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윤동주문학상"평론본상 장춘식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8월26일 10시09분    조회:831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문학, 우리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 "윤동주문학상" 평론부문 본상을 수상한 장춘식 평론가


“우리 조선족에 윤동주라는 시인이 있다는것이 자랑스럽고 그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을 수상했다는것이 또한 자랑스럽다. 조선족문학의 진흥을 위해 더 노력해달라는 격려와 채찍질로 알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평론 “일상과 꿈사이의 방황”으로 제28회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평론부문상을 수상한 장춘식 평론가의 수상소감이다. 

마냥 참신한 감성과 진지한 지성으로 다져진 학자의 자세를 보이면서 최근년간 현장비평의 선두에 서서 활발한 비평활동을 전개하고있는 장춘식(張春植)평론가는1959년 룡정시 개산툰진 선구촌에서 태여났다.

변강의 오지인 천평벌에서 세상물정을 알면서부터 그의 눈에 비친 고향은 늘 식량난에 허덕이고있는 찌들고 궁기든 모습이였다.  당시 그에게는 한가지 소망이 있었으니 바로 군대에 나가지 않으면 대학교에 가려는것이였다. 그래서 그 공부가 멸시받던 세월에도 눈에 보이는대로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광란의 문화대혁명시기 분서(焚書)의 화를 요행 면한 서적들중에서 보이니치의 “쇠파리”, 똘스또이의 “부활” 등 명저들을 찾아내여 읽었다.

새로운 대학교 입시제도가 나오자 선참 응시, 수도북경의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에 입학하였다. 한동안의 습작기를 거쳐1984년 처녀작 “찌르레기야, 찌르레기야”를 발표했다.
장춘식의 초기소설은 의식의흐름 기법을 도입, 심리묘사에 많이 치중한 참신한 기법을 보였다. 당시 사회가 심한 사상적인 관념의 격변기를 겪으면서 형성된 세계관이나 인생가치에 대한 새로운 모색의 고민이 새로운  기법으로 소설에 반영된것이였다.  80년대, 중국문단에는 상징주의, 이미지즘, 초현실주의와 의식의 흐름등으로 기법이 전위적 라고 할만한 작품들이 심심찮게 나타나서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장춘식의 초기의 작품은 녹쓴 펜을 갈고있는 당시의 풍토에서 짙은 실험성으로 신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실험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5년 룡정에서 개최된 윤동주서거 50주기 기념학술회의와 연변대학에서 개최된 반파쑈전쟁승리 50주년 기념학술회의를 계기로 우리민족의 해방전문학에 대해 료해하게 되면서 장춘식은 문학창작에보다는 연구에 필봉과 정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해방전 문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너무도 편파적이고 락후되여있다고 생각했고 그 원인은 해방전문학에 대한 연구가 너무 뒤떨어졌기때문이라고 생각하였던것이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문학외적인 원인, 기성 연구자들의 퇴직, 자료부족 등으로 이 부분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산실되였고 따라서 연구는 상당히 부진한 상황이였다.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인문학도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춘식평론가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다년간 중국 국내와 한국을 오가면서 자료조사를 하고 론문을 작성하면서 지식을 쌓고 자료를 모아왔다. 2003년의 박사학위론문 “일제강점기 재중조선인소설연구”등으로 그동안 론문 수십 편과 관련 저서 2부를 간행하였고 학계에서 상당 정도 인정을 받기도 시작했다.
10년간의 연구를 거쳐 마침내 2004년 에 이 방면의 저서 “해방전 조선족이민소설연구” 를 민족출판사에서 펴냈다. 

1920년대 조선족 이주민 작가와 이민소설이 출현해 서부터 1945년 광복이 되기까지 중국 조선족의 삶을 다룬 소설들을 이민문학의 시각에서 조명한 이 연구서는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께서도 해방전 우리 소설의 전모를 리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있다.

소박한 꿈을 가졌던 천평벌의 한 소년이1984년 첫 작품을 발표하여 현재까지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외줄타기로 비평, 소설, 시 등 장르를 두루 시도하면서 “음성양쇠”(1996, 소설집, 민족출판사), “파멸에로의 욕망”(1998, , 흑룡강민족출판사) 등 소설집, “시대와 우리 문학”(1993,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등 평론집, “해방전 조선족이민소설연구”(2004, 민족출판사), “일제강점기 조선족 이민문학”(2005, 민족출판사) 등을 간행. 아울러 연변작가협회 문학평론상(1999), 조선족문학비평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평론부문 등 굵직한 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중견작가, 편론가로 부상했다. 

