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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호-연변인민 김봉호를 잊지 않네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5월19일 08시45분    조회:8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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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연변인민 김봉호를 잊지 않네]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의 작곡가 김봉호 귀향해 연변땅을 두루 돌아보다

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조국변강 비춰주니

장백천리 해란강반에 붉은기발 물결치네

...

연변인민 한맘으로 모주석을 노래하네

1965년에 창작되고 60, 70년대 중국대지에 울려퍼졌던 노래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延邊人民熱愛毛主席)》를 직므도 많은 사람들은 절절한 감정으로 부르고있따. 30대중반이상 사람들은 바로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와 《붉은 해 조국변강 비추네(紅太陽照邊疆)》를 듣고 부르면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중국대지에 연변을 자랑하고 해란강을 홍보했던 이 노래의 작곡가 김봉호선생, 40대이상 사람들은 결코 이 이름을 절대 잊을수 없을것이다.

일전 화룡시에서 펼쳐진 화룡시진달래문화관광축제에 참가하고저 연변에 김봉호선생을 주진달래소조 성원들과 함께 왕청 만천성 진달래기지답사에서 동행하게 되었다. 친절하고 후더운 김선생은 고향의 진달래에 심취된듯 산발을 타면서도 고향노래를 부르고 만천성 호수의 푸른빛을 헤가르면서도 고향노래를 흥얼거렸다. 고향을 떠나 30년 한시도 고향을 잊어본적 없다는 그는 그래서 해마다 고향 화룡에 다녀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고향행은 그에게 너무나 특별했다. 고향 화룡시에서 그의 노래 《붉은 해 조국변강 비추네》를 화룡시시가로 정했고 이번 진달래문화관광절축제 문예공연 첫 프로가 화룡시시가 합창이였는데 바로 그가 직접 지휘를 맡았던것이다. 1966년 그가 이 노래를 창작해서부터 꼭 40년만에 진달래가 붉게 만발한 고향산자락에서 지휘봉을 든 그는 가슴이 말할수 없는 격정으로 벅차올랐다. 하여 이번 고향행만큼 고향땅을 많이 밟아본적도 없다. 30년만에 처음 그 옛날 격정의 시절을 보냈던 숭선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올해 69세의 김봉호선생을 할아버지로 보기에는 너무나 젊고 활력이 넘친다. 1974년 당시 몸담고있던 화룡문공단을 떠나 10년간 성문화국에서 부국장으로 사업, 그해 중국인민무장경찰부대 정치부 문공단에서 사업하다가 1996년 정년퇴직하였다. 성문화국에서 사업하는 기간 그는 《아름다운 마음(美麗的心灵)》과 《금실북과 은실북(金銀梭)》을 창작, 또다시 중국대지에 그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그후 북경에서 사업하는 기간에도 그는 《쫭족집 처녀(壯家妹)》를 창작하여 히트를 쳤고 자치주창림 50돐때는 《장구야, 울려라》를 창작하여 아름다운 선율로 전 중국에 연변을 홍보하였다. 《장구야, 울려라》의 선율에 심취해 자기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김봉호선생님, 그가 자신의 노래로 하여 눈물을 흘린적은 또 한번 있었는데 당년에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가 세상에 나왓을 때 업계의 어떤 사람들은 그의 선율을 비하했었다. 하여 그는 당시 통절히 눈물을 흘렸었는데 8월 1일 건군절날 중국인민해방군이 합창으로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를 무대에 올려서야 그의 마음속 응어리도 다소 풀리였었다.

몸은 비록 퇴직했지만 지금도 꾸준히 창작에 몰입하고있는 김봉호선생은 마음에 항상 노래를 담고있기에 퇴직하나 안하나 마찬가지라고 그대신 퇴직하니까 신체단련할 여유가 있어 좋고 출근하는 안해를 위해 채소를 사고 다듬고 저녁밥을 지을수 있는 기회가 있어 좋다고 한다. 중앙민족사무위원회에서 사업하고있는 현재 부인과는 1990년에 결혼했다고 한다. 퇴직했지만 늘 음악콩클 평심이나 창작작품 평심으로 일하고있고 때론 작곡가들과 함께 창작활동고 하는 등 사회활동이 적지 않다. 슬하에 있는 3남 1년중 아들이 현재 피아니스트로 부친의 뒤를 이어 예술의 길을 걸으면서 음악창작을 하고있다.

하루도 고향을 잊은적 없다는 김봉호선생님, 연변인민도 김봉호선생님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다.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와 함께.

강정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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