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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피아노 소리를 만들어내라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9월10일 09시26분    조회: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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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영봉
김영봉 조율사의 피아노사랑 이야기​
 
  서양 악기 가운데 가장 많은 용도로 활용되어 ‘악기 중의 왕’으로 불리우는 피아노,  88개 건반으로 반주나 화성,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는 피아노와 17년간 인연을 맺은  김영봉 조선족 조율사의 피아노사랑 스토리를 들어본다.
 
 

 
 가난 속에서 움튼 사장의 꿈
 
 김영봉(77년 뱀띠)씨의 고향은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가장 동쪽 러시아와 변경을 사이둔 동녕현 삼차구진이다. 
 
가문에서 맏이인 김사장의 아버지는 위로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쌍둥이 남동생과 2명 여동생을 하나하나 장가, 시집을 보내느라 집안살림은 항상 가난했다. 
 
김영봉씨는 어릴 때부터 움푹 꺼져들어간 초가집으로 꼬마친구들을 절대 부르지 않았다. 가난한 가정이 부끄러워서였다. 가장인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남들은 러시아를 오가면서 장사를 하여 기와집을 짓고 잘 사는데 그들은 수입이라야 벼농사를 하여 벌어들이는 6000위안이 전부였다. 
 
그나마 그를 달래주는 것은 가족의 대물림보배로 물려온 바이올린을 쌍둥이 삼촌이 연주하는 것을 듣는 일이였다. 
 
불만과 원망 속에서도 김영봉씨는 장차 커서 사장이 되어 잘 살거라는 꿈을 키우면서 힘든 나날을 이겨왔다.  
 
 (떠날 거야. 가난한 고향을 떠나 한국회사가 많다는 칭다오로 가서 사장의 꿈을 키울테야.)
 
 큰아들이 집을 떠난다니 집에서는 큰마음을 먹고 기르던 송아지를 팔아 700위안을 몽땅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해가 2000년 4월이었다. 
 
세정악기회사의 조율사
 
고향을 떠나 2박3일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이 칭다오, 교주PS 부근에 위치한 김화보신탕집이 그의 첫 일자리였다. 봉급 500위안에 일 잘하면 적지 않은 팁도 받았으나 4개월 일하고나서 직장을 바꾸었다.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가 어렵사리 찾은 직장이 청양구에 위치한 한국독자기업인 세정악기회사였다. 그해가 2003년 7월이다. 
 
  새로 입사한 조선족직원들은 대부분 관리직을 선택한다. 언어통역 우세도 있고 봉급이 현장직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봉씨가 선택한 것은 현장일군이였다. 
 
 외부의 가공을 거쳐 세정악기에 들어온 피아노는 공장 내에서 38개 공정을 거쳐 8000여개 부품을 조립하여 완제품이 만들어진다. 
 
김영봉씨는 이 38개 공정을 1년 사이에 두번 거쳐갔다. 직원, 조장, 반장, 주임을 거쳐 과장까지 성장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피아노공정가운데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조율(调音)이였다. 관악기와 현악기는 연주자가 직접 음정을 만들어 연주하는 것에 비해 피아노는 평균율 즉 조율을 하는데 있어서 음 사이의 간격을 동일하게 맞추는 것으로 조율을 해야 하는데 음역이 7옥타브와 늦은 음 단3도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한국관리자들은 다른 것은 다 배워주면서 튜닝해머(调音扳手)만은 꼭 자신들이 직접 조절하였다. 
 
(저걸 배워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그때로부터 김영봉씨는 회사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으로 되었다. 아침에 한시간 먼저 와서 조율 연습을 하고 또 점심시간에는 빵으로 에때우면서 남들이 식당에서 밥 먹는 사이에 연습을 하였으며 저녁에는 퇴근 후에도 조율연습에 골몰했다. 
 
 1년 반 시간이 지나니 귀가 뚫린 듯 싶었다. 조율에서 고음조절 시 1초에 3000여차의 진동흔들림과 저음조절 시 1초에 20여차의 진동흔들림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피아노는 생명체이며 조율은 영혼을 불어넣는 과정’이라는 명언을 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2006년 11월 2일 김영봉씨는 중국악기협회에서 발급하는 ‘피아노조율사’ 자격증서를 받아내고야 말았다. 
 
직장에서 꽃핀 사랑
 
김영봉씨의 성장 변화를 지속적으로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었다. 산둥 북쪽 덕주의 농촌지역에서 온 리훙(栗宏)이라는 한족처녀였다. 김영봉씨가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피아노지식을 배우는 것을 눈여겨본 리훙은 조선족총각에게 관심을 가진 것이다. 
 
▲사진설명: 일터에서 인연 맺은 김영봉, 리훙 부부가 하트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봉씨도 점차 리훙에게 눈이 쏠리기 시작했다. 김영봉씨보다 5살 아래인 리훙은 평소에 말수가 적으나 배우기를 무척이나 즐겼다. 매달 봉급이 400여위안밖에 안되지만 버스를 타고 홍콩로에 있는 수청(书城)에 가서 170여위안 어치에 도서를 사서 읽는 리홍의 모습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총명한 리홍도 김영봉 뒤를 이어 국가에서 발급하는 ‘피아노조율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2006년 이들은 공장 직원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하였다. 1만위안을 꿔서 치른 조촐한 결혼식이였다. 같은 직장, 같은 애호와 공동한 이상이 사랑의 바줄로 이들을 꽁공 묶어준 것이다.
 
