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최윤복, 동심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2월14일 08시36분    조회:1050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원제: 동심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

일찍 중국선진생산자의 일원으로 중국군영회(群英會)에 참가하고 소수민족대표로 주은래 등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던 최윤복로인(76세)은 근 반세기가 지난 오늘이지만 그때의 그 영광이 새삼스럽기만 하단다.

최윤복은 1948년에 화룡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의 어린 나이에 화룡현 신동소학교 교원으로 배치받았다. 당시 통일교재가 없어 방학때가 되면 전 현의 같은 학년급교원들이 모여 신문, 잡지를 참고하면서 자체로 교재를 편찬해야 했으며 교수연구와 시범교수를 통해 문제점을 찾고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했다. 최윤복은 아이들의 심리특점을 파고들고 형상적으로 교수를 조직하였기에 남들의 칭찬을 독차지했다. 《한뼘 한치의 땅이라도 묵이지 말자》는 과문이 있었다. 이 과문을 형상적으로 교수하기 위해 그녀는 학생들을 데리고 버리는 땅을 찾아 수수를 심었는데 비료를 듬뿍 주고 알뜰히 가꾼데서 수수가 키넘게 자라 많은 비자루를 매게 되였다. 실제 체험으로 된 교수라 더없이 생동했다.

그의 반에는 극빈가정이 아이, 공부하기 위해 홀로 화룡에 온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남의 물건을 잘훔치는 문제아이도 있었다. 그는 이런 아이들에게 가정의 따뜻함을 주고 바른길로 이끌어주기 위해 그들을 맡아키우기로 했다.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세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와 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했다. 두 할머니까지 일곱식구가 사는 그녀 가정은 가뜩이나 집안살림이 어려워 콩죽으로 끼니를 에우는 때가 많은데 단번에 세식구가 늘어 더욱 힘들것이 불보듯했다. 어머니는 열사발의 콩죽을 뜨기도 힘들다며 그녀 보고 푸념도 적잖게 했었다. 이들은 이후 사회의 우수한 인재로 성자, 그중의 한명은 중국로력모범으로 당선되기까지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정생활이 어려운 학생들한테 학용품을 사주기도 하고 휴식일이면 10여리 길을 걸어 학생들집을 찾아 과외보도를 해주었고 방학때면 10여명 학생을 집에 데려다 과외보도를 해주군 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그녀는 1953년 성우수교원으로 평의되였다.

1956년은 그녀의 생애에서의 영원히 잊을수 없는 한해이다. 이해 그녀는 전국선진생산자의 일원으로 북경에서 있을 군영회에 참가하게 되였다. 군형회에는 교육을 비롯한 공업, 농업, 문화, 체육, 위생 등 전국 각 분야의 선진사업일군 5000명이 참가했다. 4월 30일, 소수민족대표단 주석단의 일원으로 만찬회에 초대되여 주은래 등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다. 주은래총리는 만찬회에서 《전국적으로 보통 60%의 취학률을 보이고있고 일부 지역의 취학률은 20%도 채되지 않지만 조선족은 85%의 높은 취학률을 보유한 우수한 민족이다. 모두가 조선족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잔을 잡고 그녀 앞으로 다가와서 《더욱 많은 소수민족 인재를 양성하기 바란다》며 그녀를 격려해주었다. 그녀는 너무나 격동되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1986년, 연길시중앙소학교에서 정년퇴직한 최윤복로인은 퇴직후 관절염 등 여러가지 고질병으로 바깥출입도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녀는 다년간의 고질병으로 심신이 몹시 지친듯한 모습이였지만 동심이 살던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며 주은래총리를 뵙던 감격적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해난다고 했다.

김명성기자 jmx@ybrb.cn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