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창업으로 또 다른 인생가치 실현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12월13일 11시17분    조회:812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신영호씨 일본서 벌어온 돈으로 제조업체를 운영 “해외에서 피땀으로 벌어온 돈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는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했어요. 이런 허탈감에서 탈출하고 자신의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일본에서 자신의 신근한 로동으로 돈을 벌어온후 연변취호상무청사유한회사 물업관리를 도맡고 페인트공장, 목탄공장을 운영하고있는 신영호씨(46살)의 말이다. 길림화공학원에서 화공기계를 전공했던 신영호씨는 1983년 대학을 졸업한후 화룡제약공장, 화룡로동국 보이라검험소 등곳을 전전하다 1995년에 일본의 집정재회사에 1년 반동안 연수를 가게 되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연길 모 단위에 취직했던 그는 1999년에 다시 일본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사정은 처음 일본에 연수왔을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처음 일본에 연수갔을 때에는 여러곳에서 찾아와 일해달라고 청했고 여러 사람들이 쌀이나 남새 등을 갖다주어 생활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나 다시 일본에 갔을 때에는 불경기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잉크탕크만드는 공장에도 취직했었고 포장회사에서 상표붙이는 일도 했으며 땡볕에 간이판자집을 조립하는 일도 했고 지어 묘지에 묘비를 세우는 일도 했다. 상표붙이는 일을 할때는 저녁 잠잘 때도 손가락을 굽히지 못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고 간이판자집을 조립할 때는 온몬이 땀투성이가 되었으며 지어 더위먹고 쓰러지기도 했다. 또 비석을 세우는 일을 할 때는 허약한 몸으로 수십킬로그람되는 콩크리트를 밀차에 싣도 산길을 톺기도 했다. 고된 로동에 심신이 더없이 피로해진 그는 일본에 간지 2년반만인 2002년 3월에 결국 귀국을 결심하게 되었다. 고향에 돌아와 피로해진 몸을 얼마간 추스린후 그해 8월 또 광주 모 회사에 입사해 두달간 있었으나 가족형기업이라 발전공간이 없어 고향에 돌아왔다. 일자리는 찾기 힘들고 할 일은 없어 늘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만 마시다나니 몸은 몸대로 상하고 수년간 피땀으로 벌어온 돈도 순식간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여 그는 창업을 결심했다. 2003년에 연변취호상무청사유한회사 물업관리를 도맡았고 2004년 4월,10만원을 투입해 북경에가 기술과 설비를 인입, 연길시오라이페인트공장을 설립했다. 원래 화학공업을 전공했던 그에게 있어 페인트공장은 자기의 적성에 알맞아 관리도 따라가게 되었고 설비가 좋고 기술이 좋다나니 제품의 질도 좋아 대뜸 시장에서 인기제품으로 되었다 .게다가 최근년래 연길시의 부동산업이 호황세를 보임에 따라 공장도 급속히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5년에는 목탄공장을 설립했다. 페기물인 톱밥을 리용해 만든 목탄은 원가가 낮고 환경보호형제품이라 시중의 각광을 받았다. 특히 연변 주에서 양고기뀀, 불고기업이 호황세를 보이고있는한 제품의 판로는 영원히 보장되여있는셈이다. 올해 12월 12일에는 또 6만원을 더 투입해 단동에서 새로운 목탄생산기술을 도입했다. 해외에서 벌어온 돈으로 창업에 나서 성장일로를 거듭하고있는 신영호씨는 피땀으로 번 돈을 마작판이나 술판에 헛되이 탕진하는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고 또 창업한다 해도 남의 뒤꽁무늬를 따라 맹목적으로 한다면 실패보기 십상이라면서 자기의 적성에 알맞은 자기만의 제품을 창출하기에 노력한다면 치부는 물론 새로운 인생가치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있다. 김명성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쓸쓸한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려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시작은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였다. 중국 옌볜에서 양팔이 없는 지체장애인 최금호씨를 사계절 따라다니며 카메라에 담았다. 방송은 반응이 좋았지만 김광호 감독은 더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싶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다큐멘터리에서 ...
