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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에서 일궈낸 25년간의 묵시록', 김진경 박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3월2일 20시13분    조회:9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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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죽으면 장례식을 하지 말라. 무덤을 만들지 말라. 나의 모든 장기는 의과대학에 기증한다. 누구에게도 죽음에 대한 보복을 하지 마라. ”
아주 압축적으로 이 사람의 인생관이 느껴지는... 짧지만 강한 울림이 느껴지는 그런 유서다.

" 나에게 나이를 묻지 말라,달력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다. 나에게 고향도 묻지 말라. 세계 시민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 라고 말하는 사람.

한평생 차별 없이 사람을 사랑했고 중국 조선족에 대한 사랑으로 연변에 과학기술대학을 세워 운영했고 또 평양에 과학기술대를 세우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 전 세계를 상대로 세일즈에 나서고 있는 김진경 박사를 2월 28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났다.

만일 북한에 보복을 하면 내 죽음은 헛되다
▶ 총장님께 고향과 나이를 물어보면 혼난다고 들었어요.

- 저는 두 가지를 묻지 말라고 해요. 하나는 고향이고 또 하나는 나이예요. 우리에게는 정신적, 지적, 영적인 여러 가지 나이가 있는데 달력 나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 늘 청년으로 사시는 비결이 뭔가요?
- 비결은 간단합니다. 절대 열 받지 않고 걱정과 근심이 없는 것이에요. 제가 공산국가에서 25년간 일하고 있지만 걱정도 두려움도 없고, 열 받지 않으니까 늘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그렇게 평화가 있으니까 병이 생기지 않는 것 같아요. 믿음의 작은 신앙으로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 특히, ‘내 이웃을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사랑하라’는 것을 늘 실천하려 합니다. 때로는 오해도 받고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사랑은 대항할 것 없이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이 되지요.

▶ 국적이 몇 개세요?
- 미국국적을 가지고 있고,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명예시민이고, 중국 정부는 저에게 영구시민권을 줬어요. 북쪽 정부에서도 조선인민주의공화국에서 맘대로 다닐 수 있는 권한을 주었지요.

▶ 몇 개 국어를 하세요?
- 영어와 중국어를 비롯해서 철학을 전공하고 유럽에서 공부를 해서 독일어도 좀 합니다.

▶ 유서의 내용 중에 ‘누구에게도 죽음에 대한 보복을 하지마라’는 내용이 참 특이하네요.

- 87년부터 북한에 들어가서 일하고 있어요. 이제 20년이 되는데 그동안 곡식을 갖다 주고, 병원을 세우고, 약품을 갖다 주었어요. 94년에는 곽선희 목사님이 자금을 마련해 주어서 중국에서 소 490마리를 갖다 주고 목장까지도 만들었지요. 그런데 98년에 불행한 사건이 평양에서 있었어요. 오해가 생겨서 저를 미국의 CIA나 한국의 안기부 직원인 줄 알고 억류시켰는데 결국은 풀려났지요. 그때 미국시민이라 미국정부에도 유서를 썼는데 ‘내 죽음으로 인해서 절대 북한에 보복하지 마라. 만일 보복하면 내 죽음은 헛되다’고 했지요. 그것이 공개되면서 북한에서는 제가 정치적이지 않고 죽음이 임박해도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정말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해주게 되었지요. 마치 성경에서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총리가 됐듯이 저도 억류되고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북한에 대학을 짓고 총장으로 임명하는 오늘의 이런 날이 없지요.

연변 과기대에 이은 평양 과기대의 설립
▶ 억류 당시 고문은 없었나요?
- 그런 얘기는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웃음)
▶ 평양과기대의 설립배경과 개교일이 궁금해요.

- 98년 불행한 일(억류사건)이 지나고 2001년 북에서 초청을 했어요. 연변과기대 같은 대학을 설립해 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다른 나라에도 대학을 세웠는데 내 민족, 내 조국에 왜 못 세우나 싶어서 승낙을 하고 대신, 조건으로 인사권을 달라고 했어요.