1998년, 대학원 공부를 위해 5년간 한국에 체류, 국립전북대학교 국문학과에서 “현경준 소설 연구”와 “일제강점기 재중조선인소설연구”로 석사, 박사과정을 거치고 “금의환향”하여 현까지 그는1983년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면서 들어간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붙박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성공한 자에게만 박수갈채가 주어지고 여유있는 생활이 주어지고 여러가지 영광이 주어지는것이 사실이지만 삶이 어느만큼 의미있느냐는 우리 각자가 자기 삶에 어느만큼 의미를 부여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문학만큼 우리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할수 있는 수단도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문학을 선택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문학에 정진할것이다. “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면서 또한 문학을 통하여 개인의 삶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고 이를 통하여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주고자 하는것이 소신(所信)이며 그 소신을 장춘식평론가는 오늘도 극명한 자세로 보여주고있다. 


김혁 기자

"종합신문" 8월 25일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심양시영결쿠크도구경영판매부 전복녀경리의 창업이야기 1990년대초기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나가기 위해 갈팡질팡할 때 심양시 황고구 명렴지역의 전복녀(56)씨는 남편과 함께 15평방메터의 영결쿠크도구생산공장을 꾸리고 부지런히 기업을 키워 지금은 여러개의 경영판매부를 가진 경리로 활약하고있다. 영결쿠크도구공장...
  • 2008-04-08
  • 두 발과 오른손까지 잃은 1급장애인 조화녀의 창업담 왕청현 시가지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고있는 조화녀성은 두 발과 오른손을 잃고 왼손밖에 없는 1급장애자이다. 하지만 그녀는 생활에 대한 더없는 열애와 용기, 완강한 의지력과 끈질긴 노력으로 장애자라는 담벽을 뛰여넘고 대학공부까지 마쳤으며 또한 간거한 창업을 ...
  • 2008-04-03
  • 2008년 북경올림픽 성화환영식 및 성화봉송가동식에 이어 우리 나라 31개 성 자치구, 직할시의 113개 도시가 성화봉송행사로 들끓고있는 가운데 연길시지체장애인 협회 회장 정영철﹙49살﹚씨도 우리 주 성화봉송행렬에 참가할 영광스러운 사명을 짊어지게 됐다.어려서 소아마비후유증으로 지체장애자가 된 정...
  • 2008-04-03
  • 룡정시 덕신향 숭민촌 제6촌민소조의 리산옥(48세)녀성은 1998년에 남편과 함께  향공급판매합작사에서 정리실업당하였다. 밭 한뙈기 없이 도시에서 공부하는 딸애와 중학교를 다니는 아들애의 공부 뒤바라지한다는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준엄한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손에 쥔 돈도 없는 그녀는 한동...
  • 2008-03-31
  • 【서울=뉴시스】 " 어렸을 적 꿈은 병아리 감별사, 바퀴벌레가 무섭다... " 지난 2월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를 마친 후 '인민 루니', '인간 불도저' 등의 별명으로 한국 축구계를 들썩이게 했던 정대세(24,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솔직담백한 자신의 일상을 공개했다. 정대세의 소속팀인 일본 J-리그 가와사키 프론...
  • 2008-03-29
  •    훈춘시 화원세통경제무역유한회사 총경리 고련숙은 우리 주 대 로씨야무역분야에 녀 강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2003년, 고련숙녀성은 다니던 무역회사가 불경기에 처해 정리실업 할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남들이 현실을 비관할 때 고련숙녀성은 직접 무역회사를 차려보려고 마음을 먹고 대...
  • 2008-03-28
  • ——— 아성직업교육중심 차미자부교장 사업실적 할빈시 아성직업교육중심에는 '벽돌공장'교정을 '화원식'교정으로, 학생을 '못생긴 오리에서 '고니'로 변신하게한 공신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아성직업교육중심(한족학교) 200여명 교원 가운데 '우뚝' 선 조선족 부교장 차미자씨(46세) 이다. 그가 학교건...
  • 2008-03-25
  • "형님, 제 스윙 좀 봐주십시요"사상 처음 한국프로골프 코리안투어와 중국프로골프 오메가차이나투어가 공동으로 치르는 KEB인비테이셔널골프대회 2라운드가 열리고 있는 21일 중국 상하이 실포트골프장 연습장에서 투박한 북쪽 사투리를 쓰는 한 청년이 눈에 띄였다.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나 자란 조선족 청년 최...
  • 2008-03-23
  • “중국에 사는 소수민족으로서 우리 민족은 중국어도 잘해야 하지만 조선어도 잘 지켜나가야 한다.” 일전 기자는 200명의 방대한 “량회”문건 번역팀을 주야 진두지휘하고있는 중국민족어문번역국(아래 번역국으로 략칭) 오수자국장(57세)을 인터뷰하였다. 1975년 중앙민족대학(전 중앙민족학원)을 졸...
  • 2008-03-21
  • 강철원씨(21)는 중국 조선족이다. 2001년에 귀화한 뒤 국내에서 대전에서 공업고를 졸업한 뒤 올 9월에 중국 10대 명문대 중 하나인 하얼빈공대에 입학할 예정이다. 강철씨(20)는 중학교때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공부와 담을 쌓았지만 뒤늦게 정신 차려(?) 세계 최고의 요리사를 꿈꾼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전문계고에서 ...
  • 2008-03-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