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자동화분야의 태두급 조선족과학자 한경청교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2월12일 07시54분    조회:740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잡지 《좋은 아침》 조선족인물렬전 코너의 장식때문에 많은 조선족 유명인사들을 만나 취재하면서 과학기술분야에서 성공한 민족의 과학자들이 그렇게 많은 분야에 골고루 많음에 실로 긍지를 가지게 된다. 특히 기업인들은 개혁 개방의 무드를 타고 짧은 시일에 부를 이루고 그를 바탕으로 사회에 공헌을 한 유명인들이라면 성공한 과학자들은 모두가 다 장구한 세월의 비바람속에서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그 누구의 평가도 바라지 않고 오직  과학탐구의 길에 묵묵히 일생을 바쳐온 고귀한 삶을 살아왔다.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들이 더 많은것이다.

그속에서도 전국 자동화분야의 태두급인 중국과학원 수학및 계통연구원 계통과학연구소 교수 한경청 연구원의 근 반세기에 걸치는 과학탐구와 후대교육에 대한 남다른 집념은 오늘도 여전히 권위자의 전형이라 말할수 있다.

새 중국의 과학연구와 그의 일생

금년 70세인 한경청 교수는 새 중국건설의 원로 과학자이다.
그는 1951년 길림성 장백 조선족자치현에서 소학, 중학을 마치고 그해 길림성 통화조선족 중학(현재 통화조선족제2중학)을 다녔다.

1953년도에 길림대학 수학학부에 입학하여 1958년도에 졸업하여 65세로 정년 퇴직할때까지 줄곧 중국과학원 수학연구소에서 연구사업을 하여왔으며 지금도 일주일 3일간은 계속 연구소에 출근하고있다.

1962년 수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당시 중국 미사일 연구의 대부인 전학삼교수의 발기에 의해 수학연구소내에《공제(CONTRAL)리론 연구실》이 창립되였고 당시 전도 양양한 조선족 과학자 한경청교수를 포함하여 8명의 연구진이 선발되여 연구사업을 하게 된다. 이것이 새 중국에서 처음으로 되는 계통연구소의 발족이며 이때부터 중국에서 공제리론이 정립되게 된다.

1960년, 쏘련의 모스크바에서 제1차 국제공제리론련합회가 열린데 비하면 새 중국의 상응한 연구소의 설립도 무척 발 빠른 조취였다고 말할수 있다.

1963년 스위스에서 진행된 제3차 공제련합회의에 한 경청교수는 중국인 과학자 쑹주안 과 첫 중국과학자 대표로 공동 연구 논문인 《최속공제 분석리론》을 가지고 회의에 참가하였다.

당시 쏘련의 수정주의로선을 비판한 중국에 대해 이 련합회의 실제적 운영권을 행사하고 있던 쏘련측에서 중국의 론문발표를 심사도 하지 않음으로써 새 론문의 발표를 가로막고있었다. 새 중국의 첫 공제리론을 그것도 조선족 청년과학자로서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발표하려 하였던 한 교수의 꿈이 좌절되는 순간이였다.

회의날자는 점점 끝나가는데 항의로, 교섭으로 론문연구발표가 해결될 가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교수와 쑹교수는 다른 나라 과학자들의 론문발표시 질의 응답하는 기회를 리용하여 본 론문의 요점을 발표하기로 작정하였다.

마침 미국과학자의 론문에 대한 질문요청시간에 쑹교수가 신청하여 연단에 나서게 되였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연설자의 론문을 반론하는 형식으로 자기들의 연구성과인 《최속공제 분석리론》을 발표하였다.

순간 회의장 전체는 경탄과 환희로 들끓었고 다음날 국제과학잡지들에서도 론문의 특수성과 중국의 과학기술의 잠재력에 대해 대서특필되였으며 그들의 론문은 본 대회의 특강리론으로 채택되는 쾌거를 이룰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와 과학자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아 1963년 중국과학원에서 추천하는 쏘련 모스크바대학의 류학생으로 3년간의 공제리론연구에 관학 류학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그에게도 불행이 닥쳐왔다. 국내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학업을 포기하고 더우기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던 박사론문도 완성하지 못한채 상급의 배치에 따라 모든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귀국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당시 중국에는 박사학위제가 없었으므로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는것이 유일한 수단이 였음)

그 이후 10여년은 젊은 과학도의 방황의 세월이였다. 1966년은 문화대혁명 발발로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허송의 1년이였고 1968년은 개조의 대상이 되여 당학교에 가서 《단련》하여야 하였다.

