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이상규씨, 중국동포 최초로 한국서 발 관리 프로그램 운영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7월27일 08시39분    조회:929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지난 7월 중순,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중국전통 약석발마사지 샵 ․ 학원’이 개업을 시작하였다. 넓은 홀과 아늑한 마사지실 ․ 학원에 개업축하 화분들이 놓여있다. 약석발마사지 전문가 이상규씨가 중국동포 최초로 한국에 투자 ․ 운영하는, 발반사요법으로 각종 병환까지 치료를 겸해 발 관리 진수로 찐한 서비스를 해주는 장소이다.   

이상규씨는 “발을 아는 자는 평생을 즐겁게 산다.”고 했다. 

하긴, 자연의학의료보건법의 하나인 발마사지요법은 중국에서는 이미 보편화 되어있는, 유구한 전통의 학보물고중의 보배라 할 수 있다. 특히 약석발마사지요법은 편두통, 삼차신경통, 위궤양, 자궁근종, 뇌졸증후유증 등 수많은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뿐더러 덕을 쌓고 영양학, 음양평형, 호흡조절법, 진단, 예방, 치료, 건강회복, 자아보건, 인체의 잠재에너지개발 등을 하나로 잇는, 중국전통 자연의학의료보건법 중의 대물림 보배이다.      
 
올해 마흔넷인 이상규씨 결코 평범치 않은 경력을 쌓아왔다. 1992년 연변대학 한국어학과 전문반을 졸업, 1998년 국제약석족부 고급안마사 자격증 획득. 1999년 국제약석족부안마 고급강사자격증 획득. 2004년 국가직업기능검정 평심원 자격증 획득. 2004년 중의사 자격증 획득. 2004년 사회직업기능양성기구 법인대표자격증 획득. 2001년 약석건강법 북경국제학술연구회에서 3편 논문 발표에 금메달 ․ 금컵 수상. 현제 국제약석족부안마사양성학교 교장. 훈춘약석족부안마건강중심 원장… 

청소년시절에 문학도였던 그는 수필과 짧은 소설을 써냈지만, 1996년에는 문학의 꿈을 접고 장사에 나섰다가 그만 40만 위안이란 거액의 빚을 지게 되었다. 정신, 육체적 타격으로 70키로 가까웠던 몸이 48키로도 안 되게 살이 빠졌었다. 당뇨수치도 9.5%로가 되어 정상 수치보다 4.5%나 높게 나왔다. 

그러나 그는 발마사지 전문가 김수봉 스승을 만나 치료를 받으며 발마사지 기술을 배우게 되면서부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당뇨수치도 정상을 회복,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지금까지 약 한 알 안 먹고 절로 발마사지를 하며 건강을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발마사지 진수를 배우기는 쉽지 않았다. 애초 김수봉 스승아래는 40여 명의 제자가 있었다. 초급, 중급, 고급반 해서, 마지막에는 배우기 너무 힘들어 5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상규씨는 발마사지 감각을 손에 익히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노인들에게 얼음과자를 사들고 가서 드리며 발을 만져볼 것을 요청하기도 하고, 경험을 쌓기 위해 일가친척집에 꽃을 사들고 가 각자의 발들을 만지며 감각을 찾았다. 밤이면 병원 의사 친구의 도움을 받아 심장병, 위염, 뇌졸증, 당뇨병, 요통, 신결석 등 환자, 지어는 암환자의 발까지 만지면서 손의 감각을 찾고 부지런히 체크를 하였다. 백번 듣기보다 한번 만져보는 것이 나았다. 용정이나 화룡의 환자들을 집에까지 모셔다 놓고 발 마사지를 해주면서 치료도 하고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2000년 봄,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몇 년간 수련을 마친 그는 훈춘 시에 ‘훈춘약석족부안마사양성학교’ 분원(分院)을 내고 창업의 발자국을 뗐었다. 

당시 훈춘사람들은 발마사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가시나 티눈을 빼달라거나, 팔다리 접지른 것 등을 치료해 달라고 왔다. 그는 인내성 있게 발마사지 원리와 치료효과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발마사지 홍보를 하고 발마사지 건강문화를 보급해 나갔다. 

