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항일투사-김현대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0월14일 09시05분    조회:1142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항일투사 —김현대 일전, 기자는 연길에서 만년을 보내고있는 김현대로항일투사를 찾아뵙고 열혈청춘을 항일투쟁에 몸바쳐 싸워온 그의 항전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올해 81세인 김현대로항일투사는 1924년 5월 16일, 조선 충청남도 서산군의 한지식인가정에서 둘째로 태여났다. 1931년, 김현대는 7세의 어린 나이에 고향땅을 떠나 부모형제와 함께 중국 상해로 이주하여왔으며 중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김현대가 중국으로 이주할 때는 이미 《9.18》사변이 폭발한 뒤라 중국인민의 항일투쟁이 거세차게 일고있는 때였다. 어려서부터 일제에 유린당하는 조선인민들의 비참한 정경을 목격하고 중국에서 중국인민의 하이일열조에 감화된 김현대의 머리속에는 조국과 민족 그리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려는 진보적인 사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16세 나이에 김현대는 초중을 다니면서부터 중국공산당 상해지하조직에서 찍은 항일삐라 등 진보적인 선전물들과 많이 접촉하게 되였고 신사군의 항일업적들도 많이 알게 되였다. 전국 각지에서 신속이 전파되는 맑스—레닌주의, 신민주주의론도 그의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신변의 동학들이 앞다투어 참군하는것을 보며 그도 항일투쟁대오에 가담하려는 충동을 느끼게 되였다. 하지만 그의 념원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장사길을 택하기를 희망했다. 당시만 해도 나이 어렸던탓으로 김현대는 사상고민도 없지 않았다. 1945년초, 항일형세의 변화에 따라 일제는 상해통치지구에 대한 통제와 압제를 더욱 강화했다. 일제의 폭행에 더이상 침묵만 지키면서 유예할수 없었던 김현대는 마침내 항전에 나서려는 2명의 학교동기생과 함께 참군을 결심하고 결연히 동생한테 부모님들을 부탁하고 항일대오를 찾아 떠났다. 김현대의 이 거동은 당시 김현대가 다니던 상해대학의 수많은 동급생들을 고무격려하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항일대오에로 몸을 던지게 격려해주었다. 1945년 3월, 김현대는 동년배들과 함께 화중일대에서 활약하던 신사군을 찾아 떠났다. 간난신고끝에 그들은 강소성 흥화부근에서 속유장군의 신사군 1사에 참가했으며 이후 신사군3사에 다시 편성되였다. 당시 김현대는 조선족전사들을 후방에 보내 학습시키라는 중앙의 지시에 따라 익림진에 있는 항일군정대학5분교에서 학습을 하고 그해 9월부터 12월까지 상해로 돌아가 일본침략자들의 완전한 항복을 쟁취하는 적후선전조직사업을 담당하였다. 항전승리후, 김현대는 조선의용군을 따라 안동(단동)지구로 이전하였다. 1949년 3월에는 중국인민해방군 제 166사에 편입되여 후방에서 신문출판 등 선전조직사업역군으로 활약했다. 부대에서 신문사업에 종사한 경력자였던만큼 공화국창건후에는 자연 신문출판업에 종사, 연변인민출판사의 부총편집, 주인대 상무위원으로 활약했다. 김현대는 이날 이때까지 연변의 건설에 정력을 몰두하여왔고 조국과 민족의 흥망에 시종 관심을 돌리군 하였다. 지금도 김현대로항일투사는 늘 처절했던 항일시절을 회억하면서 《혁명위해 목숨바쳐 싸워온 지난날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달갑게 바쳐야 한다!》고 말하군 한다. 김기호견습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 매편의 기사 모두 작품처럼] 《훌륭한 기자, 편집이 되려면 우선 신문사업이 신성하고 영광스러운 사업이라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 《문화대혁명》이전부터 신문 기자, 편집 사업을 해온 김경석선생은 신문사업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기자, 편집을 하기 어렵다고 력설한다. 김경석선생은 1960년 연변대학 조선언어문...
