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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원과 '사랑의 집'의 감동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월9일 10시19분    조회:8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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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놈들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안아달라고 조를 때마다 내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애수에 젖어 듭니다.이 피덩어리들을 버리고 어떻게 가겠습니까"라고 측은한 눈길로 천진란만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는 한 중년사나이, 그가 바로 "사랑의 집(원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학원(한국인,남,1958년생)씨이다.
 
김학원씨가 연길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1992년3월 즉 중한수교가 이루어지기 몇 달 전이였다.그가  연길을 찾게 된 것은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가문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여 난 김학원씨는 어머니의 얼굴을 익힐 사이도 없었다.
 
"어른들의 얘기에 따르면 어머니가 세상을 떴는 데도 내가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소학교) 5학년 때에 우리 집에 들어왔던 계모가 떠나게 되였는데 그때 울면서 어머니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저를 울보라고 했습니다.나를 낳아 준 어머니는 어머니라고 불러 보지도 못했지만 계모의 사랑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집을 몰래 떠났어도 계속 애타게 찾았습니다"고 김학원씨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때의 정경을 회고했다.
 
그후 아버지도 그가 고등학교(고급중학교)를 다닐 때에 저 세상으로 갔고  7남매 중 3남매가 선후로 세상을 떠가면서 현재 4남매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런 가슴아픈 사연이 그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못했다 저 멀리 중국 연변에도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어린이들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하고 아내와 함께 연길시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 인젠 장장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단다.그는 연길시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그 무슨 뚜렷한 후원이 있어 용기를 가지고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바로 그 가슴 쓰라린 상처이기 때문이였단다.
 
처음 연길에 왔을 때, 버려진 아이들이 적지 않은 것을 목격하게 된 김학원씨는 "사랑의 집"인 고아원을 설립하기로 작심했다.
 
'길봉의 집'
 
"사랑의 집"고아원에는 다른 이름 "길봉의 집"으로 지엇는데 여기에는 그러한 원인이 있다. 
 
1993년 10월28일에 최초로 "사랑의 집"을 찾아 온 애가 바로 길봉이란다.그 어린이는 학교를 다니지 못한 애였다.이 집에서 11살 나이에 소학교 1학년에 입학하여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많은 고아들이 이 사랑의 집에 찾아왔다.
 

사진 찍어달라고 졸라대던 주은해(뒤쪽 여자애)


 
"먹이고 입히고 학교를 보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모든 아이들에에 사랑을 나누어 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라고 김원장은 설명하면서 "여기에 온 애들은 모두 고아들이기에 진정 가정의 사랑을 피부로 느끼게 하자면 진짜 한 식솔이 되여야 합니다"라고 가족의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인젠 셈이 든 아이들에게는 늘 부모들은 어차피 저 세상을 가기 마련인데 너희 부모들이 일직 세상을 떠났을 따름이고 나도 너희 들보다 먼저 제 세상을 가기 마련이니 별로 이상할 것이 아니니 절대 친부모가 없다고 상심해서는 안된다고 타이르고 있다.
 
또 학교에서 교원들이 "사랑의 집"의 아이라고 봐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한번은 사랑의 집 아이가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과 싸움이 벌어졌는데 하학하여 집에 와 자랑삼아 그 애가 자기보다 더 맞았다고 얘기하자 김학원 원장은 대뜸 "사랑의 매"를 치면서 호되게 꾸짖었다고 한다.또 아이들의 자신심을 키워주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위축감이 없게끔 자랑할 것은 마음 놓고 자랑하라고 타이른단다.지금 이 "길봉의 집"에 58명의 애들이 친형제처럼 살아가고 있다
 
"신애의 집" 과 "은애의 집"
 
김 원장은 장애아동의 집을 "신애의 집”이라 이름지었다. 주신애(여,3살,뇌성마비)라는 장애어린이가 이 집에 처음 왔다 해서 이렇게 이름을 지은것 이다.이러한 뇌성마비 등 장애인 어린이들이 지금 이 집에 12명이 있다. 물리치료를 해주면 걸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손을 쓰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워 하고 있다.현재 나름대로의 놀이기구도 갗추어져 있지만 물리치료사, 특수교육전공자,사회복지사와 그 외 장애아동들의 옷을 씻어주고 먹여주고 교육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으므로 이런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김 원장은 내심을 털어놓고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진료소를 "은애의 집"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여기에는 눈물겨운 얘기가 깃들어 있다.
 
