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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운반로케트 전문가 리상영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5월15일 10시18분    조회:5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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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4B' 총설계사, 총지휘로서의 리상영, 7년 여에 10차례에 걸쳐 10종의 인공위성 16매를 전부 예정궤도에 정확히 발사, '10발 10중'의 기적을 창조하다

▶'하량하리기금상' 수상자

"며칠전 또 한방이라,그러니까 이번이 10발10중 맞지요?" 2006년 11월 15일 북경 인민 대회당에서 거행된 '하량하리기금' 제13차 시상식에서 진지립 국무위원은 상해우주비행국 과학기술위원회 부주임이자 '장정4호B 형운반로케트'의 총설계사,총지휘인 리상영의 손을 열정적으로 잡아 흔들었다. 진지립이 말하는 '며칠전'이란 2006년 10월 24일에 있은 '실천6호' 위성 2매 발사를 가리킨다.

"압력이 만만치 않을테죠?" 리상영이 미소하며 그렇다고 하자 진지립은 "그래서 압력이 동력이라고들 하는거 아닐가요!"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진지립의 '10발 10중' 운운은 한점 과장도 없는 사실 그대로의 얘기다.

다른 위훈은 제쳐놓고 '장정4호B 형운반로케트(략칭〈장4B〉)'의 총설계사,총지휘를 맡은 후의 공적만 보자.1999년 5월 10일 '장4B'는 처음으로 한방에 인공위성 두개('풍운1호C'와 '실천 5호')를 예정궤도에 성공적으로 쏘아올렸고 1999년 10월 14일에는 '자원1호'와 '브라질'을, 2000년 9월 1일에는 '자원2호'를, 2002년 5월 15일에는 인공위성 '풍운1호D'와 '해양1호'를, 2002년10월 27일에는 '자원2호'를, 2003년 10월 21일에는 '자원1호'와 '창신1호'를, 2004년 9월 9일에는 2개의 '실천6호'위성을, 2004년 11월 6일에는 '자원2호'위성을, 2006년 4월 27일에는 '원격탐지위성1호'를, 2006년 10월 24일에는 '실천6호' 02조의 공간탐측위성 2매를 성공적으로 발사, 정확히 우주궤도에 진입시켰다.

1999년 5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7년 남짓한 기간에 그는 도합 10차례에 걸쳐 10종의 인공위성 16매를 전부 예정궤도에 쏘아 올림으로써 10발 10중의 기적을 창조해낸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리상영이 받아 안은 '하량하리기금상은 1994년도 향항의 애국금융실업가 하선형, 량구거, 하첨, 리국위 등 4인이 향항페 4억원을 공동 기부하여 설립한 공익성 과기장려기금으로 중국과학계의 최고상, 중국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리상영은 지금까지 이 기금상을 받은 유일한 조선족과학자이다.

▶아름다운 꿈―준비된 과학자

리상영은 1941년 10월 19일 흑룡강성 오상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오상에서 조선족 소학교와 초중을 다닌 그는 늘 품행이 단정하고 공부를 잘하는 모범학생이였다.

조선족고중이 없어 한족학교에 붙은 그는 열심히 한어를 배웠는데 나중에는 《시경》까지 술술 외워 한족학생들까지 그에게 해석해달라고 도움을 청할 정도였다.

중국우주비행사업이 창건된 이듬해인 1957년,소련에서 '스푸트니크1호'로켓으로 인류사상 첫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세상을 놀래웠다.

영화뉴스에서 그 발사장면을 본 고중생 리상영은 "나도 로케트로 하늘에 위성을 쏴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1959년 그의 꿈은 현실로 되였다. 북경공업학원에 붙어 뜻대로 로켓총체학과를 전공하게 된것이다. 5년 학습기간 그는 말 그대로 머리를 동여매고 공부를 했다.

때는 바로 우리 나라 3년 자연재해시기라 생활고가 심각했지만 정신면의 수확은 풍성했다. 이 기간 로어를 학과목으로 배우면서 영어도 자습했다.

