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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세 -백산학교 설립자의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9월1일 20시57분    조회:1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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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조선족 사립학교 설립자 김명세의 이야기 [img count='1' width='350'img] 오늘부터 두번에 나누어 중국 최대의 조선족 사립학교인 백산학교를 설립한 김명세이사장의 이야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중국에서 제일 작은 행정단위인 촌에서 설립한 기업의 회계로부터 시작하여 십여년간의 시간을 들여 년 평균 인민페로 2천만원의 세금을 나라에 납부하는 큰 그룹의 일인자까지 되였던 김명세이사장은 말그대로 빈주먹으로 창업에 성공한 기업가입니다. 오늘은 김명세이사장이 백산학교를 설립하기 전 창업하던 이야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음향1] "나는 회계를 전공하는데 촌 기업의 회계를 하다가 향 기업의 회계를 였다. 그러다가 1982년에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과 함께 도거리청부제도가 출범되였다. 나는 시기를 잘 만났다. 당시 향에서 흑룡강성 계서의 탄광을 도급주었는데 내가 청부맡았다. 그때는 돈을 얼마 벌겠다는 것도 없이 처음 하는 사업인지라 흥취와 열정, 책임심으로 하였다. 몇년을 하는 동안 규모가 꽤 커져 향에 경제이윤도 많이 창출하였고 5년이 지나자 기업이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김명세사장이 청부맡은 탄광은 착실한 경영으로 점차 향뿐이 아니라 현정부의 주목을 받게 됐고 현의 연료회사를 맡아달라는 부탁까지 받게 됐다. 그때 상황을 김명세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음향2] "현 연료회사에서 나를 오라고 하면서 나를 데려가는 대신 해마다 향에 인민페로 50만원씩 내기로 계약을 했고 나는 현 연료회사에 갔다. 나는 나를 인정하고 데려가 준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 더 열심히 하였다." 연료회사에 간후 김명세이사장은 남다른 경영실력을 과시하여 회사를 발전시켰으며 급기야 과거 사흘에 한번씩 왕복하던 특별화물차를 하루에 한번씩 왕복하도록 할 정도로 큰 규모로 회사를 발전시켰다. 물론 당연히 경제효익도 많이 늘어났다. [음향3] "1994년 중국에서 증치세를 징수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맡고 있는 회사가 경제효익이 컸던 이유로 세금도 많이 납부하게 되였다. 그후 일년에 인민페로 2천3백만원에서 2천 4백만원 정도의 세금을 납부하게 되자 정부에서 날로 더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도 그때로부터 인민대표, 당대표가 되였다."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김명세 사장은 약 10년 남짓한동안 해마다 나라에 2천여만원의 세금을 납부하였다. 1994년 계서의 연료회사는 직원이 약 1천2백여명인 연료그룹으로 바뀌였다. 줄곧 훌륭한 실적을 올렸던 김명세이사장은 당연히 그룹의 법인대표직을 맡게 되였으며 많은 자금을 보유하게 되였다. [음향4] "손에 있는 자금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던 중 나는 1998년 교육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그때 교육에 투자를 한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동안 교육에 투자를 하면서 많은 보람도 느꼈다. 교육이란 참 신비한것이다. 일단 한번 투자를 시작했다 그러면 계속 계속 투자하고 싶은 것이 교육인것 같다." [간주] 지금까지 중국 최대의 조선족 사립학교 백산학교의 설립자 김명세이사장이 교육산업에 투자하기 전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교육산업에 투자한 이야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중국 최대의 조선족 사립학교인 백산학교의 설립자 김명세 이사장의 이야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김명세이사장이 중국에서 제일 작은 행정단위인 촌에서 설립한 기업의 회계로부터 십여년간의 노력끝에 년 평균 인민페로 2천만원 이상의 세금을 납부하는 큰 그룹의 법인대표가 된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오늘은 기업에서 맨주먹의 신화를 일구어 낸 김명세 사장이 중국 최대의 조선족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중한양국의 교육교류에 기여하고 있는 이야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간주] 흑룡강성에서 년 인민페로 2천만원이상의 세금을 납부하는 큰 기업의 법인대표가 된 김명세 이사장은 수천만원의 자금을 보유하게 됐으며 교육에 투자를 하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 상황을 김명세이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향1] "손에 있는 자금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던 중 나는 1998년 교육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그때 교육에 투자를 한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동안 교육에 투자를 하면서 많은 보람도 느꼈다. 교육이란 참 신비한것이다. 일단 한번 투자를 시작했다 그러면 계속 계속 투자하고 싶은 것이 교육인것 같다." 1998년 김명세사장은 "백산학교" 이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취임후 김명세이사장은 인민페로 6천만원을 투입해 학교건설을 강화했습니다. 연길시 모아산 국립 삼림공원내에 위치해 있는 "백산학교"는 현재 45.000평방미터의 부지에 초.중.고.유학부가 한 캠퍼스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하고 있으며 현대 교육시설과 최고의 선생님들 및 우수한 인재가 모여 조화로운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업가가 왜 교육에 투자할 생각을 하게 됐는지 김명세이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음향2] "그당시 교육에 흥미가 있었고 무슨 일을 규모있게 해보려고 했다. 그당시에는 꼭 학교를 하려 한것은 아니다. 당시 흑룡강에서 탄광이나 석탄연료공사 같은 것은 교류도 많았고 힘들었다. 또한 나이도 들면서 좋은, 보람이 있는 사업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학교를 하게 됐다. 처음에는 규모가 크게 않했는데 하다보니까 점차 규모가 커졌다. 그렇게 한것을 지금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피곤할 때가 많지만 규모가 이미 커졌고 대외교류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과의 교류도 인제 10년째 하고 있다. 