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러시아동포 미하일 박을 만나러 파리몽마르트언덕에 위치해 있는 물랭호텔에 찾아가니 물랭지기 신근수 사장(전 서울신문기자)이 호탕하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그의 주선으로 오늘 만나게 되는 5세 러시아동포 미하일 박은 물랭호텔 갤러리에서 그림작품전시회를 하게 되어 있었다.
신근수 사장의 소개로 만난 미하일 박은 환갑에 가까운 분이었다. 보통 키에 좀 마른 편이었는데 첫눈에 과묵하고 믿음부터 같다. 그의 조상은 1860년에 러시아로 이주해 갔는데 환갑에 가까운 그도 러시아에서 벌써 5세대 째이었다.
일곱 형제 중 넷째인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의 직업은 의사이었지만 마음속에는 화가로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유시간이면 수채화와 스케치북을 들고 그림을 그리러 숲 속에 가곤 했다. 그는 아버지가 그린 그림 속에서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조국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塑?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가지게 한 것은 바로 그의 아버지의 계몽교육이었다.
그는 1970년에 타지키스탄 미술대학을 졸업하면서 그의 화가생애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뿐만 아니라 76년부터 회화와 함께 글도 쓰기 시작하였는데 지금까지 그는 단편 20편, 중편 6편, 장편 5편, 희곡 2편에 이르는 출판 경력이 있는 작가이기도하였다. 2001년에는 “발렌틴 카타예프” 러시아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러시아 문단에서도 중요한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색깔로, 글로 세상을 알아 가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5세대에 이르렀는데도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에 좀 신기한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한국어를 할 수 있었는가? 하는 기자의 물음에 미하일 박은 한국어는 어릴 때 좀 알아들었지만 본격적으로 배우기는 1990년부터이라고 했다. 불혹의 나이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가 10년 후인 2001년에 재외동포재단에서 주최한 제3차 재외동포문학상응모에 참가하여 "해바라기"라는 제목으로 된 그의 소설이 소설부문 대상을 독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미하일 박은 모스크바, 한국, 파리 등을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미술세계사 주최로 서울 세종 회관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내년에는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네스코에서 그의 그림작품이 전시된다고 한다.
요즘 러시아에서 외국인에 대한 스킨헤드족(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의 폭행에 대해 묻자 그는 얼마 전 2명의 러시아 동포도 유색인종이라는 그 리유 때문에 스킨헤드족들의 칼에 찔려 죽었다고 했다. 조선을 떠나 러시아 땅에 5세대에 걸쳐 살아온 그의 얼굴은 오늘의 러시아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의 부활에 대해 몹시 근심하는 모습이었다.
중국에 약 200만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데 그 곳으로 가보았는가 하는 물음에 그는 아직 중국에 가보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기회가 있으면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그림에 우리 중국동포들의 삶의 모습을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며 중국여행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그의 눈은 반짝 빛났다.
5월5일부터 31일까지 물랭호텔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하일 박의 그림전시회에 참가한 관람객들 중에는 파리한인, 프랑스인, 일본인, 러시아인 그리고 우리 파리중국동포 등 그 신분이 다양했다.
물랭호텔에서 나선 기자는 국제적인 문화도시인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언덕에서 만난 5세 러시아동포 미하일 박을 통해 그의 몸에서, 그의 그림에서 같은 민족의 향기를 느꼈고 같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족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음에 가슴은 뿌듯해 났다.
사진: 5세 러시아 동포 미하일 박 그리고 그의 작품 <모자>
2006/05/17 빠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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