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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광, 기획의 달인 예지의 ‘해결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1월25일 08시40분    조회:18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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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기획의 달인 예지의 ‘해결사’] 중국뇌고문화발전유한공사 김석광 총경리 인상기 얼마 전에 하얼빈의 한 친구가 전화로 북경의 김석광이란 분을 소개해 왔다. 간단히 들어도 보통 사람이 아니였고 남다른 지혜와 담력과 격정의 소유자란 소리에 부쩍 끌려 신정 이튿날로 김석광씨를 찾아갔다. 우리가 만난 곳은 김석광(金锡光)씨의 어느 한 모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곳, 베이징 해전(海淀)구 사계청(四季青)다리 동남쪽 운수리(云水里)의 성품가원(诚品家园)이다. 여러 채의 커피 색 아파트로 조성된 이 아파트 단지는 작년에 북경 부동산 10개 명품의 하나로 이름을 떨친 건축군(群)이다. 성심으로 내부 장식을 다 하여 분양한 집인데 총 건축면적이 15만 평방미터, 작년 5월에 분양을 시작해 1평방미터당 평균 1.2만 위안의 높은 가격으로 년말 전에 완전 매진되였다. 장식뿐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거주문화를 도입하여 구내환경을 각종 특이한 디자인과 예술적 조각물로 조성하였고 구내의 각종 봉사시설들을 문화적으로 구전하게 갖추었다. 바로 이 아파트 단지가 김석광씨와 그의 형제들의 념원과 지혜와 피땀의 결정체다. 이 아파트 단지의 건설 측인 베이징 세박위업부동산개발유한공사 (北京世博伟业房地产开发有限公司)의 동사장 김석순은 바로 김석광씨의 녀동생이고 김석광씨는 또한 이 회사와 남동생 감석명씨가 꾸리는 북경정락문문화발전유한공사(北京静乐门文化发展有限公司)의 총 고문이다. 이 건축 군과 지금 계획하고 있는 다른 몇 곳의 건축사상은 바로 출중한 기획가인 김석광씨의 두뇌의 소산이다. 김석광 총경리는 성품가원의 대문앞에서 기자를 맞아주었다. 첫눈에 가장 인상적인것이 그의 미소였다. 후에 그의 자료를 보며 그 소탈하고 진지하며 신심에 넘치는 미소야 말로 그의 락천적인 인간정신을 잘 보여주는 주요한 특징이고 그가 소요의 상대자를 흡인하는 신비의 <무기>임을 알수 있었다. 너부죽한 얼굴, 입 주위와 양 볼에 억세게 솟고 있는 짙은 수염과 거기에 걸맞는 넙적하게 다문 입, 중등 키에 어깨가 쩍 벌어진 다부진 체격의 이 중년 사나이와의 이야기는 성품가원의 문화봉사시설의 하나인 찻집에서 진행되였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생략할 줄 알았다. 너른 호주벌판에서 큰 캥거루가 껑충껑충 뛰어가듯 자신의 경력과 자신이 거둔 성과들을 뚝뚝 찍고 나서 그는 나를 데리고 구내를 한 바퀴 돌았다. 옥외 시설과 환경조각물의 문화적 기능을 이야기해주고는 구내의 각종 봉사시설과 공원같은 분위기, 예술박물관을 련상시키는 각종 예술 조각품들을 소개해주었다. 부모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집으로 못 들어가는 유치원 애들의 무료 대기실, 구내 식솔들의 학습과 연구에 도움을 주고자 마련한 무료 도서관 (100여명 중국 명인들이 기증하고 추천한 도서 수 만권이 장서되여있다.)이 이 아파트 단지의 문화적 기능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거의 중국어로 하며 간혹 우리 말을 섞는 그는 우리말도 훌륭히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흑룡강성 수하시 조선족중학교 고중을 졸업하여 우리 말을 배울만큼 배웠지만 그후 근 40년간 한족들과의 생활에 습관되여 한어가 쉽게 나온다는것이다. 그는 이어 기자를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그의 사무실(북경 뇌고 문하산업연구센터) 또한 특출한 문화적 공간이였다. 