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족 청년 김국헌 ‘중국의 좋은 목소리’ 무대에 올라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8월14일 11시39분    조회:389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국헌

 

  열여섯살 때부터 고향을 등지고 버스정류장의자, 술집, 현금인출기 하우스에서 쪽잠을 자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고 업소를 전전하고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그는 처음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8월2일 ‘중국의 좋은 목소리’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출성(出城)을 불러 나영, 리영호 두 멘토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바로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천교령림업국의 김국헌이다. 8월 3일 기자는 상해에 있는 김국헌과 전화로 련락을 취하여 그의 꿈을 쫓은 이야기를 들었다.

  ★ 통기타 메고 음악 길에 올라

  올해 32세의 조선족 청년 김국헌은 천교령림업국의 로동자가정에서 태여났다. 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사랑했다.

  “어렸을 때는 군것질을 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용돈을 음악 테이프를 사는데 썼습니다” 김국헌은 말했다. 어렸을때에는 페쇄된 환경때문에 거의 조선족민요만 듣고 자랐다. 나중에 음악테이프가 생긴후에야 비로소 한족노래를 차츰 접하게 되였고 음악에 점점 심취하게 되였다. 수없이 들은 무수한 음악테이프들은 그의 동년시절의 기억을 꽉 채웠다.

  15살이 되던 해 김국헌의 작은 이모는 그에게 통기타 한대를 선물하였다. 그는 뛸듯이 기뻐하면서 매일 열심히 련습하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그는 홀로 외지에 가서 음악을 배우며 꿈을 이루기 위한 길에 올랐다.

  ★10여년간 떠돌며 음악꿈 쫓아

  2004년 외지에서 1년남짓 음악을 공부한후 혈기가 넘치는 김국헌은 학우들과 밴드를 결성했지만 온갖 난관에 봉착하였고 결국 반년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멤버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선택했지만 김국헌은 떠날념을 하지 않았다.

  “그 동안 직업도 없고 살곳도 없어 굶어 죽을뻔도 했고 온갖 생각도 참 많이 했지만 집에 돌아가려는 생각만큼은 해본적 없어요.” 김국헌은 감회에 젖어 말했다.

  밴드가 해체된 뒤 돈을 다 써버린 그는 집을 떠날 때 가족에 대한 약속을 떠올리며 면목이 없어 돌아갈수 없었거니와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막막하고 방황하던 22일동안 18세 김국헌은 버스정류장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현금인출기 하우스와 술집에서 언몸을 녹였다. 이틀에 겨우 한끼를 먹을때도 있었다. 이때에도 집에서 메고 온 기타는 항상 그와 함께 했다. 그러다 카페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일을 찾아서야 비로소 꿈을 계속 추구할 수 있었다.

  이후 김국헌은 하북예술단에 몸을 담았고 연변으로 돌아와 밴드결성을 시도한적도 있었다. 음악의 길에서 그는 한번도 멈추지 않았다. 2008년부터는 송원, 려강, 복건, 광동, 상해 등 전국각지의 술집을 돌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여러해 동안 방랑하던 김국헌은 상해에 뿌리내릴 준비를 했다.

  “외지 술집에서 전속가수로 일하던것과 달리 돈을 더 벌기 위하여 상해에서는 여러 업소를 뛰기로 했어요, 한번 공연에 45분 걸리는데 지하철을 비비고 전동차를 타고 운전을 하는 등 저녁 6시반부터 밤 11시까지 바삐 돌아치군 했지요. 하루밤에 두세개 업소를 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그는 지칠줄을 모르고 뛰였으며 똑같이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녀자친구도 이때 생겼다.

 

 

  ★노력으로 제작진 인정 받아

  ‘중국의 좋은 목소리’ 프로그램과의 인연이 언급되자 김국헌은 이 프로그램에 대하여 여러해동안 주목해왔고 오디오파일을 보낸적도 있었지만 바다에 돌을 던진격으로 종무소식이였다고 말했다. 그러다 2018년에 다시 용기를 내어 자신이 록음한 노래를 프로그램에 기고했고 운 좋게도 초심을 통과해 몇달간의 반복적인 선곡과 리허설 끝에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었다.

  그렇다면 왜 그많은 노래중 ‘출성’을 선택한 걸가? 김국헌은 음악을 갓 접했을때에는 락에 푹 빠졌는데 술집에서 일하게 된후에는 다른 가수의 반주를 하게 되다보니 다양한 쟝르의 노래를 접하게 되였다고 말했다. 최근 몇년 동안 그는 점점 더 서술감있는 노래를 좋아하게 되였고 그중 특히 리종성의 노래를 들으면 항상 마음속에 와닿고 얼굴을 맞대고 자기와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러해동안 집을 떠났다가 연변으로 두 번이나 돌아왔지만 이런저런 리유로 다시 떠났어요. 이제 가족은 외국에 계시는 어머니만 남았는데 이렇게 여러해 동안 고향의 단층집이 자꾸만 생각나네요”

  리종성이 작사한 ‘출성’은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나그네가 고향을 향한 특별한 마음을 이야기한것으로, 그도 이 노래를 꿈을 위해 먼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었다고 김국헌은 말했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두 멘토 감동

  8월 2일, ‘중국의 좋은 목소리’에서 김국헌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출성’을 불렀다.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한 목소리는 리영호와 나영 두 멘토가 그를 위해 의자를 돌리게 만들었으며 멘토들에 의해 ‘중년판 리종성’으로 불리웠다.

