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90세 할머니 물구나무서기 척, 알고 봤더니 공훈 로전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8월14일 08시12분    조회:234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윤금선

장춘정월담공원 물구나무서기 다리찢기 척척 하는 90세 로익장 알고 봤더니 국내해방전쟁 항미원조 참가한 공훈 할머니

 

90세에 물구나무서기를 척척 하는 윤금선할머니.

 

장춘정월담국가삼림공원은 걷기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둘도 없이 적격한 장소다. 이른 오전 삼림공원 서쪽 숲속에 뺀 나무잔도를 따라 걷노라면 두 손을 꼭 잡고 오른발 왼발 한발이라도 차이 날세라 보조를 딱 맞춰서 걷고 있는 고령의 로부부 모습이 보기 좋게 눈에 안겨온다. 이렇게 로부부는 한참을 다정히 걷다가 멈춰서 나무잔도에서 내려 허리 굽히기 운동을 하기도 하고 등을 나무에 대고 가볍게 쳐주기도 한다. 할머니는 이제는 몸이 풀렸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물구나무서기도 척척 하고 다리찢기도 하는데 례사롭지 않은 그의 움직임에 모두들 입이 떡 벌어진다. 정월담국가삼림공원 서쪽동네에서는 이미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두를 감탄케 하는 이 할머니가 바로 국내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에 모두 참가하여 포연탄우 속을 헤치면서 싸워 온 올해 90세에 나는 ‘공훈 할머니’ㅡ윤금선 로전사다.

격정세월, 국내해방전쟁에서 항미원조까지

"일본이 투항하고 16살을 먹던 1946년 우리 고장에 동북민주련군이 들어왔어요. 저는 오빠를 따라 입대하겠다고 함께 지원해 나섰어요. 그런데 나이가 어린데다 한집에 둘씩이나 동시에 군대에 가려고 하니 모집일군은 동의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해는 못가고 이듬해 또 응해 끝내는 가고 말았지요. 이렇게 집에는 부모님만 남고 우리 두 형제는 모두 군대에 나가 싸웠어요.”

1947년 2월 윤금선은 동북민주련군에 참군하고 단기강습을 거쳐 간호병으로 되였다. 그는 사평전역과 장춘해방전투에 참가하고 부대를 따라 료심전역 그리고 평진전역을 겪었으며 계속 남하하여 장강을 건너 도강작전 후 3대 전역으로 불리는 중남전역에 참가하였다가 모주석이 북경에서 새중국 창립을 선언하는 희소식을 접했다. 윤금선은 소속한 대부대를 따라 계속 서남으로 진군하여 광서를 해방하는 전투까지 치렀다. 포화의 시련을 거치면서 점차 성장한 윤금선은 1948년 11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간호병으로부터 간호 반장, 패장으로 승진하였다.

 

 

 

 

“중국해방전쟁에서 희생자와 부상병들이 수도 없이 나왔지요. 부상병들에게 수혈할 피가 없어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게 자신들의 피를 뽑아 그들에게 수혈하기도 하였지요.”

윤금선할머니는 료심전역중 금주를 해방하는 전투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키가 155센치메터밖에 안되는 그녀가 쓰러진 우리 부상병을 간신히 업고 포화 속을 뚫고 달려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총성이 울리더니 등에 업힌 전사의 인기척이 없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써가며 안전한 지대로 피해서 업었던 전사를 내려놓고 보니 이미 희생되고 윤금선의 등은 전사의 선혈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 내가 왜 구하지 못했지!" 너무도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고 군의는 “금선아, 너무 슬퍼하지 말라, 그래도 네가 목숨을 내걸고 우리 전사를 끝까지 업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 그 것만으로도 너는 대단한거야!”라고 하면서 위안해주었다.

격정세월의 국내해방전쟁에서 윤금선은 자신의 생사와 안위를 전혀 돌보지 않고 부상병들을 구했으며 그가 거느린 30여명의 간호병들은 대오에서 한명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러 전투를 겪으면서 선후로 4차례에 거쳐 공를 세웠다.

“새중국이 성립되였지만 또 다른 전쟁이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1950년 조선전쟁이 발발하자 윤금선과 이미 포병련장까지 된 그녀의 오빠는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또 이 가렬처절한 전쟁에 참가하게 되였다.

