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족 경제력 급성장…이제 누구도 무시못할 공동체"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4월30일 15시35분    조회:635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남기학
中동포 ‘롤모델’ 남기학 회장이 말하는 ‘조선족 경제’
남기학 중국 예지아기술그룹 회장은 24일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경제개방 초창기 지식있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해외로 나가지 않고 연안도시로 나가 경제활동을 했다”며 “나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라고 말했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남기학 중국 예지아기술그룹 회장은 24일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경제개방 초창기 지식있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해외로 나가지 않고 연안도시로 나가 경제활동을 했다”며 “나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라고 말했다.

“우리 회사가 만든 초정밀 광학 렌즈는 삼성이나 LG, 소니, 화웨이 등에 들어갑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와 플래시 렌즈에 들어가는 거죠. 우리가 공급에 차질이라도 빚을라치면 이런 세계적 대기업들도 공장 가동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겁니다. 우리 광학 렌즈는 TV를 비롯해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뿐만 아니라 중국은 물론이고 독일, 일본, 미국 자동차 제조회사에도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도 우리 기업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를 만나고부터 첨단 기술로 창업을 꿈꾸는 중국 동포 청년들의 ‘롤 모델’이 된다는 이유를 알 듯했다. 중국 첨단산업의 심장부인 광둥(廣東)성 선전시에서 예지아(燁嘉)기술그룹 이끄는 남기학(南基學·58) 회장. 창업 18년째인 그의 회사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눈인 광학 렌즈, 귀이자 입인 음향기기 및 스피커 부문을 선도하고 있다. 그가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는 세계한인무역협회가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개최한 제21차 세계대표자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빼곡한 일정 탓에 서울에서 만나기는 어려워 24일 행사장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조선족 사업가인 그를 인터뷰하면서부터 중국 동포들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 것이라는 편견은 여지없이 깨어졌다.

“창업 18년에 9개 계열사…올매출 8천만 달러
4차산업의 ‘눈’ 초정밀 광학렌즈…‘中톱5’ 들어
삼성·화웨이 공급…美日·유럽車 제조사도 공급”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예지아기술그룹 본사의 1층 모습. 예지아기술그룹 제공.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예지아기술그룹 본사의 1층 모습. 예지아기술그룹 제공.

- 한국말이 사투리도 거의 없이 유창하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헤이룽장(黑龍江)성 지시(鷄西)시 융핑(永平) 조선족 마을에선 한국말로 다 이야기합니다. 물론 학교에선 중국말을 하지만요.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사는 어떤 분의 말은 쉽게 알아듣겠는데 옆집 다른 할머니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 할머니가 사투리를 심하게 써서 그랬던 겁니다. 8도 사람들이 다 모여 살았기에 제 말투에는 전국의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 있을 겁니다.”

그의 말투는 나긋했고, 조심스러웠다. 목소리도 높이지 않았다. 전직이 교수여서인지 말하는 스타일도 설명하듯 했다. 선비형 최고경영자(CEO)로 느껴졌다. 그는 자신을 거리낌 없이 ‘조선족’이라고 칭했다.

- 주력 사업은 무엇인가.

“말씀드린 대로 최첨단 정밀 광학 렌즈를 생산하는 광학사업부가 가장 큽니다. 최근 5년간 3억 위안(516억원 상당)을 투입해 초정밀 광학 렌즈 가공기계와 전자설비 및 전자동 라인 시스템을 스위스, 독일, 일본에서 도입했습니다. 중국에서 ‘톱5’에 꼽히는 광학 렌즈공장일 겁니다. 음향기기 및 스피커 사업부, 실리콘사업부, 전자사업부, 자동차전자사업부, 헬스케어 사업부 및 플라스틱 공장도 있습니다. 계열 자회사가 9개로, 전체 종업원은 1500명 정도입니다. 공장은 선전, 동관, 절강에 있습니다. 차량에도 들어가는 광학 렌즈는 차량 조명이 LED와 레이저 램프로 바뀌면서 우리 제품이 많이 들어갑니다.”