그는 몇 년 사이에 1000여명의 제자들을 키워냈는데, 그들은 이미 중국 각 성시와 미국, 일본, 한국, 호주, 싱가포르 등 20여개 나라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 훈춘시 정부도 그의 성과를 높이 샀었다. 시 ‘노동사회보장부’에서는 그의 학원을 ‘국가발마사지자격증’을 발급해 줄 수 있는 정규학교로 비준해주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시병원의 엑스레이를 찍는 담당의사가 발마사지 하러 그를 찾아왔었다. 마사지가 끝나자 의사는 자기 몸 상태를 체크해 달라고 하였다. 그는 위가 아주 좋지 않으니 건강검진을 잘해할 것을 당부하였다. 환자한테 위암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뭐, 그렇겠냐?” 하던 의사는 3달 후 덜컥 유명을 달리하였다고 한다. 눈을 감기 며칠 전에 환자는 “한번 그곳에 가서 발마사지 해봤으면…” 하고 소원했단다. 이상규씨는 이미 발반사요법 전문가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는 몇 년 사이, 그는 마침내 거액의 빚도 갚고 대부금으로 산 학원 250여 평의 빌라도 자기 소유로 만들 수 있었다.        
 
2005년 봄에 그는 상무(商務)고찰 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했다가 고국에 발마사지 문화를 보급시킬 웅심을 품고 서울출입국관리국을 찾아가 외국인투자요건에 대해 상담을 하였다.

하여 2년간의 우여곡절과 준비 끝에 지난 7월 중순에 그는 ‘5만 불 투자’상인 신분으로 한국 마포구에 발마사지 샵과 학원을 꾸리게 된 것이다. ‘중국전통 마사지진수로 고국에 진정한 발마사지 이미지를 심어주고 동포들에게 취업의 새 길을 열어주자’는 꿈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발마사지업도 한국서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받을 날이 꼭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더욱이 약석발마사지요법은 오장육부 병환을 치유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 특징이기에 흥행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외에 스포츠마사지, 아로마경락, 피부관리, 부황, 괄싸요법, 추나요법, 화룡법 등을 학원들에게 전수할 생각이다.      
 
그는 그런 자격이 있었다. 2001년에 그는 당대 발마사지 창시자 오약석의 접견을 받았고 당해에 또, 세계위생조직 집행위원회 주석 웬벨거 주석으로부터 친필 싸인한 ‘중국자연의학요법 특수기술인재’증서를 발급 받았었다.

2005년 그는 김수봉 스승과 함께 중국에서 최초로 한글판 ‘발반사요법 건강법’책을 출판하였었다. 60년대 우파분자로 십여 년 동안 감옥을 사셨던 김수봉 스승은 출옥 당시, 감옥에서 허리를 얻어맞아 구십도로 굽어졌었다. 그러다 발마사지를 연구하면서 절로 지압을 한데서 차츰 허리를 펼 수 있게 되었고, 지압에 달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북경 발마사지연구회를 찾아가 자신이 실천 속에서 찾은 발반사혈점과 맞춰보았더니 60여개의 발반사혈점이 신통히도 맞아 떨어졌다고 한다. 1999년 10월 그는 ‘UN국제전통의과대학’과 ‘국제전통의학회’로부터 ‘국제의학박사증서’를 수여받게 되었다. 

발마사지는 단지 발 치료만 해주는 게 아니라 수련자의 인생관과 가치관도 바꿀 수 있었다.

호주에 발마사지 샵을 내겠다고 이상규씨를 찾아와서 기술을 익힌 분이 있었다. 불효했던 그는 귀국해서 어머니의 발을 마사지해주다가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한다. 발 반사 신경에 감지된 어머니의 건강이 그토록 나빴던 것이다. 그는 그 후부터 샵을 운영해나가며 정말 효도하면서 참다운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중국의 발마사지 협회 양민민 회장은 자주 중남해에 드나들며 강택민 전 국가주석, 이붕 전 총리 등 고위간부들에게 정기적으로 발마사지를 해주었다고 한다. 이에 강택민 전 주석은  이런 제사를 써주어 화제를 뿌리었다. “이것은 정말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을 인민들에게 보급하여 나라와 인민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줍시다.”

