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감동길림”인물 “백성원장 유성일”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4월9일 08시54분    조회:3893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ㅡ《인민법원보》 유성일사적 소개 

“백성원장”의 칭호는 정부측에서 준것이 아니고 자기절로 봉한것도 아니며 길림성의 2700만 백성들이 무기명투표방식으로 선거해 이룬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2007년 “감동길림”10대인물의 한 사람으로 평의된 연길시인민법원 원장 유성일이다.

지난 2월 29일에 기자가 연길시법원을 찾아갔을 때 유성일은 금방 연변인민방송국의 생방송실에 갔다가 자기의 사무실에 갓 돌아왔다. 이번 생방송에서 유성일은 군중들에게 재차 자기의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24시간 동안 전화를 통하게 한다고 승낙하였다.

사실 법원의 지도일군과 법관의 전화번호를 사회에 공개한것은 2년전의 일이다.

당시 연길시법원은 새로 재판청사에 입주했다. 법관과 당사인의 사적만남을 피면하고 정상적인 사무질서를 확보하기 위해 재판구역과 사무구역을 엄격히 분리하였으나 당사인이 법관을 찾는데 적지 않은 불편이 있었다. 2년전에 유성일은 두번째로 한 당사인을 접대하였는데 당사인은 이전에 제기한 문제가 의연히 철저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였다.유성일이 왜 일찌기 말하지 않았는가고 묻자 그 당사인은 “원장님을 다시 찾자니 미안하고 그런데다 당사인이 법관사무실에 못가게 되여 법관을 만나기 힘듭니다. 사무실에 전화를 쳐서 통하면 행운이고 통하지 않으면 만날수 없습니다”라고 애탄 사정을 토로하였다. 이 말은 들은 유성일은 자책감을 느꼈다. 그후 그는 지도부회의에서  전 법원 각 재판업무실 법관과 사업일군들의 휴대폰번호, 사무실전화번호를 법원의 접대대청의 벽에 붙여 공개할것을 제기하고 또한 접대대청에 내부전화를 설치해 당사인이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법원에 찾아온 군중이 즉시에 법관들과 련계할수 있게 하였다.

손홍도는 연길시 조양가두에 거주하고있다. 2003년 7월, 그는 모 건축현장철거공사를 도맡았다. 축모에게 선불금으로 30만원의 도급비를 주었는데 피고는 공정을 그에게 도급주지 않았고 일부분 선불금만 되돌려주고는 사라져버렸다.

하는수 없는 상황에서 손홍도는 법원에 상소하였다. 2005년 5월, 연길시법원은 심리를 거쳐 피고가  손홍도에게 선불금 18만원을 되돌리고 또 손실을 배상하여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이 사건의 집행이 곤경에 처하게 되였다. 피집행인이 행방불명였는데 집행공고통지서가 내려갔지만 피집행인의 재산을 밝힐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하여 2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2007년 8월, 손홍도는 친구에게서 피집행인이 흑룡강성 녕안시에서 건축공사를 벌리고있다는 정보를 알고 그날 오후 5시 반가량에 급기야 법원에 찾아갔다. 그때는 법원에서 이미 퇴근한후였다. 그는 급한김에 공시판에서 유성일의 전화번호를 보고 시험삼아 전화를 쳤다. 전화가 통하였는데 유성일은 사건정황을 묻고나서 10분후에 다시 련계하자고 아주 상냥한 언어로 말하였다. 10분도 안되여 손홍도는 집행법관과 법원경찰의 전화를 받았고 집행일군이 인차 당도하였다. 만나서 정황을 료해한후 집행일군과 손홍도는 그길로 흑룡강성 녕안시로 갔다. 최종 피집행인을 한 오락장소에 찾아 사건은 순조롭게 해결되였다.

사건이 몇달간 지났지만 “인민법원보” 기자가 연길에서 취재를 한다는 말을 듣고 손홍도는 주동적으로 기자를 찾아왔다. “이 도급금액은 반은 빌린것인데 기편당한후 너무도 열통이 나서 뇌막염까지 걸려 수술비로 2만여원을 써버렸습니다. 3년 동안 아무 일도 안하며 누님과 녀동생에 의거해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만약 유성일같은 백성원장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희망이 없었을겁니다”라고 매우 감격해 말하였다.