“지시대학 교수생활 10년…日기업 ‘러브콜’ 받아
안정된 교수 그만두고 中남쪽 끝에 내려가 도전
가방 하나 딸랑 들고 선전 도착…풍토병에 고생”
지난해 10월 열린 한상대회에 참가한 남기학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인사하는 모습. 예지아기술그룹 제공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지난해 10월 열린 한상대회에 참가한 남기학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인사하는 모습. 예지아기술그룹 제공

- 언제, 어떻게 창업했나.

“제가 일본 기업에 7년째 다니던 2001년 3월 창업했습니다. 당시 프린터기와 복사기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해 전량 일본 회사에 납품했습니다. 초창기엔 일본 회사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저녁 9시부터 새벽 두세 시까지 휴일도 없이 일했습니다. 처음 7~8달간은 적자에 시달렸습니다만 그 고비를 넘기자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우리 4형제와 친척의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들여서 시작했습니다. 3년 뒤 일본 회사를 그만두고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혁신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014년부터 광학 렌즈 사업에 주력했습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가 온다는 것을 예감하고, 광학 렌즈에 집중투자한 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았던 겁니다.”

- 2년에 한 개꼴로 회사를 만들었다. 승승장구 비결은.

“늘 위기감을 가지고 긴장하면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잘 될 때 다음 사업, 또 그다음을 준비하는 것이죠. 또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고 육성하는 것이 기업의 성장을 좌우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인재가 있으면 세계 어디든지 찾아가 모셔 옵니다. 현재 일본에서 스카우트한 직원이 회사에 많이 있습니다. 회사에는 조선족과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이 있고, 물론 중국인이 제일 많이 있습니다.”

“日기업 다니던 2001년 창업…새벽 두세시까지 일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혁신사업 절감…광학렌즈 투자”

- 매출은 얼마나 되나.

“아직은 적습니다. 작년에 6000만달러의 실적을 올렸고, 올해는 8000만달러(930억원 상당)는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봅니다. 내년에는 1억달러 달성과 함께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참, 한국에 공장은 없지만, 회사는 있습니다. 한국은 땅값이나 인건비 등에서 제조업 경쟁력에서 중국에 비교되지 않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거나 세계화에선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지만 한국 브랜드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전략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 상장하면 정부의 간섭이 많아지지 않나.

“중국에선 기업 상장 자체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현재 중국에 4000만개가 넘는 회사가 있는데, 상장된 회사는 3800여개에 불과합니다. 상장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렵지만, 기술력과 성장잠재력 등을 제대로 평가받는다는 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어떤 면에선 국가가 기업가치를 인정했다는 것이고, 정부가 그만큼 보호도 해줍니다. 그래도 우리만의 기술을 위해 설비투자와 함께 연구개발(R&D) 투자도 늘리고 있습니다.”

“한국 전통문화 너무 변해 원형 찾아보기 어려워
조선족들, 항일운동 지원한 독립 투사들 후손들
中정부, 항일투쟁 무시 못해…韓도 잊지 않았으면”
지난해 4월 중국 베이징에 있는 국빈관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중국 한상 리딩 CEO에 참석한 남기학 회장. 한글 이름표가 눈에 띈다. 예지아기술그룹 제공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지난해 4월 중국 베이징에 있는 국빈관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중국 한상 리딩 CEO에 참석한 남기학 회장. 한글 이름표가 눈에 띈다. 예지아기술그룹 제공

- 거래 업체는 어떤 곳이 있나.

