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률은 무대 뒤 무대서 완성하는 작품’
1000분의 1의 차이도 느껴내야만 최적의 연주 컨디션을 만들 수 있는 만큼 조률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스름한 무대 우, 매끄러운 피아노 한대가 놓여있다. 조명이 켜지고 피아니스트가 뚜벅뚜벅 걸어나오면 이내 묵직한 적료를 뚫고 울리는 피아노 건반소리, 우리가 감상하는 공연은 보통 여기서부터이다.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피여오르는 음악은 우리를 깊은 감각의 풍경 속으로 이끈다. 이윽고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마치고 일어서면 우리는 환호한다. 텅 빈 무대를 뒤로 한 채 관객들도 웅성웅성 몸을 일으킨다. 우리가 감상하는 공연은 보통 여기까지이다.
우리가 즐긴 이 공연의 연주를 망칠 수 도 있고 더 좋아지게 할 수 도 있는 게 사실 피아노 조률사의 역할이고 힘이다. 그러니 적어도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알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위해선 훌륭한 파이니스트에 앞서 훌륭한 조률사가 존재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30년 가까이 피아노 조률사로 활동하고 있는 국가1급피아노조률사 김화일, 연변가무단 전속 피아노 조률사로 재직중인 그는 전국에 단 8명밖에 안되는 아시아 피아노조률사련맹의 중국국가대표이자 길림성피아노조률사협회의 부회장, 국가피아노조률사자격증시험 고급시험관이다.
조률이란 단순히 악기의 소리를 고르는 것을 넘어 피아니스트들이 저마다 원하는 다른 소리를 피아노에서 끌어내는 작업이다. 연주자들이 보여주는 최상의 퍼포먼스 뒤에는 훌륭한 조률사가 있다. 피아노는 피아니스트가 홀로 치는 악기는 아니다. 연주자 곁에는 늘 피아노 조률사가 있다. 이들은 음의 잔향까지 고려해 줄을 조이고 풀며 피아노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한다.
리력이 말하듯 그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조률사중 한사람이다. 피아노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만드는 데 그를 넘어설 이가 많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아 국내는 물론 한국이나 조선 등 해외까지 원정 조률을 다녀온다. 그는 다른 조률사들이 해결할 수 없는 미세한 기술적 잡음을 치료하는 해결사로 통한다. 그러나 그의 손끝 기술이 단순히 수십년의 세월에서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다. 수많은 피아노를 거치면서 반복에 반복 련습을 한 덕분이다. 그동안 전통 클래식 연주자, 뮤지컬 배우, 작곡가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피아노가 그의 손길을 거쳐갔다.
그의 말을 빈다면 그는 스승복이 류달리 많은 셈이였다. 김화일은 일찍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 최광준과 리승필, 김춘산 등 스승들의 이끔으로 조률사의 세상에 들어섰다. 그리고 중앙음악학원 연수시절 중국피아노조률사협회 부회장이였던 왕덕화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조률의 다른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후 운 좋게도 당시 중앙음악학원을 찾았던 미국 스탄웨이피아노공장의 고문 겸 조률의 명장인 프란츠 몰과의 인연이 닿으면서 아름답고 정확한 피아노 소리를 만들어내는 정음의 중요성과 조률사가 갖춰야 할 능력과 자질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10여년 전에는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있는, 당시 한국조률사협회 부회장이자 한국 예술의 전당 전속 조률사인 김두회와 인연을 맺으면서 조률무대의 폭을 넓혀갔다.
비법을 묻자 소위 말하는 ‘한방’은 없다고 말한다.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비법을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로 간추렸다. 솔직담백했다. 88개 건반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만지는 손, 평이한 음에서 아름다운 음을 구분하는 귀, 손과 귀를 련결하는 감각을 긴 시간 벼려내는 일을 통해 내공을 쌓고 쌓아야 하는 업인 것이다.
김화일 조률사에 따르면 연주에 필요한 건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조정’, 아름다운 음이 나도록 여러 방법으로 다시는 것이 ‘정음’, 그리고 이 두가지를 합한 것이 ‘조률’이다.
그는 “인위적으로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소리이며 공명이 잘되는 소프라노와 테너의 음색이 심금을 울리듯 피아노에도 완벽한 단 하나의 소리를 찾아주는 것이 조률 장인의 명예”라고 강조한다. 또한 김화일은 “피아노의 크기, 종류, 제조사, 연주 목적은 다양하고 디지털 튜닝기도 있지만 아날로그의 령역은 분명해요. 연주중 피아노 건반이 쑥 들어가 안올라오면 기계가 고칠 수 있냐고요. 소리의 아름다움은 절대 기계가 가르쳐주지 않아요. 사람의 귀로만 가능해요.”라고 전한다.
그는 ‘디지털 튜닝기가 사람의 귀를 대체할 수 있을가?’를 주제로 하는 관련 론문도 발표예정에 있다. 론문을 준비하면서 최근 몇년간은 전국으로 초청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이왕 하는 일, 최고의 조률사가 되겠다.”며 노력했고 수십년 동안 갈고 닦으면서 터득한 결과가 빛을 발했다.
2007년에는 연변피아노조률학회를 설립했고 2013년에는 사비를 털어 중국, 미국, 한국, 브라질의 피아노조률사를 초청해 국제피아노조률기술교류회를 주최하기도 했을 만큼 조률분야에 남다른 애착심을 가지고 있는 김화일은 때론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1000분의 1의 차이도 느껴내야만이 최적의 연주 컨디션을 만들 수 있는 만큼 조률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아쉽게도 조률업계는 아직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조률사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피아노 조률에 관련된 기술을 연구개발하고 국내외 교류를 통한 기술정보 및 인적교류와 국가기능자격시험 시행에 련관된 제반교육시스템이 작동되고는 있지만 아직 미흡한 단계에 있다. 이는 조률사 자질 향상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어 그는 “피아노 관리를 의뢰하는 고객 역시 피아노 조률의 중요성에 대해 간과할 때가 많다. 피아노 조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시급할 때이다.”고 보탰다.
앞으로 그는 조률사들의 기술 향상을 위해 관련 부문과 손잡고 수시로 공익기술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그리고 아직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피아노 조률의 중요성에 관련된 공익강좌도 기획중에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지역의 음악계에 좋은 양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피아니스트 뒤에 선 조률사로서의 자부심을 조심스럽게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관객은 조률하는 사람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만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연주자들은 공연장에 오면 조률사에게 매달린다. 조률사의 손에 멋진 공연이, 연주가 달려있으니까.”
연변일보 신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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