학교를 마친후에도 마땅한 직업의 배치가 이루어지 않아 연변대학이나 길림대학에서 교원을 하려고 신청하여도 국경지역이여서 쏘련류학생에 게다가 조선족인것으로 정치적 신원이 담보되지 않는다고 모두 거절당하였다. 고중과정을 공부한 통화중학도 같은 리유로 교원으로 채용하기를 거절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장래를 희망할수 없는 암담한 시기에도 한교수에게 그나마 다행스러운것은 그때 누구도 관심하지 않아 이리저리 나딩구는 중요한 과학관련 책과 서적을 마음대로 볼수 있었던것이였다.

지금도 그때 참으로 많은 책을 읽을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1974년부터 부분적 과학연구의 시책이 있었으나 조선족이라하여 기본 연구사업에는 끼우지도 못하고 변두리에서 4년을 눈치만 보면서 지내야 하였다.

1978년 중국의 개혁 개방이 이루어져서야 모든것이 회복되였으나 자기의 고유한 과학연구 사업은 할수가 없었다. 당시 국내상황은 자동화분야의 연구기초가 미약하였고 특히 공제리론전문가가 몇사람 안되는 상황에서 전국의 대학과 연구소들에 강의를 다니느라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78년부터 82년사이 학습반을 꾸리고 그 주임을 맡아 교육에 헌신하였고 더 많은 인재를 속성으로 키우기 위해 《전국자동화학회》를 설립 운영하면서 론문발표형식으로 과학의 기초를 쌓아 나갔다.

동시에 그 학술보고서들을 참고로 강의안과 속성교재들을 만들어 나갔다. 이렇게 교육의 바쁜 가운데서도 기존의 공식리론인 수학을 기초로 복잡하게 엉킨 공제리론을 단순화하는 연구사업도 병행하여 실행해 나갔다. 수학을 기초로 한 기존의 공제리론은 그 복잡성으로 하여 실제 현실적용에서 많은 보조장치들을 건설하여야 하는 자재의 랑비 등 불합리성으로 도입되지 못하고있었다.

한경청교수는 1980년대 말 《실용공제기》의 논문에서 공제기술에서 복잡한 수학기초에 의거하는 기존의 리론을 간결한 직접 응용리론으로 대체하였으며 최근에도 《자항속공제기술》이라는 제목의 최신 론문을 발표하여 국내와 미국, 일본에서 그 기술이 도입되고있다. 공제리론에서의 한교수의 새로운 발명은 수학에 의존하던 기존의 연구에서 탈피하여 발생하는 오차를 감수하며 그 오차를 줄임으로써 간결한 공제리론과 현실적용을 용이하게 하는것이다.

고령에 아직도 연구소와 룡관호텔에 있는 자신의 작업장을 오가며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고있다.

후대교육과 민족과학자 양성에도

중국에서 박사생후보 양성은 교육부에서 주관하는것으로 기본적으로 교육부 산하 대학원들에만  배당하고 과학원에 보내지는것이 많지 않은 현 실정에서도 그 분야에 갖고있는 명성으로 한교수는 박사후보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여 90년대부터 1명의 조선족 박사를 포함하여 7-8명의 박사와 12명의 석사들을 키워냈다.

지금은 조선족과학자협회의 상무리사로서, 민족과학자들의 사부로서 민족과학자들의 교류를 통한 과학기술제고의 장을 마련하고자 수없는 발품을 팔고있다.

지난 11월 24일에 진행된 조선족과학자협회 북경학술회의 년차회의 소집을 주관하고 걸린 회의장 사용문제도 중국과학원 수학 및 계통연구소에 주선하여 해결하였고 유명 과학자 초빙 등 모든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였던것이다.

이와 함께 《조선족박사 포럼》의 운영과 정상화문제, 전국대학들에서 공부하고있는 2만여명의 조선족대학생들이 망라되여 있는 동우회 《조선족 대학생센터-KOREAN STUDENT CENTRE -KSC》의 활성화와 조선족과학자협회와 련결시켜 정부의 합법적인 승인을 받는 사단법인으로의 발전을 위해 오늘도 여전히 관계부문에 뛰여다니고있다.
우리는 자동화분야의 태두인 한경청교수와 같은 민족의 과학자들로 하여 큰 자랑을 느끼고 있으며 인생말년에 그가 진행하고있는 과학연구에서와 민족과학자들의 단합과 능력제고, 후대양성을 위한 그의 사업에서 보다 더 큰 성과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공제리론이란?

물체의 운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리론인바 실례로 우리가 자전거를 탄다고 하면 자전거에는 방향, 힘(속도), 정지의 3대 요소가 가미되여야 가장 정확한 방향으로 최대의 속도를 낼수 있을것이다. 공제리론이란 바로 이 3 대요소를 통제조절하는 과학리론을 말한다. 인공위성의 발사. 미사일발사 등에 리용되는 과학기술의 기초이다.