“협력사는 일본의 캐논, 소니, 도요타, 파나소닉, 교세라, 닌텐도, 샤프 등 15개사입니다. 한국은 삼성, LG, MOLEX 등이 있고, 미국은 IBM, GM 등 5곳입니다. 중국 내에선 화웨이, 샤오미, 오포, 하이센스 등 많은 회사가 있습니다. 현재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와 지역으로 한국, 일본, 대만, 미국, 유럽 순으로 최근에는 중국 내수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루는 제품은 정밀광학렌즈, 인공지능 가전제품,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VR/AR)제품, 프린터, 게임기, 건강관리제품, 생활용품, 음향기기, 자동차전자제품, 자동차부품, 핸드폰과 복사기 부품 등입니다.”

- 창업 전에는 무엇을 했나.

“1994년 광둥성 선전에 있는 일본 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갔습니다. 일본 회사에 취직했을 때 임원들이 더럽고 힘든 일을 앞장서서 하고, 세밀히 체크하면서도 단합심과 러더십을 발휘하는 등의 경영관리를 많이 배웠습니다. 나중에 제가 경영할 때 이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일본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지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10년간 있었습니다. 그에 앞서 1984년 7월 하얼빈공업대학 동북중형기계학원(현재의 옌산대) 자동제어 학부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유학하려고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일본어도 되고, 중국어도 되는 저를 일본 기업이 영입했던 겁니다. 당시 안정된 교수 직업을 버리고 일가친척 하나 없는 중국 대륙 최남단인 선전까지 내려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사실 고민스러웠습니다만 후회는 없습니다.”

“내년 매출 1억달러 돌파…거래소 상장도 동시 추진
인공지능 가전제품, AR/VR 제품, 음향기기도 생산”

남 회장은 중국에서 대학입시가 부활한 지 2년 만인 1980년, 지시 지역에서 손가락에 뽑힐 정도의 고득점으로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지시대학에 배치되면서 컴퓨터, 전력분야 지식도 더 쌓고 석사과정도 마치며 1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일본 기업에 들어가면서 유학의 꿈을 접었다고 했다.

- 당시 중국에서 남방붐이 불지 않았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1번지인 선전경제특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외자 기업들도 그만큼 많았습니다. 당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나가지 않고 선전을 비롯한 연해도시의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갔습니다. 이들이 성장해서 지금은 그 회사의 경영인이 되거나 독립해 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가방 하나 딸랑 들고 내려갔습니다. 춥고 건조한 북동쪽 끝에서 태어나 자란 저는 무덥고 습한 남쪽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기후 차로 습진 등 피부병에 걸려 온몸에 물집이 생기고 가려워 긁으면 또 터지면서 상처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북방에서 온 사람 누구나 첫 한두 해에는 풍토병을 겪습니다.”

남 회장은 2009년 전 세계 76개국에 147개 지회 7000여명의 최고경영자(CEO) 회원을 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회장 하용화)에 가입해 중국심천지회 1, 2대 회장을 지냈다. 2014년부터 부회장으로 활동하다 작년 10월에 수석 부회장이 됐다. 중국아시아경제발전협회 해외무역위원회 회장, 중한일기업연의회 부회장, 광둥성조선민족연합회 부회장 등 다양한 직무도 맡으며 민족 사회에 기부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민족사회에 좀 더 많이 헌신하려고 합니다. 한국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졌거나 너무 변해서 원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연변에 가보면 우리 민족의 풍속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조선족 동포 사회에 좀 더 헌신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韓서 조선족, 3D 일하는 ‘바닥 인생’ 인식 안타까워
식당서 허드렛일하는 아주머니가 조선족 전부 아냐
한국 오면서 문화차이로 적응애로에 거칠어졌을 뿐
조선족 경제력 급성장…이제 누구도 무시못할 공동체”
동관 공업단지에 들어선 예지아기술그룹 공장 전경. 예지아기술그룹 제공

▲ 동관 공업단지에 들어선 예지아기술그룹 공장 전경. 예지아기술그룹 제공

- 중국 동포들, 경제력 얼마나 되나.

