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앞서가는 사람]우리 문화 전파에 힘찬 발걸음을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3월22일 09시59분    조회:587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장호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장호 회장과의 인터뷰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아리랑’으로 마음의 화합을 이루는 우리 민족, 그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우리만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심(地心) 속 따뜻함과도 같은 존재, 페부로부터 전해지는 그 전률과 함께 묵묵히 우리 문화의 전파에 힘을 다하는 유지인사들의 행보 또한 꽃바람마냥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고 있다.
 
조선족공동체 관련 문화행사를 통하여 민족의 우수한 전통과 장점들을 일본주류사회 및 타지역 동포사회에 알리고 싶다는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의 장호(일본어 이름 金山张虎) 회장 역시 그러한 유지인사중의 한 사람이다.

 
 
성실한 노력으로 IT인재가 되기까지
 
1965년, 장호씨는 왕청현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1남3녀중 둘째로 태여났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뭐든 끈기 있게 해내는 그는 어렸을 적부터 모범생이였다. 학습성적이 뛰여났던 장호씨는 1981년, 전국수학콩쿠르에서 왕청현 1등을 따내며 연변제1고급중학교에 추천 받게 되였다. 당시 《연변일보》에까지 이름이 실리며 부모님들과 동네 분들은 “경사가 났다”며 그지없이 기뻐했었다. 3년간의 고중생활을 끝마치고 우수한 성적으로 심양공업학원(현 심양리공대학) 계산기학부에 입학한 그는 학업에 있어서 한결같은 근면한 군성을 지켜나갔다. 신화자전(新华字典)과 성구사전(成语词典)을 각각 2권씩 구매하여 한권은 페지별로 찢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외울 정도로 구지욕을 불태웠다. 대학교 때는 학생간부로 활약하면서 조직능력을 키워왔다.
 

대학을 졸업한 후 부모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에 수많은 ‘좋은 직장’을 마다한 채 무작정 고향으로 발걸음을 향한 장호씨는 연길시종업업대학 계산기학과 교사로 취직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91년부터는 농업은행 컴퓨터프로그람개발팀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탄탄한 전공지식과 뛰여난 업무능력은 점차 상급의 인정을 받게 되였고 기술처장으로 승급하면서 연변조선족자치주내 많은 컴퓨터관련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였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드는 법이다. 실력을 보여줄 순간을 대비해 미리 준비하고 기회가 왔을 때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로지 꾸준한 노력 뿐이다. 차곡차곡 자신의 실력을 쌓아가며 묵묵히 땀방울을 흘리던 장호씨는 전세계 조선족학자들이 참가하는 코리안컴퓨터처리국제회의에서 행운스럽게도 제1기 일본류학파 박사인 홍병용 교수님(조선족으로서 당시 할빈공업대학에서 재직중)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인연으로 그는 1997년부터 홍교수님의 지도하에 할빈공업대학 계산기학과 재직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IT전문가로서 더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다져갔다.
 
새로운 도전, 일본에서의 생활
 
2001년, 장호씨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일본에 오게 되였다. 당시 농업은행에서 컴퓨터개발 기술처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IT기술자들을 일본에 파송했었는데 그들의 소개로 일본에 오기 전 이미 4개의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었다. 허나 절주가 빠르고 모든 것이 낯선 이국땅에 정착하여 두각을 나타내기까지는 말처럼 쉬운 과정이 아니였다. 가끔은 예측불허의 상황들도 불쑥불쑥 찾아왔었지만 장호씨는 늘 해왔던 것처럼 넓은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렇게 히타치(日立), 스미토모(住友) 등 굴지 대기업들의 IT분야 관련 업무를 거쳐가면서 11년 동안 일본의 업계 최고인 토요코인호텔체인그룹(东横酒店集团)에 몸 담그고 줄곧 IT시스템을 담당해왔다. 회사재직중 그룹의 심양지사였던 심양동횡판점유한회사(沈阳东横饭店有限公司)에서 본사의 중화권 총괄매니저 겸 지사장으로 기술현장트러블 및 정부와의 공관 관련 일들을 맡기도 하였다.
 