 

일전‘8.1’절을 맞으며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에서는 윤금선할머니를 찾아 위문하고 감사패를 드렸다.

 

“군대에 입대한 후로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번 오빠를 만났어요. 제가 국내해방전쟁에서 탄 메달을 조선전쟁터까지 가지고 온 것을 보고 오빠는 그렇게 기뻐하면서 ‘금선아, 너 대단하구나, 이 오빠보다 메달을 더 많이 탔구나, 참 잘했어!’라고 말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후 얼마 안돼 오빠는 희생되였어요. 이 몸은 다행스럽게 살아서 귀국했지만 오빠는 한장의 렬사증이 돼서 돌아왔지요.”

윤금선할머니는 전쟁의 그 아픈 추억들을 저 하늘나라까지 가지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윤금선은 조선전쟁에서 하늘땅을 진감하는 포성에 고막까지 다쳤지만 마지막까지 부대를 따라 움직이다가 1953년에 귀국하여 선후로 길림성료양원과 장춘시 관성구 철남병원에서 근무하다가 1987년에 리직하였다.

“나이야 저리 비켜라”, 10대 체조선수의 유연한 몸매를 유지하다

두번의 전쟁을 겪고 나니 윤금선할머니의 건강상태는 몹시 나빠졌는데 하는 일은 비록 의사였음에도 십이지장궤양, 위궤양, 관절염, 목디스크에 흉막염, 간에도 이상이 생겨 몸은 그야말로 ‘종합병원' 신세가 되였다. 그는 아픔을 견지하면서 가까스로 일터를 지켰다. 그후 약물치료를 하면서 부지런히 양생운동을 시작하였는데 놀랍게도 기적 같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윤금선할머니는 수십년 동안 자신이 터득해 온 양생방법으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견지해왔는데 지금 비록 90세의 고령이지만 10대 체조선수마냥 유연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물구나무서기를 척척 하는가 하면 다리찟기도 거뜬히 해내며 무게가 한참 나가는 훌라후프(呼啦圈)도 단숨에 저그만치 500개 씩이나 돌린다. 뿐만 아니라 아령을 두 손에 들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운동하는데 이 모든 동작이 90세 할머니가 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믿기지 않을 정도다.

 

 

 

10대 체조선수의 유연한 몸매를 자랑하는 윤금선할머니.

 

윤금선할머니는 지금도 매일 아침 3시가 되면 일어나서 가부좌를 하고 명상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을 간단히 든 후 그는 할아버지와 함께 곧바로 정월담공원으로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 운동하다가 11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건강비결에 대해 윤금선할머니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좁쌀에 보총을 갖고 정신력으로 싸워서 승리했지요. 제대 후 사업에 참가해서도 정신력으로 일해왔어요. 정신력이 있었기에 소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저는 공부를 해서 간호원으로부터 중의사로 될 수 있었어요. 로년에도 역시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봐요. 내가 늙어서 이 것도 안되고 저 것도 못한다고 정신력을 놓아버리면 더 빨리 로화가 오는거지요. 늙어도 할 수 있다는 정신력 즉 의지를 가져야 해요.”라고 말한다.

