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주호-《력도산의 비밀》 연출인터뷰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9월14일 11시11분    조회:1666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어렵고 힘든 첫 합작이 있었기에 》 -- 《력도산의 비밀》 연출 리주호씨와 만나] 일전, 기자는 첫 중조 합작영화 《력도산의 비밀》 조선말 대사록음을 마치고 최후 합성과 완성꼬삐 제작건으로 장춘에 온 조선연출가 리주호씨를 만나보았다. 일찍 조선영화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영화대학에서 박사공부를 하며 연출가로서의 깊은 조예를 다진 리주호씨(47)는 조선영화계의 중견연출가(대표작 《우물집녀인》, 《고귀한 이름》 등), 그에 반해 너무나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이였다. 량국간 합작의향을 체결해서부터 영화제작을 마무리하기까지의 이 1년간은 그야말로 어려움의 한해였고 이런저런 어려움을 용케도 이겨내고 량국 예술가들 사이의 리해를 증진하고 영화합작의 신심을 북돋아준 1년이라는데서 더 감개가 깊다며 연출가 리주호씨는 그때의 감수를 털어놓는다. 《필경 언어가 다른 두 민족이 합작하다보니 영화제작 초반에는 서로 견해가 달라 얼굴을 붉힐 때가 많았다. 그런 의견상이, 분쟁이 없다면 서로의 특색이 없는 작품으로밖에 될수 없다. 분쟁이 있었기에 오늘의 <력도산의 비밀>이 있었다고 보아진다.》 영화연출생애에서는 첫 합작영화인만큼 제작과정에 《합작》에 대해 많이 생각보았다며 이는 어느 한 창작가의 지역감정을 초월해야 한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교양의의외에도 더 범위를 넓혀 주제와 예술형상 등 제 면에서 조선뿐아니라 중국 나아가 유럽사람들에게도 공감되게 하는가 하는것은 촬영중 발목을 잡은 문제이기도 했다.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중국측과 많은 모순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예술가의 감정으로 서로를 리해하고 모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오늘의 결실을 안아왔고 더구나 이번 합작을 통해 예술은 창작가의 주관과 거리가 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고 감회를 터는 리주호연출. 력도산의 죽음은 지금껏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러나 조국을 떠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애절한 향수를 가슴속깊이 간직하고있다는 점, 력도산이 재일조선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고향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돌아가고싶어하는 절절한 마음을 그리는것이 창작과 합작의 본의에도 맞고 정치적, 예술적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여 이를 주선으로 력도산의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는데 초점을 두었다며 민족감정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감명깊고 감화력이 있으며 이래야만 사람들에게 먹혀들어가기때문이라고 리주호연출은 말한다. 영화에서 예술적으로 제일 만족되는 부분은 어디인가는 기자의 물음에 리주호연출은 도식적이 아닌, 처음부터 영화의 결과에 이런저런 궁금증과 추측을 가지도록 한 슈제트의 구성, 이밖에도 영화는 마지막에 유리가 력도산의 거폭의 초상을 어루쓰는것으로 끝나는데 이는 력도산은 죽었지만 현실생활속에 여전히 계속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며 이는 연출가로서 제일 만족하는 부분이라고 꼽았다. 한편 영화에서 주인공 력도산역을 맡은 배우 김성수가 몸매나 기질, 얼굴륜곽까지도 력도산을 빼여닮았고 그 자신도 젊었을 때 씨름을 한적 있지만 실재한 인물처럼 육체적으로 보다 프로레슬링선수다운 그 어떤 스찔이 좀 부족했다고 유감스러워하기도 했다. 력도산의 양딸 유리역을 맡은 중국배우 서균의 연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긍정했다. 《영화를 마무리하기까지는 비록 힘든 과정이였지만 이런 어렵고 힘든 첫 합작이 있었기에 다음번 합작은 더 성공적이리라 믿는다. 앞으로 영화합작을 많이 하고 합작을 통해 우리 영화를 세계무대에 진출시키고 미국과도 어깨겨룸할수 있는 영화로 부상시키겠다》며 리주호연출은 신심과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img count='1' width='400' img] 200 5카이로 세계유도선수권대회 57킬로그람급에서 금메달을 딴 조선선수 계순희가 17일 오후 평양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있다.
