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성공한 40대 조선족 사나이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4월9일 10시35분    조회:1014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길 도심에 자리잡은 '무궁화소프트웨어 사무실'에 가면 판에 박은 듯이 컴퓨터 앞에 꼼짝 않고 앉아있는 한 중년을 볼 수 있다. 그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괴짜' 최룡철 씨이다.

"대학에서 화공이 전공인 난 워낙 lT산업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세기 90년대 모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우리 지역 주민들이 보험에 대한 상식이 미흡하기에 이를 알려줄 방법을 모색하던 중 인터넷 홈사이트를 통한 선전이 좋겠다고 생각이 들어 이 분야에 집요하게 파고 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집에 컴퓨터가 없은 최룡철 씨는 하는 수 없이 PC방에 가서 10대들과 함께 놀게 되었다. 어떤 때는 도처에서 오는 언짢아 하는 눈총을 받으면서... 집에 컴퓨터를 갖추어 놓자 그는 일주일씩 집 안에 박혀있으면서 두문불출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였다.

그래서 최룡철 씨가 자습으로 시작한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공부, 서책지식과 감각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었지만 몇년이 지나도 도대체 자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점검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03년 그가 우연한 기회에 장춘에 있는 '장백산'잡지사에 들렸다가 그곳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고장난 것을 수리했다. 당시 이를 본 한국 SBS방송국의 최성재 기자가 깜짝 놀라면서 “그 나이에 이런 기술을 장악한 분은 한국서도 극히 드물다”며 몹시 감탄하는 것이었다. 자기의 정도를 가늠한 최룡철 씨는 학도를 받았고 중학교에 다니며 강의까지 하게 되었다.

그 뒤 최룡철 씨는 법인대표로 '무궁화소프트웨어사무실'을 설립하고는 본격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신, 그때로부터 연변지역을 첫 스타트로 많은 업체들에 인터넷홈사이트를 비롯한 공지사항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대뜸 이 분야의 '성공 인물'로 부상했다.

최룡철 씨는 "컴퓨터를 모를 때는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좀 알게 될 때는 컴퓨터를 모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컴퓨터를 모르면 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외우군 한다. 그 동안 최룡철 씨는 뛰어난 기술로 국내외 수십개 업체들에게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40이 넘어 lT산업개발에서 성공한 사람 최룡철-그의 성공담으로 하여 "하면 된다."는 명언을 그의 몸에서 다시 한번 느껴본다.


/금성 특약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아름다운 노래는 마음으로 불러야 되고 아름다운 마음은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가꾸어야 한다》고 말하는 김청, 아름다운 마음가짐으로 불러서 그녀의 노래가 그토록 매혹적일가? 1985년 도문시가무단의 독창배우로 되여서부터 지금까지 부단히 자신을 승화시켜 가수로 사회자로 쌍나래를 펼친 김청의 앞으로 꿈은 또 무...
  • 2009-01-14
  • 조선족기업인 김유룡씨가 개발한 친환경형 에너지절약 보일러와 열풍기 시장서 각광 “전통적인 보일러, 열풍기 제품들이 안고있는 페단은 환경오염이 심하고 에너지소모가 큰것입니다. 친환경적이고 에너지를 절약할수 있는 보일러와 열풍기를 개발해내려고 다년간 몸부림쳐온 결과 현재 두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고있...
  • 2009-01-14
  • 심양서덕인테리어, 소방회사 리홍광리사장이 근일 무더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근에 있은 료녕성인테리어협회총화대회에서 그가 이끄는 “서덕”은 “료녕성인테리어협회 우수기업상”을 수상한데 이어“료녕성인테리어협회 10강 기업”으로 평선되였으며 “성우수설계상&rdqu...
  • 2009-01-14
  • 편집자의 말 :  금년은 조선족로홍군이며 항일투사인 리화림녀사의 서거 10주년이 되는 해이다.(리화림녀사의 서거소식은 본지 1999년 2월 13일자에 보도된바 있다.) 리화림은 생전에 대련시의 유일한 로홍군으로 그의 일생은 혁명적일생이며 전투적일생이였다. 그는 당에 충직하고 인민에게 충직하였으며 사회주의 혁...
  • 2009-01-12
  • 김미아 : "챔피언은 새로운 시작일 뿐" 음력설야회의 출연초청서를 이미 받아김미아의 가창실력이"성광대도(星光大道)"를 통해 전문가들에게는 물론,전국 관중들에 의해 크게 인정됨에 따라 또 한명의 조선족 가수가 전국무대에 진출하여 조선족의 명성을 중국 전역에 떨치게 됐다. 음악전문...
  • 2009-01-11
  • 중국민족브랜드 《홍기》차의 공신 최홍송 최홍송, 그는 조선족기사로 모주석을 모셔 할빈시를 들썽하게 했고 중국의 첫 《홍기》차 생산에 참가하여 자동차업계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남다른 기술력으로  국무원의 신임을 얻어 중남해의 특수인물로 되였다.  장춘제1자동차그룹 승용차공장 부공장장으로 있다...
  • 2009-01-10
  • 농민작가 박선석의 글농사일전에 장편소설 《재해》로 《제2차 김학철문학상》을 수상한 박선석선생은 농촌에서 태여나 농사일로 평생을 살아온 순수한 농민이다. 그럼에도 선생은 장장 28년동안 알곡농사를 잘하는 한편 부지런히 글농사를 지어 길림성정부의 최고문예상인 《장백산문예상》을 3차나 받고 전국소수민족문학...
  • 2009-01-09
  • 육체의 병과 마음의 병을함께 치료해줘야—연변대학부속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 김영덕 "육체의 병보다 무서운것은 마음의 병입니다. 큰 병에 걸리면 대부분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병에 걸렸나? 죽는것은 아닐까? 이 의사를 믿어도 되나?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의 병에 걸리게 되는거죠. 의사...
  • 2009-01-07
  • 연변가무단 솔리스트를 비롯하여 조선족 대표로 중국 CCTV3, CCTV12 음악프로그램에 지속 출연해오다 모국으로 유학온 안영란(34) 씨는 조선족 사회에서는 유명한 성악가다. 그는 유학생활 중에도 틈틈이 모국의 방송에 출연한 것을 비롯하여 조선족 관련 각종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해서 노래를 통해 조선족 노동자들의 설...
  • 2009-01-07
  • 《후반전에 꼴을 넣겠다》오또기란 넘어져도 금방 오똑 선다해서 불려진 놀이감의 이름이다.도문에 뿌리조각에 미쳐버린 《오또기》가 있다. 리인규(79)의 만년인생은 《30여년간 모은 나무뿌리로 하늘아래 하나뿐인 천연조각품을 내놓겠다》는 이 욕심 하나로 시작되여 오늘에 와서 《오또기》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였다. ...
  • 2009-01-0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