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실크로드에묻힌 조선족화가 한낙연1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0월31일 08시16분    조회:1202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올해, 덕수궁미술관에서는 8월말부터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보통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일제 강점기 중국 땅에서 화가이자, 고고학자, 나아가 혁명가로 활동하다 끝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곳에 뼈를 묻어버린 한낙연(韓樂然)을 기념하는 ‘광복 60주년 기념 한낙연 특별전’이 그것이다.

그는 일제의 폭압을 피해 화폭속으로 현실도피한 대부분의 당시 화가들과 달리 붓으로 일제에 저항한, 그리 흔치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광복이 된지 반세기가 넘도록 그는 우리에게 잊힌 존재였다. 일제와 맞서 싸우기 위해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한 그의 이력 때문에 남과 북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복 전 중국대륙에서 활동하던 ‘연안파’가 광복 후 남북 양쪽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것이나 비슷한 이유다.

조국의 광복을 그토록 원했으면서도 광복 조국의 땅을 밟아보지 못한 한낙연, 그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그의 그림조차 그의 사후 반세기가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아직도 이 땅이 입은 분단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탓이다.

반세기만의 귀향

미술에 문외한인 필자가 한낙연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중국과 수교이후 실크로드의 길목에 있는 둔황(敦煌)을 발빠르게 다녀온 사람들에게서이다.

“둔황 석굴 어딘가에 한낙연이란 조선족화가가 남긴 글이 있대. 그 사람은 국공내전시기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둔황벽화를 발굴한 공적을 중국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아 지금도 둔황벽화 모사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명성을 따라올이가 별로 없는가봐. ”

그들도 한낙연에 대해 잘 알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둔황 어디선가 주어들은 이야기를 그 때만 하더라도 중국대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필자에게 그들은 역사의 현장인 실크로드를 제 발로 걸어본 여행의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랑삼아 얘기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은 과장된 듯한 그들의 여행담도중에 나온 둔황석굴이야기는 그 후 내게 한낙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시발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는 술이 깨고 나면 대개 잊히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시테크니 뭐니 해가면서 노동 강도가 점점 높아가는 현대인의 생활에서 자신의 현실적 이익과 별 관련이 없는 대상에 관심을 오래 둘 여유는 별로 없었다.

다만 그들이 말한 것처럼 환한 보름달빛아래에서 모래사막을 거닐고 싶은 꿈만은 버리지 못하고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도 한번 가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중국에서도 오지 중 오지인 그곳에서 1940년대 중반부터 고대석굴의 벽화발굴을 주도했다는 그가 누구인지 불현듯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를 찾아가는 작업은 생각마냥 쉽지는 않았다. 중국에서 활동한 한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는 제법 진행되고 있었지만 임시정부나 김산(金山)을 비롯한 몇몇 특별한 인물에 국한됐을 뿐, 특히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에 대한 연구는 황무지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자료부족이라는 현실적 장애에 부딪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면서 누구의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혼자 힘으로 이미 수십년의 세월 저 너머로 사라져버린 그의 흔적을 찾는 작업은 힘에 부쳤다. 그가 삶의 마지막을 보냈다는 둔황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무렵은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던 까닭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차라리 속이라도 편한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던 차에 잊고 있던 그가 다시 다가왔다.

지난해 추석 무렵 베이징에서 중앙당학교 철학과에 재직 중인 최용수 교수를 찾아본 적이 있다. 물론 그때의 취재대상은 한낙연이 아니라 중국에서 활동했던 다른 조선인 독립가였다. 인터뷰도중에 우연히 한낙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최 교수는 그에 대해서 내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지금 그를 단순히 화가라고만 알고 있는데, 사실 한낙연은 현실을 떠나 그림만 그리던 화가가 아니었습니다. 3.1운동과 임시정부에도 참여하고, 더 나아가 국민당과 공산당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항일전을 수행한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붓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보자고 했던 혁명가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계속) 글쓴이 이종한

