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수차 모주석의 접견을 받은 리옥금할머니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1월16일 08시10분    조회:1083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원제: 《내 손은 진정 농민의 손이다》]

중국공산당과 동갑내기인 할머니는 아직도 정정함 모습이였다. 할머니는 몇해전까지만 해도 룡정시 안민가두의 한 사회구역에서 조장사업을 맡아하면서 여생의 힘과 정열을 가두사업에 몰부었고 룡정실험소학교 과외보도원으로 활약하면서 때때로 어린이들에게 전통교양을 하군했다.

당년에 연길시 흥안향 발전촌(지금의 대성촌)에서 부녀회 주임, 민병련장으로 있던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시동생 셋을 모두 참군시키고 시부모와 시누이들 그리고 자식까지 아홉식구를 거느리면서도 농회와 고빈농단에 가담해 지주와 한간주구를 청산하고 토지개혁에 적극 뛰여들었으며 호조조를 무어 생산을 발전시키고 전선을 지원하였다. 남편이 전선에서 불행히 희생되였을 때도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시부모들을 위안하면서 더 억척스레 일했다. 그녀는 밭갈이, 논갈이, 후치질과 같은 힘겨운 일들까지 이악스레 해제꼈고 공량을 바칠 때에는 그 무거운 쌀마대도 씽씽 메여날랐다. 하여 그녀는 《꼬리없는 황소》라는 별명을 달게 되였고 1946년에는 현의 렬사유가족모범에 당선되였으며 1948년에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중국력사상 처음으로 열렸던 제1차중국녀성대표대회는 1949년 3월 24일, 북경에서 열렸다. 동북녀성대표로 대회에 참가했던 그녀는 대회주석단 성원으로 선거되였다. 대회의 이튿날인 25일은 모택동주석을 비롯한 중앙지도자들이 처음으로 북경에 입성하는 날이였다. 그날 녀성대표대회 주석단 25명 자매는 직접 비행장에 나가 모주석 등 당중앙 지도자들을 영접했다. 모택동주석은 맨 앞줄 첫자리에 선 그녀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옆에 있던 통역이 그녀의 남편이 전선에서 희생되고 시동생 셋이 전선에서 싸우고있다고 소개하자 모주석은 《남편의 뒤를 이어 혁명을 끝까지 하여야 합니다》고 하며 다시한번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장알이 박이고 갈라터진 그의 손을 보면서 《진정 농민의 손입니다》고 하며 그녀의 등을 다독여주기까지 했다.

격동의 순간은 이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또 전국 각지에서 온 일곱자매와 함께 두시간동안이나 모주석의 접견을 받았고 전국녀성대표대회가 끝나는 날 친선모임에서도 다시 한번 모주석, 류소기, 주은래, 주덕 등 지도자들과 자리를 같이하는 영광을 누렸다. 모택동주석은 친히 한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술잔에 술을 부은후 잔을 들고 대회의 승리적인 페막을 축하하였다. 이날 그녀는 난생 처음 술을 마셨다. 오락회에서 그녀는 또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다》는 노래를 불렀고 통역이 부른 도라지타령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해 모주석과 류소기, 주은래, 주덕 등 중앙지도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대회후 그녀는 모주석의 간곡한 부탁을 받들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1949년에는 중국녀성대표의 신분으로 북경에서 열렸던 아세아녀성대표대회에 참석했고 50년대초에는 두차례나 길림성 1등로력모범이란 영예를 따냈으며 1962년 3월, 중화전국부련회로부터 첫패로 《전국 3.8붉은기수》칭호를 수여받았다.

이처럼 많은 영예를 지녔지만 그녀도 전례없던 동란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반란파들은 그녀의 목에 《녀자본가》, 《당내의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집권파》라는 묵직한 패쪽을 걸고 전 촌을 돌아다니며 비판투쟁하였다. 어떤 때에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채 땅바닥에 엎질러놓고 발로 마구 짓밟았다. 머리가 무더기로 빠지고 숨쉬기도 가빴으나 그녀는 《내 손을 보아라. 모주석께서는 내 손을 진정 농민의 손이라고 하셨다. 자본가질을 했다면 내 손이 어찌 이럴수 있겠는가?》며 반박해나섰다. 이렇게 그녀는 2년 반동안이나 투쟁대상이 되여 시달림을 받았다.

