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실크로드에묻힌 조선족화가 한낙연7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1월21일 08시55분    조회:1167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첫 전시회 한편 상하이 기독교청년회에서 써준 소개장을 들고 선양의 봉천기독교청년회를 찾아간 한낙연은 그곳에서 진보적인 청년들의 의식을 깨우는 조직사업에 열중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는다. 덕분에 ‘상하이미술전문학교 졸업생 한낙연의 유화전시회’라는 이름으로 생애 첫 개인전을 봉천기독교회관에서 개최한다. 이미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조선인 사회에 소개된 그의 이력 때문에 첫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전시회를 통해 그의 이름이 만주 전역에 알려지자 그에게 그림을 배우겠다는 학생이 많이 찾아왔다. 자신 또한 상하이에 가서야 제대로 된 그림을 배울 수 있었던 한낙연은 그림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는 그 많은 학생을 다 가르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그는 친하게 지내던 상하이미술전문학교의 동창생 몇몇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동참해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얼마 후 루사오페이(魯少非), 루이(陸儀) 등 반가운 얼굴 몇몇이 선양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낙연은 그들과 함께 선양의 소남관 풍우대 근처에서 미술학교를 열고 자신이 직접 교장을 맡아 학교를 이끌어갔다. 하지만 이름만 허울 좋은 교장일 뿐 월급은커녕 오히려 모자라는 학교 운영비를 해결하기 위해 번번이 자신의 그림을 판 돈까지 보태야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선양 제1사범학교의 미술교원을 겸직하면서 힘들게 미술학교를 운영했다. 하지만 그는 바쁜 와중에도 자신이 왜 선양으로 왔는지에 대한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메이퍼광(梅佛光) 등 진보적인 중국 청년 지식인들과 힘을 모아 쑨원의 삼민주의를 따르는 ‘계몽학사’를 설립한다. ‘계몽학사’의 주요 구성원은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계몽순간’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는데 한낙연은 잡지 편집을 맡으면서 청년학생단체들과 연대를 도모한다. 다시 상하이로 그런 가운데 만주에서도 혁명의 기운이 서서히 무르익고 있었다. 1925년에 발생한 5·30운동의 영향을 받아 선양에서도 6월10일 학생 시위가 벌어진다. 물론 그 배경에는 한낙연을 비롯한 진보적 지식인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그해 겨울이 끝나기 전 선양에도 중국 공산당 지부가 결성된다. 탁월한 활동을 보인 그를 눈여겨본 상부에서는 한낙연에게 1925년 7월 하얼빈(哈爾濱)으로 자리를 옮길 것을 지시한다.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10월혁명 이후 국경을 넘어 탈출해온 백계 러시아인이 북적여 ‘중국 속의 러시아’로 불릴 정도였다. 그래서 그 어느 곳보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10월혁명을 왜곡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전파하는 일이 시급했다. 한낙연은 그곳에 설립된 보육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조상지(趙尙志) 등과 독서회와 야학을 꾸리며 조직사업을 병행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당시 중국공산당 동북지구당의 중심지라 할 하얼빈에서는 공산당 계열에서 선전사업의 일환으로 ‘하얼빈일보’를 발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얼빈일보’의 기사와 논조에 불만을 가졌던 군벌은 끝내 이 신문을 폐간시키고 조직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위험을 직감한 상부에서는 군벌의 주시를 한몸에 받고 있던 한낙연으로 하여금 신분이 드러나기 전에 하얼빈 인근 치치하얼(齊齊哈爾)로 급히 옮기게 했다. 군벌의 체포를 피해 가까스로 치치하얼로 피신한 그는 그곳에서 용강시립공원 도시건설사업의 책임자로 일했다. 지금까지도 치치하얼의 용강시립공원엔 한낙연이 이때 설계한 팔각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한편 치치하얼에 있는 동안 한낙연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힘을 보태 또 다른 사업을 벌인다. 그리 오래가진 않았지만 ‘낙천사진관’이란 이름의 사진관을 운영한 것이다. 그는 하얼빈에서 틈을 내어 사진 촬영기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 무슨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배워두면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때 배운 사진기술을 이용해 사업을 시작할 만큼 그는 다재다능했다. 한편 사진기술은 이후에도 그의 인생에 여러모로 긴요하게 쓰이게 된다. 긴박한 정치적 상황은 그로 하여금 치치하얼에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게 했다. 한낙연에게 다시 상부로부터 활동거점을 옮기라는 지시가 떨어졌던 것이다. 다음 장소는 더 깊은 오지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그의 다음 활동장소는 뜻밖에도 상하이였다. [*신동아]통권554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孫文 만난 뒤 중국공산당 입당 사해에 도착한 그는 프랑스조계지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당시 임시정부는 재정형편이 취약해 그의 생계를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주로 취직하던 전차회사의 차장노릇을 하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때 그는 어릴 때 잠시 접어두었...
