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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녀-국가1급배우의 고음인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12월10일 21시14분    조회:8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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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파인기가수 한선녀

국가1급배우인 녀고음독창가수 한선녀가 최근년래 연변가무단에서 기둥가수의 하나로 활약하는외 한국, 로씨야 등 나라에 가서 초청공연에 참가하면서 성숙된 가수의 이미지를 널리 자랑하고있다.

   뒤늦게 시작한 노래공부

왕청태생인 한선녀는 왕청림업국 자녀중학교(초중)에 다닐 때부터 예술에 흥취를 가지고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런데 바이올린공부를 너무 늦게 시작해서일가 아니면 악기연주에 소질이 없어서일가 나름대로 노력하느라 4년이란 시간을 허비했지만 진보가 크게 알리지 않았다. 

욕심같아서는 예술학교 기악전업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전공하고싶었지만 전업과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없게 된 그는 단연히 방향을 바꾸어 악기연주에 대한 요구가 상대적으로 낮은 음악교육학부에 응시할 결심을 내렸다.

그런데 중소학교 음악교원양성을 목적으로 학생을 모집하는 음악교육학부는 중소학교 음악교육에 필요되는 모든 학과목을 다 배워야 하는만큼 어느 한가지 특장이 있기보다는 성악, 무용, 기악 등 여러가지 재간을 두루 갖춘 학생을 수요하고있었다. 이리하여 한선녀는 여러가지 전업과시험에 통과하기 위해서라도 성악을 배우는수밖에 없게 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선녀는 자기의 목청이 얼마나 고운지를 몰랐고 노래로 성공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고맙게도 노래지도를 맡은 연변예술학교의 류상만선생님(려채옥선생님의 남편)이 선녀의 숨은 재질을 보아내고 열심히 배우면 성악전업에 응시할수도 있겠다고 고무해주었다.이렇게 선녀는 왕청2중에 다니면서 학업과 노래공부를 병행, 마침내 연변예술학교 성악전업에 입학하였다.

연변예술학교에서 공부하는 기간 한선녀는 려채옥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면서 노래는 물론 종합적인 실력을 쌓기에 최선을 다했다. 려채옥선생님 또한 구지욕이 강한 선녀를 많이 사랑해주면서 보다 많은 지식을 전수해주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노력에 박차를 가하던 시절

1987년에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연길시조선족예술단에 가수로 배치받은 한선녀는 무대에서 독창과 2인창을 부르며 거의 10년 세월을 보내다가 1997년에 시험을 거쳐 연변가무단에 전근하였다.

예술계의 전업인재들이 운집해있는 연변가무단은 한다하는 가수들이 많아서 경쟁이 아주 치렬했다. 겨우 국가3급배우의 직함을 가지고 연변가무단에 발을 들여놓은 선녀는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다가는 치렬한 경쟁에서 살아남을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였다.

그때 마침 해당부문으로부터 전업인재는 시험을 거쳐 직함을 파격평의받을수 있다는 정책이 내려와서 너도 나도 파격진급을 위한 종합시험에 참가하느라 야단이였다. 새로운 사업터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자기가 서야 할 위치를 제대로 찾고싶었던 선녀는 기회를 놓칠세라 시창, 음악리론, 음악사 등 다방면의 지식을 가늠하는 종합자질시험에 참가하였는데 운이 좋게도 길림성 제2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따낼줄이야?! 덕분에 선녀는 1998년에 국가2급배우로 파격진급한외 독창가수로 무대에 나서고 여러 급별의 성악콩클에 참가하여 장끼를 뽐낼수 있게 되였다.

1999년 제2회 길림성중청년성악콩클에 참가하여 벨칸토창법 1등상을 따낸 한선녀는 그 다음해에 있은 《할빈의 여름》성악콩클에서 제1단계는 무난히 통과되였지만 제2단계에서 락방되여 결승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서러움을 지녔다.

(난 아마 콩클과 인연이 없는가봐…) 

당시 선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는 어떠한 콩클에나 참가하지 않겠다고 속다짐했었다. 그러나 2001년 봄에 제1차 《금종상》콩클이 펼쳐진다는 통지가 내려오고 조직에서 출전을 제의하자 그녀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재차 도전에 나서게 되였다.

《금종상》은 중국음악계에서 가장 권위적인 행사로서 참가범위가 넓고 요구가 높아서 우수상을 따내기도 여간 힘들지 않다고 한다. 이에 선녀는 《등수에 들지 못해도 괜찮아, 이번이 마지막이니 최선을 다해보는거야!》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준비해야 할 8수의 노래를 알심들여 선정하고 련습을 착실하게 해나갔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등수에 들겠다고 이를 옥물고 덤벼들 때보다 실력발휘가 더 잘되여 하나 또 하나의 산을 무난히 넘으며 결승에까지 진출할수 있었고 나중에는 동상을 따내는 영예를 안아왔다.

그해 11월에 광서 남녕에서 진행된 《공작새컵》 전국소수민족노래콩클에서도 한선녀는 4수의 노래를 성공적으로 불러 2등상을 따내였다. 이때로부터 선녀는 마음을 비우고 최선을 다하면 가장 좋은 성적을 따낼수 있다는 도리를 터득하게 되였다.
머리로 노래를 부르는 비법을 전수받아 몇년간의 끈질긴 노력을 거쳐 한선녀는 거의 해마다 연변가무단의 실무회보에서 1등을 따내고 선진사업일군으로 평의된외 라지오방송, 텔레비죤방송의 음력설야회나 《매주일가》무대에도 여러번 등장하고 《사랑의 푸른 하늘》, 《아름다운 천지물》, 《진달래》 등 《MTV》에도 출연하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가수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출국해서 석사연구생공부를 하고 국내외에서 음악회를 마련하기도 하면서 자기를 부단히 제고하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 가서 석사공부를 하려고 계획한지는 퍼그나 되지만 시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뜬후 4년간 90고령의 시할머님을 모시느라 몸을 빼지 못하고있던 선녀는 시할머님이 97세로 돌아간후인 2004년에야 아들애를 친정어머님에게 맡기고 길을 떠났다.

