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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시인민검찰원 반독직침권국 허동섭부국장에 대한 이야기
1.74메터의 키에 90킬로그람의 체중을 가진 다부진 몸매의 사나이 허동섭(43세)씨, 화룡시인민검찰원 반독직국 부국장이란 중책을 짊어지고 나라와 백성들의 리익을 위해 불철주야 비리와 싸우면서 정의를 수호해온 그가 과로로 쓰러지면서 무정한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선후로 성급 우수정찰원, 성급 전문사업선진일군, 주급 5호검찰관, 화룡시 우수공무원, 선진개인, 우수당원, 선진사업자 등 수많은 영예를 따내고 자신이 주관한 시인민검찰원 독직과도 련속 3년동안 성과 주 검찰계통의 선진집체 반렬에 올려세운 그는 항상 당당한 모습이였다. 그러던 그가 중병에 걸려 십이지장, 담낭 등을 떼여내는 대수술을 받으면서 체중이 20여킬로그람이나 줄었고 눈언저리가 푹 꺼져들어간 얼굴엔 피기라곤 전혀 없어 볼품없이 되였다.
"허동섭씨는 맡은바 사업이 아무리 어려워도 언제나 원만하게 임무를 완수했고 무슨일이나 모두 깐지게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이렇게 쓰러졌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화룡시인민검찰원 김학철 검찰장은 허동섭씨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며 그가 하루빨리 병마를 전승하고 동료들곁에 돌아와주기를 기원했다.
◎ 검찰관의 명예를 걸고 업무에 연찬
24년전 공무원시험을 통해 화룡시인민검찰원의 일원으로 된 허동섭씨는 바라던대로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된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오랜 검찰관인 그의 아버지도 검찰관 시절 사업에서 수많은 영예를 취득했으며 부지런하고 열정적이여서 동사자들로부터 "황소"로 불리웠다.
무슨 일에서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허동섭씨는 업무실력이 낮아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고 나라와 인민대중의 리익에 손해를 주어서는 안된다며 시간이 나는대로 책과 자료를 뒤지며 검찰업무를 익혔고 실천속에서 부지런히 경험을 루적했으며 무슨 일을 맡던지간에 최선을 다했다. 허동섭씨 부친의 동사자이면서 허동섭씨와도 함께 사업하며 줄곧 그의 사업 모습을 지켜봐온 화룡시검찰원 직무예방과의 조학문씨는 "허동섭씨는 어느 부문에서 사업하든지를 막론하고 항상 최선을 다했는데 어느 분야에서도 모두 전문가로 꼽히울 정도이다"고 말했다.
허동섭씨는 검찰업무에서 능력이 뛰여났을뿐만아니라 인품 또한 후더워 인간적으로도 동료들의 긍정을 받았다. 2003년 민주선거에서 그는 압도적인 고득표로 독직과 과장(후에 독직과가 반독직국으로 되면서 부국장을 담임)으로 선거됐다.
◎ "사부"도 봐주려 하지 않는 "포공"
독직침권사건은 은페성이 매우 강한데다 범죄주체가 많이는 사법일군과 행정일군들이다. 법을 잘 알고 있는 그들에게 비교적 강한 반정찰능력이 있기에 조사처리에 곤난이 많았다. 또 집법환경의 영향으로 사건을 접수하자마자 바로 각가지 관계망들이 동원되면서 사건조사에 큰 애로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허동섭씨는 각종 장벽을 물리치고 견결히 사건조사를 진행해나갔다. 독직과를 맡은 3년동안에 그는 독직침권범죄사건 23건(독직침권범죄 관련인원 26명)을 성공적으로 사출했다. 모든 사건들은 전부 그해에 립건, 정찰을 종결짓고 당해로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내렸는데 유죄판결률은 100%에 달했다.
