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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숙-빈곤촌을 초요마을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8월30일 21시38분    조회:19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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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언현 고려채촌 당지부서기 김옥숙 사적 파언현 와흥진 동쪽으로 몇리 떨어진 곳에 조선민족특색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유람지가 있다. 기세 드높이 우뚝 솟은 귀틀문,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화초수목, 순박하고도 옛스러운 민속풍정, 독특한 풍격을 자랑하는 농호사택 ... ... 유난히 두드러지게 안겨오는 이 모든것들은 완연히 한폭의 수채화마냥 오가는 유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곳이 바로 말그대로 마을이자 유람지고 유람지자 마을인 살기 좋은 고장-고려채촌이다. 그러나 몇년전만 해도 이곳은 "개인 날이면 먼지세상, 궂은 날이면 감탕천지"로 일컸던 락후한 고장이였다. 오늘의 변모가 화제에 오를 때마다 고려채촌 사람들은 이것은 다 김옥숙(녀)서기의 공로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으며 그에 대한 자랑을 늘여놓군 한다. 그만큼 그는 촌민들을 위해 몸과 마음 다 바쳐 사업했던것이다. "촌민들을 치부에로 이끄는것은 나의 직책이다" 1998년, 그는 촌민들의 한결같은 옹호속에 촌부녀 주임으로부터 촌당지부 서기직에 나서게 되였다. 그는 본 고장 출신으로 고려채에 대해 손금보듯 했다. 그는 취직발언에서 "촌민들을 치부에로 이끌어 나가는것은 나의 영원한 추구이고 직책이다."라고 태도표시를 했다. 그리고 이 호언승낙을 실현하기 위해 "과학기술로 촌을 일떠세우고 산업화로 촌을 부유하게 만들고 생태조절로 촌을 조화롭게 장식하는" 발전전략방침을 제정하고 구체적인 조치들을 에누리없이 수행해나갔다. 고려채촌은 60여년의 수전농사력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몇해 그들은 재래식농사기술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데서 수확고도 소득도 새로운 제고를 가져오지 못하고 날로 발전하는 시장경제형세에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하기마련이다. 이같이 인식한 그는 현과 시로 농업기술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영농기술과 상질벼종자를 인입해 들이고 생물유기비료를 사용함으로써 벼수확고와 미질을 새로운 차원에로 끌어올리고 다년간 소득이 미끄럼치던 국면을 돌려세웠다. 그는 또 조선족들에게 벼농사는 성숙된 산업이므로 어디까지나 버릴것이 아니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미 거둔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벼생산을 무공해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벼의 생산, 경영, 판매 전반 과정을 일체화하는 벼농사산업화목표를 내오고 2001년도부터 박약한 고리인 벼정밀가공에 모를 박아 가공공장을 앉힌 밖에 상표, 포장, 가격 등을 통일시키고 통일판매를 실시함으로써 대외로 고려채입쌀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지명도를 제고하고 '고려채'브랜드를 명브랜드로 부상시켰다. 원견성있는 이 전략방침은 이 촌 벼농사의 시장경쟁력을 크게 강화시켰는바 2003년도 전국 각지에서 알곡판로난으로 아우성칠 때도 고려채입쌀만은 시장가격보다 키로그람당 1원 20전 더 높은 가격으로 전부 판매했다. 이해 이촌 촌민들은 판로난 고초를 격을 대신 수입을 30만원 더 올리는 단맛을 보았다. 김서기는 벼농사를 주도산업으로 삼으면서도 벼농사에만 메달리지 않고 다각경영을 병행할것을 주장했다. 1999년, 고려채를 지나는 '흥륭삼림철로 2일 관광코스'가 열렸다. 