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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부터 농사일하던 소녀 그룹 총재의 어머니 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9월26일 22시34분    조회: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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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시안그룹 박걸 동사장의 어머니 이영희 여사​
 

▲사진설명: 이영희 여사가 아들 박걸 동사장, 손녀 박리나, 증손녀 김샛별과 함께 4세동당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천고마비의 황금계절을 맞이하여 베이징 왕징(望京)에 위치한 하얏트(凯悦호텔 2층 연회청에서 베이징시 조선족 각 단체 대표들과 친척들, 그리고 칭다오, 광저우 등 각지에서 온 하객 500여명이 모여 커시안그룹 박걸 동사장의 어머니 이영희 여사의 팔순잔치를 펼쳤다. 
 
9월 21일 이날 커시안그룹 각 지역 대리점 및 베이징, 연길 공장 일군까지 합쳐 참가인원이 모두 500명, 코로나19 사태로 호텔 규정에 따라 참가인원을 제한한 수자라고 한다. 
 
 
 화려한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만복상 가운데 앉아 행복의 미소를 짓고 있는 이영희 여사가 14살부터 가난으로 인하여 농사일을 하던 소녀였으리라고 누군들 생각이나 했으랴.
 
 
 
14살에 농사일로
집안의 노동력이 되다
 
이영희 어머니는 1940년 음력 4월 19일 아버지 이중선씨와 어머니 한복선씨의 맏딸로 태어났다. 아래로는 여동생 2명, 남동생 2명이 있었다. 
 
 째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이영희 어머니 위로 원래 형제가 몇명 더 있었으나 모두 요절하고 결국 가정의 무거운 짐이 키가 작은 맏딸 이영희 어머님의 어깨에 떨어지게 되었다. 
 
  생계유지를 위하여 온 가정이 흑룡강성 녕안 깡요촌, 상지 원보촌을 거쳐 녕안현 성동향 합달대대에 정착한 때는 이영희 어머님이 14살 나던 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을 다닐 나이인데도 학비를 낼 돈이 없어 남들의 교과서를 빌려가면서 1년 공부를 하다가 할 수 없이 중퇴하고 말았다. 
 
  학교를 그만둔 그날 이영희 어머니는 합달촌 늪가에서 슬피슬피 울었다. 꿈에도 그리워하던 학교를 지척에 두고도 다니지 못하고 그토록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없는 자신의 신세가 한없이 서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자신이 이렇게 우는 모습을 아버지 어머니가 보시면 마음이 얼마나 상심하실까 생각되어 푸른 호수물로 눈물을 닦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로부터 합달촌 농사군 대오 속에는 키가 제일 작은 이영희 어머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14살 어린 나이에 가정의 경제부담을 덜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일에 나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의 식구까지 모두 10명이나 되는 대가정에 경제적 도움을 주는 든든한 일군이 된 것이다. 
 
수전농사를 지으며 어른들은 일당 10부씩 받았지만 이영희 어머니는 나이가 어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8부밖에 받지 못했다. 합달촌의 김두천 아저씨는 “너는 휴식도 안하고 일하나, 좀 쉬면서 일해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영희 어머니인들 왜서 쉬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한푼이라도 더 벌어 가정의 짐을 덜어야 했기에 쉴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 이영희 어머니에게 가장 큰 선물은 자신의 생일 때 외삼촌이 사다준 여러가지 소설책이였다. 그렇게 재미가 든 글읽기가 인이 박히면서 가끔 소비돈이라도 생기면 책을 사서 보았다. 이기영, 최서해, 한설야 등 민족작가들을 그때 접했고, “옛성에 휘몰아치는 불길”, 파금작가의 “집” 등 소설책을 보풀이 일 정도로 읽었다.
당시 10명 식솔의 대가정에서 먹고 마시는 식수를 이영희 어머니가 매일 아침 지게를 지고 왕복 3번씩 그 무거운 바게쯔물을 길러 날랐다. 세월이 오래 가니 집으로부터 우물가로 가는 길에는 어느새 이영희 어머니의 작은 발자국이 또롯히 패여져 있었다. 이 발자국의 깊이가 바로 맏딸로서 친정집 가정을 위해 흘린 땀방울의 대가였다. 
 
시부모 모시고 시동생 거두고
자식들 키우고
 
세월이 흘러 어느날 이영희 어머니에게 혼사말이 들어왔다. 녕안현 발해공사 강서대대에 살고 있는 박춘수라는총각이였다. 이영희 어머니보다 6살 이상인 이 총각은 손재간이 좋아 동경성 일대에서 선반일에 최고 기술자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이영희 어머니는 동생들이 아직 어리므로 집을 좀 더 돕기 위해 거절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고에 못이겨 맞선을 보았다. 첫눈에 반한 이 한쌍의 원앙새는 1961년 정월 초사흗날에 결혼식을 올리고 백년가약을 맺었다.
 