한번은 허동섭씨가 "사부"라고 부를 정도로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개인적으로도 절친한 사이인 반탐오회뢰국의 배송설씨는 안면을 가리지 않고 사건수사를 하는 허동섭씨를 보고 우스개로 "내가 만약 무슨 일에 걸려들면 자네는 나를 조사하겠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허동섭씨는 "아무리 사부라고 해도 조사할건 조사해야지요!"라고 대답했다. 당과 인민에게 충성하고 검찰사업에 혼신을 다하는 허동섭씨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몇해전 화룡시검찰원에서는 모 단위의 한 수금원이 받지 말아야 할 수금까지 받아 챙겼다는 제보를 받았다. 후에 알고보니 그 사람은 허동섭씨와 사촌관계였다. 이 사건을 맡은 허동섭씨는 모든 사건관련증거들을 하나도 빠뜨림없이 전면 조사해 조직에 회부했다. 검찰원 지도부와 그의 동료들은 인정사정을 가리지 않고 맡은바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는 그의 정신에 탄복한 나머지 그를 "포공"과도 같은 사람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 가옥소유증을 저당잡힐지언정 례물에는 손 안대
어느날 시검찰원의 리철수부검찰장은 허동섭씨가 가옥소유증을 저당잡히고 5만원을 대출받으려 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재삼 물어봐서야 허동섭씨는 안해가 장기적으로 앓고있으며 북경에 가 수술받아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워낙 허동섭씨는 안해가 중병에 걸린 사실을 조직에 알리지 않고 있었던것이다.
기실 허동섭씨만한 위치에 있으면 가옥소유증 같은건 저당잡힐 필요도 없이 말 한마디만해도 수만원, 수십만원을 챙길수 있어 무난히 병치료를 받을수 있었다. 실제로 범죄관련금액이 많은 범죄혐의자들은 범죄행위가 탄로나면 법률의 엄한 징벌을 면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않고 그에게 회뢰하려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것에는 한번도 마음이 동한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뢰물을 갖고 찾아오면 그는 아예 문도 열어주지 않거나 가져온 물건들을 보지도 않고 되돌려 보냈다.
범죄혐의자들은 례물공세가 안되면 그의 친척들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그럴때마다 그는 "이 사건은 누가 손을 떼라고해서 손을 떼는것이 아니라 반드시 법에 따라 해결해야 하는 사건이다. 우리는 서로 친척관계인데 저의 사업을 지지하지 못할망정 범죄혐의자를 대신해 사정해서야 되겠는가? 내가 착오를 지게 하지 말아달라"라고하며 찾아온 친척들을 돌려보냈다. 허동섭씨는 검찰사업에 종사한 20여년래 언제나 이처럼 청렴을 고집해 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살림형편은 줄곧 펴일줄 몰랐다.
◎ 범죄자들에게 응분의 징벌을
정찰업무에 능하고 사건단서를 잘 발견하며 과감하게 범죄를 다스릴줄 아는 허동섭씨는 지금까지 이미 화룡시 광원탄광특대가스폭발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원 화룡시석탄사업관리국 국장 전송을 등 5명의 직권람용, 직무태반, 탐오회뢰 특대사건, 특대목재람벌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원 화룡시림업국 삼림경찰분국 부국장 장희동의 직권람용사건, 목재검사소 소장 함만산 등 사람들이 형사사건을 이송하지 않고 사리사욕을 채운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사출해 냈다.
허동섭씨는 언제나 전면적인 조사에 앞서 사전조사를 충분히 하여 정찰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게 했다. 화룡시 모 향 림업소 소장의 직무태만사건을 조사할 때 그는 그 소장이 외출한 기회를 빌어 림업소에 심입해 샅샅히 조사하여 많은 증거를 장악했다. 소장이 돌아오자 곧바로 정면으로 접촉했다. 철같은 증거앞에서 그 소장은 부득불 자기의 범행을 승인하는수밖에 없었다.
허동섭씨는 상황에 근거하여 과단하게 강제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행정집법일군 혹은 사법일군들은 법을 범했을 경우 반정찰능력이 강하기에 12시간만 버티면 검찰기관에서 아무런 방법도 없을거라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그런 사람들을 대할때마다 허동섭씨는 상황에 따라 12시간이 되기전에 범죄사실을 증명할만한 증거를 실토할수 있게끔 과단하게 강제조치를 취했으며 그들이 공모해서 허위진술을 하거나 증거를 훼멸시키지 못하게 했다.
2006년초, 화룡시검찰원 독직부문에서는 화룡시 경내에서 발생한 삼림훼손사건에 대해 비밀리에 조사했다. 삼림훼손현장만 있고 기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허동섭씨는 조사일군들과 함께 뼈를 에이는듯한 추위를 무릅쓰고 눈길을 헤치며 삼림훼손현장을 세밀하게 조사하여 확실한 범죄증거를 장악하고 일거에 화룡시림업국 목재검사소 6명일군의 독직범죄사실을 사출해 냈다.