설립총장으로 임명을 받고 한국에 있는 동북아 교육협력문화재단과 총장 김진경 박사에게 평양 과학기술대학 설립을 허가하고 땅을 줬습니다. 평양시 낭랑구역 보성리에 100만 평방 되는 한국 평수로는 3십3만 평의 대지에 건물이 12개 동이 있어요. 이미 건물은 다 완성됐고, 올가을에 개교할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 숙소도 안에 다 마련되어 있나요?
- 교직원기숙사, 학생기숙사, 게스트하우스 다 있습니다. 연변과기대도 학생과 교수 전원이 다 학교 안에서 삽니다. 총장공간도 학생기숙사 안에 있어요. 총장도 식당에서 학생들과 줄 서서 같이 밥 먹고 같은 공간에서 지냅니다. 그렇게 4년을 같이 생활하다 보니 학생들을 가까이서 보고 인격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참교육이 되고 있지요.

▶ 평양과기대는 종합대학인가요?
- 연변과기대는 대학중심이고, 평양과기대는 대학원 대학입니다. 북한에서는 대학원을 박사원이라고 하는데 평양과기대는 학부는 하지 않고 대학원만 하는 종합대학입니다.IT 공과대학, 경영대학원(NBA), 농업생명공학, 식품과학대학, 보건대학원을 개설했어요. 지금 연변과기대에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4년제 대학 과정에 간호대학을 세웠는데 북한에도 이런 간호대학으로부터 시작해서 의료기술자 양성, 보건대학 이런 것들을 세우려 하고 현재로서는 세브란스도 참여할 의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사권은 김진경 총장에게, 은행계좌는 하늘나라에
▶ 교수진들은 어떻습니까?
- 연변과기대는 10여 개국 교수가 와있는데 평양과기대도 세계 각국의 교수진으로 구성해 놓으려 합니다. 지난번 장관급회담 때 이종석 장관이 평양과기대에 과연 남쪽 교수가 가서 가르치게 되는지 북한에 질문을 했어요. 그때 북쪽 당국에서 모든 인사권은 김진경 총장에게 위임했고 남쪽 교수가 와서 가르치는 것을 우리는 국가적으로 보장한다고 했지요. 이렇게 해서 그 당시에 장관급회담 후에 수많은 언론과 TV에서 공개적으로 보도를 했지요.

▶ 우리 남한 쪽에서 교수가 어느 정도로 지원이 되는지요?
- 국제적인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 세 사람의 공동의장이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포항공대의 박찬모 총장, 말컴 길리스 전 라이스 대학 총장이 운영위원장으로 있는데요, 박 총장이 8월에 임기가 끝나면 자신이 직접 평양과기대 IT 학부를 책임지고 가르칠 겁니다. 그 외에도 아주 많은 분이 함께 참여하고자 진행하고 있습니다.

 ▶ 2001년부터 임명장을 받고 일을 시작하셔서 건물도 다 세우고 9월에 개교를 하시게 됐는데 그 비용은 다 북한에서 대는 거예요?
- 아닙니다. 북한에서는 땅만 제공해 주었어요. 예를 들어 붉은 벽돌은 중국에서 1,200만 장을 중국에서 들여와서 건물을 지었어요. 사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기적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서 저는 하늘나라에 은행계좌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웃음) 지금까지 학교를 짓는데 3,000만 불, 우리나라 돈으로는 300억이 들어갔는데 대기업 같은 곳에서 보낸 돈은 없어요. 좋은 동역자 중에 곽선희 목사님, 옥한흠 목사님, 이분들이 은퇴를 하시고는 젊은 동역자인 오정현 목사님을 비롯한 천여 개가 넘는 교회들이 도와주고 있어요. 제가 영국에서 공부할 때 주말이면 죠지 뮬러의 고아원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죠지 뮬러의 신앙을 배웠어요.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계산도 빠르고 계획을 세우고 선조의 신앙은 신화로 취급하는데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어요.

▶ 등록금은 받나요?
- 중국은 등록금을 받으나 학교 운영의 20%가 안 돼서 80%를 조달해야 운영이 되요. 평양은 무상교육이라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비롯한 잡비까지도 다 제공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맺은 북한인과의 인연으로 정보부에 혼쭐나기도, 결국 이민으로
▶ 영국유학까지 가셨는데 집이 굉장히 부유하셨나 봐요?
-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숭실학교와 명치대를 나오고 독립운동 한다고 만주에서 농업학교를 세우셨고 한국에 남은 가족들은 어머니가 다 보살피셨어요. 4남 2녀의 6남매를 보살피셨지요. 저는 서울에서 지하에 야간학교를 운영하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보성여자고등학교에서 독일어 선생으로 2년을 있다가 유학을 갔어요. 교사로 있을 때 받은 월급을 전부를 야간학교 아이들을 위해서 다 써서 비행기 값이 없어 화물선을 타고 서울에서 마르세유까지 내의도 양말도 없이 돈 20불만 가지고 유학을 갔지요. 그때 한경직 목사님이 배 값을 도와 줬어요.

