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나의 삶과 음악은 바이올린과 함께 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7월21일 19시44분    조회:320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작은 체구에 늘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지만 바이올린을 잡는 순간 카리스마가 넘친다.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청중의 마음을 휘여잡으며 바이올린 선률에 젖어들게 한다. 바이올린만 손에 잡으면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어디서 뿜어져 나올가? 5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했으니 사실상 칠십 평생을 음악가로서의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이제 바이올린과 그녀는 한몸이 아닐가 싶기도 하다.

19일, 바이올리니스트 최정희의 자택에서 만난 그녀는 활기가 넘쳤다. 늦게까지 바이올린 수업을 하느라 잠도 못잤다면서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연변가무단 바이올린 연주자로 정년퇴임을 한 최정희는 어린 시절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 최호운 선생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바이올린을 접하게 됐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할빈에 있는 쏘련의 한 음악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뒤 료녕성가극원에 있다가 연변가무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정희는 “당시 들었던 아버지가 켜는 바이올린 음악의 선률에 나도 이런 곡들을 연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음악인의 길로 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공연에 가서 본 바이올린 연주자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면서 “이후 바이올린 독주곡과 협주곡을 따로 찾아 들을 정도로 바이올린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최호운 선생은 4남매 중 맏이였던 그녀에게 특별했다. 자신의 바이올린 기교를 남김없이 그녀에게 전수했다. 돈이 없어 배를 굶었던 시절, 값 비싸고 귀했던 바이올린을 얻을 길 없었던 최호운 선생은 재료를 얻어 직접 바이올린을 제작해서라도 그녀에게 바이올린을 배워줄 만큼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어린 그녀 또한 욕심이 많았다. 졸려서 눈이 감길 때까지 연습하군 했단다. 아버지가 남겨준 진도를 따라잡으려는 욕심에서였다.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서였을가? 한 방송음악회에서 베토벤 작곡인 <메누에또>를 제법 연주했던 6살의 최정희는 단번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신동 바이올린 연주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2년 주은래 총리가 연변을 찾았던 그해, 겨우 10살이였던 꼬마 최정희는 주은래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관중들이 모인 무대에서 당당하게 바이올린 독주를 이어갔다. 당시에는 귀하디 귀했던 악기였던 바이올린을 곧잘 연주하는 꼬마 최정희의 모습은 곧 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져갔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나에게 딱 맞는 것 같았다. 음색도 매력적이고 내 체구나 성격에도 맞았다. 그리고 곡을 배워 나가고 한 곡을 완성했을 때 그 희열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때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재미가 있어서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이후 1970년에 그녀는 화룡현 문공단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있다가 10년 뒤 연변가무단으로 둥지를 옮겨 한국, 조선, 로씨야로 공연을 다녔고 국내 크고작은 공연무대에서도 연주자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올해 고희를 맞은 최정희는 퇴직후에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면서 음악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음악이라는 분야는 평생 연주하고 가르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나이로만 퇴임이지 음악가로서의 활동은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어릴 때 훌륭한 선생님들이 70, 80 대가 되여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많이 봤는 데 나도 그런 모습을 늘 잃지 않으면서 더욱 열심히 일할 계획이다.”

그녀의 바이올린 인생은 이제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셈이였다.

이어 그는 “바이올린은 기초교육이 무척 중요하다. 바이올린 활을 편안하게 써야 하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상상력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악보를 봤을 때 작곡자의 생각과 음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리유가 거기에 있다. 나는 이러한 나만의 공부법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 중에 조심스레 그녀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부탁했다. 물론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고희,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의 연주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사랑과 슬픔, 고뇌와 환희, 열정과 적막 같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그녀의 바이올린 현을 타고 흘러나왔다. 인자하고 포근한 그녀의 친숙함과 힘있는 연주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이 어우러져 한결 분위기는 편해졌다.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였고 음악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며 롱담처럼 말하면서도 “늘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연주한다.”고 말했다.

“쉬워진다는 생각 전혀 안들고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며 겸손한 자세를 보이던 그는“우리 지역에도 관객과 공감하는 클래식 음악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아직 여건상 부족으로 클래식이 설 수 있는 무대는 너무 제한적이다. 더구나 대중적인 음악쪽에 집중돼 클래식 분야는 상대적으로 신문이나 방송 등 대중 매체들에서 다루어지는 비중도 낮다.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이 모아져서 관현악의 위상이 높아졌으면 더 바랄 것 없다.”라며 결코 가볍지 않은 바람도 조심스레 내비쳤다.

