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00대 명교수의 한사람-채미화 교수
인터뷰 정리 내용-
중국 100대 명교수의 한사람으로 불리우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채미화 학부장, 교사생활에 종사한지도 어언 22년이다. 채미화 학부장을 만나 그녀가 그동안 걸어온 길들에 대해 알아본다.
기자(이하 기로 약칭):22년간 교사사업에 몸담아 오면서 그동안 걸어온 길들이 달고 쓰고 여러가지가 많을 것 같은데, 22년전 처음부터 연변대학에서 교사직에 종사한건가?
채미화 학부장(이하 채로 약칭): 22년전에 석사를 졸업하고 연변대학에 교원으로 남았다. 연변대학 제1기 석사졸업생이다.
기:당시 석사졸업생은 몇명?
채:18명이었다. 우리 학과에 6명, 기타 학과 화학, 역사 석사생 모두 해서 18명이었다. 그중 제가 유일한 여성, 유일한 학생출신이었다.
기:당시 학교에 남은 석사는 몇명?
채:2명정도가 사회로 나가고 나머지는 다 학교에 교원으로 남았다.
기:학부장님은 당시 어느 학과 교수를 했는가?
채:조선문학석사연구생 졸업이었기에 곧바로 조선고전문학사연구와 교수에 종사했다.
기:22년전 첫 강의 인상은?
채: 생생하다. 지도교원이었던 허문석 교수님은 이미 타개하셨다. 아주 근엄하시고 자애로우신 분이었다. 졸업후 실습교학이 있었는데 실습교학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켜보시고 일일이 깨우쳐주셨다.
기:그 때 강의한 과목은?
채:조선고전문학사였다. 박지원의 소설 <호질>에 대해 강의했던 기억이 난다.
기:그 때 학생은 몇명?
채:학생은 약 40명되는걸로 기억된다. 학생대부분이 저보다 나이가 연상이었다. 조금 긴장했다. 90분 강의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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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강의후 지도교수의 평가는?
채:첫마디 말씀은 잘했다, 그런데 몇곳은 사투리를 썼다고 말씀하셨다.
아주 열심히 표준어를 쓰려고 했는데 그래도 사투리를 썼던겉 같다.
기:22년간 가장 많이 강의한 분야가 조선고전문학사였는가?
채:나중에는 조선현대문학사, 조선당대문학사 등등 전부다 했다. 저의 학부는 석, 박사수여권이 있는 학부이고 조선문학 교연실이 중점 교연실이다. 그래서 저를 비롯해서 전부다 석,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사람들이다. 교연실의 선생님들은 교학량이 아주 많다.
금년부터 명년까지 조선미학을 큰 과제로 연구하려 계획중이다.
기:박사학위는 언제 획득?
채:94년에 받았다. 10년전 박사입학 수속을 할때 8살난 딸애도 소학입학수속을 함께 했다. 아주 감회가 깊다.
기:22년간 손길을 거쳐 나간 제자들은?
채:직접 논문을 지도하여 석사생 15명 정도를 졸업시켰고, 현재는 박사생 6명의 지도교원을 담당하고 있다.
기:22년간 손길을 거쳐 나간 제자들은?
채:직접 논문을 지도하여 석사생 15명 정도를 졸업시켰고, 현재는 박사생 6명의 지도교원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제가 맡은 과목-조선한국 당대 문학사는 국가 정예학과 과목으로 추천되었다. 2003년 길림성 정예학과로 추천되었고, 올해는 교육부에까지 추천되었는데 아직 결과가 내려오지 않았다.
기:박사공부는 몇년 했는가?
채:4년했다.
기:딸애도 입학시키고 박사공부를 하면서 여러가지 곤난들이 많았겠는데, 그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채: 건강이 안 좋았다. 워낙 건강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애를 키우고 학교에 데려가고, 박사공부 새벽까지 하면서 참 힘들었다.
기; 당시 박사논문의 테마는?
채: 고려문학 미의식연구이다. 그때까지 미적연구는 그때까지 공백이었다. 그래서 저의 박사학위 논문은 한국에서 두번 출판되었다. 문학에 대한 미학적인 연구가 공백인 상황에서 이루어졌기때문에 어려웠다. 하지만 어려운만큼 인기도 있었다.
기: 고전미학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하고 있는가?
채: 현재 박사생지도연구분야가 주로 고전미학연구이다.
기: 학부장을 하면서 학술연구도 하고 여러가지 시간조절이 필요할 것 같은데∼
채: 당연히 시간이 딸린다. 하지만 중점학과의 학부장으로서 학술연구는 모범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많이 활용하는 시간은 방학시간이다. 지난 방학기간에는 논문을 두편 발표했다. 올해만 이미 3편 발표되었다. 겨울방학은 활용 많이 했는데, 여름방학에는 학술활동이 많아서 좀 힘들었다.
기: 22년간의 교사종사생활가운데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채: 글쎄∼글을 쓰고 가르치는 사람의 기쁨이라는 건 내가 써낸 글이 활자화되어 세상에 태어날때 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가르친 제자들인 사회에서 씩씩하게 활약하고 있을 때 아주 큰 힘을 느끼게 된다.
가정적으로 편안한 환경이다. 남편이 많이 지지해주고, 딸애도 이미 대학에 갔다.
기: 계몽선생님은?
채: 박사지도교수는 이미 타개하신 정판룡 교수님이다. 한국에서 해외동포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아주 훌륭한 분이셨다.
기: 지금부터는 선생님이 민족 문화와 교육을 이끌어가야 할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좋은 학술성과를 많이 올리고, 많은 훌륭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하길 바란다.
(끝)
(취재, 정리:이명란)
* 본 기사는 2004년 12월 2일과 8일에 나누어 방송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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