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환자들을 위한 일에는 영원히 퇴직이 없지요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11월5일 10시45분    조회:198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의료사업 종사 62주년 기념일에 즈음하여.

62년을 하루와 같이 의료사업에 종사

지난 10월 24일, 연길시의 한 음식점에서 특별한 행사가 펼쳐졌다. 친척,친우 그리고 지인들의 박수갈채와 축복 속에서 올해 89세 고령인 김홍걸교수가 의료사업 종사 62년을 마무리하면서 특별한 기념행사를 가지게 된 것이였다.

행사 바로 전날인 10월 23일까지도 김홍걸교수는 연길시치질병원 통증과에서 환자들의 병을 보았었다. 그리고 이날로 의료사업 종사 62년을 마무리하고 림상제1선에서 물러섰다.

맏딸 김경화가 아버지 김홍걸교수에게 공로패를 증정.

이날 김홍걸교수의 딸 김경화와 김성은 아버지에게 공로패를 만들어 올리면서 장장 62년 동안 변함없는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해주어 의료사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아버지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과 사랑을 표시했다. 또한 이제는 자식들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여 아버지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드리겠다고 말했다. 김홍걸교수가 사업했던 연길시치질병원의 원장 임호림도 김홍걸교수의 다년간의 의료사업 성과와 기여에 대해 충분히 긍정함과 동시에 김홍걸교수가 이제는 즐겁고 행복한 일만 가득한 제2의 인생을 보낼 것을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표시했다.

필경, 사람의 일생에서 60여년 한가지 일에만 꾸준히 몰두해오고 또 열심히 실천하기까지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재직근무시절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김홍걸교수. 

김홍걸교수는 1959년도에 26살의 젊은 나이로 대련의학원을 졸업한 후 곧바로 의료사업에 참가하였다. 그는 선후로 길림성결핵병연구소, 연길시병원에서 재직근무를 마쳤고 퇴직한 후에는 연변의약학회 문진부, 연길시치질병원 등 병원들에서 의사로 근무하면서 여생을 불태웠다. 지금까지 장장 62년 세월을 의료사업 제1선에서 사업했으니 김홍걸교수는 환자들을 위한 의료사업에 한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해놓은 일도 없이 눈깜짝할사이에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겸허가 섞인 김홍걸교수의 감회였다.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에 붙었고 또 아픈 사람들의 질고를 덜어주기 위해 의사가 되여 보람을 느꼈던 많은 과거가 어제런듯 싶은데 이젠 아득한 먼 옛날이야기로 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온 과거를 생각해보면 한생을 의료사업에 바친 것이 매우 긍지감과 자부감으로 차넘친다고 김홍걸교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당과 정부의 혜택으로 대학공부

김홍걸교수는 1933년도에 조선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태여났다. 1941년도에 살길을 찾아 가족이 룡정에 이주왔을 때까지만해도 가난 때문에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김홍걸은 룡정에서 해방을 맞이했고 학교도 다니게 되였으며 열심히 노력하여 대련의학원에 입학하게 되였다. 그가 의학공부를 결심하게 된 것은 치과의사를 하던 큰 형님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어 찬양받고 존중받는 형님이 몹시 우러러 보였기 때문이였다.

1954년도에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김홍걸교수는 당과 국가의 혜택으로 공부를 부담없이 마칠수 있었다. 국가에서 대학생들의 학비와 책값은 물론 식비마저 보조해주어 가난한 살림에서도 학업을 무난하게 마칠수 있었다. 1959년도에 대학을 졸업한 후 김홍걸은 구태에 자리잡고 있던 길림성결핵병연구소에 배치받았고 1962년까지 4년간 그곳에서 근무했다.

항상 업무 연찬에 몰입하는 김홍걸교수.

1962년도에 연변에 살고 있는 배우자와의‘견우직녀’생활 때문에 부득이하게 연길로 일터를 옮긴 김홍걸은 연길시병원에 배치받아 그곳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장장 31년 세월을 일편단심으로 사업했다. 연길시병원 소화내과 의사, 의학교육과 주임, 부원장 등 직무를 맡고 사업하면서 연길시의료위생사업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기여를 했다.

