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뢰봉식 소방관—김춘명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8월27일 08시39분    조회:765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소방관이였다. 하지만 화재현장에서는 불길속을 날아드는 전기식 인물임에 손색이 없었다. 그는 체구가 왜소한 조선족젊은이다. 하지만 긴급구원현장에서 뜨거운 손길로 65명이나 되는 생명을 구출했다.

그는 어릴적부터 량친의 사랑을 잃은 ‘고아 아닌 고아’였다. 하지만 장장 8년간 독거로인들을 보살펴 왔고 61명 빈곤학생이 그가 쾌척한 성금으로 대학꿈을 이루게 되였다.

그는 정녕 야부리의 오솔길에서 인민대회당의 빨간 주단까지 밟은 우리 민족의 영광이였고 새 시기의 ‘뢰봉’이였다.

고아로부터 ‘우승자’로 거듭나기까지

고아로부터 전기식 소방관으로 성장하기까지 김춘명씨는 이루다 말할수 없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1977년 김춘명씨는 흑룡강성 상지현의 한 조선족마을에서 태여났다. 5세때 부친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뒤 모친마저 멀리 타향으로 개가했으며 1세미만의 녀동생은 다른 집의 입양아로 보냈다. 실로 춘명이는 ‘고아 아닌 고아’로 고모집에서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생활경력은 김춘명씨의 강인한 성격과 불굴의 정신력을 키워냈다.

1995년 겨울 동네사람들의 축복하에 그는  영광스러운 소방관으로 되였다. 그때부터 그는 본때있게 사업을 잘 하여 동네사람들의 은공에 보답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몸집이 왜소해 소방 작업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적 단점으로 고민할 때가 많았다. 이런 단점을 이겨내기 위해 그는 날마다 모래주머니를 달고 구보를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속담에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고심한 노력끝에 그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련 3년간 지대의 업무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2년10월에는 전성 '10명 최우수 전투반장'으로 평의되였으며 그해말에는 전국소방부대경연 최고영예인 '10명 최우수 기술능수'영예칭호를 따안았다. 

절벽을 주름잡는 ‘슈퍼영웅’

김춘명씨는 끈질긴 노력과 강의한 정신력으로 튼실한 업무능력을 쌓아왔다. 위기일발의 시각 가장 앞에 달리는 것은 항상 그였다.

2000년 9월의 어느날 본계시교외의 한 로인이 부주의로 골짜기에 굴러떨어졌는데 다행히도 절벽우의 한 자그마한 나무에 걸렸다. 신고를 접하고 현장에 도착한 김춘명 등은 신속히 구조작업에 뛰여들었다. 김춘명은 허리에 안전끈을 동여멘후 거꾸로 메달려 로인의 곁에 다가갔다. 그가 로인을 끌어안고 절벽우로 돌아올때 지표에 삐여져나온 암석과  관목에 얼굴이며 다리부위가 심하게 긁혀 선지피가 전투복을 붉게 물들였다. 그런데다가 허리에 동여멘 끈에 조여 숨조차 돌리기 어려운 실정이였다. 하지만 자신의 자그마한 실수로 자칫하면 로인의 비명을 초래할수 있다는 생각에 김춘명씨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로인을 힘껏 절벽우로 끌어올렸다. 10여년간 그는 1650여차례나 되는 구조구원작업에 참가하여 선후로 고공, 갱하, 절벽 등 사고현장에서 성공적으로 65명의 생명을 구출했다.

