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이주노-40억재산 날린 파란만장 히스토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0월11일 00시11분    조회:1737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원제:40억 재산 모두 잃은 이주노, 파란만장 히스토리 털어놔]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이주노가 10일 오전 KBS 2TV ‘이홍렬 박주미의 여유만만’에 출연, ‘서태지와 아이들’의 톱스타에서 40억원 재산을 모두 잃기까지, 그리고 최근 북경 현대 음악예술대학교 댄스 무용학부의 명예교수 수락 등 근황을 털어놨다. 이주노는 출생부터가 파란만장했다. 서울의 명문가의 아들이었던 아버지와 시골출신 어머니. 두 분은 어머니가 야학에서 학생으로,아버지는 선생님으로 만났다고 한다.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했으나 이주노가 태어나던 해 선친이 돌아가는 바람에 결혼 생활과 친가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외판원 등으로 힘겹게 살다가 초등학교 때 지금의 아버지와 만나 결혼했다. 이주노는 사춘기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방황이 시작됐고 고등학교를 자퇴해 어머니를 무척 힘들게 했다. 방황이 심하던 이주노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에게 미용기술을 배우라고 해 한때 미용기술을 배웠는데 보조생활까지 해봤다고 이주노는 고백했다.당시에는 5년 정도 보조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 상황이 무척 답답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이주노는 서울 종로쪽에서 춤꾼들을 본 뒤 그도 춤을 배우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솟구쳤다.어렸을 때부터 끼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연한 순간에 이처럼 바뀌었다는 것이 이주노의 고백이다. 이주노는 당시 친가와 왕래한 것은 얼마 안되고 외가에서도 무시당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도록 꼭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것이 이주노의 당시 심정이었다.사실 그런 마음도 컸지만 춤이 너무 좋았다고 이주노는 당시를 회상했다. 드디어 1992년 이주노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로 연예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그는 용돈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입을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가 집도 사고 땅도 사면서 재테크에 성공했으나 이주노가 사업하면서 그것들을 다 잃었다. 이주노가 사업을 하다 빚질 때마다 부모에게 상의하면 팔아서 마음편하게 정리하고 살자면서 모두 내줬다고 한다. 이주노는 “사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지금 속상한 것도 후회하는 것도 싫었다. 내가 그런 것을 알면 된다. 담담해지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고 현재의 심정을 밝혔다. 이주노는 이어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집 크기와 용돈이 좀 줄어들었을 뿐 힘든 생활이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든 것 같다”고도 다짐하듯 말했다. 이어 그는 “교수 제의는 이전에도 국내 대학에서 여러번 받았으나 공부싫다고 뛰쳐나온 내가 하기에는 좀 그래서 거절했다. 하지만 이번 북경 현대 음악예술대학교 댄스 무용학부의 명예교수는 대학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응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주노는 결혼에 대해 묻자 “20대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30대는 사업하고 망해서 경황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40대는 빚진돈 갚느라고 바쁜 상황이다. 그냥 조그만 집이라도 얻어 안정이 되면 그때 열심히 결혼상대를 찾을 생각이다.조건은 마음이 착했으면 싶다”고 진솔하게 털어놨다. 이주노는 마지막으로 “사회생활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욕먹는 사람은 안됐다. 지금은 환경이 좀 나쁘지만 언젠가는 잘 될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조금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부자가 되었으니 안심하고 믿고 기다려 주세요”라고 부모님에게 당부해 주변 사람들을 찡하게 했다. <뉴스엔=엔터테인먼트부> 2005-10-10 10:55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 시 10명 걸출한 법관’에 리성현씨 입선] 반년간의 까다로운 선발끝에 최근 심양시의 1700여명 법관가운데서 ‘심양시 10명 걸출한 법관’이 선출됐다. 그중 리성현씨가 유일한 조선족으로 영광스럽게 ‘심양시 10명 걸출한 법관’에 입선됐다. 이번 선발활동은 ‘료녕성 10명 걸출한 법관’선발활동의 중요한 일환으...