  • 2008-07-04
  • 창립 4주년맞은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 대표 김해성 목사 ‘크레파스와 물감에 살색을 없애야....’ -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진료 제공“감사하고 또 눈물이 납니다”국내에 하나뿐인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에서 만난 중국 심양이 고향인 김혜숙(52, 여)씨.김씨는 한국에 건너와 애기를 돌...
  • 2008-07-04
  • —현장총지휘 리종환씨를 만나 온몸으로 열심히 지휘하는 리종환씨,  그의 지휘하에 1만명도 훨씬 넘는 무용배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리종환씨는 이번에 자원봉사자로 나서 현장총지휘를 맡게 되였다. 연변군중예술관 부관장으로 대형행사때마다 총연출의 중임을 떠메였던 리종환씨는 퇴직한 몸이지...
  • 2008-06-29
  • 목단강지구 문과장원 - 외교관이 되고싶어요 대학입시 시험에서 659점의 성적, 흑룡강성 문과 장원의 663점 보다 4점이 떨어지는 성적을 따낸 해림시조선족중학교 고3-2반의 남홍옥학생이 목단강지구 문과 장원석에 올랐다. 《어제 저녁 동창들로부터 저의 시험성적을 알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위해 기뻐 했는데...
  • 2008-06-28
  • 환자의 아픔은 곧 의사의 아픔입니다연변대학병원 중의과 김향숙주임의 진찰권을 떼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 기다려야 겨우 뗄수 있다고 한다. 진찰권이 긴장하다는것은 그만큼 의술이 높아 환자량이 많음을 의미하지만 김향숙주임의사는 "환자들이 병원의 지명도를 보고 찾아온것이지 저 개인을 보고 온것이 아닙니다&q...
  • 2008-06-27
  • 《떼떼부부》가 며느리를 보게 되였다. 즉 《작은 떼떼》가 사귀는 녀자친구를 데리고 부모님께 인사시키러 온다. 그런데 귀가 어두운 어머니는 며느리감을 보고 왕청같은 말들을 늘여놓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는 며느리감을 보고 말한다는것이 로친한테 대고 말한다. 그래서 김광철은 난처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사리밝고 례...
  • 2008-06-15
  • 2년에 국가특허발명 5건 농민발명가 천해룡(53세)씨는 다년간 모색과 연구끝에 지난해와 올 상반년짧은 2년여 기간 ‘다기능 비누곽’, ‘정량분유채취기’ 등 국가발명특허를 3건 획득하고 2건은 현재 신청 출원중에 있다. 흑룡강성 오상시 광휘향의 조선족 농민 천해룡씨는 지난해 5월 ‘다기능...
  • 2008-06-14
  • 박민자 연변가정연구소 소장 통일의 밑거름으로 조선족 활용 기대  “조선족의 중국 이민정착사는 150년이다. 만주 땅을 개간하고 중국을 건설하는데 기여하여 당당한 중국국민의 위치를 확보했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코리안드...
  • 2008-06-13
  • "의사는 무엇보다도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또 배운 리론지식과 실제경험들을 관통시켜야만이 진단의 정확률을 높일수 있다"고 늘 얘기하는  연변대학병원 소화내과 주임 박희서는 시골 아저씨와도 같은 소박하고도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평소 환자를 진찰하거나 제자들에게 지식을 전수할 때도 항상 차근차...
  • 2008-06-13
  • 중국관계자 중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지난 두 차례의 한중올스타전 때 중국 올스타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방복순(69) 통역이었다. 방 통역의 한국과 인연은 벌써 18년이 넘어간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는 되지 않았지만, 스포츠 교류는 있었던 90년 김학영 국제심판과 중국인 심판의 가교 역할을 맡은 것을 계기로 ...
  • 2008-06-1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