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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세기변호사 사무소 장영두 주임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1월12일 15시22분    조회:18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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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순, 북경시 해정구 장원빌딩(长远大厦)에  자리잡은 북경세기(世纪)변호사 사무소에 허술한 차림의 두 농민이 찾아들었다.

하북성 산하시에서 농용차로 운수업을 하고 있다는 이들 관(关) 씨 부자는 흑룡강성 가목사시교구의 사람이였다.

얼마전 시내 변두리서 운전중  뒤에서 오는 트럭에 길을 비켜주다가  마주오던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차에 치우쳐  넘어졌다. 트럭이 도주하자 오토바이 주인 왕씨는 '너희들 때문이라'며 다짜고짜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기에 그를 병원에 실어다 전신검진을 받게 했다.

병원측은 약간의 마찰과상이니 별문제가 아니라고 했으나 왕씨가 어느새 전화를 걸었는지 친척, 친구 10여명이 몰려왔다. 이들은 다짜고짜  관씨 부자의 주머니를 뒤져 현금과 휴대폰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감옥살이 하고 싶냐?"며 협박을 하고 사고후유증 명목으로 왕씨가 즉석에서 만든 8000원 차용증에 서명을 강요했다. 관씨 부자는 위세에 눌려 강요에 못이겨 서명을 했다. 하지만 당지에서 세집살이 하는 이들 부자가 1주일 기한내에 돈을 내놓지 못하자 왕씨는 법원에 기소,법원측은 아무런 확인없이 관씨의 농용차를 압류하고 소환장(传票)을 보내왔다.

타관객지에서 억울하게 봉변을 당한 이들은 농용차를 팔아서라도 8000원을 마련하여 절반은 변호사의 몫으로 주겠으니 억울함을 꼭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장영두 변호사는 이들에게 점심을 사먹이며 세부사항을 재확인하고 나서  전화로 직접 산하시 법원관계자를  찾았다. 당사자로부터 입수한 사실에 근거하여 변호사의 의견을  밝히고 법정에서 일층 조사한뒤  외지농민에게 피해가 없도록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해 줄것을 건의했다.

전화상으로 수도에 있는 변호사의 차근하면서도 론리정연한 '주문'에 법원측은 농용차를 우선 돌려주겠으니 관씨 부자를  바로 보내달라며 진상을 조속히 확인하여 공정하게 처리하겠다고 재삼 표했다. 관씨는 감격한 나머지 직원들과 회식이나 하라며 500원을 내놓았다. 장영두 변호사는 "당신네 처지를  알고 있으니 돈은 한푼도 받을수 없다"며 이들의 호의를 거절하였다.

이는 장영두 변호사가 어려운 처지의 방문자나 수많은 전화상담자에 베푼 법률서비스중의 일례이다. 그는 "4000원 소득이 손쉽게 들어올수 있었지만  돈보다 약자의 권익을 지켜준것으로 성취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시비가 엇갈린 장, 실력으로 승부 

2003년 11월, 창업의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할빈에서 10여년간 기량을 키워오던 장영두 변호사는 보다 넓은 무대를 지향해  한국인, 조선족이 날로 운집하는 북경에 진출하기로 했다. 

그해 12월 중순 새로운 터전에서 본격적인 업무를 펼치기도 전에  접수한 첫 사건은 예상외로 할빈에서 전해온것이였다. 모 회사의 류씨는 시검찰원으로부터 등록자본허위보고죄, 계약사기죄로 시중급인민법원에 기소된 상황이였다.

사건 관련 금액이 1000만원이상에 달하므로 죄명이 성립되면 자칫 무기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억울한 루명을 벗으려 무진 애를 써오던 류씨는 현지에서 '완력'이 만만찮은  원고측을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사건변호를 청탁받은 장영두 변호사는 선후 세차례나 할빈을 오가며 진상을 파악하고 일련의 증거를 확보한 뒤 법정에 나섰다.

원고, 피고를 대변한 공방이 계속되다 법정에서 최종 장영두 변호사의 조리정연하고 빈틈없는 진술의 합리성과 신빙성을 인정, 류씨는 바로 무죄로 판결되였다. 구속 1년 10일만에 풀려난 류씨는 직접 북경의 장영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축기를 드리고 '평생의 은인'이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5월, 심양한라(汉拿)레미콘유한회사(한국투자)측이  장영두 변호사를 찾았다. 2003년 9월, 한라측은 료녕성 료중(辽中)건축회사에 건설용콘크리트를 공급(가격, 수량, 품질기준, 결재방식 명시)키로 계약을 체결, 료길(辽吉)부동산개발회사가 련대담보인으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한라레미콘은 계약대로 인민페 824만 4000원 상당의 콘크리트를 공급했지만 약정기한이 훨씬 지나도록 료중건축회사는 체불한 콘크리트 값 307만4000원을 갚지 않았다. 한라측은 독촉하다 못해 료중건축회사와 련대담보사를  심양시 중급인민법원에 기소했다.