한국의 서울과 대전에 중국어학원도 있다." 다 아시다시피 교육투자는 다른 투자에 비해 투자가 크고 이윤이 적습니다. 현재 1200여명의 학생을 보유하고 있고 예술양성센터와 유치원까지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산학교"의 이윤은 여느 기업만큼 크지 못합니다. 특히 6천만원의 자본금을 회수할려면 적어도 30년은 걸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명세이사장은 교육에 투자한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공한 사업가가 이윤에 대한 계산을 못해서 교육에 투자한것이 아니였습니다. 이윤만을 위해서였다면 교육에 투자도 하지 않았을것이라고 김명세이사장은 말했습니다 . [음향3] "백산학교의 경우 거의 6년간은 이윤이 거의 없었다. 설사 이윤이 조금 있다고 해도 계속 재투자에 이용했다. 작년까지 큰 투자가 끝났으니까 올해부터는 350만에서 400만정도는 쟁취할 가능성이 있다. 투자 자본금은 30년이 가야 회수가 가능해진다. 처음부터 돈을 벌 생각이 없었다. 만약 돈을 벌 생각이였으면 처음부터 부동산같은것을 했을 것이다. 다만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힘들어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보람이 있는 일이다." 보람이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교육산업 투자였지만 쉽지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김명세이사장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때마다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각오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냈습ㄴ다. [음향4] "어려운일들은 물론 많았다. 내가 교육전문가가 아니다보니까 처음에는 힘들었다. 교육은 힘으로 되는것도 아니고 절차와 과정이 필요했다. 처음에 시작할때는 자신있게 시작을 했으나 결국 시작을 하니까 힘든것이 많았다. 하나는 선생님들의 대오가 안정되지 못했다. 오고가는 사람이 많았다. 또한 교육에 몸담궈본적이 없기에 교장 초빙도 여러차례를 했다. 2001년부터 최근 4년간에야 모든 틀이 제대로 잡혔다. 입학율이 높아졌다. 학생들의 중점학교 입학율이 높아졌고 특히 베이징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도 있다. 그뒤로는 고급중학교의 학생모집도 쉬워졌다. 그래서 지금 학생모집같은것은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다른 학교는 다 학생들이 주는 상황에서도 우리학교는 문제가 없다." 특히 중국은 사립학교에 대해 중시는 하나 자금적으로는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정규적인 사립학교는 국립학교와 꼭 같은 인정을 받으나 경제상에서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학교에 대한 투자는 김명세이사장이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김명세 이사장은 처음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는 생각이 있어서 한것이 아니였기에 아무리 큰 곤난이 있어도 이겨나갈 자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중국에 유학오는 한국유학생들이 날로 많아지자 중한간 문화교류에 더 큰 기여를 하고 더 많은 일들을 하고자 김명세이사장은 베이징에 한국학생을 전문 상대로 한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김명세이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향5] "현재 연길의 학교들은 규모가 짜여서 체계적으로 나가고 이제부터는 힘이 안들리라고 생각을 한다. 경제상에서는 크게는 몰라도 일정하게는 시설이라든가 남 못지않게 해나가고 있다. 베이징쪽에서도 작년부터 하고 있는데 목적은 백산학교를 설립한 목적과 같다. 교장선생님의 실력을 믿고 베이징에 한번 해보고자 한다. 하는바 하고는 일반학교가 아니라 보람이 있고 시간을 따지면 1, 2년이 지나면 3년 되는 해에는 베이징에서 가장 훌륭한 학교로 만들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국인 학부모들이 우리 학교에 자녀를 맡기기만 하면 마음을 놓을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저 한다. 물론 이렇게 한다는것이 말이 쉽지 실제 하려면 쉽지 않다. 여러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먹는것부터 자는것, 휴식, 수업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나는 노력한것만큼 나온다는 말을 믿는다. 노력을 하면 다 되고 특히 교육은 힘으로 하는것도 아니고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다." 김명세 이사장은 교육을 경제시장과 연결하는 것은 너무한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늘 경제를 앞자리에 놓았었더라면 교육에 투자를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명세 사장은 교육에 투자를 하고 관리나 경영에서 잘되면 일정 정도 경제소득을 얻을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경제이익을 목적으로 한다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는 다른 기업은 투자 즉시 이윤이 나지만 교육은 아니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교육에 투자하고저 하는 사람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김명세 이사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음향6] "교육은 최소 3년에서 5년은 지나야 이윤도 나기 시작한다. 교육을 1년을 해서 효익을 볼려고 하는 사람은 아예 시작을 안하는것이 좋다. 그런 사람은 100%는 아니더라도 99%는 실패할것이다. 앞을 내다보고 장원한 이익에 입각해서 하는것이 교육이기에 일반 경제시장과는 구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일이 보람있고 흥취가 있고 현재 생활도 넉넉하니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는 자식들한테 재산을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은 한적이 없다. 일을 하나라도 크게 해놓고 내가 안할 경우 그 사업을 물려주려 생각한다. 현재 조금씩 참여를 하고 있으니까 이제 3년이나 5년이 지나면 다 맡아서 할수 있지 않겠냐 생각도 한다." [간주] 지금까지 중국 최대의 조선족 사립학교인 백산학교의 설립자 김명세 이사장의 이야기를 보내드렸습니다. (취재, 정리:조설매) * 이 기사는 2005년 4월 4일과 11일 방송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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