  • 2005-09-21
  • 고훈(연변세기팀 감독): 오늘 경기는 아주 어렵게 이겼다. 대방팀이 방어를 견고하게 하고 수시로 역습을 노렸기에 우리를 어렵게 만들었다. 선수들은 난공불락에서 아주 내심했고 끝내 한번의 기회를 잡았다. 지금 한번 승리를 거둔다는것은 정말로 쉬운일이 아니다. 경기에서 위협적인 진공을 많이 했으나 안타까운것은 소...
  • 2005-09-19
  • 주 건설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오기준씨가 4만여원을 내 고향마을인 조양천진 다촌에 다리를 놓아주어 촌민들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조양천진 다촌은 16호세대에 50여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마을인데 교통이 불편했습니다. 촌민들이 외출하려면 마을앞 개울물을 지나야 했는데 다리가 없어 고생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
  • 2005-09-19
  •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고 2006년 독일월드컵을 지휘할 딕 아드보카트 감독(58)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스타일의 지도자다. 무엇보다도 경기를 지배하는것을 중시하고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사커의 교과서를 철저히 적용하고있다. 네덜란드 토털사커의 창시자이자 1988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 네덜란드를 사상 처음으로...
  • 2005-09-19
  •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중국에 와 투자한 외국기업이 날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중국사회, 중국인들과 어울리면서 조화로운 사회건설에 기여하고 있고 서로 융합되고 있습니다. 베이징 석경산구역 영락서구에 자리잡고 있는 베이징신기 세라젬 의료계기유한회사가 바로 그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베이징 석...
  • 2005-09-18
  • [원제:효심 애심 량심이 낳은 휘황-전국우수인민경찰 임장하식 공안국장 김동화를 보다] 안도현공안국, 1995년부터 1999년사이 집체3등공과집체2등공을 세우면서 전국우수공안국과 길림성로동모범집단이라는 휘황을 안아온 전투집단이다. 허나 2001년부터 이 공안국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주적으로나 성적으로 뒤...
  • 2005-09-18
  • 한락연은 1898년 12월 8일에 룡정에서 태여났다. 한락연이 최초로 참가한 항일활동은 1919년 룡정에서 있은 《3 13》운동이다. 이 시기 그는 초기 고려공산당활동에 참가, 《3 13》 시위자들이 들었던 태극기 대부분이 한락연이 만든것이다. 1923년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한락연은 이때로부터 반제국주의, 반봉건주...
  • 2005-09-18
  • 조선족 작가 장혜영의 저서 가 한국의 인문학계렬의 대학교재로 선정되였다. 흑룡강성 출신인 장혜영씨는 5-6년간 한국에서 장편소설 , 을 출판하였고 2002년에 인문도서 를 펼쳐내였다. 장기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경험한 많은것들을 짬짬이 글에 담아온 소설가는 엄연한 로 변신되여 민족문화학과 사회문화학의 시각에서 한...
  • 2005-09-15
  • 조선족민속학자 천수산씨의 일가견- 1952년 9월3일에 연변조선족자치주(설립시는 구)가설립되였다는 의미는 조선족이 진정 이 땅의 주인이 되여 조선족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양하고 조선족의 민족전통을 대대로 이어나가자는 것이 근본적인 취지이다. 그리하여 많은 유지인들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단순히 길림성에만 국한되...
  • 2005-09-15
  • 조선족 최군 흑룡강성 '10대걸출한 쳥년'후선인에 당선 흑룡강성 고급인민법원 민사제2재판정 재판장 최군(41세)이 흑룡강성 '10대 걸출한 청년'후선인에 당선되였다. 최군은 사업에 참가한 18년래 부지런히 사업하고 고심히 연찬하며 청렴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 전성 법원의 심판수준제고와 량호한 경제법제환경을 조성...
  • 2005-09-1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