. 두 사람의 봉급을 합해서 1000원이 되였는데 집세 280원을 내고나면 달말에 가서 아침 먹을 돈도 없었어요"

  "어느 한번은 썰썰이가 나서 둘이서 큰 마음을 먹고 양고기뀀 집에 가서 50원을 주고 뀀 20개와 맥주 한병을 사서 먹는 적이 있어요. 술을 마시면 알레르기 반응이 생겨 지금도 술은 못마셔요"

  지금은 웃으며 쉽게 얘기할수 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짐작할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지난 과거를 감추는것이 관례지만 허 사장은 이렇게 허탈하게 초창기때의 어려움을 떨어놓았다. 그의 소탈함이 돋보였다.

  '겨울이 돼야 상록수의 진가를 안다'는 옛 성인들의 말이 떠올랐다.

  신뢰는 사소한 약속도 무겁게 지킬 때 쌓인다.

  동관에 진출해 회사에 근무한지 7년이 되던해 , 원래 출근하던 회사가 부도났다. 따라서 부득이 하게 파도에 밀려 바다로 뛰여들었다.

  2008년 1월 동관시영성전기기계설비유한회사를 설립했다. 10년 후 창업 인생계획이 타의로 3년 앞당겨 실현됐다.

  "창업자금은 여기저기서 빌렸어요. 초창기때 여러 조선족기업들이 전화만 하면 많이 도와 주었어요.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었지요"

  그러면서 허 사장은 삶의 원칙을 이렇게 피력했다.

  첫째는 신용이고 둘째는 인맥이며 셋째는 책임감이라고 밝혔다.

  신용이 있으면 인맥이 생기다. 책임감은 자신에 대한 책임감, 사업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한 남자가 이런 책임감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하기 어렵고, 더구나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집에 가서는 웃고 절대로 어려움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회사 경영이 어려울 때는 2-3일씩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성격이 강한 편인 허 사장은 친구들한테 절대적으로 베푼다고 한다. 언제나 작은 일을 가지고 리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허 사장은 사회기부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초창기때 경영이 어려웠지만 한 백혈병 어린이를 구하는데 10만원을 기부한적도 있다. 지금은 광동성조선민족련합회 회장단 장학금을 내고 있다.

  "창업을 시작해서 제일 처음으로 대륙 진출 대만기업의 오더를 받았어요. 공정액이 50만원되는 일감이였지요. 아주 기뻤어요. 관례대로 10만원 보증금을 내고 일을 시작했어요. 이 보증금은 일이 끝난후 보통 1-2개월후에 하자가 없으면 돌려주지요. 당시 자금난이 심해 대만 기업인한테 전화해서 어려운 사정을 얘기 했어요. 그 대만인은 개인 돈을 꺼내 10만원 보증금을 돌려주었어요. 나중에 회사서 보증금을 보내오면 받으면 된다고요. 그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 돈 10만원이 저한테는 급시우나 다름없어요"

  그후에 대만인이 귀가해서 지금은 련락이 없다며 여간 아쉬워했다.

  "평상시에 신용을 강조했는데 대만인과 접촉하면서 아마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나 봐요"

  영성회사는 다년간 성실하게 경영을 해온 보람으로 2017, 2018년 련속 2년 광동성계약준수신용중시기업으로 선정됐다.

  '신뢰는 사소한 약속도 무겁게 지킬 때 쌓인다'는 말의 참뜻이 무엇인지 알수가 있었다.

  순풍에 돛을 달다.

  "10년간 많은 기계를 설치하고 시공을 했지만 고객 불만족 신고가 한건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고객들의 인정을 받았지요"

  허 사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잃는것이 없으면 얻는것도 없다. 무슨 일이나 조급해 하지 말고 마음을 바로 잡아야 한다. 준비한 자가 기회를 잡을수 있고 담량도 있어야 카리스마가 생긴다. 오해가 생길때도 있는데 옳바른 마음으로 대하고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허 사장이 항상 자신에게 요구하는 준수 사항이다. 바로 이런 마음 가짐이 있기때문에 하는 일들이 잘 풀린것 아닌가 싶다.

  2008년 창업 첫해의 공정액은 몇백만원에 불과했다. 2년후인 2010년에 천만원선을 돌파했고 3년후인 2013년 1억원선을 돌파했다. 2017년까지 4년간 1억원선을 유지하다가 2018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3억원선을 돌파했다. 공정액이 한해 사이에 3배나 뛰였다. 일본과 한국 대기업의 오더를 받은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관리자만 70~80명 됩니다. 그 가운데 한국인 관리자가 23명 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로동자는 천명이 됩니다. 천명 로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아침 체조를 하는데 정말 가관입니다. 이들을 볼때면 사회적 책임감이 무거워 집니다. 처음에는 돈을 벌려고 창업에 뛰여 들었지만 이젠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나 혼자는 먹고 사는것은 문제가 없지만 함께 일해온 이 많은 직원들과 그 가족을 생각하면 사회적 책임감이 얼마나 큰가를 심심히 느낍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할때는 많이 고민 합니다"

  허 사장은 처음부터 욕심을 내지 않고 국외의 선진적인 관리 경험을 많이 배운다고 한다.

  허 사장은 창업한지 6년이 되는 해인 2014년 9월 모 한국기업과 공동 출자해 동관리안전기기계공정유한회사를 설립했다. 또 2018년 11월에는 모 한국기업과 공동 출자해 동관시신웅방화자재과학기술유한회사를 설립해 경영범위를 확대하고 그룹화의 길로 달리고 있다.

  이처럼 허영철 리사장은 흙을 쌓아 산을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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