1964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마친 그는 아장걸음을 타기 시작한 중국의 우주비행사업에 투신했다.

상해우주비행연구원에 배치받은 리상영은 모든 정력을 기술연구사업에 몰붓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터진 '문화대혁명'에 일시 커다란 곤혹속에 빠졌지만 그는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혼란속에서 일터도 자주 바뀌였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로켓의 동력설계, 원격측정제어, 구조배치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할수 있어 로켓기술 전반을 장악하는데 좋은 기회가 됐던것이다.

이 기간에 리상영은 소련의 '련맹호', 미국의 '타이탄(大力神)', 유럽의 '아리안(Ariane)'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계렬운반로켓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

짙은 흥취를 가지고 무릇 운반로켓과 관련이 있는 자료는 빠뜨리지 않고 찾아보면서 그것들의 성능, 기술방안, 디자인 등 모든 문제를 의문이 풀릴때까지 캐고들어 그 뒤 장장 수십년간의 연구에 튼실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자유의 왕국

우리 나라의 우주비행사업은 1956년에 시작됐다.저궤도운반로켓 연구는 지난 세기 60년대 중반부터 착수됐다. 리상영이 '3년 재해'와 '문화혁명'이란 어려운 이 두 시기에 시간을 랑비하지 않고 고심히 쌓은 연구토대가 얼마나 귀중한것인지가 이때 와서 충분히 증명되였다.

바로 중국에서 지대공미사일(SAM)연구가 시작된 해인 1970년, 당시 불과 29살밖에 안된 리상영은 벌써 크기가 미국의 강유력한 '타이탄2호'와 거의 맞먹는 2단식 신형 로켓 '폭풍1호(FB―1)' 로켓연구팀의 총체성능설계사란 중대한 과업을 맡는다.

이 과업을 맡은지 불과 5년만인 1975년 리상영과 그의 연구팀은 'FB―1'로 과학위성을 발사하는데 성공한다. 이때로부터 그의 재능은 급속도로 발휘되기 시작, 선후로 '장정4호A형'운반로켓(략칭 장4A) 부총설계사, '장2D' 부총설계사, 유인우주선921―3 부총설계사를 력임하며 1999년부터는 '장4B'총설계사, 총지휘를 떠메기에 이른다.

이 중대한 책임들을 맡아보면서 그는 각종 중대한 기술난제들을 거의 매년 두세가지씩 풀어나갔다. 80년대에 들어서서 대형의 3단식 운반로케트 '장정3호'를 연구 제조할 때 그는 3대 기술난제의 하나로 나선 수직방향결합발진문제, 말하자면 로켓 몸체와 로켓 추진제 수송시스템 사이의 공진문제를 해결하는 저항법 진동수 계산물리모델을 국내 처음으로 고안해 내여 통신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하는데 크게 이바지한다.

'장4A' 부총설계사를 맡았을 때도 그는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총체방안을 고안해내여 상규추진제 로켓의 운반능력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 기술면에서 국외 동류 로켓의 성능을 릉가했으며 우리 나라 최초로 1톤 무게의 위성을 쏘아올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이 로켓으로 1988년과 1990년 두차례에 걸쳐 기상위성을 정확히 태공궤도에 진입시킨다.

'장2 D' 부총설계사를 맡았을 때에는 운반능력, 궤도진입 정밀도와 신뢰도가 월등한 2단식 로켓을 연구제조해 내여 련 3차례의 위성발사를 훌륭히 수행하였으며 '신주호' 우주선 부총설계사를 맡은 후에는 상해우주비행국 유인우주선에 대한 론증과 부분적 연구제조과업을 맡아 예비모형을 실전모형으로 승격시키는데 관건적 역할을 논다.

'장4 B'의 최초 제조과정에는 무려 153가지 부분을 새롭게 연구, 개진하는데 성능이 뛰여난 이 로켓은 현재 간편한 조정만 거치면 각종 류형의 인공위성을 보다 높은 운행궤도에 쏘아올릴수 있다.