강서대대에 시집가니 손재간이 좋은 남편 덕에 유리창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맏며느리로 들어간 박씨 가문의 부담도 역시 적지 않았다. 시부모를 모셔야 하고 시동생 둘을 키워야 했는데 그때 제일 작은 시동생이 9살이였다. 
 
가난 속에서도 기쁨은 찾아왔다.  1962년 맏아들 박걸씨가 우렁찬 울음 속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아들은 어머니에게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안겨다 주었다.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영희 어머니는 자신의 생명의 핏줄이 연장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고맙게도 아들에 이어 백련, 목련,설련 등 금쪽같은 딸애가 연이어 태어났다. 
 
 

날씨 좋은 어느날 어머니는 남편과 함께 동경성진에 재봉침을 사러 갔다. 어머니는 큰아들 박걸을 이불에 싸서 등에 업고 마선 윗부분을 머리에 얹고 아버지는 마선의 나머지 부분을 지게로 등에 지고 20여리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찬란한 석양빛이 이들 부부의 정다운 모습을 환하게 비추어주고 있었다. 한 가정의 모든 무거운 짐을 부부간이 나누어 지고 다정히 걸어가는 모습에 길손들은 모두가 부러운듯 이들을 지켜보았다. 
 
총명한 이영희 어머니는 자습으로 재봉기술을 익혔다. 양복 한벌에 다른 집에서는 5위안씩 받았으나 어머니는 3위안을 받으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강서대대는 물론 생활이 어려운 향수대대, 삼령대대의 가정들에 원가만 받고 무료로 해주기도 했다.  항상 남들을 우선 배려하는 이영희 어머니의 선량한 품성은 후에 자식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영희 어머니는 그후 연변 의란진에 이사가서도 양복점을 계속 꾸리는 한편 돼지와 닭을 키우면서 가정살림에 보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일들이 생겼다. 명절이나 기념일에 어쩌나 집에서 떡을 한소래 해놓으면 반나절이 되지 않아 절반나마 없어지군 했던 것이다. 이영희 어머니는 당시 초등학생인 박걸이를 불렀다.
 
“그 많은 떡이 다 어디 갔느냐?”
  “아 네, 어머니,  그 떡 너무 맛있어서 내가 다 먹었습니다” 
“어, 그래-“ 
 
이영희 어머니는 눈을 감고 모르는체 했다. 문틈으로 아들이 집안의 떡을 온 동네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벌써 보았던 것이다. 가난하지만 친구, 이웃들과 나눌 줄 아는 아들의 행위가 대견해서 그후부터 항상 음식을 더 많이 해서 남겨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시아버지는 75세에 돌아가고 시어머니는 83세 고령에 돌아갔다. 모두가 맏며느리가 해준 밥을 드시고 편안하게 늙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시집 올 때 겨우 9살이었던 막내 시동생도 이제는 어였한 총각으로 자라 장가갈 나이가 되었다. 어느 처녀와 맞선을 보게 되었는데 시동생은 형수가 먼저 가서 만나보고 합격돼야 만날 거라고 우겼다. 오죽했으면 시아버지가 “명수는 부모 말은 안들어도 형수 말이라면 잘 듣는다”고 감탄했겠는가.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하고
 
1977년에 일가족은 녕안현에서 룡정현 의란진으로 이사갔다. 선반기술이 좋은 남편의 솜씨를 보아낸 의란진 영도들이 기꺼이 이들의 호구를 연변으로 옮겨준 것이다. 동경성진 동강촌에 있을 때 막내 딸 설련이가 태어났다. 설련이 태여난후 이영희 어머니 몸이 많이 안좋아졌다. 그때는 빈혈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설련이를 그들보다 생활이 더 좋은 동경성임업국에 근무하는 한족집에 보냈다. 그후 2 년 지나서 연변에 이사갈 때 찾으러 갔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들이 찾아갈까봐 한족집이 다른 고장으로 이사를 간 것이다. 설련이는 17살  나던 해에야 극적으로 다시 박씨가족의 품에 돌아오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가난이 빚어낸 드라마 같은 이야기이다. 
 
 선반기술이 좋은 남편은 의란 공장에서 선반 기술공, 목재 기술공 등 최고의 기술자로 인정받으면서 평생을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왔다. 남편은 의란진에 가서도 손재간이 좋아 집 세채를 직접 지었다. 
 
남편이 60세에 나던 해 맏아들 박걸 동사장은 한평생 고생한 아버지를 위해 집앞에 양어장을 만들어드리고 선반공구를 다 치워버렸다. 아무일도 하지 말고 매일 집에서 놀면서 낙시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또 여동생들을 시켜 아버지를 모시고 한국 유람도 시켰다. 
 
