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종환 대중문화예술에 혼신 다바쳐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1월11일 09시30분    조회:964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리종환씨 무용수 가수 영화배우 연출 등을 두루 경험한 예술박사 1995년 중국장백산풍토인정관광절대형문예공연 예술총감독. 2000년 중국연변조선족민속관광박람회대형문예공연 예술총감독. 2002년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50돐 대형음악무용공연 부총연출. 2003년 겨울철 장백산 빙설절개막식공연 예술총감독. 2005년 연변조선족자치주민속관광박람회 광장무용공연 예술총감독.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60주년기념대합창콩클 합창지휘… 무릇 연변 주내에서 펼쳐지는 대형문예공연때마다 행사를 기획하고 공연장에서 직접 로련한 솜씨로 진두지휘를 하면서 공연을 멋지게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27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화려한 군중문화사업을 이끌어온 연변군중예술관 부관장 리종환씨이다. 리종환씨에게 있어서 최대의 인생전환점은 축구선수로부터 무용배우로의 변신이다. 그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뛰여난 자질이 있었는데 일찍 룡정시체육학교 축구팀에서 뽈을 찼고 후에는 흑룡강성청년팀과 장춘시축구팀에서 선발선수로 활약했다. 1968년중학교를 졸업한 리종환씨는 당시의 연길현 동성공사 태평3대 집체호로 내려갔다. 그는 손풍금을 다룰줄 아는 당지의 농민과 집체호의 청년들을 주축으로 과외문예대를 꾸리고 온돌 공연, 밭머리공연을 하여 농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69년말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해체되였던 룡정시문공단이 다시 획복되여 리종환씨는 시험에 합격되였다 당시 고자성, 리승숙, 최인호, 최연숙 등 재능있는 예술인들이 연길현문화관에 있었는데 리종환씨는 그들에게서 다방면의 예술재능을 배우면서 문공단의 주력으로 활약했다. 그는 15개 종목공연에서 19개 종목의 주역을 맡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하냥 축구선수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리종환씨는 북경체육학원시험에 응시했는데 합격되였다. 그러나 문공단의 골간인 그를 룡정시에서 놓아줄리 만무하였다. 리종환씨는 막무가내오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그의 축구선수의 꿈은 철저히 깨지고말았다. 1972년말, 리종환씨는 길림성삼림경찰부대문공단에 창작일군으로 전근하였다. 길림성삼림경찰부대문공단은 당시에도 성내에서 큰 예술단체였다. 그때 리종환씨는부대위문공연을 1년에 180여차나 하는 기록을 세웠다. 1974년 리종환씨는장춘영화촬영소에 가 “창업”“평원유격대”“산채의 불씨” 등영화의 보조역을 밭기도 하였다. 길림성삼림경찰문공단이 해체되자 리종환씨는 도문시문화관에 배치받았다. 무용보도원인 리종환씨는 농촌문화실을 세울 타산으로 월청향 걸만촌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농촌청년들을 위해 무용강급반을 꾸렸다. 그는 또 수남촌에 4년간 점을 잡고 문화실을 세우고예술지식을 전수하면서 촌민들과 어울려 일했다. 그때 마을사람들은 녀성들을 위주로 문화예술보급을 하는 그를 “부녀대장”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는 수남촌의 청년들로 공연대를 조직해 문예공연을 하였다. 1982년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30돐때 그의 지도를 받은 촌민들로 구성된 수남촌공연팀 200여명이 도문시광장무용콩클에서 공연해 절찬을 받았다. 그때맺은 정이 너무 아쉬워 어떤 농민들은 리종환씨의 집에 그가 즐겨먹는 시루떡을 한임 지고 오기까지 하였다. 리종환씨는 우리 민족예술의 후대양성을 위해 1979년에 도문시과외예술학교를 설립하였다. 물론 무보수였다. 도합 80여명의 학생을 받아들여 배양한 결과 32명이 예술학교와 전업예술단체에 들어갔고 기타 학생들은 공장 사업단위의 골간으로 활약하였다. 하여 도문시문화관은 전국소년아동예술양성선진단위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후 그가 도문시문화관 문예부주임을 맡았을 때였다. 전 주 연극공연에서 장막극 “이웃사이”를 무대에 올려 유일한 과외단체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물론 이극의 주요배우는 리종환씨였다. 1985년 그는 도문시문화관 부관장으로 발탁되였다. 그해 그는 36살의 나이에 연변대학 중문학부에 붙었고 1988년 도문시문화관 관장으로 임명되였다. 4년간의 공부를 마친 그는 도문시에 돌아와 태평양음향사와 손잡고 1990년부터 3년간 연변에서 맨 처음으로 3집으로 된 우리 노래 카라오케테프를 만들었다. 그리고 드라마 “몽당치마”“란세의 불행한 연분”을 기획 제작하였다. ·993년 리종환씨는 도문시 군중예술관 관장, 서기직과 문화국 부국장직을 맡았는데 공연팀을 이끌고 로씨야 공연을 하였다. 현, 시급 문화관이 외국공연을 하기는 연변에서 처음이였다. 1994년 리종환씨는 연변군중예술관 부관장으로 임명되였다. 이때로부터 그는 주내 대형문예공연때마다 총감독, 총연출을 맡으면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나갔다. 현재 그는 성룡의 “룡의 자손 마음 연변행”문화예술교류행사의 기획에 참여하였고 또 연변 제4회경찰예술절 총감독을 맡아 문예공연을 기획하고있다. 그는 선후로 십여차의 국가급 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예술관 시각”“예술심리”“미와 예술” 등10여편의 론문도 발표했다. “군중문화사업은 어느 한 예술전업을 전공해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닙니다. 다방면의 폭넓은 지식과 실천이 중요하지요. 군중문화사업은 다재다능해야 합니다. 저는 예술단체에도 있었고 문화관에서 오랜 실천을 경험했기에 지금 자신의 소임을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변군중예술사업을 위해 27년 혼심을 몰부어온 리종환씨의 의미심장한 말이다. (김인선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경쟁은 한국인끼리 했나요. “아닙니다. 그 사업은 주로 이탈리아 계 이민자들이 했습니다. 다만 이탈리아 출신 사장 밑에 한국인 영업사원이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이 무척 고전했지요. 나중...