명인들의 그림과 글, 장서들, 여러 가지 화초와 예술품들이 품위있는 특이한 문화적 공간을 조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깊이 음미할 새도 없이 그는 이 초면의 손님을 자신의 저택으로 이끌었다. 단번에 초면자 마음의 비장을 빼버리는 이런 방식은 그의 인간관계구축의 세련되고 정예한 지혜와 방법인것 같았다. 그의 저택도 문화로 충만된 예술의 전당이였다. 수백가지의 예술품들이 특이한 사고에 따라 조직 진렬되었는데 그 미묘함은 일반 사람들의 저택에서는 결코 보기 힘든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작품이 아니고 그의 부인 김희선씨(호북성 심천 사무소 주임, 부청급 간부)의 작품이라고 했다. 청년시절 입대하여 예술병사로 있은 그들 부부의 예술에 대한 추구는 분명 남다른것이였다. 김석광주임은 기자가 그들의 가족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니 즉시 그렇게 자리를 마련하였고 이어는 기자더러 자기 식구들과 시진을 찍으라며 자기가 직접 셔터를 눌러주었다. 기자생활 수십 년에 벼라 별 사람들을 다 취재하였지만 이처럼 초면에 친구 대접을 하는 사람은 정녕 첨이었다. 한 시간여의 시간에 그는 이것 저것을 보여주기만 하였지 자신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 하지 않았다. 너무도 간단한 몇 개의 토막뿐이었다. 그에게 다른 일이 있어 갈라져야 할 때 그는 자기의 저서와 자신을 소개한 일부 책자와 잡지들을 주며 이런 것들을 보면 알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분명 기자에게 초면의 인상만을 주고자 한 것이었다. 그가 준 책자들은 나를 완전히 매료했다. 그것들은 내가 받은 첫 인상과 완전히 결부되였다. 그는 나의 마음에 기이한 인재, 담대한 인간, 큰 일만 하는 사람, 예지의 ‘해결사’, 덕과 인을 결부한 사람, 전국 최고의 드라마 제작자, 예술과 문화와 경제 거의 모든 령역을 하나로 통합할 줄 아는 기획의 달인, 출중한 사회활동가로 부각되였다. 조선족가운데는 둘도 없는 사람이고 한족가운데도 그와 견줄만한 특이한 인제는 거의 없을것 같다. 기이한 인재 김광석씨의 그 매혹적인 미소를 넘어서서 그가 지난 20여 년간 하여온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엄청 초월하는 그런 일들을 돌아볼때 가장 뇌리를 세게 때리는것이 ‘너무 기이한 인재’라는 감탄이다. 김석광의 기이함은 기이한 발상, 기이한 방법과 그런것들의 기이한 결과이다. 1986년 무한 TV가 드라마 <특수한 싸움터>를 찍을 때였다. 춘절이 다가오는 때 한가지 어려움으로 드라마를 계속찍을수 없게 되였다. 그때 이 드라마의 연출의 청구로 무한 TV의 호대초(胡大楚) 부국장이 직접 나서 김석광에게 “상승장군께서 도와주시오, 이 드라마를 성공시킬 사람은 당신밖에 없습니다.”하고 구원을 청하였다. 다른 사람이 하던걸 중도에 맡아 하는 건 어디에서나 다 금물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것을 따지지 않고 즉시 취임하였다. 하루 밤낮의 조사를 거쳐 문제를 파악한 그는 기구가 흐트러지고 효률이 낮으며 장부가 똑똑하지 못한 모든 문제들의 뿌리가 관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우선 지도체계를 개선하고 관리제도를 일신하였으며 모든 일에 자신이 앞장섰다. 산속에서 찍으므로 일기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한번은 TV의 일기예보는 ‘맑음, 때때로 구름’이었는데 공군 기상대의 예보는 비가 있다는것이였다. 하여 현지의 경험있는 로인을 불러 자문해보니 큰비가 올것이라고 했다. 그는 즉시 결단을 내리고 전체 대오를 무한시로 철거했다. 그들이 철거하자 큰비가 내렸는데 며칠 계속되였다. 그 일로 하여 사람들은 그를 두고 신령같이 령통하다고 하였다. 물론 그들이 찍는 드라마도 그전에 비해 수배 지어는 수십 배의 속도로 진척되여 춘절전에 제작을 마무리 하였다. 사람들은 김석광이 아니면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1988년 무한 TV와 철도부가 합동으로 <공정사들>이란 드라마를 찍었다. 그 시사회를 호화로운 외국 객선에서 거행하였는데 드라마를 방영하니 뜻밖에 흑백영상이였다. 