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농민과 사장 두 얼굴'을 가진 조선족 농민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18일 14시35분    조회:462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수철

오상시벼협회 회장 리수철

 

 

리수철 회장이 푸른 논밭을 바라보며 풍년을 기원하고 있다.    /한동현 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 기자= 리수철 농민은 흑룡강성과학기술협회, 흑룡강성텔레비전방송국에서 주최한 ‘흑룡강성 10대 농업기술협회(농기협)선두주자’평의활동에서 ‘흑룡강성 10대 농기협 선두주자’로 뽑혀 지난 6월 28일 흑룡강성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에서 수상했다.

  흑룡강성 오상시 리수철씨는(54) ‘과학기술보급-쌀 판매-종자 개발’ 3부곡을 부르며 30년 넘게 벼농사라는 한우물을 파온 조선족 농민이다.

  국제적 감각을 키워 협회 리더가 되다

  리수철 농민은 한해에 몇번씩 한국에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남들처럼 돈벌이를 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팔며 경험을 배운다고 말했다. 한국가서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고 남보다 앞설 수 있는 정보를 얻는 것이 목적이다. 오상시인대대표, 오상시유기벼합작사 사장, 오상시창의벼과학연구소 소장, 오상시벼협회 회장 등 사회활동도 빈번한 그는 벼협회 회원을 현재의 5천호로부터 5만호로 늘여 공동부유를 실천하는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오상시벼협회는 1993년 10월 설립됐다. 현재 19개 분회가 있고 회원수는 5천명에 달한다. 협회는 선후로 오상창신농업과학기술개발유한회사와 하나의 벼가공공장을 세웠다. 가공공장은 년간 회원들의 3천톤 벼를 회수해 가공한다.

 

 

리수철 회장이 협회사무실에 수상한 상장들을 진렬하고 있다.    /한동현 기자

  2003년, 백여명 회원들이 협회의 벼시험품종을 심었는데 그해 기후가 이상했고 게다가 병충해가 엄중하게 발생해 감산을 초래했다. 협회에서 두말없이 30만여 원을 내놓아 회원들의 손실을 배상해 주었다.

  리수철회장은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회원들이 손해를 보아서는 안된다”는 승낙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는데 회원과 주변 농민들의 신임과 인정을 받았다.

  그는 해마다 농업기술 강습반을 조직해 무상으로 새기술을 전수해 농민들이 부유해지도록 했다. 협회의 덕분으로 이미 200여농가가 가난의 딱지를 떼고 부유의 길에 올랐다. 협회는 점차 농민들의 환영을 받게 되였고 농업기술보급에서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벼협회를 이끌어 과학기술보급에 큰 기여를 했는바 2005-2006년 오상시벼협회는 흑룡강성과학기술협회로부터 선진집체로 평의되였으며 리수철 개인은 련속 6년 흑룡강성과 할빈시 ‘과학기술로 소득증대를 실현하는 선두주자’로 평의되였다.

  한편 오상시벼협회는 2006년 12월 중국과학기술협회와 재정부로부터 ‘전국과학기술보급혜농흥촌’ 선진단위로 평의되였다. 또한 2017년에는 중국농촌전업기술협회로부터 ‘전국우수농촌전업기술협회’칭호를 수여받았다.

 

 

 

 

 

 

협회에서 수상한 상장들.    /한동현 기자

  '얼굴 있는 농산물'을 판매하다

  조선족 농민들은 벼 생산에서는 인정을 받지만 류통에는 ‘숙맥’이나 다름없다. 결국 류통 과정에서 생기는 리윤을 고스란히 남에게 떼우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을 못내 가슴 아프게 생각했던 그는 중국어를 류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여 쌀판매에 뛰여들었다.

  그는 쌀 전단지를 들고 해마다 무작정 광주교역회 등을 찾아다녔다. 할빈상담회에는 해마다 부스를 임대하여 출품했다. 점차 상인들이 그의 얼굴을 기억하게 되였으며 곧 판매로 이어졌다.