  • 2005-11-23
  • 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연해주 우수리스크시에서 건설업과 유통업 등 10여 개 기업을 운영해 고려인 중 최고 갑부로 이름난 텐 알렉산드르 하리또노비치(한국명 정일) 연해주 고려인 재생기금 회장. ⑥연해주 고려인 중 최고 갑부 텐 알렉산드르 (우수리스크=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텐 알렉산드르 하...
  • 2005-11-23
  • [원제: 힘들지만 보람있는 삶 엮는다] 1급지체장애인 리광수 고선옥부부 자식 위해 리광수(46살), 고선옥(38살) 부부는 1급지체장애인이라는 아픔속에서 남편은 안해의 눈이 되여 주고 안해는 남편의 다리가 되여주면서 자식을 밝게 키워 미담을 엮고있다. 멀리 흑룡강에서 혈혈단신으로 연변에 시집온 리의경학생(화룡시 3...
  • 2005-11-23
  • 미국의 국제교육연구소가 미국내 전 대학의 외국인학생과 미국출신으로 해외에서 공부하고있는 학생들 현황을 종합해 일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 류학중인 조선국적의 학생은 2004~2005학기에 총 219명을 기록, 2003~2004학기(174명)보다 25.6%가 증가됐다. 2001~2002학기에는 113명이였다. 조선국적의 미국류학...
  • 2005-11-22
  • 《인젠 손뗄수 없어요》 장백현에 거주하고있는 올해 57세나는 한족 퇴직로동자 장집림은 지난해부터 조선어를 자습하기 시작, 신문을 읽을수 있고 간단한 조선어를 한어로 번역할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장집림은 퇴직한후 마작놀이나 트럼프놀이보다는 뭔가 의의있는 일을 찾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끝에 그는 장백...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북한 ‘삼흥코스트 그룹’의 노동자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천용수 회장. 그에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1992년, 북한에서 만난 일본의 유력 일간지 기자와 대북사업에 관해 인터뷰했다가 ...
  • 2005-11-22
  • 우수리스크시 최연소 의원 발레리 강 지난해 26세의 나이로 우수리스크시 시의원에 당선된 발레리 강. 1978년생인  그는 고려인 중 최연소 시의원이고 25명의 시의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다. 시의원으로 당선되기 전 미하일로프군 군수에 출마했다 낙선했던 강 의원은 "역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정치를 한...
  • 2005-11-22
  • 프랑스 유학을 떠나다 1929년 여름 한낙연은 몇 년 만에 상하이에 도착한다. 하지만 상하이는 예전의 활력에 넘치는 도시가 아니었다. 상하이에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미 지하로 숨어들어 은밀하게 활동하던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자리였다. 그로서는 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만나기로...
  • 2005-11-22
  •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1980년대 초, 제약회사 세일즈맨으로 승승장구하던 청년이 맨손으로 호주에 왔다. 챙겨주는 이 없는 남의 나라에서 23년 만에 12개 알짜 기업을 일궜다. 한순간도 조국을 잊지 못한 사내는...
  • 2005-11-21
  • 리완빈부자 도보로 홍군의 장정코스를 다녀와 제2차국내혁명전쟁시기 제5차반포위토벌전역에서 실패한 중국로농홍군은 1934년 10월부터 1936년 10월까지 남방근거지로부터 섬북근거지에로의 전략적 전이를 하게 된다. 당시 세상을 놀래웠던 이 장거가 바로 그 유명한 2만 5천리 장정이다. 새 중국이 창건된후 특히 개혁개방...
  • 2005-11-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