모두를 어안이 벙벙해 졌다. 이럴 수가? 원인은 비디오 기계의 방식이 틀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얼떨해 있을 때 유독 김석광이 벼락 같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무작정 부근의 아파트 단지로 달려간 그는 사람들에게 누구네 집에 좋은 비디오기계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이 알려주는 대로 류씨를 찾아간 그는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들여댔다. “쇼류, 왜 아직도 안 갔어요? 다른 사람들 다 배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리둥절 영문을 모르는 류씨에게 그는 또 “어제 저녁 상해 TV사람들이 알리지 않았어요? 오늘 호화 객선에서 열리는 뉴스 공개회의에 당신의 비디오를 빌려 쓴다고 말이예요. 일단은 비디오 기계를 가지고 얼른 갑시다.” 류씨는 얼떨한 대로 기계를 가지고 따라갔다. 그리하여 그 시사회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였다. 김씨는 그 긴박한 시각에 단 15분이라 시간으로 그 문제를 풀어버렸다. 시사회가 끝나 축하연이 있을때 김석광씨는 연석의 자기 이름은 빼버리고 비디오 기계주인 류씨를 앉혔다. 자리가 없는 그는 끝날때까지 술잔을 들고 이 상 저 상 돌며 권주를 하였다. 그는 이렇게 순식간에 방법을 생각해내고 결단성 있게 실행하는 사람이다. 이점이 그의 기이함의 하나이다. 그의 기이함은 여러 면으로 보여지는데 그가 설득이 안 갈 정도로 너무 많은 친구들을 갖고 있는 점도 그 하나이다. 그의 저서 <라오진의 격정세계(老金的激情世界)>, <라오진의 생활경전(老金的生活经典)>을 보면 그는 조선족이 아니라 한족도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로 많은 고급 간부들, 많은 지명인사, 저명한 예술인들과 교제하고 있다. 당시의 호금도 부주석, 주용기 총리로부터 전국인대 상위회 부주임 정협주석,부 주석들, 수십 명의 부장 부 부장들, 해방군 상장,중장,소장들, 여러 성의 당위 서기와 성장들...각 전문기구들의 수뇌들, 각 류형의 고급전문가들과 전국 명인들…대수 어림잡아도 수백 명에 달하는 고관 명인들과 교제하였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김대협객’, ‘상승장군’, ‘해결사’, ‘기획의 달인’ ‘기인’으로 불렸다. 중국의 유명한 문화기획인 주해(朱海)씨는 “만약 인류에 인생올림픽이 있다면 중국은 다른 사람을 보낼것 없이 김을 보내면 된다. 김은 나가면 남자 종목가운데서 가장 무게 있는 그 항목의 종합 금메달을 따올것이다”라고 하였고 사천대학의 서건신(徐新建) 교수는 지어 “김석광이 200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그 사람이 바로 류비나 조조가 되였을것이다.”고 말하였다. 저명한 작자 여추우는 “기이한것은 김석광씨가 저명한 전문가도 아니고 중요한 관원도 아니며 억만 장자도 아닌데 일단 김에 관한 말이 나오기만 하면 그 많은 사람들이 대뜸 얼굴들이 환해져서 얼마나 칭찬을 하는지 모른다”고 하였다. 참 기이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다시 보면 아무런 기이함도 없다. 한것은 바로 그 많은, 보통사람의 상상과 능력을 초월하는 일들을 하여 그들로부터 신임을 받았기 때문인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돌아보면 그는 바로 이렇게 많은 위인 거인들과 교분을 가졌기에 더 큰 파워와 능력을 갖게 된것이다. 큰 일과 ‘간 큰’ 인간 김석광 씨는 ‘간’이 크기로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때문인지 그는 엄청난 큰 일들을 많이 하였다. 그의 친구들은 다 그가 ‘큰 소리 대장군’이라고 한다. 그러나 횐소리를 치는 사람과는 달리 그는 자기가 던진 큰 소리를 꼭 실천하고야 만다. 그가 ‘연출’하고 해남도의 한 인민대표 실업가가 출자하여 만든 <항공모함>이 바로 그것이다. 1995년 공안부<만가등화 평안그믐> 춘절야회를 이전과 달리 대형으로 특색있게 해야 한다는 공안부의 지시가 김석광씨가 창설한 공안부금순(金盾)영화텔레비전센터에 떨어졌다. 