  가을철이면 북경, 상해, 할빈에서 단체구매 예약이 들어오는데 80-90%는 계좌에 입금하고 쌀을 조달받는 방식을 택했다. 이처럼 그의 손을 거친 계약재배 농가가 3천호에 달하며 그 면적이 2만무에 달한다. 계약재배 농가에 한해서는 종자, 비료, 기술봉사를 제공하며 가을에 벼를 근당 3-5전 비싸게 수매함으로써 농가의 소득증대에도 기여했다.

  그는 한해에 보통 쌀을 100여만근씩 판매했는데 가장 많이 판매할 때는 300만근에 달했다. 참말로 쌀판매난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리수철씨는 2013년부터 유기농 쌀에 한해서는 ‘얼굴 있는 농산물’ 실명제를 도입했다.

  “한때 시장에서 오상쌀하면 가짜라는 말이 나돌아 신뢰가 많이 떨어졌어요. 직접적으로 현지 농민들한테 큰 타격을 주었지요. 그래서 고민하다 ‘내 농산물은 내가 지킨다’는 풍토조성과 고품질 생산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농산물 출하 시 포장 상자에 생산자 사진, 성명, 전화번호 등을 표기해 농가의 자긍심 고취와 지역 농산물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얼굴 있는 농산물 생산 실명제를 도입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고급쌀은 “만약 가짜라고 확인되면 쌀 한근에 1만원씩 배상하겠다”고 승낙했다. 이런 배짱이 먹혀든 덕분에 고급쌀은 더 엄청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그래도 찾는 단골손님이 적지 않다고 한다.

 

 

리수철 농민이 올해 농사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동현 기자

  벼 종자개발에 안간힘을 쏟다

  리수철회장은 벼종자 개발에 무척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올해도 600여가지 벼종자 실험을 하고 있다. 선후로 100여개 계통(品系)을 연구개발했는데한개 품종이품종감정심사에 통과되였다. 또한 리수철회장은 부단히 새로운 벼재배기술을 개발하여 농민들한테 보급했는바 많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

  따라서 그는 ‘오상제2대 벼 사람’(五常第二代水稻人)이라는 아름다운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그는 좋은 종자가 있어야 농민들이 잘 살수 있다며 벼 종자 개발에 애착을 보였다. 그는 흑룡강성농업과학원 한랭벼재배연구소의 연구원들과 함께 품종 배육에 나섰다. 그는 해남도에 기지를 세우고 해마다 10여만원씩 써가며 상주 가능 농업전문가를 초빙하여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가끔 해남도에 가서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그는 종자판매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시켜 정보교류와 사후봉사에 활용하는 등 서비스 정신도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흑룡강, 길림 지역에 종자를 많이 판매하고 료녕, 내몽골 지역에도 일부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한해에 판매하는 벼종자가 80-100만근에 달한다.

  그가 연구소와 손잡고 개발한 ‘룡도7호’는 성급감정에 통과됐으며 현재 개발해낸 창신계렬 계통이 수백가지에 달한다. 그는 벼종자개발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 흑룡강성과학기술진보 2등상을 수상했다.

 

 

리수철 회장이 흑룡강텔레비전방송국 기자의 취재를 받고 있다.    /한동현 기자

  사장과 농민 '두 얼굴'

  그는 1-2층으로 된 240평방미터의 종자회사를 경영하면서도 농민의 본색을 잊지 않았다. 내 손으로 농사를 지으며 경험을 쌓고 기술을 익힌다는 취지이다.

  오상시에 위치한 종자회사 사무실에 있을 때는 사장이요, 논에 나가 일을 할 때는 농민으로 탈바꿈한다. 사장과 농민 ‘두 얼굴’이 그의 정체이다.

  현재 오상진과 흥륭향에 도합 30헥타르의 논을 두고 있는데 헥타르당 9천-1만킬로그램의 생산량을 내고 있다. 현재 고랑사이가 넓은 새 기술을 도입하여 생산량을 더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각종 재배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래년에는 1억원의 수입을 바라보지만 큰 욕심 보다는 농업에 대한 애착때문에 “농업을 떠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오늘도 농사라는 한우물 파기에 옹고집을 부린다.

  때론 사장이고 때론 농민, ‘두 얼굴’의 주인공 리수철씨는 항상 농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