  • 2006-01-23
  • 료녕성 본계소방지대 명산대대 특근중대의 부중대장인 김춘명(29세, 조선족)씨가 건국이래 료녕성 최초의 ’10명 공훈 경찰’로 당선됐다.1995년 12월에 소방경찰부대에 입대한 그는 선후로 1500여차례의 소화작업과 구조작업에 참가해 65명 군중을 구조했다. 2004년 12월에 그는 공안부로부터 ‘모범소방전사’영예칭호를 ...
  • 2006-01-23
  • [원제: 조선족기업의 참여의식이 민족발전의 받침돌] ○ 청도조선족기업협회 회장 정경택 새해 벽두에 들어서《길림신문》 독자들과 만나게 된것을 자랑과 영광으로 생각한다. 민족사업과 민족이 발전하는 과정에 그 큰 틀안에서는 우리 조선족기업의 몫도 크게 작용할것이라고 느껴지고 따라서 청도 조선족기업협회도 그 몫...
  • 2006-01-23
  • 두만강, 압록강, 송화강, 흑룡강. 이 4개 강 류역에 우리 중국 조선족의 뿌리가 있다. 우리는 한반도로부터 이곳에 이민을 와 이 땅을 개척했고 또 이 곳에서 이 땅을 지켜 일제와 피 흘리며 싸웠으며 감격의 해방도 이 땅에서 맞았고 지난 반세기 남짓한 기간 이 땅을 건설해 왔다.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는 중국 조선족으...
  • 2006-01-23
  • 저명한 우표수집가 전광하씨의 우표애환 《가난으로 하여 더덕더덕 기운 바지를 입고 헌신을 끌고다니던 소학교(1995년)때부터 우표수집에 집착했으니 반세기도 넘지요. 한두번만 미쳤따는 소리를 들은거 아닙니다.》 요즘 아침밥술을 놓기 바쁘게 《주우취의 집(州集郵著之家)》으로 출근하는 전광하씨는 자신의 우표수집의...
  • 2006-01-20
  • 심양시 소가툰구 홍성촌 조선족농민 조동철씨(28)가 일전 공청단료녕성위, 료녕성농촌경제위원회, 료녕성림업청, 료녕성수리청, 료녕성과학기술청, 료녕일보, 료녕인민방송국, 료녕텔레비죤방송국에서 공동주관하는 제5회료녕성10대걸출농촌청년 공식후보명단에 들어갔다. 조동철씨는 인터넷을 통한 농산물판매와 국제무역에...
  • 2006-01-20
  • 룡정시 시장 차광철 인터뷰 차광철시장은 《11.5》기간 룡정시에서는 공업의 《제2차창업》발전책략에 립각하여 신형공업화를 핵심으로 경제장성방식의 전변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룡정시의 경제총량을 부단히 늘이는 동시에 이를 토대로 각항 사회사업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할것이라고 표했다. 그는 공업은 재정수입에 관...
  • 2006-01-20
  • [원제: 창업문화는 민영경제발전의 근본동력] ○ 길림시선전부 부부장 리천림 문화는 현대경제의 《발동기》로서 문화의 차별 특히 경제발전에 관계되는 창업문화의 차별은 구역경제차별을 조성하는 요소이다. 민영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반드시 사상속박에서 벗어나고 관념을 갱신하고 창업문화를 양성하여야 한다. 창업문화...
  • 2006-01-19
  • [원제: 젊음, 창업의 최대 자본] 장춘 용수산숯불구이점 김현구사장을 찾아 2000년 6월에 개업한 용수산숯불구이점은 한국 류학생들의 입소문으로 한국 손님들뿐 아니라 현재 중국 손님들도 즐겨찾는 장춘에서는 유명한 음식점이다. 이 숯불구이점은 김현구사장이 젊은 열정이라는 자본만 가지고 일쿼세운것이다. 창업은 누...
  • 2006-01-19
  • 《돈화시에서 과학적발전관을 견지하고 자체실정에 맞게 구역우세를 발휘하면서 발전속도를 다그친다면 긍정코 기획 제반 목표임무를 완수할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돈화시 류유림시장은 향후 5년간 돈화시의 지속적이면서도 쾌속적인 발전에 확신을 표했다. 류유림시장은 금후 5년간 돈화시에서는 중점적으로 공업화행정진...
  • 2006-01-1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