1985년 10월, 김홍걸은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53세였다. 비록 늦게 입당하긴 했지만 더욱더 자신에 대한 요구를 엄격히 하고 사업을 책임감 있게 해나갔다. 연길시병원에서 사업하는 30여년동안 김홍걸은 책임감있는 사업태도와 높은 의술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주어 여러차례 성,주,시 선진의료사업일군의 영예를 따내였다.

퇴직 후에도 여생을 불태우며

1993년도에 연길시병원에서 정년퇴직을 한 김홍걸교수는 1994년부터 2006년도까지 연변의약학회 문진부, 2006년부터 2021년 10월까지 연길시치질병원에 초빙받아 계속해서 여생을 의료사업에 바치게 되였다.

어느 한번, 김홍걸교수는 병보이러 온 한 환자를 통해 최근 나온 칼침료법이 약이나 기타 다른 의료법으로도 잘 듣지 않는 여러가지 의난병 통증치료에 효과가 매우 좋다는 말을 듣게 되였다.

의료사업도 부단히 개척하고 새로운 것을 탐구해야 한다. 재직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퇴직한 후에도 김홍걸교수는 새로운 의료기술을 접수하고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때 김홍걸교수는 이미 60세가 넘었지만 북경, 남경, 상해, 제남 등 국내 여러 지역들을 다니면서 칼침료법에 대한 깊이있는 공부와 연수를 진행했다. 칼침료법을 배우러 찾아온 전국각지 의사들중에서 김홍걸의사가 항상 나이가 제일 많았다.

2001년도에 전국 칼침연수 강습반에 참가했을 때 남긴 사진(두번째줄 오른쪽 세번째가 김홍걸교수).

늙었다고 배움에 게을리하면 뒤떨어지고 도태되기 마련이라고 김홍걸교수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군 한다. 그러했기에 그는 후에 연변에서 소문난 칼침료법의 전문의로 되여 수많은 의난병 통증환자들을 치료해주었으며 환자들의 한결같은 호평을 받았다. 김홍걸교수가 그동안 기록해둔 칼침료법 환자 명단만해도 4,265명에 달한다. 이는 김홍걸교수가 적어도 2만차가 넘는 칼침시술을 환자들에게 진행하였음을 의미한다.

환자들을 위한 일에는 퇴직이 없다

10월 29일, 기자는 김홍걸교수가 의료사업에서 손을 떼고 만년을 보내고 있는 연길시 천우생태가원의 저택을 찾아가 보았다. 동갑내기인 안로인 박영순과 함께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김홍걸교수는 의료사업에서 손을 뗀후 평소 즐기던 촬영과 테니스운동 등을 여생의 흥취로 삼고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은 언제나 몸을 움직여야 하고 또 할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비록 진찰치료 1선에서는 물러났지만 두툼한 환자들의 병지를 집에까지 가져다 뒤져보면서 병과 환자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단다. 그것도 늙으막 락이라고 했다.    

김홍걸교수는 오래된 병지라도 그냥 보관해두고 있을만큼 환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지극했는데 혹시나 환자가 후에라도 찾아오면 병지를 보고 더욱 좋은 치료방안을 제공할수 있기 때문이였다. 김홍걸교수한테는 10년 후에 찾아오는 환자들도 적지 않았단다.

퇴직 후에도 환자들의 병지를 정히 보관하고 있다.

89세 고령인 김홍걸 박영순 로부부.

비록 병원에는 나가지 않지만 병지를 버리지 않고 그냥 보관해두고 있는 김홍걸교수의 마음은 무엇일가? 환자들이 혹시 찾아올 수 있기에, 오래된 병지라도 진찰과 치료에 매우 중요하기에 세월이 흘러도 그냥 간직하고 있다고 김홍걸교수는 말했다.