2006년 5월 15일, 장영두 변호사는 원고측 대리인으로 심양시 중급인민법원의 3자대면 석상에 출두, 충분한 조사에 바탕하여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며 반박의 여지없이 변호를 했다. 법원측은 끝내  피고측 주장을 접고 한라측의 손을 들어주어 피고더러 체불금과 위약금의 합계에 해당한 심양시 철서구 종합시장건물내 15개 가게방을 한라측에 넘겨주도록 판결하였다.  

지난해 3월 청도의 한국인 탁모씨는 출국하려다 공항에서 출경제한 조치에 걸렸다.

청도시중급인민법원이 탁모씨의 거래업체인 교주(胶州)모자공장의 일방적인 출국금지(탁씨)청구를 들어준 결과였다. 시간을 끌다간 회사업무에 커다란 차질이 예상되여 당지에서 변호인을 찾았으나 효력이 없었다. 탁모씨는 연줄을 통해 북경에서 뛰여난 사건처리 능력이 인정되고 있다는 장영두 변호사를 찾았다.

장영두 변호사는 현지에 가 사건의 경위를 조사한뒤 청도시 중급인민법원에 청구서를 제출, 탁모씨에 대한 '판결'은 공정성이 결여되며 최고인민법원의 '법에 의해 외국인과 중국공민의 출경을 제한할데 관한 몇가지 규정'의 관련조항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탁씨 관련 출국제한판결을 시정해 줄것을 요구하였다.

법원은 피고측 변호리유에 비추어 진상확인후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  '출국제한판결' 의 해제 결정을 내림으로써 탁씨는 출국과 더불어 정상적인 업무를 할수 있게 되였다.

금전의 유혹과 직업적 량심의 천평

2005년 봄, 한국인 김씨는 북경 모 골프장에 '눈독'을 들여  운영권 구매의향을 밝히고  장영두 변호사를  협상테이블에 청했다. 검토과정에 장영두 변호사는 상대방이 제시한 서류의 합법성이 결여된 점을 간파, 골프장운영권을 구매할 경우 커다란 모험을 자초하게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김씨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내막을 모르고 덤볐다간 한바탕 홍역을 치를  판이였다.

중국의 관련법규와 구체사정을 모르는 한국인은 장영두 변호사의 진솔하고  신의가 담긴  설득을 받아들였다. 장영두 변호사가 '눈을 감아주고' 골프장의 차후 운영여부에는  관계 없이 거래를 성사시켰다면 사전합의대로 7만원을 챙길수 있었다.

한편 거듭되는 접촉과정에  골프장주인도  이번 거래의 성공여부에 장영두 변호사의 역할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일이 추진되도록 힘을 실어주면 별도로 넉넉한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거듭 암시하였다. 하지만 장영두 변호사가 조금도 '허점'을 보이지 않자 나중엔 "사람이 너무도 융통성이 없다"며  언짢은 눈총을 주기도 했다.

2005년 6월, 한국 부산의 모 회사는 북경에 있는 한 건축업체와  총 규모가 4억원(공동출자)에 달하는  부동산개발항목을 둘러싸고  상담을 해오던 차였다. 합작협상이 마무리단계에 이르러  계약체결 시점에서 한국측은 서류상 하자가 없는가 봐 달라며 장영두 변호사를 청했다.한국측의 요구에 응해 상대방 회사를 찾은 장영두 변호사는 합작상관서류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북경의 건축업체는 현재 편법을 리용해 운영되는 상황이며 합법적인 영업허가를 받은 건설업체가 아니란 점을 확인, 허울만 보고 자금을 투입했다간 자칫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측에 알려주고 합작파기를 건의했다. 쌍방간 합작이 성사된다면 장영두 변호사는 이번에도 만만찮은 리득을 챙길수 있었다.

북경에 금방 들어와 사무소운영과 업무확장에 자금사정이 빠듯했지만 장영두 변호사는 량심의 자대를 기울이지 않았던것이다.  