  • 2005-11-04
  • [원제:동포 1.5세 여성 미 해군 부대장 `우뚝'''' ] 미군 태평양함대 사령부의 인사지원부대(PSA)장이 동포 1.5세 이연미(40. 미국명 앤리 쿠베라) 중령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30일 미주중앙일보에 따르면 5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한 이 중령은 뉴저 지에서 중.고교를 마친 뒤 버지니아대 국제관계학을...
  • 2005-11-04
  • 조국독립을 위해 고향을 떠나다 1898년 중국용정에서 태어난 한낙언은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그림에 재간이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유민이 되어 조국을 떠난 가난한 조선인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체계적인 그림공부를 할 기회를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이었을 것이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에 부친이 병으로 돌아가...
  • 2005-11-03
  • 본사소식(윤선일)" 최근 단동출입경 검험검역국에서 료해한데 따르면 10월에 들어서면서 단동랑두항구로 무연탄을 싣고 입항하는 조선 화물선이 부쩍 늘고 있다. 해당인사의 소개에 의하면 10월부터 겨울 난방기에 들어서고 국내 화력발전소에서 대량의 석탄을 수요로 하며 질 좋은 조선의 무연탄이 중국에서 각광을 받으면...
  • 2005-11-02
  • 흑룡강동원상업무역유한회사 —망규동원화원주점 개업 선언 본사소식( 기자 최계철) 조선족청년기업가 박광종(39세)이 이끄는 흑룡강동원(同源)상업무역유한회사는 상업,무역, 부동산업을 병진시켜 창업 12년만에 총자산 1억 2000만원에 7개 자회사를 둔 그룹으로 급부상했다. 이 회사 산하 흑룡강 망규화원주점이 10월...
  • 2005-11-02
  • 1947년 비행기 추락사고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7년 7월 30일, 실크로드에 세워진 도시 우루무치를 떠나 란저우로 향하던 국민당소속 257호 비행기가 자위관상공에서 악천후를 만나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광활한 중국대륙의 오지에서 일어난 추락 사고는 자칫 긴박한 내전 상황 속에서 중국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영...
  • 2005-11-02
  • 클린턴과 골프 친 뒤 성금 50만불 쾌척 '1,000만달러의 소녀' 미셸 위(위성미)가 지난 31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서던하일랜즈골프클럽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가졌다. 미셸 위와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 날 골프 만남은 프로 전향 때 발표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 돕기 성금 5...
  • 2005-11-02
  •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굼꾸다 총이 아닌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보자고 했다는 한낙연. 최용수교수도 한낙연이 중국에 알려진 것에 비해 정작 조국인 한국에서는 그를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하긴 그런 인물이 어디 한둘이랴. 널리 알려진 스타에만 초점을 맞추는 세상 탓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무도...
  • 2005-11-01
  • [원제:홍광정신 실천으로 조선족 명예 찾겠다 ]  “한국정부에 리홍광장군의 명예회복을 수차례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반응이 없다.”  지린성 반석시 홍광중 교장을 역임한 이주산(李柱山·72)선생은 오랫동안 항일운동가 리홍광장군을 연구해온 인물. 아마도 중국 동북지방에서 그 만큼 리홍광장군에 대해 잘 알...
  • 2005-10-3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