  • 2005-11-09
  • 중앙 1호문건이 시달되자 농민들의 농사열정이 크게 제고되여 왕년에 버려져있던 묶은 경작지마저 다시 부치고있다. 그런데 경작지 면적에 비해 농촌의 로력이 딸리여 농망철이 되면 모두가 인력난으로 쩔쩔매고있다. 이를 감안한 화룡시 투도진 룡원촌 제2조의 황명선 촌민은 대담하게 7만 5000원의 돈을 들여 종합수확기 ...
  • 2005-11-08
  • [원제: 중국 진출 선진기술 앞세워라] 중국 진출 4년만에 발을 붙였다는 소문을 듣고 방문을 갔더니 대화 첫 머리부터 “중국은 시장이 큰만큼 기회도 많지만 그래도 진출시에는 반드시 선진기술을 앞세우고 들어 와야 한다”며 총화발언을 하는 김인규사장, 그는 건축도료 전문회사인 장춘(주)코미톤건자재유한회사의 주인...
  • 2005-11-08
  • [원제: 인생은 끝없이 일하면 사는것]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큰 사업이 아니더라도 창업이란 얼마나 신고스러운 일인지 잘 알고있다. 그리고 우리는 쉽사리 창업의 마음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넉넉한 퇴직금에 자식들마저 잘 되고있어 아무런 뒤근심이 없다 할수 있는 퇴직자가 창업에 뛰여든다면 리해를 하지...
  • 2005-11-08
  • 상해 미술 전문학교 우등졸업 한낙연이 중국공산당에 입당할 당시 중국국민당과 공산당은 항일이란 큰 목표 아래 국공합작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한낙연에게 상부로부터 특별한 임무가 부여됐다. 그것은 국민당에 위장 입당해 대외적으로는 국민당으로 활동하라는 지시였다. 물론 중국공산당당적은 비...
  • 2005-11-07
  • 10월 21일 오전, 도문시 량수진 량수촌 21촌민소조의 조장 문영금씨로부터 시동생 최동원일가에 대한 소개를 듣고 그들을 찾았다. 《정말 그들처럼 착실하게 살면 외국에 돈벌러 가려고 아득바득 할 필요가 없습니다.》 량수촌권복순서기도 문영금조장의 말에 동을 달았다. 《부부가 손잡고 올해 논과 밭을 5헥트를 다루고있...
  • 2005-11-07
  • [원제:12살 연변소년 리소명 하버드대학생으로] 어린시절부터 《대통령》이 꿈, 올 대학입시서 660점 6월에 있은 전국고등학교입학통일시험에서 12살밖에 안되는 연변조선족소년 리소명이 66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따낸 뒤 7월 그리고 8월에 있은 2차례의 하버드대학 중국류학생선정시험에서까지 계속 우수한 성적을 확보해...
  • 2005-11-07
  • [원제:비룡실업의 진로밑에 깔린 《문화감각》] 박성룡총경리의 남다른 속궁리를 적어본다 1997 년 3 월18 일에 중국광전부의 허가를 받고 길림성광전청에서 전문 국내외 위성설비판매설계설치허가증을 취득하여 설립된 길림성비룡실업유한회사(간칭)는 현재 중국내에서 유일하게 국내외위성방송설비 판매, 설계,설치, 권한...
  • 2005-11-05
  • [원제:력사를 알아야 자존심 지킨다] [img count='1' img] 20여년간 조선인혁명가들을 조사연구해온 최룡수교수를 만나 9월중순, 길림대학 조봉빈교수로부터 중앙당학교 최룡수교수가 쓴 글을 받았는데 그것은 혁명과 예술을 결합시킨 한락연의 사적을 담은 글이였다. 그 글에서 우리 민족혁명가들의 사적을 발굴하기 위해 ...
  • 2005-11-05
  • [원제: 79세로인 웅변대회에 참가해] 발표시간: 2005-11-03 오후 3:33:10 주당위 선전부 문명판공실에서 주최한 전주 선진사적 웅변대회가 어제(2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있었습니다. 이는 올해 67세에 나는 훈춘시교육국 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인 량조희가 전주 선진사적 웅변대회>에서 한 말입니다. 전...
  • 2005-11-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