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홍역에 걸린 24명 아이 하나하나 살려낸 김영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6월21일 10시57분    조회:361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영자

1976년 5월에 김영자는 제1자동차공장에 입사하면서 자동차공장병원 소아과에서 9년간 근무했다. 자동차공장병원에서 근무하는 기간 그녀는 어떤 일터든 막론하고 조직의 부름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당원의 자각을 안고 시키지 않는 일도 묵묵히 해왔다.

당기가 걸려있는 로당원 김영자의 거실.

1933년 화룡시 룡수진에서 태여난 김영자는 1949년에 해방군 제3륙군병원에 입대하면서 의사의 길에 오르게 되였다. 가렬처절한 항미원조에 참가했다가  1954년 돌아와 화룡현병원에서 선후로 호사, 호사장, 총호사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길림성병원의 외과, 소아과에서 연수생으로 8개월간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 김영자는 “전례가 없었지요. 연수생 신분으로 선진개인까지 되였고 연수생 당대표로 성병원의 당대회에까지 참석했습니다."라고 길림성병원에서 연수하던 추억을 떠올린다.

1979년 김영자는 환경이 렬악한 자동차공장병원 맹가툰위생소로 자진해 가게 되였다. “그때 맹가툰위생소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던지 말도 마세요.”라고 하면서 40년전의 일을 회억한다. 집과 멀리 떨어진 위생소를 남보다 1시간 일찍이 출근해서는 청소부터 시작해 하루 문진에 수요되는 여러가지 준비를 빠짐없어 해놓았다. 겨울이면 날도 밝기 전에 집에서 출발해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을 무릅쓰면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했다.

1953년 항미원조에 참가해 압록강에서 전우들과 남긴 기념사진(앞줄 오른쪽).

위생소에 난방시설이 없어 땔나무도 혼자 해결했고 석탄도 혼자 나르면서 환자들이 오기전에 불을 지펴 실내를 따듯하게 했다. 어느 한해 겨울 김영자는 그해 겨울을 날 석탄을 한바구니 한바구니씩 혼자서 며칠 동안 옮기기도 했다.

1982년 맹가툰에 거주하고 있던 한 직공 자녀가 홍역에 걸리면서 순식간에 24명의 아이에게 전파되였다. “당시 조건으로 자칫 잘못하면 어린애들이 생명을 잃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김영자가 말했다.

고민 끝에 김영자는 위생소보다 각자의 집에서 치료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애들을 집에서 치료하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어린 아이들이 치료를 다니는 불편함을 덜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한 자동차공장 직공들을 위해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공장병원 소아과에서 근무하던 시절(뒷줄 오른쪽 첫사람). 

그렇게 되여 김영자는 전보다 더 일찍이 출근해서는 먼저 아이들의 집을 한집한집 찾아 병을 보고는 위생소로 출근했다. 한달간의 고생으로 24명의 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홍역을 이겨냈고 주변으로 더 전염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도깨비나 할 일입니다. 글쎄 그 많은 아이들을 그런 환경에서 다 치료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너무 담이 컸던 것 같습니다.”라면서 “지금도 그 아이들의 가족들은 길에서 저를 만나면 알아보고 인사를 합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1983년 어느 평범한 수요일 병원에 홀로 남아서 한참 병지를 쓰고 있었는데 공장 유치원 선생이 맨발바람으로 어린애를 없고 헐레벌떡 달려와서, 애가 숨을 못 쉬고 죽어간다며 제발 구해달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항미원조중 전우들과 함께(앞줄 왼쪽 두번째).

점심에 왠쇼를 먹은 후 애가 바닥에 쓰러지고 입술이 자색으로 변해서 병원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다년간의 경험에 의해 김영자는 식중독 아니면 기도가 막혀 질식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긴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영자는 한시도 지체 없이 구급차를 불렀다. 질식은 분초를 다투는 일이라 그냥 손을 놓고 기다릴 수 없었다. 구급차가 공장병원까지 5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기는 하지만 5분은 숨을 못 쉬는 어린아이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자동차공장병원 소아과에서 근무하던 시절.

질식임을 확신한 그녀는  아이의 입안에 핀센트를 깊숙이 넣어 기도에 걸려있는 왠쇼를 겨우 끄집어내니 드디여 아이가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의식을 차린 아이를 본 유치원 선생은 그제야 바닥에 주저앉아 울면서 고맙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1985년 김영자는 건강상황으로 리직을 한 후에도 자신의 정열을 자선사업에 몰부었다. 퇴직금으로 생활하는 그녀가 지금까지 불우한 사람들을 도운 데 쓴 자선금은 총 20만원을 훨씬 넘으며 도와준 사람들이 무려 70여명에 달한다.