불길속을 날아드는 전기적인 소방관

2003년 3월11일, 본계시 한 화학공장의 직장에서 특대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삽시에 4층건물을 삼켜버렸고 8명 종업원이 불길에 휩싸인채 빠져나오지 못하고있었다. 건물내에서는 무시로 화학약품의 폭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불길이 한창 사납게 타오르는 건물과 6-7미터 상거한 곳에 10여미터나 높은 천연가스탱크와 수소가스탱크가 놓여있었으며 거기에서 좀 더 떨어진 곳에는 전 시내의 가스를 공급하는 5만립방미터의 대형탱크가 있었다. 만약 련쇄폭발이 발생하면 그 후과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위기일발의 이 시각 김춘명씨가 소재하고 있는 소방특수근무중대가 불바속으로 뛰여들었다. 화재가 발생한 직장에서 종업원들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안 김춘명씨는 곧바로 전우들을 이끌고 이미 불바다로 된 건물내에 뛰여들어 7명 종업원을 지면의 안전지대로 이전시켰다. 이때 한 녀종업원이 검은 연기가 자욱한 3층의 창문에서 머리를 내민채 애타게 구조를 호소하고 있었다. 김춘명씨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2명의 소방관과 함께 9미터나 되는 사닥다리를 메고 달려갔다. 불과 10여초사이에 김춘명은 60미터나 되는 3층으로 뛰여올랐다. 그들이 구원된 녀종업원을 끌고 지면에 떨어지는 순간 건물내에서 들려오는 맹렬한 폭발소리와 함께 사닥다리가 삽시에 불길에 삼키웠다. 300여명 소방관들이 3시간동안 분전한 끝에 특대화재는 마침내 진화됐다.

사랑을 베풀줄 아는 ‘뢰봉식 소방관’

김춘명씨는 사랑의 참뜻을 알고 사랑을 베풀줄 아는 사나이였다. 그는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거대한 힘으로 바꾸어 다시 사랑을 수요하는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2002년 김춘명씨는 ‘전국공안소방부대 10명 최우수 기술능수’에 선정되여 상급부문으로부터 2만원의 상금을 발급받았다. 매달마다 보조비로 생활하는 소방관에게  이 2만원이란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니였다. 김춘명씨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이 돈을 아직도 어렵게 생활하고있는 고모에게 선물하고 물심량면으로 자신을 도와주었던 동네사람들에게 보답하려 했으나 그의 뇌리속에는 시종 빈곤으로 대학꿈을 포기해야 하는 불쌍한 애들을 떠올렸다. 남다른 인생애로를 겪어온 김춘명에게는 사람에 대한 독특한 리해가 있었던것이였다. 며칠후 그가 자신의 영예를 상징하는 2만원의 상금을 본계시희망공정애심조학판공실에 선뜻 내놓는 그 시각, 그는 천근무게 같은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였다. 김춘명씨의 아름다운 소행은 즉시 사회 각계인사들의 공명을 불러일으켰으며 현지에서 한차례 빈곤학생돕기열풍을 몰아왔다. 지금 김춘명씨의 이름으로 명명된 ‘춘명애심조학장학금’은 이미 60만여원에 달하는바 이 돈으로 61명의 특곤학생들이 대학꿈을 이루었다.

김춘명씨는 빈곤학생들에게 사랑을  안겨주었을뿐만아니라 또 8년을 하루와 같이 독거로인들을 보살피면서 자신의 삶을 더욱 충실히 하였다. 

2005년8월25일 김춘명은 공안부로부터 ‘전국우수인민경찰’로 평의되였으며  전국소방부대의 13명 개인대표의 일원으로 제7차 전국공안보위전선영웅모범립공집체대표대회에 참가하여  북경에서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친절한 접견도 받았다. 김춘명씨가 소방사업에 투신한이래 선후로 27차에 달하는 성,시급 영예칭호를 획득하여 국무원과 중앙군사위원회로부터 ‘뢰봉식 소방관’이란 영예칭호를 수여받게 되였다.