남편이 만 66세 나던 해, 평온하던 가정에 불행이 닥쳐왔다. 하늘같이 믿던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저 세상에 간 것이다. 남편이 평소에 과자를 즐겨 드셨기에 이영희 어머니는 항상 과자를 봉지채로 사서 집에 두고 있었다. 그날도 남편은 밖에서 집에 돌아와 좋아하는 과자를 들고 사과배를 한개 깍아 먹고 나가 일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남편을 저 세상에 피눈물로 보내면서 이영희 어머니는 간절하게 기도를 하였다. 
 “다시는 우리 집안에 이런 불행이 오지 않기를 두손모아 간절히 빕니다. 여직껏 저의 기도가 너무나 부족한 거 같습니다. 이제부터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믿음과 신앙으로
자식들 사업에 기여
 
 실제로 이영희 어머니의 친정집은 독실한 기독교집안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동생들 모두가 그리스찬이였다. 남편을 잃고 나서 어머니의 신앙생활은 더욱 굳어졌다. 이영희 어머니는 딸 박목련과 함께 3명으로 시작된 의란진 처소가 많을 때는 근 백명의 성도들이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영희 어머니는 몇천명 성도가 있는 연길시 삼꽃교회로부터 권사님 안수 받았다. 
 
 연후 이영희 어머니는 큰아들 박걸 동사장의 사업확장에 따라 연길을 거쳐 아름다운 해변도시 칭다오로 이사가게 되었다. 칭다오에서 여성이 장로직급에 이르기 어려운 현실의 벽을 깨고 청양구에 위치한 지구촌교회의 장로 안수 받았다. 
 
이영희 어머니 영향으로 따님 박백련, 박목련, 박설련, 외손녀 김령, 큰 손녀 박리나도 모두 사랑의 마음과 기도의 길에 들어섰다.  박걸 동사장도 어머니 신앙을 도와서 의란교회 재수건, 청양 지구촌교회 창립 등에 적지 않은 성금을 지원해주었다. 
 
큰아들 박걸 동사장의 사업의 확장에 힘입어 큰딸 백련씨는 현재 일본에서 잘 사업하고 있고, 목련씨는 오빠를 따라 신강에서 커시안사업을 하다가 현재 칭다오에서 어머니를 잘 모시고 있으며 설련씨는 현재 커시안 산둥 지난대리점의 지사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해나가고 있다. 친손녀 박리나씨도 호주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고 현재는 베이징에 와서 아버지의 사업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 
 
  지금도 이영희 어머니는 커시안그룹 베이징빌딩에 들어서는 모든 분들에게 축복의 기도를 해주고 있다. 커시안그룹과 관련 된 모든 분들의 사업이 만사형통하고 박걸 동사장과의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여 모두가 크게 대성하시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이영희 어머니는 아들이 생산하는 커시안 치료기의 첫번째 고객이기도 하다. 또 커시안 연변공장에서 생산하는 홍삼액을 장복하고 있다. 
 
원래 어머니는 55세부터 천식에 관심병에 심장병으로 많이 아팠는데 커시안 치료기를 10여년 쓰면서 지금은 더 젊어지고 건강한 모습으로 정정하게 살고 있다. 
 
  박걸 동사장은 지금까지 연변대학과 중앙민족대학교에 몇백만 위안의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아마도 14살 때 가난으로 공부를 못한 어머님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로지 가난으로 인하여 학교를 그만두는 애들이 없기를 바라는 어머니와 박걸 동사장의 천사와도 같은 마음은 변함없는 것이다. 
 
 박걸 동사장이 이끄는 커시안그룹의 성공비결에 대해 이영희 어머니는 자신의 견해를 갖고 있다. 
 


하나는 가족들이 열심히 기도를 해준 덕분이고 다음으로 동사장이 나눔과 베품을 몸으로 실천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번째는 박걸 동사장이 자신의 꿈을 커시안 여러 사람들의 꿈으로 키워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영희 어머니는 아들이 마음이 좋아서 주위 사람들이 똑같게 잘 살 때까지 노력해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살 어린 나이에 농사일을 시작하고  22살에 시집을 가서 이제는 증손녀 샛별이와 함께 팔순잔치와 증손녀 첫돐을 함께 즐기는 4세동당의 천륜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한평생 가정을 위해서 남들을 위해서 학처럼 선녀처럼 살아온 이영희 어머니, 자식을 우리민족기업의 총재로 키운 이영희 어머니는 정녕 이 시대의 모범적인 어머니 칭호를 받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흑룡강신문 연해뉴스 / 박영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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