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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미녀가수로부터 고위간부로 승진한 현송월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22일 20시51분    조회: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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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현송월
 
예술인으로부터 고위간부로 승진한 현송월은 개별적 사례가 아니지만 특수상황이라고 할수 있다. 
 
 
3월1일 윁남 하노이에서의 현송월
 
사진:시각중국
 
 
 
현송월 문화대사로부터 김정은의 "비서"로
 
 
    천천히 걸어가던 현송월은 판문점군사분계선앞에서 멈춰섰다. 그는 시종 조선최고지도자 김정은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김정은위원장이 군사분계선에 가 미국의 트럼프대통령과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주목했다. 
 
 
 
   6월30일 조한변경지대의 판문점에서 진행된 제3차 “김정은-트럼프회담”기간 현송월은 이전 두차례 회담기간 김정은의 녀동생 김여정이 하던 역할을 담당했다. 
 
 
 
   김정은이 2012년에 정식으로 조선최고지도자로 당선된후 현송월은 이름난  가수로부터 예술단체의 행정령도로 승진하고 점차 조선의 대외문화교류를 책임진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2019년 그가 김정은의 녀동생인 로동당중앙정치국 후보위원 김여정의 일부 사업을 대신하고 조선령도층에 진입했다는 것이 외계에서 확인되였다. 
 
 
 
  장기간 조선악단제도연구에 종사한 핀란드웨스굴레대학 교수 페카.꼬르헤닌은 현송월이 예술인으로부터 고위간부로 승진한 것이 개별적인 사례가 아니지만 특수상황인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존.호프킨스대학교 조선문제전문가 마이클. 맥던은 “중국신문주간”기자에게 “향후 5년내에 현송월이 더욱 승진하게 될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중시를 받아
 
 
 
   2012년3월8일 평양에서 진행된 국제녀성절경축공연에서 조선의 이름난 가수 현송월이 임신한 몸으로 관중석으로부터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러 장내에 관람자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해에 35살인 현송월은 무대에 등단한지 이미 17년이 되였다. 이에 앞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현송월의 정치적생애는 2012년부터 시작되였다. 
 
 
 
    대다수 조선가수와 마찬가지로 현송월의 개인 생활도 줄곧 외계에 알려지지 않고 그의 출생일도 여러 가지 부동한 설이 돌고 있다. 2018년4월27일 조선최고지도자 김정은위원장과 한국 문재인대통령이 제1차회담을 가진후 한국대통형부 청와대에서 만찬출석명단을 공포할때 현송월이 1977년생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같은 해 한국국정원에서도 처음으로 이 정보를 언론에 밝혔다. 
 
 
 
    현송월의 가정배경이 베일속에 있지만 한국정부는 그가 평양에서 출생하고 조선최고음악학부인 김원균음악종합대학에서 공부했다고 밝혔다. 전신이 평양음악대학인 김원균음악종합 대학은 2005년에 개칭했다. 올해 “중국신문주간”대표단은 “조선에서 가장 좋은 음악학부”인 이 대학을 방문하고 학교귀빈실에서 조선문화성 부상인 박춘식을 만났다. 당시 박춘식부상은 조선에서 이름난 음악인들이 모두 이 대학을 나왔다고 소개했다. 
 
 
 
   현송월이 조선음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의 최초공연은 1995년으로 기록되였다. 당시 그는 진달래 꽃무늬가 새겨진 민족복장차림으로 왕재산경음악단과 함께 “장군과 해병”을 비롯한 노래를 불렀다. 
 
 
 
 
 
 
 
  현송월은 무대에 오른 후 각광을 받았다. 조선의 이름난 작곡가 인 왕재산경음악단 작곡가 김운룡이 현송월이 공연에서 부를 대부분 노래의 작곡을 책임졌다 
 
 
 
   김운룡의 도움으로 현송월은 지난 세기말부터 왕재산경음악단, 보천보전자악단, 은하수관현악단을 비롯한 조선국가급악단과 합작해 “고향의 달밤” “병사의 발걸음” “나는 평양을 사랑하네”를 비롯한 새로 창작한 류행가곡을 불러 가장 주목받는 조선가수로 성장했다. 
 