김경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그는 평범한 소방관이였다. 하지만 화재현장에서는 불길속을 날아드는 전기식 인물임에 손색이 없었다. 그는 체구가 왜소한 조선족젊은이다. 하지만 긴급구원현장에서 뜨거운 손길로 65명이나 되는 생명을 구출했다. 그는 어릴적부터 량친의 사랑을 잃은 ‘고아 아닌 고아’였다. 하지만 장장 8년간 독거로인들을...
  • 2007-08-27
  • 얼마전 기자는 지인의 소개로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80주년을 맞는 기회에 중국인민해방군 총병원 (이전 해방군 301병원)의 이비인후과 주임의사인 한동일박사를 만났다. 소박한 농민의 아들 끈질긴 노력가 찾아간 날 약속한 시간이 한시간반이나 기다려서야 문진을 끝내고 들어오는 한박사를 만날수 있었다. 박사이고 군병원...
  • 2007-08-16
  • 17차 당대회 대표로 선거된 조선족 리명성 ◈ 중국의 대외개방, 경제글로벌화, 다국적산업합작 등에서 중요한 성과◈ 25만자에 달하는 《중국의 경제전략》 개혁개방의 성공◈ 경험 총화 중국경제발전의 전략적구상 전망 제시◈ 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 중앙국가기관걸출청년, 귀국류학생선진개인 등 영예 안아 중국기업련합...
  • 2007-08-14
  • 조선족유치원들이 어린이류실로 고심하고있는 최근년간 해림시조선족유치원은 오히려 해마다 어린이수가 늘어나 금년들어 어린이수가 240여명(올해 졸업한 70여명 포함)으로 늘어났다. 또한 1000평방미터의  새 교수청사에 갖가지 대형 놀이기구 등을 구전히 갖춘 규모화한 유치원으로, 민족의 꽃봉오리들의 요람으로 ...
  • 2007-08-14
  • 그의 매일 일과는 축구 관련사항들로 꽉 차있다.  푸름하게 밝아오는 새벽 5시 반이면 벌써 애들을 이끌고 아침훈련에 나서고 오전이면 체력훈련, 기전술훈련에 그도 함께 땀동이를 쏟는다. 애들이 문화과 수업을 하는 날에는 훈련계획을 짜고 경기총화도 짓는다. 이토록 축구에 푹 빠진 사나이―그가 바로 연길시제2고...
  • 2007-08-09
  • 아르헨띠나 최대 민영방송인 《텔레페 TV》의 뉴스 앵커를 지낸 황진이(30) 씨는 동양인 녀성으로 아르헨띠나 언론계에서 쉽지 않게 성공을 거두어 주변의 시선을 모으고있다.미국, 카나다 등 북미지역에서 아시아계 앵커들이 주목받는것과는 달리 남미언론계에서는 동양인을 거의 찾아볼수 없다. 황씨는 1998년 대학졸업직...
  • 2007-08-07
  • 연변성보국제상무빌딩유한회사의 정영채회장이라면 연변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별반 없을것이다. 그러나 한국인 기업가로서가 아니라 우리 연변 사람으로서의 정영채회장이라면 잘 안다고 자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정영채회장에 대한 필자의 인상도 워낙 연변에 와 사업에 성공하여 돈도 많이 벌고 여러가지 사...
  • 2007-08-06
  • ——— 로전사 최경애할머니의 참군일기에서  산골마을에서 참군한 처녀 1946년 4월초 연변의 봄은 일찍도 찾아왔다. 마을 앞산에는 진붉은 진달래가 떨기떨기 피여났다. 로투구 마을밖에는 전선으로 떠나는 청년들을 전송하는 마을사람들로 분비였다. 두 오빠와 같이 전선으로 떠나는 경애는 꼭 공을 ...
  • 2007-08-02
  •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 사람이 자기가 맡은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인재인것이다.애득백화점에는 그런 인재가 많기에 애득의 오늘과 같은 발전이 있다. 자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며 즐겁고 신나게 일하는 사람들이 인재인것이...
  • 2007-08-02
  • 군대는 하나의 특수집단이다. 군대는 사람을 양성하고 사람을 단련시키며 사람을 키우는 대학이다. 군인이란 이 특수직업은 곤난을 이겨내도록 의지력을 키워주고 인생을 더 보람있고 더 알차게 보낼수 있는 토대를 닦아준다. 1969년 19세 나이에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하여 37년간 부대생활을 해온 박성진은 《군영은 강한...
  • 2007-08-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