“동북 3성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혜택을 늦게 보지만 요즘 무섭도록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족들 역시 경제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있습니다.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조선족 기업들이 다수 있습니다. 2014년 한국의 유명 유아패션용품업체 아가방을 인수했던 신동일 랑시그룹 회장, 북한에 호텔 등을 다수 건축한 길림천우건설그룹의 전규상 회장, 건축·무역·부동산·과학기술 등의 분야에서 자회사를 많이 거느린 요녕신성그룹 표성룡 회장…. 이런 분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에겐 서울의 음식점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서빙하는 아주머니를 보고선 조선족들이 3D 일을 하는 ‘바닥 인생’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소양도 안 갖춰져 있고, 거칠게 사는 조선족도 일부있지만 그들이 우리 중국 동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오면 문화도 생활습성도 일하는 방식도 달라서 조선족들이 한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많이 겪으면서 거칠어진 사람도 있겠지만 …. 조선족은 이제 누구도 무시못할 커다란 경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포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국과 우리 조선족, 그리고 중국과도 동반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

- 북한 진출 관심은.

“북한에 생필품 공급이나 부동산과 광산 개발 등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2500만명이나 살고 있으니깐요. 우리에게 휴대폰 공장 제의가 왔습니다만 IT는 당장 유엔 감시 대상이어서 조심스럽습니다. 북한에 500만명이 휴대폰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엔 눈치를 보는 요즘 중국인들은 정말 많이 북한에 드나들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편이나 단둥에서 넘어가는 기차편은 항상 거의 매진이라 들었습니다. 북한과의 물밑 움직임이랄까 접촉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죠. 대북 제재 해제와 동시에 북한에 진출하면 늦다는 것을 우리 같은 사업가들은 직감적으로 압니다.”

“北진출?…베이징~평양행 항공티켓 매진이라 들어
물밑 접촉이 많다는 방증…재제 해제후 진출은 늦어
우리에겐 휴대폰 공장 제의도…UN 제재 탓에 조심”
2017년 4월 김동연(왼쪽) 경제부총리와 기념촬영을 하는 남기학 회장. 예지아기술그룹 제공.

▲ 2017년 4월 김동연(왼쪽) 경제부총리와 기념촬영을 하는 남기학 회장. 예지아기술그룹 제공.

- 어떻게 해서 중국에 살게 됐나.

“돌아가신 제 아버지가 11살 때인 1927년, 경기도 이천시 율면 월포리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만주로 건너왔습니다. 3대 독자였던 할아버지가 당시 일제로부터 엄청난 유뮤형의 정치적·경제적 압박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왔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생계 때문에 항일운동에 직접 나서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셨지만 독립지사들을 물심으로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 고향은 강원도 철원입니다. 아버지는 우리 마을의 촌장(지부 당대표)를 지내면서도 밤에는 이불 속에서 KBS 라디오를 몰래 듣곤 하셨습니다. 흘러간 옛노래라도 나오면 눈물을 훔치며 따라 부르거나 가사를 적어 외우시곤 하였습니다. 수교되기 이전의 일입니다만 아버지가 고향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게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이천에 가봤지만, 할아버지가 3대 독자여서 친척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이천에 가면 가슴이 뭉클한 묘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이게 피붙이인가요.”

“3대 독자 할아버지, 1927년 일제 압박 피해 만주行
선친, 이불 속에서 KBS라디오 몰래 들으며 눈물 훔쳐
이천 갔지만 친척 못찾아… 뭉클한 ‘피붙이’ 감정 느껴”

남 회장은 조선족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는 이유와 관련해 일제의 압박을 피해 만주로 건너간 선조의 항일운동에서 찾고 있다. “중국의 항일운동에 우리 조선족 선조가 많이 참여했습니다. 중국 정부도 이를 결코 무시하지 못하죠. 그래서 조선족 학교에 대해 중국 당국이 어려워도 지원을 끊지 않았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보존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올해가 항일운동 100주년이라고 하는데 우리 할아버지들도 많이 참여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사진 정선 이기철 선임기자