연길시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으로서 연길시법원에서는 년평균 접수하는 각 류형의 사건이 7000~8000건이 되는데 이는 전 주 기층법원 1심사건의 3분의 2에 해당되며 관련된 당사인이 2만여명에 달한다. 이전에 연길시법원에 신소사건이 비교적 많아 법원사무청사복도에 늘 신소당사인으로 꽉차있었다. 2002년 10월, 유성일이 시당위 상무위원, 정법위원회 서기로부터 법원 원장사업을 맡게 되였다. 그는 지도부의 기타 성원들과 연구결정하고 원장접대일제도를 실시, 법원지도일군마다 교대로 당직을 서면서 직접 신소하러 온 군중을 접대하기로 하였다. 8명의 지도부 성원이 한달에 평균 3일 시간을 군중을 접대하는데 보냈다. 시초에 지도일군들이 많은 사람들을 접대할것을 요구하였기에 복도에 사람들이 많았다. 현재 원장접대일에 접대하는 사람이 적어져 하루에 2~3명에 불과하다.  

기자와의 취재시 유성일은 민생문제는 곧바로 백성들의 반영이며 더우기 우리가 법원사업을 개진해야 하는 제1신호라고 말하였다.

어느날 유성일은 우연하게 외지에서 온 당사인들에게서 법원청사는 화려하지만 봉사는 형편이 없다는 의론을 들었다. 무심결에 한 말이지만 유성일은 웃으면서 어떤 면에서 봉사가 안되는가를 물었다. 그들은 자기들은 북경에서 왔는데 북경법원의 봉사용어는 아주 규범화된것으로 “안녕하십니까”, “미안합니다” 등 용어는 사업일군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지만 여기의 법관들의 말은 너무도 딱딱하다고 하였다. 유성일은 그들의 말을 머리를 끄덕이며 귀담아들었다.

사무실에 돌아온후 그는 지도부회의 소집하고 법원 법관과 기타 사업일군이 당사인들이 제기한 건의를 참답게 시달하여 문명하지 못한 언어를 쓰지 못하도록 하였다.

군중들이 법원사업에 작은 요구라도 있으면 유성일은 잊지 않고 해답을 주었다. 당사인이나 변호사들이 법원에 와 상소할 때 인터넷접속이 수요되자 유성일의 제기로 법원에서는 몇갈래의 인터넷선로를 가설해놓았다. 맹인의 불편함을 고려해서 맹인도로를 만들어놓고 동시에 화장실에 장애인의 변기도 설치해놓았다…

3월 3일 오후 4시, 기자가 연길시 건공가두 연청사회구역에 갔는데 사회구역 주임 박명자는 “어제는 일요일인데 유원장이 몇명의 법관들과 함께 사회구역에 내려와 최저생활표준가정 장충극의 분규사건을 조사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장충극은 워낙 수도전기수리공으로 가정생활이 비교적 부유했지만 2003년에 차사고로 반신불수로 되고 기억력을 상실, 게다가 안해마저 앓다나니 아이가 대학에 다니고있는데 가정생활이 극도로 곤난하였다.

연청사회구역은 유성일이 연길시당위 상무위원, 정법위원회서기로 있을 때 맺은 련계점이다. 몇년 동안 련계가 계속되고 특히는 그가 법원에 돌아온후 더욱 사회구역에 심입하였다. 장충극가정도 법률이 사회구역에 진입하는 활동가운데서 유성일을 알게 되였다. 장충극이 이전에 장사할 때 일부 련계단위에서 그에게 줄 돈을 주지 않은 일도 있었으며 기소서에 계산한 내용을 보면 못받은 빚이 8만여원이나 되였다. 그런데 지력장애가 있는데다 말까지 똑똑하지 못해 증거가 충분하지 못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사람들은 빚을 부인하고있었다. 이 사건이 법원에 소송된후 법원에서는 소송비를 받지 않았을뿐만아니라 유성일이 직접 접대하고 사건자료를 본후 사건처리일군들이 참답게 사건을 심리하고 당사인을 도와 증거를 찾아낼것을 요구하였다. 현재 이 사건은 2만 5000여원이 법에 의해 집행되였다. 장충극의 안해와 안해동생이 기자를 보고 유원장은 거드름 피우지 않는 진짜 좋은 분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알아본데 의하면 이 사회구역에 사업일군이 20여명이 있는데 매 사람의 월로임이 근 600~700원 정도, 점심에 나가 먹을 형편이 못되고 또 집에 가기도 불편하였다. 이 정황을 알게 된후 유성일과 법원간부들이 기부금을 내여 사회구역에 음식점을 꾸리도록 하였다. 박명자는 다른 사람들은 곤난이 있으면 경찰을 찾는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곤난이 있으면 유원장을 찾으며 사회구역음식점이 개업하면 제일 먼저 유원장과 법관들을 청하겠다고 하였다.

