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현구,젊음, 창업의 최대 자본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1월19일 13시05분    조회:1055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원제: 젊음, 창업의 최대 자본] 장춘 용수산숯불구이점 김현구사장을 찾아 2000년 6월에 개업한 용수산숯불구이점은 한국 류학생들의 입소문으로 한국 손님들뿐 아니라 현재 중국 손님들도 즐겨찾는 장춘에서는 유명한 음식점이다. 이 숯불구이점은 김현구사장이 젊은 열정이라는 자본만 가지고 일쿼세운것이다. 창업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진 밑천이라곤 《젊음》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근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이 열정과 성실함으로 이어져 새로운 아름다운 삶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첫 진출, 단맛과 쓴맛 중국 장춘을 창업지점으로 선택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그는 《한국회사에 있을 때 사업의 수요로 중국으로 자주 출장다니게 되였다. 그때의 그 경험이 줄곧 잊혀지지 않았으며 중국에 대해 무한한 동경심이 생기게 되였다.》라고 말해주었다. 중국 장춘에서 그가 한 첫 사업이 바로 한국화장품 판매, 한국에서 직접 들여오고 직접 팔고 장사는 아주 순조로왔다. 이런 기세에 그는 단번에 장춘의 가장 번화한 위치에 3개의 분점을 련이어 설립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실수였다. 그 당시 그는 작은 리윤과 맞물리지 않는 투자를 하였다. 한국에로의 잦은 출장, 단번에 3개의 분점까지 벌여놓다보니 리윤보다 투자가 더 많게 되였던것이다. 그번 일을 회상하면서 그는 《경영함에 있어서 제품, 써비스 등에 대한 요구가 높아야 할뿐 아니라 규모있고 조직있게 경영해나가야 한다.》는 경窩?nbsp;얻게 되였다고 말하였다. 20만원이 100만원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모든것이 다시 0으로 돌아간 그였지만 결코 비관해하지 않았으며 젊었으니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무엇을 할가 고민에 쌓여있던 그는 형이 꾸리는 숯불구이점을 생각하게 되였다. 당시 장춘에서의 비싼 한국음식값과는 반대로 싸면서도 한국맛 그대로의 숯불구이점을 장춘에 세운다면 손님이 많을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2000년 형한테서 숯불구이에 관한 기술을 배운후 꾸어온 3000만원(한국돈)으로 장춘 륭례로에 불고기점을 개업하였다. 개업한지 얼마 안되여서 한국 류학생, 한국손님들이 북적이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입소문으로 중국손님들도 찾아오게 되였다. 개업한후 김현구사장은 새벽까지 일하면서도 시종 힘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처음부터 부자인것도 아니고 엄청 총명한것도 아니다. 가진것이란 젊음밖에 없었다. 젊었다는것이 얼마나 큰 자본인가. 젊다는것만으로도 무엇이든지 해볼수 있으니.》 하면서 《누구든지 젊은 열정으로 긍정적, 성실하게 일을 해나가기만 한다면 꼭 성공할것이다.》라고 보충하였다. 음식점경영에서의 비법에 대해 그는 《재료에 정직해야 한다는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 숯불구이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나는 줄곧 모든 음식재료를 한국에서 직접 들여왔다. 이밖에 점점 까다로와지는 사람들의 입맛을 잡기 위해서는 부단히 새로운 메뉴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이어 장춘에 와서 창업하고저 하는 한국사람들을 대상해 그는 현지에서 철저한 조사를 한후 사업을 벌이는것이 좋다고 하면서 식당위치선정과 고정비용(월세, 세금, 인건비 등등)을 잘 고려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장춘은 한국과 달리 6개월이나 1년치 선불금을 내고 영업하는 방식이라서 한국처럼 전세 개념이나 보증금 개념이 없다. 얼핏 보기에는 처음에 드는 비용만 고려하고 6개월이나 1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선불의 월세를 생각하지 않는데 이후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 * * 현재 장춘에서의 한국음식점중 유일하게 홈페지를 갖고있는 용수산숯불구이점은 작년에 계림로에 분점을 세웠을뿐 아니라 현재 더 큰 새로운 분점을 세울 계획이라며 김현구사장은 지금도 부지런히 뛰고있다 기자: [최화 견습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孫文 만난 뒤 중국공산당 입당 사해에 도착한 그는 프랑스조계지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당시 임시정부는 재정형편이 취약해 그의 생계를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주로 취직하던 전차회사의 차장노릇을 하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때 그는 어릴 때 잠시 접어두었...
  • 2005-11-04
  • [원제:동포 1.5세 여성 미 해군 부대장 `우뚝'''' ] 미군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인사지원부대(PSA)장이 동포 1.5세 이연미(40. 미국명 앤리 쿠베라) 중령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30일 미주중앙일보에 따르면 5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한 이 중령은 뉴저 지에서 중.고교를 마친 뒤 버지니아대 국제관계학을...
  • 2005-11-04
  • 조국독립을 위해 고향을 떠나다 1898년 중국용정에서 태어난 한낙언은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그림에 재간이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유민이 되어 조국을 떠난 가난한 조선인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체계적인 그림공부를 할 기회를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이었을 것이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에 부친이 병으로 돌아가...
  • 2005-11-03
  • 본사소식(윤선일)" 최근 단동출입경 검험검역국에서 료해한데 따르면 10월에 들어서면서 단동랑두항구로 무연탄을 싣고 입항하는 조선 화물선이 부쩍 늘고 있다. 해당인사의 소개에 의하면 10월부터 겨울 난방기에 들어서고 국내 화력발전소에서 대량의 석탄을 수요로 하며 질 좋은 조선의 무연탄이 중국에서 각광을 받으면...
  • 2005-11-02
  • 흑룡강동원상업무역유한회사 —망규동원화원주점 개업 선언 본사소식( 기자 최계철) 조선족청년기업가 박광종(39세)이 이끄는 흑룡강동원(同源)상업무역유한회사는 상업,무역, 부동산업을 병진시켜 창업 12년만에 총자산 1억 2000만원에 7개 자회사를 둔 그룹으로 급부상했다. 이 회사 산하 흑룡강 망규화원주점이 10월...
  • 2005-11-02
  • 1947년 비행기 추락사고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7년 7월 30일, 실크로드에 세워진 도시 우루무치를 떠나 란저우로 향하던 국민당소속 257호 비행기가 자위관상공에서 악천후를 만나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광활한 중국대륙의 오지에서 일어난 추락 사고는 자칫 긴박한 내전 상황 속에서 중국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영...
  • 2005-11-02
  • 클린턴과 골프 친 뒤 성금 50만불 쾌척 '1,000만달러의 소녀' 미셸 위(위성미)가 지난 31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서던하일랜즈골프클럽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가졌다. 미셸 위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 날 골프 만남은 프로 전향 때 발표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 돕기 성금 5...
  • 2005-11-02
  •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굼꾸다 총이 아닌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보자고 했다는 한낙연. 최용수교수도 한낙연이 중국에 알려진 것에 비해 정작 조국인 한국에서는 그를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하긴 그런 인물이 어디 한둘이랴. 널리 알려진 스타에만 초점을 맞추는 세상 탓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도...
  • 2005-11-01
  • [원제:홍광정신 실천으로 조선족 명예 찾겠다 ]  “한국정부에 리홍광장군의 명예회복을 수차례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반응이 없다.”  지린성 반석시 홍광중 교장을 역임한 이주산(李柱山·72)선생은 오랫동안 항일운동가 리홍광장군을 연구해온 인물. 아마도 중국 동북지방에서 그 만큼 리홍광장군에 대해 잘 알...
  • 2005-10-3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