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교원은 사랑으로 빛난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7월4일 08시08분    조회:863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 상지조중 김혜경교원의 이야기

상지조중의 고중2학년 화학과를 담당하고 있는 김혜경교원(43세)은 당시 가정형편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대학입시도 포기해야 했었지만 자신의 끈질긴 노력으로 실력을 키워 성급골간교원의 영예를 지녔으며 고도로 되는 책임감과 사랑으로 사생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1979년 교단에 서던 당시 김혜경교원은 한족학교를 졸업하다보니 우리 말이 서툴렀고 학력도 변변치 못한 상태여서 학교에서는 그가 맡겨진 교수임무를 참답게 완수 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였다. 평소 공부를 잘하는 편이였고 화학과가 유달리 출중했던 그여서 가정형편으로 공부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그의 담임은 물론 학교의 선생님들도 모두 애석해하였던 터였지만 대학졸업장이 없고 우리 말이 서툴단 리유로 설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그는 오기가 앞섰다.

그때부터 낮에는 짬이 날때마다 선배교원들의 수업을 명심히 듣고 밤에는 독학으로 대학과정을 공부하였으며 방학에는 함수공부를 견지하면서 눈코뜰새없이 돌아쳤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따분한 화학과지만 학습흥취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개념과 주변사물의 련계성을 찾아 유머와 해학적으로 이를 해석하고 리해시키기에 힘썼다. 그의 노력은 차츰 학교의 사생 나아가서 교육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집필한 론문들이 수차례 성우수론문으로 선정되였고 전국적인 학술회의에서도 1등상을 받게 되었으며 성급골간교원, 할빈시학과인솔자 등 수많은 영예를 지니게 되었다.

교수실무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지만 김혜경교원은 자만하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동료교원들과 경상적으로 학술교류를 진행하였으며 학생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었다. 1997년 그가 고중3학년을 맡았을 때 그의 반급에는 태래현에서 온 최준석이라는 재수생이 있었다. 김혜경교원은 이 학생이 충동적이고 다혈질이며 자그마한 일로 동학들과 마찰이 잦은 것을 보아냈다. 그는 이 학생을 찾아 마음을 나누는 과정에서 락방으로 인한 심리압력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료해하게 되었다.

그는 이 학생에게 대학생보다는 우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도리를 일깨워주고 정서파동이 있을때마다 찾아 위안해주었으며 아플때면 약을 사다준다 음식을 사다준다 하며 따뜻한 사랑을 주었다. 하여 최준석학생은 실패의 아픔을 딛고 이듬해 대학입시에서 585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항천대학에 붙게 되었다. 그가 맡은 학급에 임해란이라고 부르는 학생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장애자이고 가정생활형편이 곤난하여 학업을 포기하려고 하였다. 김혜경교원은 이 사실을 알고 학교지도부에 반영하여 모든 학비를 면제시켰으며 조학금을 주어 고중3학년을 마치게 했다.

대학입시후 임해란학생은 대련에 품팔이를 떠났는데 서북방직공학원 통지서를 받고도 학교갈 엄두를 못내였다. 대학통지서만 받았으면 만족이라며 대학을 포기하겠다는 임해란 학생을 설복시켜 대학으로 보냈으며 자신의 박봉에서 1000원이나 떼내서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임해란 학생은 그의 배려와 관심으로 학업에 열중하여 매년 1등장학금을 쟁취하였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연해도시에 취직하게 되였다. 김혜경교원에게는 이러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아 일일이 말할 수가 없다.