/조건명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신약발명가, 난치병전문가, 의학저술가로 의학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60여세의중년사나이, 민간에 《난치병을 떼려거든 장춘중의약대학의 남정의사를 찾아가라》는 말이 퍼질 정도로 명성 짜한 남정. 중의학교수, 중의과학연구와 림상진료에 종사해온 40년간 남정은 중풍, 간염, 당뇨병, 심장병 등 현대의학이 채 정복하지...
  • 2006-08-21
  • [원제:빈 출신 세 조선족청년 "래일 최고의 별은 우리"] 며칠전 결속된 제2회 전국조선족성악콩클에서 유일하게 그룹 형식으로 참가한 남자3인조 토이그룹(极度玩具组合)이 관중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하다싶이 하여 화제로 되고 있다. 준결승전에서 무대에 입장하자마자 깔끔한 이미지와 청춘의 싱싱함으로 우...
  • 2006-08-21
  • [img count='1' width='400' img] 한국중소기업진흥공단 중국사무소 황규주 소장 기자: 현 한국 중소기업들의 중국진출 현황? 황소장: 한,중 양국관계는 1992년에 수교한 이래 급속하고도 전면적으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2003년 한, 중 양국정상이 합의했던 5년내 1천억$ 교역 목표를 3년이나 앞당긴 2005년도에 달성했고...
  • 2006-08-19
  • ——— 려성주씨 한국서 번 돈 60만원 '록색은행'에 투입 밀산시 흥개진 동광촌 려성주씨는 한국에서 번 돈을 '록색은행'에 투입하여 년 10만원이상의 가치증식을 실현하며 고향마을을 지키는 사철푸른 '소나무'로 존대받고 있다. 목공으로 줄곧 일하다가 1992년 한국에 가서 4년간 로무하고 1996년 귀국하여...
  • 2006-08-18
  • ——— 오상시 민락조선족향 제1임 당위서기 김련수 인터뷰 "참 감회가 깊습니다. 우리 민락향이 설립돼서 50주년을 맞았는데 그간 많이 변했습니다. 1939년 나는 이곳에 이사왔습니다. 당시는 이곳이 습지였는데 우리 조선족들이 땀을 흘려 옥답으로 만들었습니다. 해방전쟁 시기에는 1000명이 참군하여 20...
  • 2006-08-17
  • 아직도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9일로 60회 생일을 맞는다. 퇴임 이후에도 여전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젊다고 생각하지만 벌써 환갑을 맞았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베이비 붐 세대로 42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된 제16회...
  • 2006-08-16
  • 안마라면 스트레스를 풀거나 보건을 하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요즘 족부안마로 병치료에서도 큰 몫을 담당하고있어 사람들의 화제를 모으고있는 《성보족료건강원》이 주목을 끌고있다. 《사람이 병에 걸렸다면 병근을 정확하게 진단해내는것이 관건입니다. 만약 한 나무가 병들어서 나무가지가 죽어가고있다면 그 나무가지...
  • 2006-08-16
  • 흑룡강성 아성시 료전조선족만족향 홍신촌의 송영자(59세)당지부서기와 할빈시 명일시멘트제품유한회사 장일홍(37세)총경리가 올해 흑룡강성 10대 걸출녀성 후선인에 선정되었다고 '흑룡강신문'이 보도했다. 손영자는 홍신촌 당지부서기로 사업한 14년래 조선족의 친연우세를 살려 미국, 일본, 한국 등 나라에 근 1000명의 ...
  • 2006-08-16
  • 지체장애인 최홍매의 이야기 왕청현 서성가두 신민사회구역에 《비너스외국어양성쎈터》가 있는데 쎈터 운영자는 올해 39세인 지체장애자 최홍매이다. 태여나서 8개월만에 소아마비후유증으로 왼쪽다리가 불구로 된 최홍매는 어려서부터 자립, 자강 정신을 키워왔다. 공부는 잘했으나 신체상의 원인으로 대학에 진학하려던 ...
  • 2006-08-15
  • 지금도 몸매가 제격인 47세의 야마구찌 모모에는 화장하지 않은채 슈퍼마켓에 쇼핑 다닌다. 연예계에 발을 붙이기 위하여 많은 한국혈통의 일본 연예계의 스타들은 처음에는 변성명을 하고 입문한다. 중국관중들이 익숙히 알고 있는 야마구찌모모에도 그중에 속하는 한사람이다. 야마구찌모모에의 아버지는 한국인인데 일찍...
  • 2006-08-1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