1999년 7월12일에 태여난후 하루 되는 뇌수막종양 어린이를 받게 되였는데 당시 뒤통수에 뇌수가 밖으로 흘러나와 일단 부딛쳐 터지기만 하면 생명이 매우 위태로웠다.김 원장은 즉시 생명의 경각을 다투는 그 어린이를 한국에 가서 수술을 진행,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그래서 그 애를 주은애라고 이름짓고 이 진료소도 "은애의 집"이라고 이름을 지었다.지금 "은애의 집" 무료진료소는 정부에서 생활 보조를 받아 살아가고 있는 저소득층 자들에게 무료로 의료혜택을 베푸는 곳이다.기자가 찾아갔을 때 주은애는 활발하고 영리했고 카메라를 보고 자기들에게도 사진을 찍어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샤타를 눌러 주었다.(뒤의 여자애)
 
"사랑의 집" 애들은 모두 버려진 애들
 
전에 연변에는 고아원이 별도로 없어 일단 고아만 있게 되면 성에서 운영하는 장춘고아원에 아이를 보내지 않으면 경노원 같은 곳에 의탁하는 경우가 있었다.이렇게 버려진 애들 대부분은 병원에서 오는데 발육이 정상인 애들은 이러저러한 소문 끝에 아이가 없는 집으로 입양가는 경우가 많지만 입양하는 가정이 없으면 "사랑의 집"에 오게 된다고 한다.그러나 장애를 가진 어린이는 그 누구도 입양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 세상에 생명으로 태여 났으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살아갈 자격은 같은 것입니다. 생명은 다 마찬가지 일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더 잘 보살펴야 함이 인간적인 책임이 아니겠습니까?"라고 김 원장은 의미심장하게 얘기하고 있다.
 
이 집에 오는 애들은 버려진 애들인 것만큼 대부분 성씨도 모르거니와 이름도 지어지지 않았다.그래서 상황에 따라 이름을 지어주는데 우에서 언급한 '주은애'가 바로 그 일례다. '주은애'란 주어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은혜를 받은 애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또한 어느 민족할 것 없이 고아이면 모두 수용하는데 이 집에는 3분의 1의 애들이 한족애들이라 한다.
 
처음 연길시에 "사랑의 집"을 세웠을 때 정부의 일부 관원은 물론 세간에서도 이러저러한 얘기들이 많았다. "한국인이 무슨 의도로 중국에 와서 고아원을 꾸리는 걸가?", "그 한국인이 이제 며칠이나 고아원을 꾸리고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가 두고 보자", "저 사람이 정신없는 사람이다"라는 등 얘기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김 원장은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들에게  이미 정답을 주었다.
 
하여 2005년에는 길림성 외사청,길림성 교육청,길림성 민정청으로부터 "외국우수전문가" 칭호를 수여했고 그 해에 또 연길시 새세대관심위원회로부터 "감사패"를 기증받았으며 2006년에는 중공연변주위,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로부터 "연변우수외국전문가" 칭호를 수여했다.
 
사회적 복지가 잘 될 때는 바로 사랑의 사회가 온다
 
"사회적 복지가 잘 될 때는 바로 사랑의 사회가 오는 시대입니다"라고 김 원장은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하고 있다.
 
김 원장은 초창기에 그 무슨 후원의 손길을 바라거나 후원회를 세우고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하여 당시 저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느냐 하면서 찾아 오는 사람도 별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사랑의 집"이 인근에 알려지면서 연길시의 부분적 학교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찾아와 봉사자들이 점차 늘기 시작, 이 학생들은 남을 도우러 왔다가 되려 인간의 됨됨과 사랑을 나누는 도리를 알게 되였다면서 작년에는 무려 천여 명의 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여기를 찾아왔단다. 지난해 방학기간에도 북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연변적 대학생들이 이 "사랑의 집"을 찾아와 며칠간 자원봉사를 하고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인간애를 여기에서 되려 배우고 가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다면서 이제 시간만 나면 꼭 찾겠다고 한단다.
 