그는 이 절호의 발전기회를 포착하고 상급 유관부문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고려채를 민족유람구로 개발할것을 신청하여 비준받은뒤 관광유람지건설을 산업화의 전략적고도에 올려 놓고 빈틈없이 추진시켰다. 우선 기초시설건설에 모를 박아 마을환경을 개선하고 민족풍미, 민속오락 등 조선족 전통 특색이 짙은 음식점, 오락장소같은것을 새로 세운 밖에 담차게 국내 첫 '동북전통 생산생활용품전람관'을 짓고 전람관에 40년대, 50년대 농민들이 상용했던 각종 생활용품 100여가지를 구해다 전시했다. 몇년간 끈질긴 노력으로 현재 고려채는 흥륭삼림철도2일관광코스가운데서 가장 특색있는 유람구역으로 지목되고 관광유람업이 명실공히 새로운 산업으로 뜨고 있다. 다방면으로 다각경리항목을 주문해오던 2000년 그는 철려 등지를 고찰할 때 패모재배가 투자가 적고 경제효익이 빠르고 믿음성이 커다는것을 료해하고 이를 부업항목을 정하고 외지에서 기술자를 초빙해 재배기술을 강의하고 현장지도를 따라세움으로써 패모재배호들의 뒤걱정을 덜어주었다. 패모재배호는 초기의 몇호로부터 현재 16호로, 재배면적은 30여무로 늘어 났는데 그들은 해마다 20여만원원의 순수입을 올리고 있다. 요 몇해 그는 촌민들의 국내외로무수출을 새로운 치부항목으로 삼고 이를 촌사업의 의사일정에 올려 놓고 착실히 틀어쥐였다. 그는 촌민들이 출국수속을 밟는데 애로가 많은것을 헤아려 자기가 직접 나서 조직의 이름으로 대신 밟아주고 경비가 곤난한 문제를 도와 해결해주었으며 국내 로무일감도 적극 알선하여 여유로력이전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었다. 현제 이 촌에서는 무려 80여명 로력이 상년적으로 국내외로무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 수입이 약 4백만원을 헤아린다. 이 같이 그가 큰벌이 작은벌이 가리지 않고 다원화발전모식을 실시한데서 촌민들의 경제수입이 해마다 상승선을 끗어오고 있는데 현재 인구당 수입이 4000여원에 달해 그가 촌당지부서기로 나선 그 해보다 근 5배 늘었으며 고려채는 드디여 락후 모자를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당지 부유촌 행렬에 들어섰다. "촌민들을 위해 일하는것은 나의 의무이다" 그는 1979년부터 할빈시 인대대표로 활약해왔다. 하기에 그는 자기를 촌민들의 공복으로 간주할뿐 종래로 촌의 "어른"인채 유세하며 "에헴"해본적이 없다. 그만큼 그의 마음속에는 촌민들의 리익이 항상 첫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모든 정력을 몽땅 다 촌민들의 리익을 도모하는데 몰부었다. 고려채 사람들은 수십년을 두고 지표수를 음료수로 사용해 왔다. 그런데 이 지표수에는 인체에 해로운 여러가지 화학성분들이 들어 있어 상수도를 가설하는것이 촌민들의 일대 소원으로 되였다. 촌민들의 소원이자 바로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자각한 그는 촌의 경제가 넉넉지 못한 형편에서 온갖 신고를 무릅쓰고 상급 유관부분을 수차 오르내리며 교섭하여 전용자금 16만원을 얻어다 2000년도 마침내 상수도를 가설하고 촌민들의 수십년 소원을 끝끝내 성취시켜 주었다. 촌민들은 내심으로 그의 책임감에 감복하고 그의 실력에 탄복했다. 마을환경개선은 그가 촌민들의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해놓은 두번째 좋은 일이다. 그는 "개인 날이면 먼지바닥, 궂은 날이면 감탕천지"로 불리우는 도로문제해결에 모를 박아 상급의 전용자금을 끌어오고 촌에서 보태고 촌민들이 출력하는 방법으로 선후 60여만원을 투자하여 우선 마을안 6가닥 큰길을 전부 모래포장도로로 만들고 길 량옆에 배수로를 빼고 가로수를 심고 가로등까지 가설하여 규격화에 록화, 미화, 향화를 실현한 뒤를 이어 지난해에는 또 큰길을 콩크리트길로 번신시켰다. 이는 전현에서 첫번째로 되는 촌급 콩크리트도로이다. 현재 고려채는 당지 환보형 마을의 일인자로 부상했다. 촌민들의 질고를 구석구석 헤아려 그는 고려채의 일촌지장으로서 큰 일로만으로도 여간만 바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렇다 하여 한번도 촌민들의 질고를 등한시한적 없다. 2002년 본촌 촌민 리준식가정에서 농사가 재해로 페농되다싶이 했다. 