“환자들을 위한 일에는 퇴직이 없지요”김홍걸교수는 환자가 수요하는 한 자신은 영원히 퇴직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급히 알려드립니다. 렬차에 의무일군이 계시면 속히 3차량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렬차의 안내방송이 다급하게 전해오자 안경을 낀 한 왜소한 젊은이가 쏜살같이 3차량으로 달려갔다... 이는 11월 10일, 할빈-가목사 D7803 렬차안에서 발생한 장면이다.   당시 흑룡강중...
  • 2020-11-13
  • 림정아는 “성광대도(星光大道)”CCTV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간 월간 우승을 거머쥐며 또 하나의 새별로 떠오르게 되였다.   연구생공부를 마치고 연변가무단에 배치받은 림정아는 2012년 더 큰 활무대를 찾아 북경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로지 음악의 외길만 걷겠다는 집요함은 그동안 림정아에게 수...
  • 2020-11-12
  •     지난 8일 대련리공대학 환경학원 조선족 전섭(60)교수가 중국공학계(工程界)최고상을 수상했다.   학술보고를 하고 있는 전섭교수. /자료사진   이날 북경에서 제13회 광화공학과학기술상(光华工程科技奖)발표식이 열렸는데 이날 원사 한명이 광화공학과학기술 성과상을 수상하고 코로나와의 사투에서...
  • 2020-11-11
  • 일전 무순시 심무신구에 거주하고 있는 박문숙(朴文淑, 88세) 할머니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 70주년 기념메달’을 발급받았다.     18살에 자원 입대   박문숙 할머니는 1933년 조선 평안북도 태천군의 한 농민 가정(아버지 박인관, 어머니 고명옥)에서 태여났다. 3남 1녀중 유일...
  • 2020-11-06
  • 김선희 가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일본에 있는 조선족들은 사회활동이 줄어들고 고향으로도 갈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유튜브를 통해 방송되는 “변강과 함께 하는 음악이야기(김선희 편)”에서 김선희 가수의 “내 사랑 장백산”을 듣게 되었다. 고향의 정서가 담뿍 담...
  • 2020-11-03
  •   10월 28일, 료양시 태자하구 철서가두 광휘조선족촌 아빠트단지에 살고 있는 양옥륜(90세) 할머니는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 70주년 기념메달’과 로전사 위문금을 발급받았다.      양옥륜 할머니는 1931년 5월 20일에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에서 출생, 1939년 3월에 가족과...
  • 2020-11-02
  • 공훈교사상을 수상한 현건 교원   흑룡강성 명문고중의 하나인 대경실험중학교 건교 35주년 경축을 맞아 현건(조선족, 60)교사가 공훈교사상을 수상했다.   할빈사범대학 수학학부를 졸업한 현교사는 대경실험중학교에서 꼬박 34년간 청춘과 모든 정력을 교육사업에 바쳤다.   장기간의 교수실천에서 현교사는 과당수...
  • 2020-10-30
  • “흰 눈이 내리네” 등 수많은 명곡들을 불러 관중들의 사랑속에 20여년간 연변의 무대에서 활약했던 윤행성씨, 15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윤행성씨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5년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조직한 자치주 마이크식...
  • 2020-10-29
  •     정석숭 프로필   1933년 8월 29일 료녕 신빈현에서 출생. 1951년 2월 항미원조전쟁에 참가, 제40군 후근부 경위영 경위련 련락원(통역). 1956년 6월 동창대촌조선족소학교에서 입당. 선후 신빈현위선전부, 공청단신빈현위, 문교당위, 당정돈판공실, 현직속기관당위, 민정국, 남잡목진에서 사업. 1...
  • 2020-10-27
  • 올해는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작전 70주년이다. 젊은세대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항미원조전쟁 이야기를 수집하던 중 “큰 수확이 있을 거”란 지인의 소개로 일전 심양에 살고 있는 리...
  • 2020-10-23
‹처음  이전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