미구에 고마운 한국분의 도움으로 학비를 해결받고 한국추계예술대학 대학원 성악과에 들어간 그는 쏘프라노(녀고음)  김금희교수님과 로씨야 원볼쇼이국립오페라(가극)단원이며 한국의 저명한 성악가인 테너(남고음) 박치원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김금희교수님은 무용이나 기악연주는 련습을 많이 할수록 숙련되여 재간이 늘어날수 있지만 가수는 과분하게 소리를 지르면 오히려 성대를 상할수 있기에 노래를 부름에 있어서 98%는 머리로 생각하고 나머지 2%만 성대를 리용하여 련습할것을 요구하였다. 그후부터 선녀도 30분간 강의에서 15분은 사색을 하면서 성대를 아끼면서도 연창실천에서 좋은 효과를 거둘수 있는 비결을 더듬어내기에 노력을 경주하고…

박치원교수님은 선녀의 노래를 들어보고나서 소리가 아름답고 황홀하며 또 뜨겁고 정열적이라고 칭찬해주면서  류학기간30분에 한화 50만원씩 하는 강의비를 한푼도 받지 않으면서 경제면에서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다. 이밖에 한국동양문화복지회 장정훈회장님의 물심량면으로 도와주고 또 한국의 크고작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제힘으로 생활비용을 마련할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어 선녀는 크게 고생하지 않고 2년간의 연구생공부를 순조롭게 끝마칠수 있었다.

선녀는 또 가수는 무엇무엇해도 무대에서의 열창으로 실력을 긍정받아야 한다는데 주의를 돌리고 기회만 있으면 여러가지 형식의 공연에 적극 참가하였다. 류학전인 2003년에 한국에서 개인음악회를 선보인적 있는 그는 류학기간 선후로 《잔디밭축제》, 《열린 음악회》,《아줌마축제》 등등 다양한 무대에 나서고 한국연예인들의 수도권지역 순회공연에 동참한외 방학시간을 리용하여 국내에서 음악회를 펼치기도 하고 역시 한국에서 류학공부를 하는 김홍도 등 가수들과 더불어 귀국회보공연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꿈을 안고 살아가는 길

중한수교 14돐기념음악회에 출연하면서 처음으로 서울의 《예술의 전당》에  발을 들여놓고 서울심포니오페스트라(가극단)와 함께 교향악반주에 맞추어 목청껏 노래를 부른 한선녀는 석사연구생공부를 마치고 귀국한후에도 해마다 초청을 받고 한국에 가서 여러가지 형식의 공연에 참가하고있다.

녀고음가수로서 민요나 류행가요도 잘 부르지만 서방풍격의 오페라(가극) 아리아에도 특장이 있는 그는 또 자기보다 우수한 가수들을 따라 무대에 나서는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그자리에서 노래실력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아낼수 있어 박수갈채를 받지 못할수도 있지만 이를 계기로 자기를 제고할수 있다는것이 그녀의 일가견이다.  하기에 그녀는 공연초청을 받으면 개인의 리해득실과는 상관없이 무료공연이라도 선뜻 대답을 주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니 자연 더욱 많은 기회가 차례질수밖에…

한선녀는 최근에도 한국신문 《경인일보》의 홍보대사임무를 원만하게 수행하는 동시에 로씨야에 가서 제1차고려인대축제에 참가하고 지난 11월 2일에는 선배들인 김응, 리정숙과 함께 한국 경기도 《문화의 전당》내에  설치되여있는 야외공연장에서 한국 경기도립무용단과 함께 정채로운 공연을 펼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나온 예술인생을 뒤돌아보며 한선녀는 그동안 많은 기회를 창조해주며 배려를 아끼지 않은 가무단지도부도 그렇지만 남편의 지지와 성원이 있었기에 보다 큰 발전을 가져올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내비쳤다.

당년에 연변예술학교에서 어깨나란히 성악을 전공하며 사랑을 속삭이고 결혼까지 한 남편 박인철은10년 남짓 연변가무단 합창부 부장직을 맡고 분주히 보내면서도 언제나 안해를 아껴주고 사업면에서 적극 지지해주고있다.

그리고 부모의 천부를 물려받았는지 노래를 제법 잘 부르는 아들애(17살)가 연변대학 예술학원 성악학부(중등전문반)에서 공부하고있어 선녀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하다고 한다.   

한국류학기간에 많은것을 배운 한선녀는 귀국한후 연변에 선진문화를 보급할 경로를 탐색하던중 룡정시의 개발구인 류신촌에 문화원을 차리기로 작심했고 요즘은 그일때문에 퍼그나 바삐 보내고있다. 이 문화원을 진지로 노래나 악기연주에 싹수가 있는 학생들도 키우고싶고 사회를 위해 좋은 일도 해놓고싶고… 자기의 음반도 만들어보고싶고 꿈이 많은 한선녀는 그 꿈들을 하나하나 이룩해볼 타산을 피력하며 밝게 웃는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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