 
 
   한국”중앙일보”에 따르면 보천보전자악단과의 합작기간 “준마처녀”를 불러 조선최고지도자 김정은위원장의 시야에 들게 되였다. 이는 그가 음악인으로부터 정계에 진출하게 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2012년에 결혼한후 현송월은 가수신분으로 등단한 적이 없다. 
 
 
    조선의 관례에 따르면 그는 대학교 교원으로 직업을 바꾸어야 한다.
 
 
 
   2013년새해맞이 음악회에서 모란봉악단이 첫선을 보였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이는 김정은위원장이 “직접 세운 신형경음악단”으로서 현송월의 “백락”인 김운룡이 이 악단의 주요 작곡가로 되였다 .
 
 
 
  2012년7월6일 모란봉악단이 첫공연을 하고 김정은위원장이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이 끝난후 김정은위원장이 기쁜 심정으로 무대뒤에 가 나젊은 배우들에게 축하를 표했다. 당시 정장차림을 하고 손에 필기장을 든 현송월이 대학교원의 신분이 아니라 김정은위원장을 안내하는 관원들속에 있었다. 
 
 
 
   “모란봉악단이 오늘과 같은 성과를 거둔 것은 전적으로 경애하는 원수님이 우리들에게 숭고한 신임과 따듯한 배려를 주었기 때문이다.”  2014년5월16일 현송월은 조선제9회 전국예술인 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는 문예일군대표와 모란봉악단 단장, 조선인민군 대좌의 신분으로 대회주석단의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김운룡은 주석대 아래에 앉아 “제자”의 발언에 박수를 쳤다.
 
 
 
   2018년평창동계올림픽경기대회기간 조선예술단한국방문시  공연관련담판을 책임진 한국예술인 정치용은 현송월이 관람석과 무대가 큰 장소에서 공연하기를 희망하였다고 언론에 피로했다. 국립극장과 강릉예술쎈터가 무대의 앞뒤로 공간이 있어 현송월은 이 두곳을 선택하고 공연지의 가장 좋은 마이크와 스키커를 사용할수 있기를 희망했다. . 
 
 
 
    모란봉악단은 예전과 다른 풍격을 보여주고 배우들도 미니스커트와 하이일을 착용했다. 프랑스통신사는 론평에서 “모란봉악단이 ‘서방류행가곡과 애국가곡 혼합체’ 음악을 들려주었다”라고 썼다. 2018년 현송월은 규모가 더욱 큰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으로 부임된후 계속 대담한 공연방식을 실천했다. 
 
 
 
    올해 4월15일 조선의 가장 성대한 명절인 “태양절” 당일 “중국신문주간”기자가 새로 개축한 삼지연관현악단극장을 방문하고 태양절특별음악회를 관람했다. 이날 공연에서 남악사들은 붉은색 양복에 새하얀 샤쯔, 검은색 바지, 검은 넥타이를 착용하고 녀악사들은 붉은 색 비단브라톱 긴치마를 입고 지휘는 흰색연미복을 입었다 
 
 
 
    한시간반가량 되는 음악회에서 배우들은 “우리의 수령닙” “장군님이 그리워” “세상에 부러움이 없어라”를 비롯해 10여수의 노래를 불렀다. 한 남성가수는 재창을 초청하자 준비한 곡목이 없어 같은 노래를 두번 불렀다.
 
 
 
"우수한 문화대사"
 
 
 
   짙은 색 외투에 여우털목도리, 장화를 착용하고 미소를 지으며 환영자들에게 손을 내젓고 호텔을 떠날때 축복의 메시지를 남기고….2018년1월 조선삼지연관현악단의 신임단장 현송월은 처음으로 한국땅에 오른후 여론의 각광을 받았다. 
 
 
 
   1월21일부터 22일까지기간 현송월은 김룡운을 망라한  삼지연관현악단의 7명 간부들을 데리고 한국강릉예술쎈터와 서울국립극장을 시찰했다. 한국련합통신에 따르면 조선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도 북방에서 온 “미녀가수”를 환영하였다. 공연시 현송월이 무대에서 한 노래와 축사는 현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는 현송월이 최초로 책임진 조선대외교류활동이 아니다. 2014년에 그는 악단을 인솔해 조선을 방문한 꾸바손님들에게 공연하고 김정은위원장이 미국의 롱구스타 로드먼을 회견하는 행사에도 참석했다.
 