'장4B'는 매차례의 발사때마다 대폭적인 기술개진과 혁신으로 성능을 간단없이 제고했다.

작년 4월에도 리상영은 혁혁한 전공을 세운 '장4B'의 기술내포를 또 한차례 승격시켜 국내 최초로 3단식 발동기의 '2차 점화기술'을 적용, 원격탐측위성1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한다.

이런 중대한 성과들로 하여 그는 선후로 국가과기진보 특등상 2차, 1등상 2차, 2등상 2차와 성, 부급의 1등공 3차, 우주비행상과 과기진보상 등을 수상했다.

▶숭고한 사명

소년 리상영의 로켓꿈이 그 어떤 호기심에 바탕을 둔것이라면 풍부한 경험을 갖고있는 우리 나라의 우수한 우주비행공정전문가로서의 리상영은 우주비행사업을 국가리익에 직결되는 최고사명으로 간주하고 혼신의 정감과 재질을 이 숭고한 사업에 깡그리 쏟아부었다.

1999년 5월초, '장4B' 운반로켓 총설계사, 총지휘로서의 리상영은 기지에서 발사팀을 거느리고 한창 로켓발사준비를 다그치고있었다.

5월 8일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대사관이 폭격을 당했다.

이 소식에 접한 리상영은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것 같았다. 로켓으로 호된 반격을 가하고싶었다.

이때 향항'대공보'가 중국에서 이틀안으로 위성을 발사할것이라는 뉴스를 실었다. 어깨에 놓여진 짐의 무게를 느낀 리상영은 무언의 침착한 대응으로 발사현장의 모든 세부사항을 낱낱이 점검했다. 10일 오전 로켓은 리상영의 마음과 중국인민의 기개를 지니고 구중천을 힘있게 갈라 세계에 중국의 강대한 존재를 또 한차례 과시했다.

당의 16차 당대회가 열리기 직전, 리상영은 한차례의 위성발사준비를 끝마쳤다. 때는 바로 국가주석의 미국방문과 멕시코 아태경제협력체(APEC)회의 참석 기간이여서 이때 위성발사를 한다면 그 성공여부가 커다란 파장을 몰아올것이 뻔했다.

그 압력은 엄청 큰것이였다.그에게 가해질 압력을 덜어주기 위해 상급에서는 확실한 성공을 파악하기 어려울것 같으면 발사시간을 연기하는것이 좋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나 이번 발사에 확고한 신심을 갖고 있었던 리상영은 위성발사를 예정대로 실시키로 결정했다.

발사전 최후의 동원대회에서 리상영은 "발사의 성공을 갈망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가 꼭 같다. 그렇다고 우리의 행동이 조급해져서는 안된다. 차분한 마음으로 래일의 발사에 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4B'운반로켓은 리상영의 뜻대로 '자원2호'위성을 우주공간에 정확히 쏘아올렸다. 발사현장의 지하통제실에서 발사장면을 긴장히 주시하고있던 중앙군위 조강천 총장비부 부장은 격동된 나머지 리상영을 끌어안고 오래도록 놓지 않았다. 

그 어떤 위성을 쏘아올리든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의의와 경제적가치는 대단히 큰것이다.

때문에 매 한매의 위성을 반드시 정확한 궤도에 진입시켜야만 하는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성공은 오늘만 의미할뿐 결코 래일의 성공을 대표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이 익숙한 기술과 풍부한 경험을 갖고있는 그런 국가들도 발사에서 빈번히 실패하여 막대한 경제손실과 인명피해를 보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성공 아니면 실패일수밖에 없는 이런 과업을 한어깨에 짊어진 리상영은 시종 고도의 사상압력을 감수하지 않을수 없다. 성공차수가 많을수록 그 압력은 줄어드는게 아니라 늘어만 갔고 일단 발사에 특별의미가 부여되면 그 압력은 또 무게가 더해졌다. 그러나 사명감은 그에게 가해진 모든 압력을 동력으로 전환시켰다.

