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안전다수확으로 전성에 이름을 떨치던 동녕현 삼차구조선족진 광성1촌은 끌끌한 중장년들이 국외,국내로 로무를 떠나는 바람에 원래 140세대가 모철이면 집집마다 막걸리를 하고 여름철이 되면 온 동네가 강에서 미역을 감으면서 즐겁게 보내던것이 오늘은 가는곳마다 집에 자물쇠를 채운 한적한 마을로 되였다. 남아있는 농호가 60여세대, 거리에는 늙은이들이 오갈뿐이다. 하지만 "조만간에 귀향객들이 꼭 돌아올것이다!"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말없이 밤낮없이 앞뒤로 달아다니는 한 사나이가 있다. 그가 바로 원 광성1촌의 회계 박두한씨이다.
3년전에 상급의 지시에 따라 촌을 합병하다보니 원 광성1촌에는 원래 5명의 촌간부가 줄어들어 박두한이 혼자서 온 마을의 사업을 해야했다. 때는 바로 대변혁시기에 처해 많은 농호들이 논과 집을 처리하고 외국으로 나가려 하고 또 많은 한족들이 이 기회를 타서 논과 집을 헐값으로 사려고 질기게 달라붙었다. 이대로 나가다간 몇해 안가서 온 마을이 한족동네로 변할것이 불보듯 뻔했다. "조상들의 뼈가
묻힌 이 땅을 내가 안지키고 누가 지키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박두한은 한국에 가있는 친척들이 싱거운 일에 비치지 말고 빨리 한국으로 나오라는 권고도 마다하고 결연히 "파수군"사업에 뛰여들었다. 우선 촌민대회를 열고 누구든지 살던 집을 외지인들에게 팔지 못하며 만약 집을 살 사람이 없으면 촌에서 사들인다고 선포하였다. 다음으로 2300여무의 논을 만약 촌민들이 부치기 어려울 경우 촌에서 책임지고 외지인들에게 도급주며 그 누구든지 논과 밭을 팔지 못한다고 선포하였다.
이리하여 마을을 지켜가는 제일 중요한 사업을 해제꼈다. 하지만 사회치안, 농토건설, 사회복리, 교육위생 등 많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박두한을 괴롭혔다. 작년 여름,원래 물이 모자라던 논물이 배수로를 가시지 않아 외지인들과 촌민들사이에 물싸움이 일어날 지경에 이르렀다. 박두한씨는 집집마다 참을성있게 설득하고 토지면적에 따라 배수로가시기임무를 떨구었으며 상벌제도를 엄하게 집행하였다.
마침내 촌민들은 엉망이 되였던 배수로를 가시고 풍작을 확보하게 하였다. 금년봄에는 또 촌에서 세대의 이앙기를 사들여 로력이 모자라는 문제를 해결했으며 음력설, 3.8부녀절, 로인절 등 명절이면 어김없이 돈과 선물을 사들고 동네로인들을 따뜻이 문안하였다. 박두한씨의 노력으로 광성1촌은 비록 사람이 적어져 한적해졌지만 풍요로운 땅, 깨끗한 환경, 훌륭한 사회치안과 화기로운 인정은 예전과 다름없다.
요즘 한국에서는 박두한씨에게 사업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나오라고 초청장을 보내겠다고 편지가 왔다.그러나 박두한씨는 "나는 귀향객들이 돌아온 다음에 떠날테요!"라고 자기의 타산을 밝혔다.
2006/06/12 흑룡강신문 리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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