지난해 4월, 길림성인민검찰원에서는 "길림성제1건축회사 부총경리 사건"조사를 우리 주에 맡겼고 주인민검찰원에서는 이 사건을 다시 화룡시인민검찰원에 맡겼다. 그만큼 화룡시인민검찰원의 조사능력이 뛰여나다는것을 믿고있었던것이다. 이 임무를 접수한 허동섭씨는 기타 사업일군들과 함께 장춘시에 주재하면서 사건조사에 나섰다. 자그마한 변경도시의 검찰원들이 성소재지에서 이렇게 큰 사건을 조사하자니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허동섭씨는 일체 난관을 박차고 끈질기게 조사를 펼쳐 많은 증거를 확보했으며 갖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범죄혐의자가 숨겨둔 장전을 찾아내 동결시키고 나라를 위해 커다란 손실을 만회했다.
화룡시인민검찰원의 김학철검찰장은 "허동섭씨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수사를 견지하여 일을 해결하고야마는 끈질긴 사업의력이 있다. 또 효률도 뛰여나다"고 치하했으며 성인민검찰원 반독직침권국의 류소죽국장도 허동섭씨의 사업방법과 사업효률을 높이 평가했다.
◎ 집체를 위한 일이라면 달갑게 "구두쇠"로 되여
허동섭씨는 어느 분야에서 사업하든지 언제나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다. 하여 그는 비록 컴퓨터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컴퓨터를 다루는 면에서 전문일군 못지 않았다. 2003년, 단위에서 감시카메라설비를 살 때 그는 자기가 직접 북경 모 회사에 찾아가 당시 전 주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감시카메라설비를 싼가격으로 사들이고 후근일군 2명과 함께 밤낮으로 이 설비들을 설치해 단위를 위해 수만원을 절약했다.
화룡시인민검찰원 부검찰장 겸 반독직검찰국 국장인 리철수씨는 한번은 허동섭씨와 함께 한 상가에 가 전기줄 두메터를 사게되였는데 그가 녀종업원과 한참 동안이나 싱갱이질을 하며 가격을 깍고 또 깍는바람에 옆에 있는 자기가 다 얼굴이 뜨거워났는데도 허동섭씨는 단위를 위하는 일이라며 개의치 않아했다고 말했다.
◎ 병마와 싸우며 사업에 집념
지난해 겨울, 허동섭씨는 처음으로 청가를 맡고 안해를 데리고 북경에 가 치료를 받았는데 안해가 출원해 기차를 타고 돌아오던 도중 장춘에서 내렸다. 안해가 섭섭해하자 그는 하던 조사를 마무리지어야 한다며 안해를 설복해 혼자 집에 보냈다.
단위에서 조직한 한차례 신체검사에서 허동섭씨에게는 혈압, 혈지가 표준치를 훨씬 초과하고 십이지장도 아주 나쁘다는 결과가 나왔다. 단위 책임자들도 이를 보고 놀라 휴식을 취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그는 약을 갖고다니며 먹으면서도 입원하지 않고 계속 사업에 매달렸다. 장춘에서 정찰사업을 하는 동안 허동섭씨는 밥을 먹으면 토하군 하여 쌀로 만든 음료수로 끼니를 대충 에우군 했다. 리철수 부검찰장은 강제적으로 그를 병원에 보내 검사하게 하고 8일 동안 점적주사를 맞게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사업일터를 떠나지 않았다.
장춘에서 장장 1년 4개월동안 병마와 싸우며 사업에 집념하던 허동섭씨는 과로로하여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단위 지도부에서는 그의 신체가 걱정되여 그를 데리고 연변병원, 종양병원에 가 검사했으며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않아 다시 북경시제3공군병원에 가 검사했는데 병세는 이미 악화될대로 된뒤였다.
법률과 정의를 수호하고 국가와 백성의 리익을 수호하기 위해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한평생 근면하고 청렴하게 살아온 허동섭씨, "좋은 사람은 한평생 평안하다"고 하는데 그도 병을 훌훌 털어내고 다시 사업터에 나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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