고도의 압력은 그의 몸에 늘 생리반응을 일으키군 했다. 수십년 종사해온 사업이고 발사기록을 봐도 첫 발사가 성공해서부터 한번도 실수 없이 번번이 성공하여 '백발백중의 명장'으로 불려온 그지만 매번 새로 발사하기 직전이면 심장이 매분 100차 이상 뛰군 했다.

위성발사를 앞두고 심장에 이상이 와서 구심환 수십알을 한꺼번에 입안에 털어넣었던 적이 있다.

그날 발사를 성공리에 매듭짓고 축하연을 가졌는데 맥주도 물맛이요 간장도 물맛이였다. 보건의사가 고개를 갸웃하고 무슨 약을 복용한게 아닌가고 물었지만 그는 도시 생각이 나질 않아 고개만 가로저었다. 후에 호주머니에서 나온 약병을 보고서야 약을 병채로 입에 털어넣었던 생각이 났다.

▶'대군'을 거느린 통솔자

상해우주비행국에서 실시하는 '장4B프로젝트'는 하나의 방대한 시스템이다. 산하에 통제, 발동기, 구조, 원격탐측, 검사측정시험발사 등 10개의 시스템이 주임설계사, 부주임 설계사 수십명의 지휘밑에 움직인다. 매 시스템은 다 자체 연구소를 가지고있는데 통제시스템처럼 전산연구소 등 여러 개의 연구소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 산하에는 수백개의 단일계기연구단위가 있다. 례컨대 단일계기단위가 원격탐측시스템에는 180여개가 있으며 통제시스템에는 48개가 있다.

이 수백개의 연구단위에서 10만개도 넘는 부품을 연구해내며 그 제품생산은 전국 각지에 있는 수천개 공장의 몫이다. 이 공정에 동원되는 인수는 수천수만으로 헤아린다.

이 방대한 기술시스템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있어서 핵심고리로 되는것은 1급지휘시스템인데 이 지휘시스템의 1선 총지휘가 바로 리상영이다. '장4B'의 매 차례의 위성발사는 모두 리상영의 지휘밑에 최신기술을 적용한 측정, 설계, 실험과 주도면밀한 현장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전반 과정에 그 어느 부문이든 지휘나 기술면에서 일말의 경솔함도 허용될수 없다.

어느 한 시스템의 조그마한 실수도 궁극적으로 발사의 실패를 초래할수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사업의 특질로 하여 기술에 대한 내부심사는 극도의 엄격성을 기할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리상영은 하부로부터 올라온 보고서를 그냥 1차적으로 통과시킨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의문점만 발견하면 가차 없이 재고(再考)를 요구했다.

각 시스템의 연구항목에 대한 리상영의 심사는 극히 엄격했다. 그 어떤 분야에 가든 그 분야의 핵심문제를 포착, 관련된 구체 문제까지 제기하여 개진토록 요구했다. 주임설계사를 망라한 고급두뇌들이 지휘하는 각 시스템의 전문연구는 국내 나아가 국제의 최고수준급이다. 그러나 심사때마다 보고를 세심히 수렴한 뒤 리상영이 즉석에서 들이대는 일련의 질문은 흔히 한다하는 전문가들로 하여금 "아뿔싸!" 하고 식은 땀을 빼게 했다. 정곡을 찌르는 그의 질문들은 로켓 각 시스템 심층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문제포착자체마저 어려운것이여서 관계 전문가들은 놀란 나머지 리상영을 우러러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리상영을 본받아 산하 각 부처에 엄격한 관리를 실시했다. 이런 까닭에 리상영이 한번 돌아본 곳에서는 락자없이 새로운 기술공략전이 벌어지군 했다.

각 부문에 내려가 항목심사를 할 때마다 리상영을 따라다니는 항목계획관리원 채익비는 리상영에 대해 탄복한 나머지 한번은 리상영에게 조용히 "총지휘님은 그 많은 부문의 기술문제를 어쩌면 다 그렇게 환히 뚫고 계십니까?"고 묻기까지 했다.