길림신문/리철수 전현관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일시: 2016년 11월 5일 오전 10시 장소: 길림신문사 연변분사 사무실 취재: 연변부덕팀 주장 최민  취재기자: 김룡   연변팀의 위력: 고향을 지키려는 정신 길림신문: 올시즌 연변팀을 평가한다면? 순위 9위가 우리팀 실력을 제대로 보여준 것인가?  아니면 … 최민: 실력보다  더 좋은 성적을 ...
  • 2016-11-11
  • - 중한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시작된 코리안 드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코리안 드림의 첫 물결을 일으킨 우리부모 세대들은 오로지 가족과 자식을 위해 힘든 3D업종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피와 땀으로 가족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나갔다. 그러나 조선족 집거지 와해, 가족의 해체, 청소년들의 비뚤어진 성장 등 부정적...
  • 2016-11-09
  • 특별기고 —기자절을 맞으며 조선족언론계의 별 고 정경락선생의 인생마무리 돌이켜 본다. 광동촌에서 습근평주석이 앉으셨던 자리에 앉아 기자생애 마지막 취재를 하고난후 기념사진을 남긴 정경락선생 추모문으로 맞는 기자절 올해의 추위는 류달리 때이르게 찾아왔다. 기자절(11월 8일)을 맞으면서 문득 한분의 모...
  • 2016-11-07
  • 10여개 직함으로 조선족사회 헌신하는 '네트워크의 허브' 'K-뷰티' 中 수출에도 앞장…"재한동포특별법 제정해야" 20대 총선땐 비례대표 물망…"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김용선 한중무역협회 회장이 4일 서울 구로동의 협회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
  • 2016-11-07
  • 2002년 대림동에 '연변냉면' 개업…'조선족 타운' 선견지명 적중 식당 손님들 보며 웨딩홀 진출 '촉' 발휘…사업장 4곳으로 늘려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자주 소통하다 보면 해소될 것"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연변냉면이라고 하면 좀 낯설죠? 평양냉면도, 중국냉면도 ...
  • 2016-10-31
  • [연해지역 탐방 광주편 4] 유태국의 상업담 광주시에 위치한 황포군관학교, 중국 현대력사에서 국공량당의 수많은 군사간부를 양성함으로써 국내외 많이 알려진 이 학교는 중국의 첫 신형의 군사정치학교이다. 그리고 황포군관학교를 가지고있는 광주는 중국민주혁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개혁개방과 함께 광주는 이미 국...
  • 2016-10-29
  • 서울시 외국인다문화담당관 최해연 주무관     (흑룡강신문=하얼빈) 나춘봉 서울특파원= 서울시 외국인다문화담당관 외국인주민인권팀에서 ‘외국인주민 서울생활 살피미’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최해연(39세·하얼빈) 주무관. 서울시의 첫 중국동포 공무원으로서 서울에 거주하는 46만명 외국인들의...
  • 2016-10-28
  • 뉴욕 유니온상가에 중국조선족으로서 제일 처음으로 미용실을 개업한 전학송사장 글로벌시대의 물결을 타고 연변에서 미국으로 온 전학송미용사는 2006년에 뉴욕 플러싱지역의 번화한 거리인 유니온상가에 중국 조선족으로서 제일 처음으로 “아송미용실”을 개업하여 화제을 모았다. 유니온 상가를 비롯한...
  • 2016-10-28
  • [연해지역 조선족 인물탐방] 광주편 3 -광주 조선족사회의 젊은 리더 김철룡 개혁개방 30여년을 거쳐 중국 남부 대도시인 광주시에도 5만명을 헤아리는 조선족사회가 형성되여있다. 그리고 이 조선족사회의 발전을 위해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물심량면으로 힘쓰고 있는 리더가 있다. 바로 광주시에서 스피드 무역유한회...
  • 2016-10-26
  • [G2에서 활약하는 한인 고위 외교관] ① 공현우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 "중국 외교부 사상 최고위직 일본통 공현우" 공현우(왼쪽)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10월19일 서울 외교부에서 김형진 차관보와 한중 외교차관보협의를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 남자가 있다.  성 김(필리핀 주재 미국대사 내정자)...
  • 2016-10-24
‹처음  이전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