  김국헌은 “여러 해 동안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에게 의문을 품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잘 부르는것이 맞는지? 나의 노력이 충분했는지 말입니다.”고 말했다. 여러해동안 그는 줄곧 밴드로 무대에 오르거나 무대 한구석에 서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중국의 좋은 소리’ 무대에 올라 처음으로 가수의 신분으로 노래하고 뒤에는 국내 일류 단원들이 그를 위해 반주를 하는 순간 꿈을 이루었다는것을 깨달았고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그는 항상 좋아해왔던 나영을 자신의 멘토로 선택하고 그의 팀에 합류하였다. 그는 나영에게서 더욱 많은것을 배워서 더 우수한 자신으로 거듭나고저 했다.

  방송 다음날부터 사람들은 미니블로그에서 그를 찾기 시작하였다. 모멘트와 위챗도 관련소식으로 도배가 되였다. 김국헌은 갑자기 찾아온 유명세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남은 시간동안 스케줄이 빡빡합니다. 멘토가 남긴 숙제를 열심히 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의 쟝르를 시도하고 싶습니다. 시합결과가 어떻든 저는 최선을 다해서 후회가 없도록 하겠습니다.”김국헌의 말이다.

  /중국조선어방송넷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20)   - 연변대학 미술학원 사진교연실 김광영주임 인터뷰     생존을 위한 개인적 영역 개척 필요 지난것을 보충, 거꾸로 갈수도 있어 재미있고 의미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     우리의 일상생활을 돌이켜보면 변화가 가장 많은 부분이 오락이고 그중 단연 노래방이...
  • 2012-11-05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10) "붉은해 변강 비추네" 예술총감 박춘선을 만나   수년전 연변에는 두개 명함장이 있다는 말이 돌았다. 하나는 연변오동팀이고 다른 하나는 연변가무단이다. 오동팀은 최은택을 모시고 중국축구갑A리그 4강이란 위엄을 토하면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오동팀은 강급의 강력후보였...
  • 2012-10-26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4) 장익선  연변대학예술학원 장익선 음악학박사를 찾아서       음악 혹은 노래라함은 우리가 그림자처럼 늘 곁에 두고 함께 지내는 삶의  동반자와 다름이 없다. 특히 한많고 설음많은 우리민족에게 노래는 정서의 표현이요 심미의 발상이며 삶의 기록이라 하겠다. 머나...
  • 2012-10-22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2) 최룡국 부끄럼이 없어요 연변가무단 전임 악대 지휘 최룡국선생을 만나       오전 9시반경, 령하 13도… 립춘이 코앞까지 굴러왔는데도 마냥 포복행진을 하고 있는 날씨다. 하남가‘주부가원(州府嘉 )’정문에 들어서자바람 6동 아빠트를 찾아 좌우로 고개를 뽑...
  • 2012-10-22
  •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 박영만기자 = 흑룡강성 오상출신인 청도대학 음대 성악과 박주연교수는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전파하는 동시에 음악을 통한 나눔을 실천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있다.   박 교수는 상해음악대학에서 수학하고, 서울대학 음대 대학원을 졸업한 성악계의 재원이다. 서울대학 대학원 졸...
  • 2012-10-19
  • 국가1급무대미술설계사 김태홍화백의 작품세계   연변의 두번째 한락연 민족의 전통을 업그레이드 시킨 작품 생활은 모든 작품의 원천   김태홍화백 략력 1943년 흑룡강성 녕안 출생 1967년 중앙희극학원 무대미술설계학과 졸업 1967년~현재 중앙발레무극단 무대미술설계사 1984년 일본대학예술부희극연구소 특별...
  • 2012-10-18
  • http://hljxinwen.dbw.cn   2012-08-10 11:08:43             미국남가주대학 피아노학부 석사연구생 김은희의 이야기   (흑룡강신문=연변) 김명록 연변 지사장 = 지난 7월 초 , 미국남가주대학 피아노학부 석사연구생 김은희양을 인터뷰했다. 취재시에 김은희부모님들도 동석하여 김은희 ...
  • 2012-08-10
  • “장백산촬영가” 한영을 만나다 “사진작품은 유감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30년간 장백산을 촬영했지만 내놓을만한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장백산을 소재로 한 개인사진전을 열고 사진작품집 《격정의 장백산》을 펴냈으며 연변촬영가협회 주석 등 직을 지낸 한영선생이지만 겸손한 자세로 기...
  • 2012-08-09
  •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못할 “통신학습”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 서예에 심취해서 침식을 잊은 20대의 청년이 있었다. 굶주린 사람이 빵을 먹듯 서예에 대한 집착과 여러 대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되는 등 천부적인 소질로 주위의 이목을...
  • 2012-07-26
  •   공식석상에서 늘 빛갈고운 한복차림이였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인터뷰시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은 함순녀(48세)한테서는 차분한 카리스마가 풍겼다. 현재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자 연변무용가협회 주석인 함순녀는 오로...
  • 2012-07-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