 
 
    제한된 대외교류에서 현송월은 대외에 량호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출국방문기간 일본주류매체의 취재를 받으면서 미소를 띠우고 출국공연으로 “좀 흥분된다”라고 말했다. 꼬르헤닌은  현송월의 당당하고 친선적이고 자신감이 있는 태도로 질의에 대담하는 모습을 보고  조선의”우수한 문화대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후 현송월은 조한문화교류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였다. 한국언론에 대해 그는 “남북이  한집안”이라는 태도를 표했다. 2018년3월21일 한국대표 리윤상과 간고한 담판을 끝낸후 현송월은 한국기자들에게 쌍방의 분쟁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나는 우리가 손을 잡는다면 모든 일을 해낼수 있다는 것을 재차 느끼게 되였다”라고 말했다.
 
 
 
  리윤상은 현송월은 그가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담판에 아주 숙달되였다고 하면서 “그는 급급히 타협하려고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의론하고 분쟁을 풀어간다”라고 말했다.
 
 
 
   조선의 ”문화대사”는 한국민중들에게 친절하고 진솔한 모습을 보였다.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현송월은 여러차례 환영 민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하고 “이처럼 우리를 환영하는 강릉시민들을 보니 공연을 더 잘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2018년4월1일부터 3일까지 한국예술단이 평양을 방문하는 기간 사회를 맡은 한국가수 서현은 몸이 말쨌다. 그는 현송월이 그의 건강때문에 근심하면서 고무를 해주었고 공연이 끝난후 전문적으로 그를 찾아 사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외사활동에서의 현송월의 태도는 일정한 정도에서 김정은위원장의 당시 대외교류정책을 반영하였다. 2018년에 있는 한국방문과 2019년에 있는 중국방문공연에서 현송월이 인솔하는 조선예술단은 정치적 화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친선과 열정만 보여주었다.
 
 
 
    삼지연관현악단은 2018년2월 강릉과 서울에서 공연할때 모두 한국민중들에게 익숙한 조선명곡 “반갑습니다”로 막을 올렸다. 한국련합통신은 민족복장차림을 한 8명 녀가수들의 노래소리와 아름다운 선률은 대번에 관중들을 매료시켰다고 보도했다. 조선악단은 또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한국의 이름난 가수 리선의의 명곡 “J에게”와 한국가요 “려정” “남자는 배 녀자는 항구”를 비롯한 가곡을 연주했다.
 
 
 
   한국언론에 따르면 조선예술단은 공연과정에 김정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또 평양의 혁명가곡을 부르지 않았으며 한국민중들에게 익숙한 노래를 선정했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관중들은 기립해 박수소리와 환성을 울렸다.”
 
 
 
 
    일련의 성공적인 외사활동을 통해 현송월의 “정치적 신분”도 변화를 가져왔다.  2017년10월 로동당 제7기중앙위원회 제2차 전원회의에서 현송월은 조선로동당중앙 후보위원으로 당선되였다. 한국언론은 현송월이 동시에 로동당중앙선전고동부 부부장으로 임명되였다고 보도했다. 
 
 
 
   2018년1월15일 조선과 한국이 22개월만에 판문점 비무장지대에서 제1차 관변측담판을 진행했다. 현송월은 차석담판대표로 출석하였다. 
 
 
 
    그후 현송월은 140명의 인원을 가진 대형예술단을 인솔해 한국에 가 공연했다. 2018년3월21일 현송월은 조한예술 교류사업회담 조선측수석대표를 담임했다. 한달후인 4월27일 그는 제1차 “김정은-문재인”회담 만찬에 출석했다. 6월12일 제1차 조미정상회담때 그는 재차 김정은위원장의 수원으로 싱가포르에 갔다. 
 
 
 
    2019년초 현송월은 조선로동당중앙 부위원장 리수용을 따라280명의 방대한 대오를 가진 조선예술대표단을 인솔해 중국을 방문했다. 그 다음달 그는 김정은위원장을 수행해 기차로 하노이에 가 제2차”김정은-트럼프회담”에 참가했다. 
 
