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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화가
어느 날 그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 리옹의 주택가에서 인상적인 집을 찾아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완성될 즈음 주변을 산책하던 한 프랑스인이 걸음을 멈추고 그의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동양인을 별로 볼 수 없는 리옹에서 그것도 날랜 솜씨로 그림을 그리는 동양인이 꽤나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그림을 그리느라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그에게 노부부가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건넸다. 아직 불어가 서툰 한낙연은 처음엔 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동문서답이 오간 다음에야 한낙연은 노부부가 바로 자신이 그리고 있는 집의 주인이란 사실을 알았다.
“왜, 무슨 이유로 내 집을 그리죠?”
“집이 하도 아름다워 저도 모르게 그렸을 뿐입니다. 저는 이곳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는 중국인 화가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림을 그릴 때도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그게 아니고, 그림을 잘 모르는 제 눈에도 우리 집을 꽤 인상적으로 그려서 눈여겨봤습니다. 방해가 됐다면 사과드릴 게요.”
예상치 못한 한낙연의 당돌한 대답에 말문이 막힌 남편을 아내가 거들었다.
“방해가 된 건 아닙니다. 다음부터는 허락을 받고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한낙연이 재치 있게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왕 그리는 것이니 우리 집을 예쁘게 그려주세요. 그럼….”
인사를 끝내고 돌아가던 노부부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다가왔다.
“그림이 거의 다 그려진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할 생각이죠?”
“그건 아직….”
할머니의 질문에 이번엔 한낙연의 말문이 막혔다.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어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다. 다만 화가로서 인상적인 풍광이 있기에 그렸을 따름이었다. 그 뒤처리까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그림을 우리한테 팔 생각이 없소? 우리 집이 담긴 그림이라 우리에겐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기념이 될 텐데….”
“그렇다고 너무 비싸게 부르지는 마시오. 보기와는 달리 우리도 빈털터리라오.” 남편이 아내의 말에 지원사격을 했다.
생각지 않게 그림은 노부부에게 팔렸다. 노부부에게는 푼돈에 불과했지만 그야말로 빈털터리인 한낙연으로서는 며칠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돈을 받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간 그는 우선 주린 배부터 채웠다. 사실 주머니에 돈이 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아침부터 쫄쫄 굶은 참이었다.
다음날부터 한낙연은 일자리를 찾는 대신 그 주택가 거리로 출근하다시피했다. 이후 그 동네는 한동안 그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만들어주는 화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화풍과 다른 그의 그림은 그 동네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모양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그는 생계의 위협에서 벗어나 마음껏 그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를 채우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온 것은 아니었다. 빨리 학교에 입학해 그림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에 등록할 돈이 필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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