이상규씨는 현재 발마사지 샵과 학원을 잘 운영해 나가면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홍보를 강화하고 발마사지 협회를 내와서 고국에서 진정한 발마사지문화를 보급시키겠다는 열망을 안고 열심히 뛰고 있다. 잠시 개운함에 그치는 흔한 발 마사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발 관리 프로그램, 신통한 감각과 독특한 손법(手技術)으로 신체 이상 증상을 감지․개선시켜주는 신기하고 특별한 경험, 받아 보신 분만이 그 진가를 인정할 수 있다고 이상규씨는 막 선언하고 도전에 나선 것이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농촌교육기적》 만든 리석채조선족소학교 교장 김죽화 만나 《리석채조선족소학교는 리론과 실천을 결합한 중국농촌교육의 모범이고 중국농촌교육의 기적이며 중국민족교육의 기치이고 중국기초교육의 시범이다.》 - 유네스코련합회 부주석 저명한 교육가인 도서평에서김죽화 프로필: 1948년 12월 10일, 료녕성 신빈...
  • 2009-11-01
  • 조선족칼럼리스트 김범송: KBS 라디오 사회자와의 대담 ▲ 중국 흑룡강신문 김범송 론설위원 조선족칼럼리스트 김범송: KBS 라디오 “한민족 하나로” 사회자와의 대담    1. 얼마 전 김범송 논설위원께서 서울에서 열린 ‘한인정치인포럼’ 행사에 참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관련 행사...
  • 2009-10-30
  • 진가촌의 한송이 진달래 33년 한족농민들의 건강을 지켜온 전국우수향촌의사 림민화 (흑룡강신문=하얼빈) 김태산 윤선미 기자 = 한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고 농촌에 뿌리를 내리기란 기실 조련치 않은 일이다. 그럴진대 한 조선족처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물설고 낯선 타향의 한족촌에 와서 장장 33년간을 향촌의료사업에 바...
  • 2009-10-30
  •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서 전국일주를 한 연변작가이고 야외낚시애호가인 리근호가 28일 오후 3시에 연길로 돌아왔습니다. 리근호는 지난 5월 8일 연길에서 출발해 174일동안 전국 21개성, 자치구, 직할시와 특별행정구를 거쳐 전국을 일주했는데 그 거리는 4만4천키로메터에 달합니다.  이번에 리근호는 내몽골고원,&nb...
  • 2009-10-29
  • 포스코를 유치한 항천전문가 김민달선생 만나 ○ 《동방홍》인공위성 풍운1호연구에 참석한 항천전문가○ 문화혁명시기 조선특무로 몰려 두번 감옥행○ 12억딸라 포스코를 비롯  20억딸라 유치한 상해개방의 공신○ 조선족기업가들의 상해진출 징검다리 되여준 고문 김민달 프로필 1941년 길림성 룡정시 덕신향 출생.1...
  • 2009-10-29
  •   내가 남희철씨를 우연히 알게 된것은 연변TV 《문화광장》프로를 시청하면서부터였다. 재작년 6월인가 어느 토요일 아침,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연변TV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생소한 《문화광장》프로가 눈길을 당겨  대관절 어떤 프로인가고 궁금해 보게 되였다. 그래도 낯설기는 하지만 프로는 볼...
  • 2009-10-28
  • 중국 최초 굴삭기 핵심부품 유압실린더 취급연대강산공무유한공사 허지환 사장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박영철 기자 = 연대강산공무유한공사는 중국에서 최초로 굴삭기 핵심부품인 유압실린더를 한국에서 수입하여 중국의 三一중공업, 상하이龙工, 中联重科 등 중국의 유명한 굴삭기업체를 포함한 50여 곳에...
  • 2009-10-26
  • 공화국이 키워낸 저명한 조선족의학박사생화학분야의 유명한 학자 윤종주교수 만나본다 ● 로기순박사의 제자 국내외 생화학분야의 유명한 학자 ●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의  건설에 중요한 기여를 한 회장 ● 장백산자원 개발로 민족의약업 이끄는 사람 윤종주프로필: 1935년 1월 25일 연길현 조양천 출생 1957년 ...
  • 2009-10-26
  • 박영애 회장은 중국 길림성 공주령시태생으로 미국 이민생활은 올해로17년째에 접어든다.박영애 회장 일가족은 1990년초 미국유학 왔을 때만 해도 조선족족 출신들이 손꼽을 정도였던 데다 박회장이 일찍 자리잡아 설날 등 명절때는 늘 뉴욕, 워싱턴,등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까지 불러 고향이야기 등을 나누며...
  • 2009-10-25
  • 소원조선족도농합작사 김경택사장의 야심찬 꿈 (흑룡강신문=하얼빈)“조선족농민들의 한국행이나 대도시진출은 우리 민족사회에 거대한 물질적재부를 가져온것은 사실이지만 실존공동체의 해체위기를 자초한 커다란 아픔도 낳고있다. 조선족농민들의 근본적인 출로는 한국행이 아니라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는 조선족...
  • 2009-10-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