[*신동아] 통권554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호주마스터스 골프 첫 우승 눈앞, 10대 동포소녀 돌풍] [노컷뉴스 2006.02.05 09:35:27] 호주 퀸슬랜드주 골드코스트에서 열리고 있는 유럽여자프로골프(LET) ANZ레이디스마스터스에서 선두를 유지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동포소녀 아마추어 에이미 양(16.양희영)이 5일 호주여자골프에 새 역사를 쓸 것인지 관심이...
  • 2006-02-05
  • [원제: 불굴의 투지로 76년 사업 견지] 항일투사 려영준동지 90주세 축연 2일, 항일로전사이며 원 주정부 부주장, 주인대 상무위원회 부주임인 려영준종지의 90주세 축연이 있었다. 이날 축연에는 주인대 상무위원회 주임 장룡준, 주정협 주석 황삭, 주당위 부서기 조병철, 주정부 상무부주장 리결사, 주인대 상무위원회 부...
  • 2006-02-05
  • (1) 기자(이하 기로 약칭): 인사말 김현철 교수(이하 김으로 약칭): 1982년 연세대 중문과에 입학하여 줄곧 연세대학교에서 석, 박사를 마쳤다. 기: 중국에 오시게 된 연유? 김: 2005년 한국 교육부의 지원으로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이 인문학특성화 사업에 선정되어 1차사업으로 인문학부 학생 20명을 선발해 중국의 북경사...
  • 2006-02-05
  • 룡정시 개산툰진아마공장에 거주하는 리순옥(68세)할머니는 슬하에 딸 넷을 두고있는데 모두 가정을 꾸리고 량주만 남게 되였다. 다른 딸들은 생활에 별 근심이 없지만 몇만원의 거금을 꾸어 한국으로 나간 큰딸의 일이 내내 걱정되였다. 거듭되는 고민끝에 자기의 손으로 일하여 부담을 덜어주기로 작심하였다. 워낙 일욕심...
  • 2006-01-27
  • 흑룡강성 화천현 성화조선족향 중성촌에 홀로 사는 천순옥(당원.77세)로인은 만년에도 쌀가루, 찰떡,떡국 등 가공업을 벌려 자주창업으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있다. 일찍 20년간 부녀주임사업을 뛰여나게 하여 30여차례나 성, 시, 현, 향 로동모범, 3.8붉은기수로 당선된적 있으며 1983년에는 《전국3.8붉은기수》로 당...
  • 2006-01-27
  • [원제: 클래식으로 문화향수의 여유를] 연변가무단 성악지도교원 김향씨 대중가요에만 익숙해있던 우리들에게 언제부터인가 클래식(高雅音樂)이라는 생소한 음악쟝르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연변에서 처음으로 클래식음악회를 열어 클래식이라는 품격있고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고 료해할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연...
  • 2006-01-27
  • 25일, 김진길주장은 주 관계부문 책임자들의 안내하에 화룡에 내려가 위문했다. 김진길주장은 화룡시광명소학교 4학년 초연학생과 빈곤부축련계를 맺었는데 올해 이미 3년째를 잡고있다. 초연의 집을 찾아 김진길은 초연의 학습, 생활형편을 자상히 알아보았다. 초연이 해마다 진보를 가져와 지금 이미 품성과 학습성적이 모...
  • 2006-01-26
  • [원제: 청춘의 열망 도전의 17년] 심수 부장중일한료리 박금산 사장의 창업 자취 개혁개방의 세찬 물결 타고 지난 80년대 말 흑룡강성 계서일대에서 심수행을 택했던 젊은이들이 부지기수이다. 그중의 한 일원으로 현재 ‘부장중일한료리’ 박금산사장의 어제와 오늘에서 개척자의 순탄치 않았던 17년을 더듬어보았다. 자신...
  • 2006-01-25
  • [원제: 기획의 달인 예지의 ‘해결사’] 중국뇌고문화발전유한공사 김석광 총경리 인상기 얼마 전에 하얼빈의 한 친구가 전화로 북경의 김석광이란 분을 소개해 왔다. 간단히 들어도 보통 사람이 아니였고 남다른 지혜와 담력과 격정의 소유자란 소리에 부쩍 끌려 신정 이튿날로 김석광씨를 찾아갔다. 우리가 만난 곳은 김석...
  • 2006-01-25
  • [한겨레신문 2006.01.23 18:22:19] “2002 한-일월드컵 때 한국팀 정말 많이 응원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때는 (감격에 겨워) 울면서 응원했다.” 피는 진했고, 동포에게 남과 북은 없었다. 북한 국적의 재일동포 ‘미남’ 축구스타 안영학 (28)이 2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파크 하이얏트호텔에서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
  • 2006-01-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