"변호사도 기업인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어야 한다. 경쟁상대가 1000여개(변호사 사무소)에 달하는 북경에서 우리도 돈을 벌어야 생존이 가능하며 또 돈을 벌어야 실력을 키우고 새로운 발전을 도모할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돈을 벌며 어떤 기준으로 돈을  버는가는 사람 나름이다." 소박하지만 사색을 던져주는 장영두 변호사의 말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존심 대결

2005년 7월, 북경시 조양구 망경신성에서 '집단폭행'사건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련행된 길림적(籍)의 강모씨, 윤모씨 등 4명(조선족)은  1심에서 무기형, 13년  유기형 판결을 선고받았다. 법정에서 관련 부처의 '입김'이 원고측에 공공연히 힘을 실어 죄에 비해  엄청 빗나간 판결이였다.

2심에서 피고측 변호를 청탁받은 장영두 변호사는 전후사연을 조사하고  필요증거를 확보한뒤  법정에서 원고측의 과장되고 불확실한 진술을 반박, 사건 관련 증거를 하나하나 제시하며 1심의 판결이 법적 론리와 상식을 벗어나고 공정하지 못했다는 점, 형량이 지나치다는  점을 비중있게 규명하였다.

결과적으로 1심의  판결이  뒤집히고 각기 형량을 감축한 유기형  8년~5년 등으로, 배상청구액도 원심의  31만원에서 6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11월, 장영두 변호사는 머나먼 광동으로부터 예상외의 사건대리를 접하였다.

해풍(海丰)현 고료촌에서 벌어진 일. 2000년 3월 상급관계부처의 힘을 업은 모 규모업체는 아무런 의견수렴절차나  합의도 없이 1500무의 농경지와 민가를 전부 징용, 골프장 및 부대시설건설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규정에 따른 보상 그리고 강제이주조치를 내린 상황에서 수백만원의 이주정착비를 받지 못해  300여명 촌민은 살길이 막막하게 되였다.

촌에서는 그동안 상급 여러 부문에  20여차례 고소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아 당지에서 더는 해결가망이 없자 마침내 북경에 대표를 파견한것이다.

장영두 변호사는 사건에 관련해 선후 4차례나 당지에 가 조사를 진행, 촌민으로부터 관계부분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진상을 파악하였다. 거물급 회사와의 접전이여서 순탄치 않은 승부가 예상되지만 이름을 거는 사명감으로 배수일전의 각오를 다진것이다.

11월중순 제 5차 광동 출발이 예정, 막바지 증거물 분석 확인작업과 법정에서 배경이 막강한 피고측의 '마지노방어선' 돌파구 모색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정의감, 이는 아마 장영두 변호사의 자라온 환경과도 맥을 잇는듯싶다.

17세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공부를 그만두고 헐렁한 작업복 차림으로 지하 1000여미터 막장에 들어가 탄층을 헐어내는  '검둥이'신세가 되였다.

지난 80년대초 많은 동년배들이 대학입시에 붙었으나 그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남달리 진취심이 강했던 그는 일생을 탄부로 살수는 없다며 앞날을 설계하다 장차 나같은 처지의 사람을 '두둔'해 나설수 있는 변호사직이 적성에 맞다고 스스로 단정하고 자학으로 법률공부에 나서 소박했던 꿈을 이루고 마침내 숙명적인 과제로 사회적 정의,약자권익  대변의 길을 택하게 된것이다.

북경에 진출하여 어언  4년, 그동안 상해, 광동, 서안, 청도, 사천 등 10여개 성시를 분주히 드나들며 도전과 시련의 나날을 보냈다.

대인관계에서 보여준 타고난 친화력, 탄탄한 법률지식을 기반으로 론리정연한 추리판단능력, 법정에서의 뛰여난  웅변술과 풍부한 실전경험, 국제무역과 투자관련정책 및 법규에 대한 투철한 리해를 바탕으로 한 장영두 변호사와 그가 인솔한 팀이 그동안 변호를 맡았거나 조정자로 나서 해결한 민사, 형사 그리고 행정소송 사건은 무려 수백건, 그중 관련금액이 1000만원이상 되는 송사만 해도 10여건에 달한다. 

쟁쟁한 '브랜드팀'을 거느린 장영두 변호사의 두드러진 활약으로 세기변호사 사무소(합동)는 현재 전직 변호사가 원래의 35여명에서 근 80명으로 늘어나 북경시 1000여개 변호사 사무소중 순위 30위권에 진입했으며 기업 및 부동산투자, 금융신탁, 자산 및 소유권 등 관련 다양한 범위의 분쟁해결에 남다른 실력을 과시하고있다. 아울러 정부 여러 부처와 돈독한 인맥을 건립하고 각급 법원, 중재기관과도 원활한 업무관계를 유지하여 날로 완벽한 글로벌화 법률서비스시스템을 구축해 가는 장영두 변호사는  치렬한 경쟁의 무대에서 오늘도 최상의 서비스를 펼쳐나가고 있다.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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