그런 그에게 “삶에서 바이올린이 필요한 리유”를 마지막으로 물었다.

“음악은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공기”라며 그녀는 위대한 지성인이 남긴 현답으로 대신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였다.

‘내게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음악 속에서 꿈을 꾸고, 음악을 통해 내 인생을 바라본다.”

  글·사진 신연희 기자/연변일보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4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20)   - 연변대학 미술학원 사진교연실 김광영주임 인터뷰     생존을 위한 개인적 영역 개척 필요 지난것을 보충, 거꾸로 갈수도 있어 재미있고 의미있는 사진이 좋은 사진     우리의 일상생활을 돌이켜보면 변화가 가장 많은 부분이 오락이고 그중 단연 노래방이...
  • 2012-11-05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10) "붉은해 변강 비추네" 예술총감 박춘선을 만나   수년전 연변에는 두개 명함장이 있다는 말이 돌았다. 하나는 연변오동팀이고 다른 하나는 연변가무단이다. 오동팀은 최은택을 모시고 중국축구갑A리그 4강이란 위엄을 토하면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당시 오동팀은 강급의 강력후보였...
  • 2012-10-26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4) 장익선  연변대학예술학원 장익선 음악학박사를 찾아서       음악 혹은 노래라함은 우리가 그림자처럼 늘 곁에 두고 함께 지내는 삶의  동반자와 다름이 없다. 특히 한많고 설음많은 우리민족에게 노래는 정서의 표현이요 심미의 발상이며 삶의 기록이라 하겠다. 머나...
  • 2012-10-22
  •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2) 최룡국 부끄럼이 없어요 연변가무단 전임 악대 지휘 최룡국선생을 만나       오전 9시반경, 령하 13도… 립춘이 코앞까지 굴러왔는데도 마냥 포복행진을 하고 있는 날씨다. 하남가‘주부가원(州府嘉 )’정문에 들어서자바람 6동 아빠트를 찾아 좌우로 고개를 뽑...
  • 2012-10-22
  •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 박영만기자 = 흑룡강성 오상출신인 청도대학 음대 성악과 박주연교수는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전파하는 동시에 음악을 통한 나눔을 실천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있다.   박 교수는 상해음악대학에서 수학하고, 서울대학 음대 대학원을 졸업한 성악계의 재원이다. 서울대학 대학원 졸...
  • 2012-10-19
  • 국가1급무대미술설계사 김태홍화백의 작품세계   연변의 두번째 한락연 민족의 전통을 업그레이드 시킨 작품 생활은 모든 작품의 원천   김태홍화백 략력 1943년 흑룡강성 녕안 출생 1967년 중앙희극학원 무대미술설계학과 졸업 1967년~현재 중앙발레무극단 무대미술설계사 1984년 일본대학예술부희극연구소 특별...
  • 2012-10-18
  • http://hljxinwen.dbw.cn   2012-08-10 11:08:43             미국남가주대학 피아노학부 석사연구생 김은희의 이야기   (흑룡강신문=연변) 김명록 연변 지사장 = 지난 7월 초 , 미국남가주대학 피아노학부 석사연구생 김은희양을 인터뷰했다. 취재시에 김은희부모님들도 동석하여 김은희 ...
  • 2012-08-10
  • “장백산촬영가” 한영을 만나다 “사진작품은 유감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30년간 장백산을 촬영했지만 내놓을만한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장백산을 소재로 한 개인사진전을 열고 사진작품집 《격정의 장백산》을 펴냈으며 연변촬영가협회 주석 등 직을 지낸 한영선생이지만 겸손한 자세로 기...
  • 2012-08-09
  •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못할 “통신학습”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 서예에 심취해서 침식을 잊은 20대의 청년이 있었다. 굶주린 사람이 빵을 먹듯 서예에 대한 집착과 여러 대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되는 등 천부적인 소질로 주위의 이목을...
  • 2012-07-26
  •   공식석상에서 늘 빛갈고운 한복차림이였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인터뷰시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은 함순녀(48세)한테서는 차분한 카리스마가 풍겼다. 현재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자 연변무용가협회 주석인 함순녀는 오로...
  • 2012-07-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