그는 선후로 할빈시우수교원, 성우수교원 등 영예를 지냈지만 이러한 영예보다는 간혹 걸려오는 제자들의 안부전화가, 자신이 아플 때 찾아왔던 제자들의 정성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자신은 항상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 본사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한국에 로무송출을 나가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열심히 벌어 모은 돈 200만원을 투입해 연길황금대도 13층에 정연미용회소를 차린 최정연씨(36살)는 《꿈의 크기가 성공의 크기가 된다》고 말하군 한다. 가녀린 녀성의 몸으로 택시업에도 종사했고 대도시에 진출해 자신의 꿈을 펴기도 했으며 한국연수의 길에 오르기도 했던...
  • 2007-05-23
  • 청중들에게 선보인 '야래향(夜來香)'이 전파를 타고 은은하게 울려나왔다. 김미지라면 뉴욕의 조선족 동포사회에서는 널리 알려진 가수로서 지난 2002년부터 특히 동포사회가 진행하는 지역 대형 행사때마다 사회를 맡고 유창한 한국어와 중국어를 혼자 동시통역을 진행하여 동포들을 감탄시키기도 했다. 김미지가수는 료녕...
  • 2007-05-23
  • 이름:김미아          영어이름:M King 생일:3월27일        직관:길림키:164cm             체중:47kg가정성원:아빠,엄마,남동생언어:중국어,한국어,영어간력:2004년 연변...
  • 2007-05-22
  • 중국바둑계에 우뚝 솟아오르는 별 박문요 간력: 1988년 할빈에서 출생. 1999년 초단, 2006년 5단으로 승격. 2000년 전국소년선수권대회 3등, 제10회LG컵세계기왕시합4강, 2005년 전국바둑개인시합 4등, 제7회리코컵4강, 2005년 국가청년팀에 입선. (글/계옥 사진/항월, 《바둑천지》 2007년 9기에서) ◇ 의식적으로 어떤 기...
  • 2007-05-22
  • 최근 북경석예조각 석상준사장이 한중문화협회 2대북경지회장에 취임했다. 석상준지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한중문화협회는 이제 민간교류차원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할 시기"라며 "선인들의 정신을 받들어 한중간의 가교 역할에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밝혔다. 중한수교 이전인 1990년, 중국을 방문하고...
  • 2007-05-21
  • 금전세상이라 할만큼 돈이 용쓰는 오늘날 새파란 청년으로서 돈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민족음악예술을 위해 고심히 분투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상지시 란조음악제작센터 경리 리경일(29세)씨이다. 그는 소시적부터 음악에 남다른 흥취와 소질이 있었다. 5살 때 삼촌이 선물로 사다준 장난감풍금으로 노래를 띄워 좌석...
  • 2007-05-18
  •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피였던 진달래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더니 이젠 사과배꽃이 하얗게 웃어주고 있다. 꽃은 사람들의 눈을 아름답게 장식한다면 흥겨운 노래가락은 또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것이 아닐가? 연변의 진달래나 사과배꽃 못지 않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청년가수가 있다. 송경철, 금년에 37살 나는 송경철...
  • 2007-05-16
  • 심양시조선족련의회 로팔균회장의 마음다짐   60세를 종점으로 때가 되면 좋건 싫건 정년을 맞이해야 하는것은 공직사회의 불문칙이다. 평생의 정력을 몰부었던 정든 사업터를 떠나야 한다는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 더구나 사회적인정과 뭇사람들의 공경을 한 몸에 받아오던 지도적위치에서 물러나야 한다는것...
  • 2007-05-15
  • '장4B' 총설계사, 총지휘로서의 리상영, 7년 여에 10차례에 걸쳐 10종의 인공위성 16매를 전부 예정궤도에 정확히 발사, '10발 10중'의 기적을 창조하다 ▶'하량하리기금상' 수상자 "며칠전 또 한방이라,그러니까 이번이 10발10중 맞지요?" 2006년 11월 15일 북경 인민 대회당에서 거행된 '하량하리기금' 제13차 ...
  • 2007-05-15
  • 연변농업과학원 작물연구소 소장, 부연구원, 연변록색농업협회 부회장,  길림성유기농산물협회 상무리사 등 직무를 맡고있는 원동림(44살)씨는 우리 주 농업경제발전의 공신으로 손꼽힌다. 그는 선후로 12가지 국가, 성, 주의 과학연구프로젝트를 완수하여 성과상을 5개 수상, 등록품종 11개나 배육했다. 다년간 연변의...
  • 2007-05-1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