남은 시간도 길지 않고 돈도 없는데 어떻게 대형으로 하며 특색있게 하는가? 공안부 선전국이 주최하는 긴급대책회의가 열렸다. 공안부 상관 지도자와 중앙 텔레비전의 중요 인물들도 참석하였다. 여러 가지 제안이 나왔지만 이런 저런 리유로 부정되었다. <에펠 철탑>방안이 접수되여갈때 이 프로젝트 시동자금으로 20만원을 조달하는것이 문제로 되였다. 공안부 선전국의 엄부국장이 “석광씨는 왜 벙어리가 됐는가”고 물었다. 김석광씨는 “200만도 모자라겠는데 20만이 무슨 말입니까? 500만 위안이 없으면 그건 다 백일몽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사실 그렇다며 쓴 입맛만 다셨다. 어디 가서 500만 원을 마련한단 말인가?모두가 한숨만 쉬고 있는데 김석광씨가 신심 있게 입을 열었다. “그 돈을 낼만한 사람은 해구(海口)에 있습니다. ”. 결국 그는 자금조달의 엄청난 과업을 스스로 떠 맡은것이다. 그는 자기의 지기인 해구의 정회장을 찾아갔다. 그의 정확한 분석과 격정에 넘치는 “전무 고인 후무 래인(前无古人后无来人)”의 설교에 정회장은 내가 한다고 가슴을 치며 나섰다. 그런데 조건이 반드시 이 해남도에서 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래야 해남도 인민대표인 자신이 고향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수 있게 된다는것이다. 그러니 다른 문제가 나섰다. 어디에 어떻게 무대를 차리느냐 하는것이었다. 여러 가지 고안이 나왔으나 결국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바다 우에 <항공모함>을 하나 만들고 그 위에서 춘절야회를 한다는 방안으로 고착되였다. 하여 사람들이 혀를 차게 하는 <항공모함>제조가 시작되였다. 처음의 콩크리트로 만들자던 방안이 시간적 관계로 실현될수 없다고 부정되자 나무로 만드는 방안이 채택되였다. 누구도 상상도 못하였던 방식이다. 로 목수 출신의 정회장이 직접 나서 설계와 진두지휘를 하였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 동원되였다. 비용이 예상을 엄청 초월하여 들어갔다. 최후 시각 1700만원의 투자가 들어간 길이 156미터, 너비 42미터의 <항공모함>이 춘절전야에 <진수>되였다. 그 <항공모함>을 보며 사람들은 모두 턱을 떨어뜨렸다. 위성 사진으로 그 거물을 본 미국 국방부가 진짜 항공모함인줄 알고 바짝 신경을 살렸었다는 후문도 있다. 물론 야회는 력사에 없었던 규모와 독특한 방식으로 성공리에 진행되었다. 김석광 씨에게는 또 <진대담(金大胆)-간 큰사람>이란 새 이름이 붙게 되였다. 과인의 지혜와 담력과 격정 김석광 총경리가 담력 크게 해낸 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의 그런 큰 일들을 두고 기자가 생각하게 된것은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토록 <간 크게> 만들어 주었냐는것이다. 그 해답은 그 자신이 주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신의 간을 부풀려 준것은 자신의 지혜이고 자신에게 그런 지혜를 가져다 준것은 항상 가슴에 넘치는 격정이라고 했다. 가슴에 격정이 없는 사람은 리해할수 없는 말이다. 인간의 격정이란것은 어떤 일을 하므로해서 가져오는 성과를 미리 상상하여 가지게 되는 만족감 혹은 자극감이 창조해 주는 감정적 힘일것이다. 거긴엔 또 그렇게 내다 볼수 있는 초 범인적 식견과 어떤 일이든 해낼수 있는 출중한 지혜가 안받침 되는것이다. 그것이 없는 사람에겐 격정이 솟을 수 없는 것이다. 백화(白桦). 여추우(余秋雨) 등 많은 명인들이 김석광 총경리를 쓰며 하나같이 언급한 점이 바로 그의 격정이다. 그들은 다 어려움에 봉착했을때 <해결사> 김석광을 생각하고 그에게 구원을 청하며 그가 나서면 그의 지혜에 따라, 그의 격정에 감염되여 그와 함께 그 하나하나의 상상하기도 힘든 엄청난 일들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군대의 예술병사로부터 TV방송국의 제작인으로, 민간인으로서 공안부 진둔영화텔레비전문화센터 설립을 제안하고 설립하여 <서부 경찰>등 많은 우수작들을 기획하여 만들어내고 드라마의 최고상인 <비천상(飞天奖)>을 3차나 획득한 일, 전국 10대 제작인의 하나로 선정된 일, 국제 전문기구와 제휴하여 CDI <중국뇌고(中国脑库)〉를 설립한 일 그 모든 것들은 바로 김석광씨의 그런 담력, 그런 지혜, 그런 격정의 소산인것이다. 