폭풍우속에서 준엄한 시련을 이겨낸 그녀는 이후 예전과 마찬가지로 드높은 열정으로 농업생산에 뛰여들었다. 1978년 봄, 리옥금은 길림성녀성사회주의건설열성자로 표창받았고 그해 9월에는 연변녀성대표의 신분으로 제4차전국녀성대표대회에 참가했으며 《전국 3.8붉은기수》란 칭호도 재차 수여받았다.

그때의 그 영광, 그 감격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는 리옥금할머니, 그래서 아직도 그때의 결심을 실행해가고있다는 리옥금할머니는 85세의 고령임에도 여전히 황혼을 불태우고있다.

김명성기자 jmx@ybrb.cn /리광현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경쟁은 한국인끼리 했나요. “아닙니다. 그 사업은 주로 이탈리아 계 이민자들이 했습니다. 다만 이탈리아 출신 사장 밑에 한국인 영업사원이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이 무척 고전했지요. 나중...
  • 2005-11-23
  • 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연해주 우수리스크시에서 건설업과 유통업 등 10여 개 기업을 운영해 고려인 중 최고 갑부로 이름난 텐 알렉산드르 하리또노비치(한국명 정일) 연해주 고려인 재생기금 회장. ⑥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우수리스크=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텐 알렉산드르 하...
  • 2005-11-23
  • [원제: 힘들지만 보람있는 삶 엮는다] 1급지체장애인 리광수 고선옥부부 자식 위해 리광수(46살), 고선옥(38살) 부부는 1급지체장애인이라는 아픔속에서 남편은 안해의 눈이 되여 주고 안해는 남편의 다리가 되여주면서 자식을 밝게 키워 미담을 엮고있다. 멀리 흑룡강에서 혈혈단신으로 연변에 시집온 리의경학생(화룡시 3...
  • 2005-11-23
  • 미국의 국제교육연구소가 미국내 전 대학의 외국인학생과 미국출신으로 해외에서 공부하고있는 학생들 현황을 종합해 일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류학중인 조선국적의 학생은 2004~2005학기에 총 219명을 기록, 2003~2004학기(174명)보다 25.6%가 증가됐다. 2001~2002학기에는 113명이였다. 조선국적의 미국류학...
  • 2005-11-22
  • 《인젠 손뗄수 없어요》 장백현에 거주하고있는 올해 57세나는 한족 퇴직로동자 장집림은 지난해부터 조선어를 자습하기 시작, 신문을 읽을수 있고 간단한 조선어를 한어로 번역할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장집림은 퇴직한후 마작놀이나 트럼프놀이보다는 뭔가 의의있는 일을 찾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끝에 그는 장백...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북한 ‘삼흥코스트 그룹’의 노동자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천용수 회장. 그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1992년, 북한에서 만난 일본의 유력 일간지 기자와 대북사업에 관해 인터뷰했다가 ...
  • 2005-11-22
  • 우수리스크시 최연소 의원 발레리 강 지난해 26세의 나이로 우수리스크시 시의원에 당선된 발레리 강. 1978년생인  그는 고려인 중 최연소 시의원이고 25명의 시의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다. 시의원으로 당선되기 전 미하일로프군 군수에 출마했다 낙선했던 강 의원은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치를 한...
  • 2005-11-22
  • 프랑스 유학을 떠나다 1929년 여름 한낙연은 몇 년 만에 상하이에 도착한다. 하지만 상하이는 예전의 활력에 넘치는 도시가 아니었다. 상하이에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미 지하로 숨어들어 은밀하게 활동하던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자리였다. 그로서는 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만나기로...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1980년대 초, 제약회사 세일즈맨으로 승승장구하던 청년이 맨손으로 호주에 왔다. 챙겨주는 이 없는 남의 나라에서 23년 만에 12개 알짜 기업을 일궜다. 한순간도 조국을 잊지 못한 사내는...
  • 2005-11-21
  • 리완빈부자 도보로 홍군의 장정코스를 다녀와 제2차국내혁명전쟁시기 제5차반포위토벌전역에서 실패한 중국로농홍군은 1934년 10월부터 1936년 10월까지 남방근거지로부터 섬북근거지에로의 전략적 전이를 하게 된다. 당시 세상을 놀래웠던 이 장거가 바로 그 유명한 2만 5천리 장정이다. 새 중국이 창건된후 특히 개혁개방...
  • 2005-11-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