이는 원래 생활이 곤난한 리준식가정에 설상가상으로 되였다. 설을 앞두고 그는 리준식가정을 찾아가 조직의 명의로 따뜻한 설문안을 전달한밖에 설준비에 보태 써라고 개인 돈 3백원을 내놓았는가 하면 이듬해 농사철이 닦쳐 오기 바쁘게 또 종자며 비료며 농약이며를 미리 보내주어 새해 농사에 근심걱정을 덜어주었다. 이에 감동된 리준식농민은 목이 꺽 메였다. 2003년 생활형편이 어려운 한 가정에서 한국 나가는 수속을 밟아놓고 로비가 모자라 그를 찾아왔다. 이 가정을 놓고 말하면 돈은 꿔도 언제 갚을런지 알수 없는 처지이다. 그러나 그는 이때에도 이 가정에서 출국수속을 손에 쥔다는것은 하늘에 별따기보다 더 힘든 일이라며 두말없이 5천원을 내놓아 이 가정에서 지체없이 제시간에 출국길에 오르게 했다. 2004년도 "한가지를 면제하고 두가지를 보조"하는 보조금이 내려 왔을 때 그는 마을을 떠나 외지에 나가 있는 농호들의것을 대신 타서 우편으로 부쳐 보내주고 병이 있거나 년세가 높은 가정의것도 일일이 집에까지 가져다 주어 그들로 하여금 당과 정부의 혜택을 제때에 피부로 느끼도록 했다. 이 밖에 어느 가정에 불화가 생겨도, 뜻밖에 불행이 닦쳐도, 농사자금이 딸려도 ... 어느 하나 그를 찾아오지 않는 일이 없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한결같이 찾아오는 사람을 따뜻이 반겨 주고 일일이 힘껏 도와주었다. "촌민들의 일이라면 작은것이 없다" 이는 그가 입버럿처럼 외우는 말이다. 집체 돈이라면 일전도 다치지 않아 근검절약은 그가 집체살림을 관리하는 원칙이고 렴정자률은 그가 자신을 단속하는 좌우명이다. 평소 그는 집체의 일로 자주 출장을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는 특수정황을 제외하고 공공뻐스로 갈수 있는 일에 택시를 부르거나 호강을 피워 값비싼 려관에 들어본적이 없다. 유람지의 촌간부로서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가운데는 공가일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인의 일로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런 일에 봉착할 때마다 그는 개인일로 찾아 온 사람은 더 말할나위 없고 집체일로 찾아오는 사람들까지도 적지 않게 자기 개인돈으로 접대했다. 집체이름으로 접대하는 습관을 들여놓으면 끝이 없기때문이란다. 이렇게 하면 두번 찾아올것도 한번 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번 찾아올것도 두번, 세번씩 찾아오게 된다는것이였다. 최근년간 촌에서 마을기본건설을 크게 벌리다보니 크고 작은 공사가 적지 않았다. 이런 일감을 대외로 청부시킬 때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감을 얻기 위해 돈이며 물건같은것을 들고와 통사정을 하군했다. 그때마다 그는 일일이 되물리치군 했다. 이 일을 알게된 친구들이 지금 사회가 다 그런건데 왜 어리석게 노는가고 리해하지 못해 묻자 그는 촌간부로서 어찌 그렇게 할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군 했다. 집체 돈이라면 일전한푼 다치지 않고 아껴 쓰는 그였다. 빛나는 영예 진실한 평판 김옥숙씨는 고려채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사업해온 훌륭한 간부인 동시에 당기앞에서 두주먹 불끈 쥐고 장엄하게 맹세한 그대로 실천해 온 훌륭한 공산당원이다. 하기에 촌민들은 그를 "친인"이라 친절히 부르고 조직에서는 선후로 그에게 "전현 10대녀걸", "할빈시 민족단결진보선진 개인", "파언현 모범촌당지부서기", "파언현 우수공산당원", "파언현 3.8홍기수" 등 영예칭호를 수여, 일전에는 또 "할빈시 우수공복"으로 선정했으며 그가 이끄는 고려채촌에도 "할빈시문명촌", 촌당지부에도 "전현 선진당지부", "현 선진기층당지부" 등 영예칭호를 수여했다. 하지만 김옥숙씨는 "저는 인대대표로서 인민을 위해 해야 항 일을 했을뿐입니다. 그런데 당과 정부에서는 저에게 이 같이 큰 영예를 주었는데 해 놓은 일에 비해 너무나도 과분한 영광인줄로 압니다." 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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