최 심층의 원동력 여기서 한마디 김총경리의 말을 인용한다면 그 모든것보다 더 심층의 원동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부모님이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일을 하고 덕을 쌓아라”고 하신 말씀이라는것이다. 그는 여러 곳에서 부모님들의 이 가르침을 이야기 하였고 또 그것을 실천하였다. 드라마 <서부경찰>을 찍으며 나라와 국민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수많은 경찰들에 감동되고 그들 유가족들의 어려운 처지에 무한한 동정심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 그는 자기 동생들과 함께 제일 먼저 거액의 돈을 내고 사회에 호소하고 상급에 보고하여 중국의 최초의 공안전사들을 위한 중국형사경찰위사기금회(中国刑警卫士基金会)를 발기 창설하였다. 그것을 두고 당시의 공안부장은 김석광 씨의 공로라고 높이 치하했다. 아래에 이 시각 명료하게 나타나는 김석광씨의 약력을 옮겨다 적어본다. 김석광(金锡光), 남자. 조선족. 1948년 8월 5일 길림성 도문시서 출생. 흑룡강 수하시 조선족 고중을 졸업하고 대경유전과 호북 강한유전서 로동자로 있다가 군에 입대, 무한군구 문공단을 거쳐 무한 텔레비전 방송의 제작인, 심수 텔레비전 방송국 제작인을 두루 거쳐 중국 국제문화예술센터를 거쳐 공안부 영화텔레비전센터와 CDI중국뇌고를 창설하였다. 그의 현시 주요한 직무와 사회직무는: 북경뇌고 문화산업연구센터 주임, 아시아 교육포럼 중국도시화발전 고층훈련연구계획비서처 총감, CDI도시경영연구센터 연구원, 중국관광설계원 부원장, 동방전수학원 명예원장, 중화민족단결진보협회 상무리사. 중국 지역개발촉진회 리사. 유럽아프리카동창기금회 리사, 중국인민해방군예술학원 텔레비전예술센터 특약 제작인, 공안국영화텔레비전문화센터 창립자, 국무원 종합개발연구원 부주임 등이다. 흑룡강 수화의 벌판에서 걸어 나온 하나의 조선족 청년이 수많은 출중한 한족들을 초월하여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그렇게 많은 영예를 획득하고 그토록 명성을 떨쳐 수많은 한족들이 혀를 내두르게 하였다는 것은 정녕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귀중한 것은 그가 중국의 대지에서 우리 조선족의 위상을 그렇게 높여주고 우리에게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실어주었다는 점이다. 그와 그의 형제자매와 가족들의 주의력은 바야흐로 민족발전을 위한 데로도 돌려지고 있다. 그들이 2008 올림픽을 계기로 기획하는 중화민족문화전시 대형종합예술장소는 3만 평방미터의 면적, 5억 원 투자의 프로젝트로서 거기엔 56개 민족의 문화예술의 현대적인 표현장인 ‘통일광장’이 있고 우리민족의 문화예술의 전당으로 될 <아리랑 극장>이 들어서게 된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5월 관련전문가들의 론을 거친 련속 드라마 <아리랑>이 창작에 들어가게 된다. 지난 1월 15일, 북경조선족 춘절맞이 련환모임에서 주요 찬조기업 베이징세박위업 부동산개발유한공사와 북경정려문화발전유한공사의 대표인 김석광주임의 부인 김희선 녀사는 래년의 춘절연환모임을 이 그룹이 단독으로 전액 후원하여 진행할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우리는 이 <김석광 그룹(기자가 이 글에서만 쓰는 이름)>의 이 선언을 기억하고 그들의 실천을 지켜볼 권리가 있고 그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지켜보고 참여하는 가운데서 김석광씨와 그의 <그룹>의 사람들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북경 리장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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