2013년, 장호씨는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들을 바탕으로 가나야마국제주식회사와 가나야마기술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쳐야만 했던 패턴 속에 사실 조선족들의 모임이나 활동에 참가할 여유가 없었던 그는 생활이 어느 정도 안착되면서 일본조선족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았다. 그러던중 우연히 조선족기업인들을 알게 되였고 2015년 일본조선족운동대회를 계기로 조선족활동에 용약 참가하게 되였다.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어떻게 하면 일본의 주류사회 뿐만 아니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을가 하는 고민을 하던 그는 2017년, 공익단체 일반사단법인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日本朝鲜族文化交流协会)를 설립하였고 2018년에는 전일본화교화인부동산협회(全日本华侨华人不动产协会)를 설립하였다. “마음이 있는 곳에 인생과 행복이 있다”며 조선족사회와 일본화교화인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이 여느때보다도 행복하다는 장호씨였다.
 
우리 문화의 전파에 앞장 서며
 
IT와 부동산기업가로서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를 설립하게 된 계기로 장호씨는 짧고도 굵은 답을 주었다. “나는 우리의 조선족문화를 뼈속깊이 사랑합니다.”
 
대학시절부터 우리 말 방송이나 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각종 문화활동에 참가해온 장호씨는 우리 민족 문화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류학생들이나 IT기술자, 고급인재(高度人材)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조선족동포들을 바라보며 마음속 우러르는 뿌듯함을 가눌 길이 없었다고 한다. 하여 일본주류사회에 조선족공동체의 존재를 더욱 확실히 어필하여 그 우수한 문화를 알리고 싶었고 전세계의 동포사회에도 일본에서의 일상을 더욱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자 포부였다.
 

그렇게 설립된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는 조선족문화의 우수한 전통을 끈끈하게 이어가기 위해 일본에 있는 조선족 뿐만 아니라 세계의 조선족문화인들과 손 잡고 다양한 문화교류를 위한 플래트홈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현재 협회에는 총무부, 선전부, 재무부 등 5개 부서와 예술단, 무용단, 문학원과 건강원, 서화원, 미용기술원 등이 설치되였는데 각 부서의 담당자들은 힘을 합쳐 점차적으로 조직화된 단체로 이끌고 있다.
 
협회의 힘찬 발걸음으로 두차례의 가요축제를 들 수 있다. 장호씨는 흥이 많고 즐길 줄 아는 우리의 놀이문화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고 여건이 마련되면 문예인들과 함께 협회의 가무단도 만들고 싶었던 생각이 가요축제 행사를 개최한 계기라고 말한다. 문화의 힘으로 일본조선족공동체의 존재를 일본주류사회에 각인시키고 그 사회적 역할도 다하고 싶다는 사명감의 발로라고 느껴진다.
 
가요축제를 계기로 문화 및 경제관련 포럼도 계획하고 있는바 좋은 교류의 장을 제공하여 우리 문화의 전파에 촉매제작용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한 열정과 전문지식을 겸비한 각 분야의 인재들의 동참과 협력으로 협회를 잘 영위해나가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치였다.
 
열정과 협력으로 행보에 박차를 가하며
 
회사운영과 협회활동을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협회를 설립하여 첫시작은 이러저러한 애로사항이 많았다. 특히 빠른 절주로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만 하는 일본생활에서 그야말로 시간과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협회 담당자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기업인이거나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회사원들이기에 한번 행사가 있을 때마다 퇴근후거나 휴일을 반납해가며 틈틈이 봉사하고 있다. 장호씨 역시 자신의 회사를 열심히 운영하면서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에 경제적 후원을 하고 있는데 중국과 일본 조선족단체들의 협력으로 어려운 부분을 극복해나가고 있다. 삶의 공감대를 가지고 열정과 협력으로 뭉칠 수 있는 것은 바로 공동으로 사랑하는 ‘우리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 함께 모이면 시작이 되고 같이 있으면 사랑이 되며 손 잡으면 성공이 됨을 느끼는 순간이였다고 한다.
 

올해로 설립된 지 3년차인 일본문화교류협회는 최초의 목표 대로 협회의 브랜드화, 조직화 및 문화산업화를 향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조선족노래자랑과 일본조선족가요축제 총 2회에 걸친 행사는 주로 일본의 조선족을 일본사회와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었고 참가자들마다 이국땅에서의 자신감을 얻었다고 하니 그 무엇보다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올해에는 ‘문화절(文化节)’이라는 테마로 국내외 경제인들이 참석하는 문화경제 〈요청포럼〉, 세계 각국에 있는 조선족 프로가수와 소품배우를 초청하여 표현할 〈요청무대〉프로, 경제인들과 예술인들 및 일본의 조선족단체 회원들과의 〈문화의 밤〉축제 등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래년에는2020 일본동경올림픽에 즈음하여 세계의 우수한 기업인들과 예술인들을 초청하여 일본에서의 문화경제교류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사명을 가지고 문화교류관련 행사로서 조선족의 훌륭한 이미지를 만들어나가겠다면서 장호씨는 앞으로도 우리 조선족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며 일본에 있는 조선족인재들을 많이 발굴하고 양성하는 일에 한결같은 열정을 몰붓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IT와 부동산기업가이면서 문화인과 사회활동가이기도 한 그의 선한 꿈과 로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문화시대》 2019년 1호 /글 최소연
 