몇 년 전에 미국 청년봉사단이 이 "사랑의 집"에 왔는데 그들은 집 기초파기를 도왔던 것이다. 밤에도 등불을 켜 놓고 한삽한삽 기초흙을 파헤치면서 그들은 기초를 판다는 자체가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또 독일의 한 유지인은 상해에서 김 원장의 사업을 알고 무료로 유리를 제공함과 아울러 보온성이 아주 좋은 삼겹유리문까지 지원해 주었단다.
 
이미 70명을 이 고아원에서 "졸업"시켰는데 이들은 이 고아원에서 유치원은 물론 소학교,중학교,대학까지 마치고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매번 휴가일이나 설 명절이면 이들은 "아버지", "어머니"인 사랑의 집을 꼭 찾아 온단다.
 
현재 이 "사랑의 집"에는 68명의 고아들이 행복하게 자라고 있는데 나이가 가장 어린애는 불과 몇 달, 가장 많은 애는 20살이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마침 며칠 전에 병원에서 버려진 애 4명을 안아왔다. 그 중 살아갈 가망이 없다는 애기를 한명 안아왔는데 김 원장의 보살핌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다른 한 아기는 언청이인데 애들의 장래를 위해 시기가 되면 제때에 수술을 해 주고 있는데 몇 차례의  성형수술을 해야 하므로 수술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김 원장 부부는 지금도 어린 애들과 한 집을 쓰고 산다.밤마다 잠을 못 자는 것이 제일 고통스럽지만 인제 아주 습관이 되여 있단다.아이들이 곁방에서 울면 당연히 잠을 못 자는 것은 물론 보모가 일단 문만 두드리면 "아이가 잘못되지나 않아나?"하고 가슴이 철렁한단다. 그래서 밤에 아이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에 가장 행복하단다.
 
김 원장 내외는 아이를 갖지 않았다.기자의 의아한 질문에 김 원장은 "일단 아이가 있으면 '사랑의 집' 애들이 소외감을 가질가 봐 완전히 중절수술을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며칠전에 안아온 언청이 애를 어린이들에게 얼굴 익히는 모습.

김 원장과 부인의 피타는 노력으로 지금 이 사랑의 집은 호텔도 비할바가 안된다. 그 일례로 화장실만 해도 46칸 즉 매 칸 마다 화장실과 세면실 목욕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어찌나 깨끗한지 신을 신고 들어가기 부끄러울 정도이고 8대의 세탁기로 어린이들의 옷을 빨고 있어 어린이마다 깨끗한 옷들을 입고 있었다.또한 아이들의 식사 메뉴는 아주 정결하게 짜여져 있다.이미 10여 년간 식당 일을 보고 있는 현지 아줌마들은 각자 아이들의 식성도 너무나도 잘 아는 전문가로 변신했단다.
 
현재 이 사랑의 집은 어린이들의 과외를 위해 수천 권의 도서들이 갖추어 져있는 도서관들이 집집마다 있고 칸칸 마다 TVRK 있는가 하면 탁구장, 놀이기구,건신기구 등 체육시설들이 아주 구전하게 갖추어져 있고 또 앞으로 고아들의 늘어남을 대비해 계속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김 원장은 "이제 연변지역에서도 사회복지의 인식이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해야 하며 남을 도와 나서는 것이 바로 나를 건강하게 한다는 인식전환이 절실히 필요합니다"고 하면서 "이제 나는 죽어도 원이 없고 또 죽은 다음에는 '사랑의 집' 앞산에 묻는 것이 소원"이라 했다.
 
하여 "사랑의 집" 청사를 등록할 때에 그 어느 개인의 집으로도 등록하지 말고 바로 "사랑의 집"으로 등록했다 한다.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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