본지종합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본사소식 현재 한국 경민대학교 관광호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서영근 씨가 조선족으로써는 사상 처음 중국 조선족 서풍형성(書風形成)에 관한 론문으로 한국 원광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서영근 씨의 박사학위 론문은  중국 조선민족이 처한 력사,지리, 문화 등 예술환경과 그것에 의해 생성된 민...
  • 2008-03-17
  •  ㅡ심갑섭 한국 인천문화재단 대표리사 인터뷰 《문화의 저력!》 지난해 년말 한국 인천문화재단 제2임 대표리사로 취임한 심갑섭(66세. 甲燮)선생, 그와 만나서 가장 인상깊은 점은 하얀 은발과 입에서 떠날줄 모르는  《문화》라는 단어. 《문화를 키워야 도시가 살아난다》 심대표리사는 《지금 시대는 도시가...
  • 2008-03-07
  • 국가급무형문화재종목 대표계승인 김명춘 후계자양성에 고민지난 2월 28일,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제2기 국가급무형문화재 종목 대표계승인(第二批国家级非物质文化遗产项目代表性传承人) 명명 및 증서 수여식에는 문화부가 공포한 551명의 종목 대표계승인...
  • 2008-03-07
  • 중국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당선된 연변가무단 일급 무용가로 활약하고 있는 함순녀 대표를 전화로 연결해서 두 회의와 관련해 그의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하 "기"는 기자, "함"은 함순녀 대표를 지칭합니다.)  기: 안녕하십니까? 함: 안녕하십니까? 기: 우선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 2008-03-05
  • <아리랑> 김산 발굴한 중국동포 학자의 '쓸쓸한 영면'[오마이뉴스 조창완 기자] ▲ 김산의 <아리랑>(Song of Arirang) 책 표지(김산-님 웨일즈 공저로 돼 있다). ⓒ (사)아리랑연합회 역사에 우연은 없지만 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훗날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작가 에드가 스노우의 부인 님 웨일즈는 르...
  • 2008-02-28
  • 민족예술의 새로운도약 위해 기여할터-11기 전국인대 대표 연변가무단 국가1급배우 함순녀다년래 민족예술에서의 배움과 쌓은 경험들을 학생들에게 사심없이 전수하여 연변민족예술을 고양할수 있는 우수한 후계자들을 양성하기에 노력하며 연변민족예술의 새로운 휘황과 도약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련다." 이는&nbs...
  • 2008-02-26
  • 2007년 7월, 중국 중소학교학생 노래경연에서 연길시제3중학교 최연희(15살)학생이 벨칸토창법에서 단연 1등의 영예를 따내 가족은 물론 학교의 교정을 들썽케 했다.“내 딸이라고 자랑하는것이 아니라 이 애는 어릴적부터 취미가 다양했으며 특히 음악절주감이 좋아서 동네에서 노래 잘 불러 소문이 나있었다”...
  • 2008-02-26
  • 꼬마무용수들의 예술꿈 키워간다 -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 심성주교원의 이야기20여년간 꼬마무용수들을 거느리고 전국, 성, 시급 시합에 참가하여 수십차례의 영예를 따내면서 어린이들에게 예술의 꿈을 키워주고 있는 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의 심성주교원. 국가급음악부편심, 작곡가인 아버지의 셋째딸로 태여난 심성주...
  • 2008-02-25
  • 한국 근대시로 석사학위 딴 조선족 윤기미씨 "중국에 한국 문학 알리고 싶어요""아직까지 중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한국 시를 중국에 많이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국 근대시를 연구한 논문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윤기미(33.여)씨는 석사모를 쓰고 환...
  • 2008-02-24
  • —11기 전국인대대표 연변대학 교장 김병민"조국의 변강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비록 조건이 간고하지만 교원과 학생들은 나를 수요한다. 민족교육사업발전을 위해 자신의 일체를 기여하겠다" 고 연변대학 교장 김병민은 페부지언하면서 학교를 열애하고 민족교육사업을 열애하는 심경을 털어놓았다.1978년...
  • 2008-02-2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