작년 4월 '원격탐측위성1호' 발사 준비를 할 때였다. 이 위성은 무게나 체적 등 면에서 모두 '장4B' 가 이전에 발사했던 위성보다 무겁고 부피가 컸다. '장4B'로켓 정류케스의 직경은 통상적으로 2.9미터와 3.35미터 두가지가 있는데 이 위성은 체구가 웅장하여 소요공간직경이 3.8미터에 달해 비행기동, 부하, 강도, 구조, 탄성, 통제 등 면에 모두 변화가 생겼다. 대규모의 기술조정은 불가피했다. 리상영과 그의 연구팀은 '장4B'를 거의 새로 설계, 제조하다싶이 했다. 이때에도 리상영은 로켓과 위성의 세부까지 꿰뚫는 불가사의한 기술통찰력으로 각 부처의 기술문제를 분석하고 철저한 해결책을 대게 했다. 결국 그것은 로켓 '2차점화' 새 기술의 도입 등 중대한 기술개혁으로 이어졌다. 그것과 관련된 기술개진 항목은 무려 161가지에 달한다.

▶'확대경'을 들고 '먼지'를 찾는 사람

리상영은 발사팀 성원들에게 매번 새로운 위성발사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장4B반열에는 과거의 성적에 만족할 자본이 없다. 항시 령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자세로 과업수행에 나서야 한다"고 신신 당부했다. 또한 "눈을 크게 뜨고 문제를 찾으라, 문제를 발견하는 자가 영웅이다."고 고무격려하기도 했다.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거나 원유설비를 개조하여 검사시험을 할 때 그는 한시도 시험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털끝만치라도 의문스러운데가 있으면 절대 그대로 넘기는 법이 없었다. 로켓 내부의 각 부분을 이어주는 케이블은 생명선과도 같아 어느 한오리라도 헛땜을 하거나 잘못 이으면 안된다. 한번은 삼거웃처럼 얼기설기 얽힌 케이블을 가리키며 리상영이 물었다. "확대경으로 케이블검사를 했소?" 케이블팀 팀장이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리상영은 즉시 "안되오! 케이블이 플러그에 제대로 이어졌는지 확대경으로 한오리 한오리 100%로 검사하시오!"하고 엄령을 내렸다.

한번은 시험을 할 때 케이블단락현상이 나타났다. 정황을 보고받은 리상영은 가차없이 책임추궁을 결행했다. 책임부처에서 사고원인을 한창 작업교대중에 있던 설치반 로동자들의 탓으로 밀자 리상영은 책임부처의 일군을 호되게 비평했다. 그 일군은 억울해 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나 직원이 눈물을 보인다고 해서 록록히 처리할 리상영이 아니였다. 그는 "장4B는 눈물을 믿지 않습니다"고 하면서 그 작업소조더러 즉시 생산을 중지하고 정돈을 하게 했다. 나아가 작업관리, 기술조작, 교대절차와 수속 그리고 관련 세칙에서 원인을 찾게 하고 제반 제도를 철저히 수정, 보완토록 했다. 와중에 비평을 받은 그 책임일군은 리상영에게 완전히 감복이 되여 비평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겨났고 작업질보장에 철저한 책임성을 보였다. 얼마후 그는 상해우주비행국의 선진으로 당선되여 경험을 소개하게 되였는데 강연제목은 '압력은 품질보장의 촉진제'였다.

▶인간 리상영

리상영은 사업이 아주 몸에 밴 분이다. 그러나 마음의 탕개를 조금 풀 때도 있으니 그것은 위성을 방금 예정궤도에 띄워놓고 승리를 경축할 때의 한순간이다. 이 때면 그는 잠시나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 만사를 잊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통쾌히 즐긴다.