▶ 혼자서 아르바이트 같은 것 하시면서 공부하셨겠네요.

- 학교 식당에서 3년 동안 설거지하면서 다녔지요.

▶ 원래 그렇게 무모하리만큼 겁이 없으세요?
- 많은 일을 하시는 귀한 분들이 지구 방방 곳곳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달력 나이 말고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이 특별히 성경의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의 신앙을 보고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다니엘서 4장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네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와 업적을 보고 내가 하나님을 즐기노라. 크도다! 그 이름이여, 능하도다! 그 업적이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사람에게는 큰 능력을 주십니다.

▶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가시게 되었는지요?
- 영국에서 4년 공부하고 돌아와 고신대를 설립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그 당시에는 한국에 있다가는 공산국가를 위해서 일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유럽에 있을 때 북한 사람과 사귄 것과 편지 한 것을 중앙정보부에서 알고 혼쭐이 났지요. 공산국가에 가서 일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미국에 가서 RTS(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 객원교수로 나가면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준비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때 중국정부로부터 교수로 초빙을 받아서 1986년에 갔어요. 처음부터 학교를 세우려고 간 것이 아니었어요.

중국에서 우리 민족들이 모여 사는 길림성, 요령성, 흑룡강성을 가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그런데 고등교육은 없더라고요. 중국에서 중국사회에 이바지하면서 함께 살려면 고등교육기관을 세워야 되겠다 하는 대학비전의 꿈을 가졌지요. 지금이야 중국에서 성공한 총장이라 도와주는 사람도 많지만 그때는 혈혈단신으로 어려움이 컸지요. 어느 곳에 가든지 나누고, 존경하고, 긍휼을 베풀고, 헌신하고, 용서하고, 희생하면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고 평화가 옵니다. 이런 사랑의 메시지 앞에서는 어떠한 주의도 체제도 없어요. 그래서 중국공산당과 아무런 잡음 없이 지난 25년을 함께 잘 지내오고 있어요.

어린 15살의 학도병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다짐한 약속
▶ 중국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요?
- 중학교 3학년 때 학도병으로 나갔어요. 전쟁이 6월 25일에 발생하고 30일에 학도병으로 지원을 했는데 대한민국 군인역사에서 제가 군번 있는 최연소 군인입니다. 그 뒤에 학도병들은 군번이 없었어요. 지금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매달 8만 원씩 받고 있어요.(웃음) 학도병으로 800명의 학생이 전투장에서 나가서 17명만이 살아왔어요. 그때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살려만 주시면 준비를 해서 북한과 중국을 위해서 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을 했어요. 저는 큰 달란트도 잘난 것도 없지만 어린 15살의 소년으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다짐한 그 약속을 지금까지 저버리지 않고 지킨 것밖에는 없어요.

▶ 북한에서는 왜 과기대를 세우려고 하나요?
- 중국에서 성공한 대학을 만들지 못했다면 북한에서 부탁할 일도 만무했겠지요. 중국에서의 지난 20년의 노하우를 평양에도 접목시켜서 그들과 같이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것이 크지요. 많은 분이 핵실험을 가지고 공격들을 하시는데 북한은 그것 때문에 국제사회와 연결고리도 없어지고 북한의 젊은이들을 해외로 유학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에요. 자기 나라에 와서 자기들 법을 지키면서 그 대신 세계 각국의 선진적인 과학 기술과 교육을 해줄 사람을 찾던 중에 저를 선택한 것이지요. 다행히도 이런 민족적인 사업에 많은 분이 기도와 격려로 동참해 주시고 좋은 직장을 버리고 평양에서 가르치려고 결심도 해주시고 정말 감사해요.

▶ 평양의 2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요?
- 세상이 변하니까 많이 변하지요. 그러나 주체사상은 안 변해요.(웃음)

[노컷뉴스] 2007년 03월 01일(목) 오후 10:03 가  가| 이메일| 프린트
(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 5분에 방송된다. 정리(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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