 
 
    이 시기 현송월의 직무도 재차 변화를 가져왔다. 하노이 회담기간 문예공연행사가 없는 상황에서 현송월이 윁남에 간 것은 그가 김정은위원장의 의전사무를 책임지게 된다는 것을 공개한 것으로 된다. 
 
 
 
    2018년2월5일 김장은위원장이 평양전차공장을 시찰하고 시승하였다. “로동신문”이 공포한 사진에서 현송월이 필기장을 들고 김정은위원장의 곁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에 앞서 현송월이 여러 차례 김정은위원장의 시찰활동에 참가하였다. 
 
 
 
    서방언론에 따르면 선전고동부와 조직지도부는 조선로동당의 두개 중요한 부서이다. 김정은위원장의 일상시찰과정에 이 두개 부서의 실지책임자들이 그를 배동한다. 
 
 
 
     2019년6월1일부터 2일까지 조선중앙통신사와 “로동신문”은 김정은위원장이 평남종합기대공장, 강계뜨락또르공장, 강계종합정밀기대공장, 장가강기대공장, 2.8종합기대공장과 “배움의 천리길”학생소년궁전활동을 시찰한 보도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보도를 보면 현송월이 “당중앙과 국무위원회” 수행간부명단에 들었다. 외계는 조선관변측이 현송월의 새로운 직무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 기간 시찰활동은 주로 평안남도와 자강도지역에서 진행되였는데 일상시찰때처럼 김정은위원장은 각 단위의 혁명진렬관을 참관하고 기층에가 회보를 청취하고 지시를 하거나 종업원대표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강계종합뜨락또르공장과 학생소년궁전을 시찰하면서 김정은위원 장은 종업원들의 문예공연을 관람했다. 그러나 공연을 책임지고 지도한 간부들속에서 현송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는 현송월이 문예활동을 책임진것이 아니라 김여정의 일부 직책을 대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기간 현송월의 순위는 조용원뿐만 아니라 로동당중앙 부부장들인 류진, 김용수보다 낮고 국무위원회 부부장인 김창선과 마원춘보다는 앞자리를 차지했다. 류진, 현송월, 마원춘은 모두 2017년10월에 있는 로동당중앙 제7기제2차 전원회의에서 중앙후보위원으로 당선되였다. 
 
 
 
    한국련합통신의 론평에 따르면 “조선의 각계층은 신로교체를 하고 있다” 조선최고인민회의가 올해 4월11일에 공포한데 따르면 현재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총수의 68.7%가 년령이 59세이하이고 그중 39세이하가 전번 기의 3.9%로부터 4.9%로 상승했다. 
 
 
 
    현송월의 승진은 로동당내사업분공의 변화를 구현하고 있다. 2017년10월 현송월이 선전고동부 부부장으로 부임될 때 외계는 모란봉. 삼지연을 비롯한 조선국가급악단 단장들이 선전고동부 부부장을 겸임한 선례가 없다는데 주의를 돌렸다. 2019년4월 현송월은 로동당제7기제4차회의에서 로동당중앙위원으로 승진해 이전에 대응된 사무를 책임진 간부의 급별을 훨씬 초과했다.
 
 
 
    맥던은 “중국신문주간”기자에게 현재 현송월이 김정은위원장을 협조해 선전고동사업을 관리하고 최고지도자활동에 관한 보도와 김정은위원장의 의전활동을 협조관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현송월이 김정은위원장의 의전사업을 전면적으로 인수한 것은 아니다. 6월30일 판문점에서 있은 제3차 “김정은-트럼프회담”에서 현송월이 조선국무위원회 부장이며 김정은위원장의 일정배치를 책임진 김창선에게 사업회보를 하는 장면이 렌즈에 찍혔다. “이는 현송월이 김창선의 령도하에 의전사무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수도 있다” 맥던은 “중국신문주간”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2012년 모란봉악단책임자때로부터 현송월은 줄곧 김여정의 직접적인 령도하에 사업했다. 그의 승진은 그의 관리능력이 상급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현송월의 정치적지위가 부단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19년6월3일 김정은위원장과 리설주, 김여정이 대형단체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국가”를 관람할때 현송월은 처음으로 김정은위원장과 고위층지도자들을 위해 주석대에 마련한 관람석에 앉았다.
 
 
 
来源:中国新闻周刊 监制:王非 审稿:李洪涛 制作:崔月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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