팀멤버들이 총설계사에게 프로를 요청해 오면 그는 '시경'에 나오는 옛시도 멋지게 읊조린다. "사이좋게 우는 저 징경이 하수가에 있네. 곱고 고운 아가씨는 님의 좋은 짝이로세(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하고 궁글진 목소리로 읊어내리면 다들 신이나서 박수를 치며 노래를 요청한다. 그러면 그는 어릴적 어머니에게서 배운, 평생 유일하게 부를 줄 아는 노래 '노들강변'을 한가락 불러넘기군 한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여나볼가..."

리상영은 '노들강변'노래를 부르는것은 어머니에 대한 가장 좋은 기념이라고 말한다. 작년에 외국출장을 하면서 흑룡강의 고향을 지나게 되였다. 어머니묘소에 내려 벌초라도 하고싶었지만 내릴수 없는 몸이였다. 당시 그는 '노들강변'을 입속으로 웅얼거렸다고 한다.

▶장백산천지에서 부인 손광옥과 함께

누구보다도 안해 손광옥과 두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리상영이다. 결혼하서 30여년간 내내 상해를 중심으로 북경과 태원 등 로켓발사기지 사이를 오가면서 장정호운반로켓 연구설계와 발사에 혼신의 정열을 쏟다보니 모든 가무일과 두 자식을 키우는 일은 전부 역시 과학연구일군인 안해가 전담할수밖에 없었다. 리상영은 로켓과 인공위성에 대해 말하라면 노들강변 청산류수지만 자식의 신변사에 대해 물으면 세마디 안짝에 둬번 막히는 정도다. 그래도 남편의 사업을 자기 일 이상으로 지지하는 안해는 로켓 발사때마다 남편걱정으로 혈압이 뛰여오르군 했다."안해가 불합격 남편을 리해해주고 아들딸들도 잘 커줘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고 그는 말한다. 딸은 지금 상해 서금병원 의사로 근무중이고 아들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MBA과정을 마치고 이미 귀국했다.

아들이 석사졸업식을 가진다는 소식을 듣고 조직에서는 그에게 휴가를 주었다. 30여년간 번번이 휴가를 사절하고 일에만 전념해왔던 리상영은 이번에는 쾌히 응낙했다. 안해와 함께 아들의 졸업식에 참가하여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싶었던것이다. 평생 처음 사랑하는 남편, 존경하는 아버지와 함께 유럽나라들을 구경하면서 안해와 아들은 너무 행복해했다.

/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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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1-31
  • 1원짜리 인민페에 등장하는 소수민족 여성의 실제 주인공이 28년여만에 나타났다.지난 20전짜리 모델인 조선족 처녀에 이어 이번에는 동족처녀였다.이 인민페에 등장했던 동족 소녀는 지금은 45살의 중년 여성이 됐지만 최근에야 자신이 지페 모델이었음을 알게 됐다.귀주(貴州)성 총장(從江)현의 한 동족 부락에 사는 스나...
  • 2007-01-28
  •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반 없을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투항하자 김철남은 중경에서 해방을 맞는다. 당시 조선 국내의 정치상황이 불안했 탓으로 그는 중국에 머물러 사태를 관찰했다. 그래서 중국에 눌러 앉은 그는 1952년 페암으로 인하여 북경에서 세상을 떴다. 지금 북경에 건재하고 있는 이서군 녀사는 조선족...
  • 2007-01-28
  • 색 바래지 아니 할 '영원한 화신'       실로 빠른 것이 세월인 것 같다.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바로 5년전의 그 여름밤, CCTV 제5채널의 2002한·일월드컵의 생방송을 보다가 까닭없이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팀을 비하하는 해설원의 언사에 참지 못해 전화통을 들고 그 해설원 유건홍과 설전을...
  • 2007-01-28
  • 27일 청주 라마다호텔에서 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JCI) 손인석 회장(36·청주 광진건설 대표)이 취임식을 가졌다.손회장은 각 지방 JC와 중국 조선족 소학교간 자매 결연을 추진, 한민족 얼을 잊지 않도록 도와 주고 소외된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심장병을 수술해 주는 사랑의 메신저 운동도 ...
  • 200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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