두 로인의 나이를 합치면 저그만치 182세, 그럼에도 이들은 그 누구한테도 기대지 않고 오늘까지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원앙처럼 둘이서 오붓하게 ‘신혼살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겐 요즘 또 새로운 꿈이 있다. 윤금선할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정월담공원 근처의 아빠트에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계획 중이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온천이 집까지 들어온다는 새 아빠트단지를 찾아가서 직접 알아보기까지 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좋은가며 건강해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윤금선할머니, 주변 사람들이 “로인님 지금은 백세시대입니다. 이대로라면 백세는 거뜬히 넘길 수 있어요.” 라고 하자 “그러네요. 그렇다면 신체단련에 더욱 힘을 내야지요!”하며 동안의 얼굴에 해바라기 같은 웃음을 활짝 짓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길림신문 리철수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2006년 12월18일 , 민영기업 금두그룹이 대형국유기업 길림성교통건설그룹을 재조합한 장거는 각 매체를 통하여 삽시간에 전 성을 들끓게 하였고 이는 길림성내 민영기업이 대형국유기업을 재조합하는 선례를 개척하였다. 이 대담한 혁신의 주인공이 바로 길림성금두그룹의 김명남리사장이다. 등록자본이 2만원인 규모가 작...
  • 2007-02-15
  • 김광범, 남, 조선족, 1947년 5월 출생, 단과대학 학력, 현재 흑룡강성 목단강시민족종교사무국 국장. 1994년부터 지금까지 여러차례 공을 세워 목단강시정부의 표창을 받았으며 시직속기관 당위로부터 여러차례 당작풍 렴정건설 선진개인으로 당선되였다. 그가 국장으로 부임한 이후 목단강시민족종교사무국은 국무원으...
  • 2007-02-12
  • 《장4B》 총설계사, 총지휘로서의 리상영, 7년 여에 10차례에 걸쳐 10종의 인공위성 16매를    전부 예정궤도에 정확히 발사, 《10발 10중》의 기적을 창조하다 《하량하리기금상》 수상자 《며칠전 또 한방이라,그러니까 이번이 10발10중 맞지요?》 2006년 11월 15일 북경 인민 대회당에서 거행된 《...
  • 2007-02-11
  • CCTV중국올림픽키잡이 선발에 나서 동부지역 80강까지 올랐으며 전국 '녀자투표인기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산동지역대표선수 조충(赵翀)이 조선족이였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비록 32강진출에서 아쉽게도 탈락되였지만 그녀가 받았던 폭발적인 인기는 조선족들의 이미지향상에 큰 힘을 하였다. 초기의 인터넷투표...
  • 2007-02-07
  • 비용까지 대주고 한국로무 보냈다오. 돈 떼울 일이 절대 없답니다. ㅡㅡ 치렬한 경쟁과 유혹적인 리윤으로 많이 변질이 된 해외로무송출시장에서 이런 평을 듣기란 쉽지 않다. 해외로무지원자들의 일 전한푼이 어렵게 모은 돈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어요. 때문에 우리는 매개 고객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책임지는 각도에서&nbs...
  • 2007-02-01
  • 조선족학자 임범송교수를 만나다 작년 12월 26일, 연변인민출판사에서는 43만자나 되는 조선문대형도서《심미비평론》을 출판하였다. 이 책의 출판으로 하여 저자 임범송교수는 흥분된 자신을 걷잡기 어려워했다. 그럴만도 하다. 70세 고령인 임범송교수는 자식들이 유럽려행을 다녀오시라는 권고도 마다하고 《인생의 마지...
  • 2007-01-31
  • 1원짜리 인민페에 등장하는 소수민족 여성의 실제 주인공이 28년여만에 나타났다.지난 20전짜리 모델인 조선족 처녀에 이어 이번에는 동족처녀였다.이 인민페에 등장했던 동족 소녀는 지금은 45살의 중년 여성이 됐지만 최근에야 자신이 지페 모델이었음을 알게 됐다.귀주(貴州)성 총장(從江)현의 한 동족 부락에 사는 스나...
  • 2007-01-28
  •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반 없을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투항하자 김철남은 중경에서 해방을 맞는다. 당시 조선 국내의 정치상황이 불안했 탓으로 그는 중국에 머물러 사태를 관찰했다. 그래서 중국에 눌러 앉은 그는 1952년 페암으로 인하여 북경에서 세상을 떴다. 지금 북경에 건재하고 있는 이서군 녀사는 조선족...
  • 2007-01-28
  • 색 바래지 아니 할 '영원한 화신'       실로 빠른 것이 세월인 것 같다.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바로 5년전의 그 여름밤, CCTV 제5채널의 2002한·일월드컵의 생방송을 보다가 까닭없이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팀을 비하하는 해설원의 언사에 참지 못해 전화통을 들고 그 해설원 유건홍과 설전을...
  • 2007-01-28
  • 27일 청주 라마다호텔에서 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JCI) 손인석 회장(36·청주 광진건설 대표)이 취임식을 가졌다.손회장은 각 지방 JC와 중국 조선족 소학교간 자매 결연을 추진, 한민족 얼을 잊지 않도록 도와 주고 소외된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심장병을 수술해 주는 사랑의 메신저 운동도 ...
  • 2007-01-2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