서울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60
  • 동녕룡흥봉업전문합작사 박룡진 총경리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기자= "누가 어디서 생산했고 또 누가 수매했다는 등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해 품질에 하자가 생겼을 경우 추적할수 있도록 품질관리를 철저히 해 얼굴있는 꿀을 생산하겠다"고 승낙한 경영인이 있다. 그 주인공이 흑룡강성 동녕룡흥봉업전문합작사 박룡진...
  • 2016-01-11
  • “앞으로 명태를 더욱 개발하여 우리 민족의 유명 브랜드로 키워가는것이 저의 꿈입니다.” 주변의 시선과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업을 이어받아 자신만의 확고한 꿈을 키워가고있는 연길시 영진식품유한회사 사장 김춘섭(39세)씨, 지난 12월 25일,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명태는 사실 버릴것이...
  • 2016-01-06
  • 어쩌면 창업이 강요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시대, 경쟁력이 확보된 창업아이템선정과 업무를 널리 알리는 홍보의 힘 그리고 무엇 보다도 중요한 성공 의지는 창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전개하고 있는 업무를 널리 알리는 홍보야 사회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SNS프로그램인 위...
  • 2016-01-01
  •         무순시 취록금방 정해봉(흑룡강적)사장의 창업스토리   무순시 한왕백화상점(罕王商店)에 7개 금방 매출액의 60%를 차지하고 매달 200만원이상의 매출을 올리고있는 조선족사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전 기자는 그가 경영하는 무순시취록금방(抚顺市翠绿金店)을 찾아갔다. ...
  • 2016-01-01
  • 아가방앤컴퍼니가 기존 각자 대표 체제에서 신상국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하고 중국 시장 공략에 팔을 걷고 나섰다. 신상국 단독 대표이사 체제를 통해 보다 효율적인 기업 운영과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아가방앤컴퍼니는 28일 강남구 본사에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신상국 아가방앤컴퍼니...
  • 2015-12-29
  • 일본사회에서 연변의 브랜드로 알려진 《축구》,《김치》와 관련된 대표인물들에 대한 취재 계속으로 7월 21일 저녁, 필자는 《진달래》의 대표인물로 동경에서 13년간 《진달래》음식점을 차리고있는 신혜영사장과 식당에 모인 재일조선족들을 만났다.    동경에서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신오오구보거리에서 ...
  • 2015-12-23
  •          미디어분야로 사업확장한 헤이룽장대천그룹 천옥금 회장   제조업·농업·기업 투자·미디어 등 운영하며 경영서 저술중국은 사업 기회 무궁무진…100대 기업 진입이 목표          (흑룡강신문=하얼빈) ‘연은 바람이 거셀수...
  • 2015-12-17
  • 목포 출신 어머니가 평양으로 시집을 갔다. 아버지는 남다른 주먹을 휘둘렸다고 한다. 그 부모님이 헤리룽장성에서 중국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고 본인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자라나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그는 공부만이 살 길이라 독려한 어머님 덕에 지금은 조선족 계열중 가장 성공한 CEO로 거듭나고 있...
  • 2015-12-03
  • 사무실에서 취재를 받고 있는 박규주 총경리 칭다오부원전자 박규주 총경리 일가견   (흑룡강신문=하얼빈) 장학규 특약기자=칭다오부원전자유한공사 박규주 총경리는 일견에도 성격이 시원시원해보였다. 둥글넙죽한 얼굴에는 지성미가 다분히 풍겼으며 스스럼 없는 어조에는 항상 유머감각이 슴배어있었다.   칭다오 방...
  • 2015-11-27
  •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리바바그룹의 주 수입원이 taobao.com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taobao.com의 업무는 B2C(기업대 소비자의 전자상거래)와 C2C (소비자대 소비자의 전자상거래)로 알리바바그룹 업무의 일부분에 속할 뿐, 더 큰 수입원은 B2B(기업과 기업간의 전자상거래)플랫폼인 alibaba.com에 있는 것을 아는...
  • 2015-11-25
‹처음  이전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