빚을 내어 결혼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믿고 한몸을 맡긴 리훙의 순정에 김영봉씨는 감동되었다. 알고보니 리훙네 집안도 더저우시(德州市) 샤진현(夏津县)의 한 농촌에 살고 있는 가난한 농민가정이였다. 딸만 모두 6명인데 리훙이 맏딸이다. 금방 결혼하여 임대한 아파트 신혼가정에 새 식구가 불었다. 넷째 처제가 일자리 찾으로 칭다오로 온 것이다. 음악기초가 전혀 없는 큰 처제에게 김영봉씨는 음악을 배우라고 돈을 대주었다. 그의 머리 속에 커다란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제도 이들 부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여 구쩡(古筝)7-8급 기술자자격까지 따냈다. 
 
2011년에 김영봉, 리훙 사이에 첫 딸애가 태어났다. 당시 가장 인기있는 한국배우 이영애의 이름을 따서 영애(英爱)라 지었다. 그후 딸애 영애 이름으로 명명한 이들 부부의 사업체들이 하나둘씩 꽃피기 시작했다. 
 
 

영애피아노공장, 학원을 꽃 피워라
 
연애시절 김영봉씨는 맨몸인 자신에게 평생을 기탁한 리훙 앞에서 맹세했다. 둘이 합심하여 친 자식을 키우듯이 사업을 꽃피워 가자고. 
 
2011년 영애예술학교가 더저우시 싸진현 중심가에서 고고성을 울렸다. 칭다오에서 음악을 배우던 처제가 주요 관리를 맡고 자금부터 기술까지 김영봉 부부가 지원한 것이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높은 수준의 음악학원은 당지 어린이들의 각광을 받으며 현재까지 수백명 음악인재를 배양해냈다. 여기에서 신심을 얻은 이들 부부는 공장직을 그만두고 창업에 몰입했다. 
 
2013년 김영봉씨는 지모구 동원장(东元庄)에 면적이 800제곱미터에 달하는 영애피아노공장을 차렸다. 한국의 삼익, 영창 브랜드의 중고악기를 들여다 재가공, 조절 후 국내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을 거친 악기들은 새로운 생명이 소생하듯 아름다운 음악선율이 흘러나왔다. 국내 여기저기 학원들에서 구매의향을 밝혀왔다. 제품은 들여오기 바쁘게 팔려나갔다. 많을 때는 일년에 40컨테이너 물량이 팔렸다. 한개 컨테이너에 41개 피아노를 실을 수 있는데 1600대라는 거대한 물량이다. 사업이 커가면서 공장자리가 비좁아 1400제곱미터로 늘리기도 했다. 
 
 
2018년에는 청양구 쟈쟈왠(家佳源) 북쪽에 위치한 징청루(靖城路) 칭터허푸(青特赫府)에 3층 구조에 면적이 350제곱미터의 가게를 구매하여 영애피아노학원(英爱琴行)을 차렸다. 어린 음악애호가들에게 피아노를 배워주는 동시에 중고 피아노로부터 주강(珠江), 싱하이(星海) 등 국내 명브랜드 및 야마하, 카와이 등 일본 명 브랜드 피아노를 판매하고 있다. 
 
자신의 피아노 브랜드를 키워라
 
영애예술학교, 영애피아노공장, 영애피아노학원을 경영하면서 김영봉 사장의 머리에는 항상 고민거리가 있었다. 지금까지 모두 남들의 피아노 브랜드만 취급한 것이다. 
 
(이제는 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키워보자.)
비록 거창한 꿈이지만 조만간에는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스탄바허(斯坦巴赫) 피아노이다. 김영봉 사장이 소유한 독창 브랜드 피아노이다. 
 
김영봉 사장은 그사이 거래해온 국내 유명한 피아노 생산업체들에 스탄바허 피아노 제작주문을 받아 영애피아노학원에서 판매하고 있다. 자신이 17년간 갈고 닦아온 음악지식과 노하우를 몽땅 여기에 몰부은 것이다.
 
 2016년부터는 (사)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 해외특별지부 대표로 가입하였다. 매년마다 그는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에서 실시하는 전국회원기술세미나 교육과정을 꼬박꼬박 이수받고 있다. 
 
한국에서 피아노조율사 명장1호로 불리우는 이종열 선생과 명장2호 유구영 선생으로부터 직접 조율지식을 배우고 있다. 스탄바허 브랜드 탄생에도 한국 음악가와 조율가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코로나19 기간에도 영애피아노학원은 온라인 및 위챗 교육을 이어왔으며 3월 1일부터는 정식 문을 열었다. 영애피아노학원은 이제는 입소문이 퍼져 배우려는 어린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째지게 가난하던 고향에서 꾸었던 사장꿈이 실현되었고 처가집 부모에게도 현성에 버젓한 아파트를 사드렸으며 처제들도 하나둘 시집을 보냈다. 고향에 계시던 부모는 칭다오로 모셔와 10년째 함께 생활하고 있다. 친동생 우봉이도 현재 피아노학원에서 중견교사로 활약하고 있으며 칭다오에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 
 
“17년간 조율을 배웠는데 이제야 뭘 좀 알 것 같네요. 배울게 너무나 많아요” 
 
가난 속에서 일그러져온 나쁜 습관들을 교정하고 눈앞의 헛된 유혹들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것이 사랑과 믿음과 신앙의 힘이라고 확신하는 김영봉 사장은 오늘도 배움의 발자국을 남기며 새로운 비전을 준비하고 있다. 
 
흑룡강신문 연해뉴스/ 박영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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