파일 [ 7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에도 ‘성형외과전문가감정기구’ 창설해야 —연길 연세보건의학미용병원 김은화 원장 제안   연길 연세보건의학미용병원(이하 연세성형병원)의 김은화 원장은 “연변에 성형외과전문가감정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일전에 열린 연길시 제19기 인민대표대회 제...
  • 2024-01-13
  • 김철준 교수,초심을 잃지 않고 인재양성과 과학연구에 몰두할터   김철준. 중국공산당원, 박사, 연변대학 외국어학원 교수, 박사생지도교수.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당지부서기, 원장, 조한문학원 원장 력임. 9월 4일, 제39번째 교사절에 즈음하여 길림성교육청과 성당위 선전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2022년과 2023년...
  • 2023-09-07
  • 길림대학 총학생회 학생회장 리혜정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서 나중에 민족과 국가가 수요하는 사람으로 되고 싶다.   ■ 리혜정 최근, 조선족 리혜정 학생(20세)이 길림대학 제28회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장춘 조선족사회에서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길림대학 전위남(前卫南) 캠퍼스에서 만...
  • 2023-08-09
  • —북경시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교통방송 부국장 리철용 수도권 매체에서 두각을 내밀다 가족사진(좌로부터 리철용, 김홍화, 리응정) 단란한 가정 행복한 식구 20세기 90년대초의 어느날,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한창 12.9운동 기념 활동프로가 촬영중이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 한어 아나운서 리철용(조선족...
  • 2023-02-06
  • 김은장, 복건성고급인민법원 원장으로 당선 2023년 01월 17일 10시 06분    글쓴이:시스템    조회:15    추천:0 북건성인민대표대회 공고 [14기] 제4호 복건성 제14기 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는 2023년 1월 15일 김은장(조선족)을 복건성고급인민법원 원장으로 선거하였다. 김은장 략력:...
  • 2023-01-18
  • 최근 2022년도 국가사회과학기금 중대항목립안명단이 정식으로 공포되였는데 연변대학 조한문학원 김철준교수 연구팀이 신청한 가 성공적으로 립안되였다. 이는 연변대학이 4년만에 재차 우리 나라 철학사회과학연구분야의 최고급 항목을 비준받은 것이다. 이 항목은 국내외 동아시아 한적연구의 최고력량을 집합시켜 최초...
  • 2022-12-13
  • 청도농업대학 화학과 약학원의 주영철(49) 교수는 농약 관련 연구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의 연구 성과는 민족기업의 발전에도 튼튼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주영철 교수 연변이 고향인 주영철 교수는 연변농학원(현재 연변대학농학원)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졸업후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연변대학농학원 과학기술처에서 근...
  • 2022-09-23
  • ‘조률은 무대 뒤 무대서 완성하는 작품’ 1000분의 1의 차이도 느껴내야만 최적의 연주 컨디션을 만들 수 있는 만큼 조률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스름한 무대 우, 매끄러운 피아노 한대가 놓여있다. 조명이 켜지고 피아니스트가 뚜벅뚜벅 걸어나오면 이내 묵직한 적료를 뚫고 울리는 피...
  • 2022-08-18
  • 현장의 가장 가까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까지 사진 한장에 담아 전해야 하는 직업이 촬영기자이다. 오인철(70세)은 평생을 《연변일보》 촬영기자로 뛰면서 뉴스현장을 누볐고, 자치주의 변화를 고스란히 사진으로 기록하고 방대한 자료를 남겼다. 3일, 오인철은 자택에서 인터뷰를 받으면서 컴퓨터에 일목료연하게 ...
  • 2022-08-14
  • 중국 림업기계 연구 개발의 선두주자, 국무원 특수수당금 향수자 김태현 로옹 최근 동북림업대학 건교 70주년 경축행사차 산동성 청도에서 비행기편으로 할빈에 오신 김태현 로옹을 만났다. 85세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력이 왕성하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박식한 분이였다. 이야기를 통해 김 옹은 중국 립업기계 연구 개발...
  • 2022-07-24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