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미화 - 이딸리아류학후 귀국한 성악배우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월22일 23시19분    조회:1125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무자년인 2008년은 연변대학예술학원 성악교원이며 가수인 박미화씨의 인생에 굵직굵직한 일들로 큰획을 그은 한해였다. 그는 이딸리아성악콩클에서 수상했고 또 이딸리아의 류학생활을 마무리 짓고 귀국하여 다시 연변대학예술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던것이다. 

1994년 상해음악학원을 졸업한 박미화는 타지방의 월등한 대우의 유혹을 뿌리치고 고향인 연변에 돌아와 연변가무단 성악배우로 되였다. 박미화의 빼여난 자질과 높은 기교는 단연 돋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가곡 《밀림은 푸른 바다 나는 갈매기》를 불러 우리 나라 정상급음악상인 금종상평의에서 특별상을 수상했고 자치주창립 50주년을 기념MTV음반에 가곡 《물길따라 천리길》을 취입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외 그는 또 제1회전국조선족성악콩클 1등상을, 제2회전국소수민족문예콩클 2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미화는 2001년부터 연변대학예술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성악도 학문인만큼 더 높은 차원의 음악공부에 목 말라 있던 박미화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하늘의 별 따기로 여겼던 이딸리아성악류학의 기회가 그를 찾아온것이다. 박미화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이딸리아 모나꼬—태발디국제성악원에서 연구생공부를 하였다. 그는 낮에는 성악공부에 몰두하고 저녁에는 이딸이아어공부삼매경에 빠지군했다. 그는 이딸리아어의 언어환경을 위해 이딸리아사람이 꾸리는 수도원에 투숙하기도 했고 또 여러번 침실을 바꾸기도 했다. 이딸리아에서 박미화는 성악대가 돈대코와 성악원 원장이며 저명한 성악교육가인 메라니 등 유명한 스승들을 만났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메조쏘프라노실력은 나날이 향상되였다. 

졸업을 앞둔 작년 3월 박미화는 드디어 갈고 닦은 실력을 과시할 기회가 왔다. 그는 페자로국제음악콩클 성악조시합에 참가했다. 이딸리아본토의 가수는 물론 유럽 각국의 가수들과 일본, 한국, 중국 등 아세아에서 온 가수들도 많았다. 예선을 무난히 통과한 박미화는 준결승단계시합에서도 거침없는 행진이였다. 박미화의 실력과 기량은 경쟁자들속에 단연 돋보였다. 박미화는 최종결승에서 3등의 영예를 안았다. 아세아계수상자로는 그가 한 사람이였다. 

유럽에서 그것도 벨칸토의 본거지인 이딸리아에서 성악공부를 했을뿐만아니라 성악콩클에서 수상까지 한 박미화는 작년 7월 풍성한 수확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고 12월 19일 그는 귀국독창음악회를 가졌다. 그는 그간 갈고 닦고 쌓아온 실력을 남김없이 보여주어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냈다. 그가 선보인 유럽의 예술가곡과 아리아, 가극 등은 정상급수준이였던것이다. 

《이딸리아는 벨칸토의 고향입니다. 성악의 경지는 벨칸토에 있습니다. 저는 이딸리아에서 이딸리아어를 배웠고 그래서 가사의 뜻을 알고 부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렇게 류학소감을 피력하면서 박미화는 벨칸토가 기실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음악이라면서 이것을 연변사람들의 머리속에 각인시켜주고 싶고 또 기회가 닿으면 외국에도 가서 공연하여 우리 연변에도 실력있는 가수가 있음을 알리고싶다고 했다. 


연변일보 김인선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8월27일-9월7일 옌볜서 한민족 축구대회""8월27일부터 9월7일까지 중국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의 주도인 옌지(延吉)시에서 중국을 비롯한 남북한,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전 세계 13개국의 동포가 참가하는 한민족 축구대회가 열립니다." 2008 옌볜 국제아마추어 축구대회를 홍보하고 후원사를 찾기 ...
  • 2008-06-11
  • 연길시 공원가두 원방사회구역에는 18명 고아,3명 리혼자녀, 8명 결손자녀로 이룬 약소군체가 있다. 사회구역당총지와 새세대관심위원회에서는 이 약소군체들에게 깊은 관심을 돌려 당원들과 로교원들이 손잡고 그들의 숙박문제, 학습생활문제, 등교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기에 주력하였다. 특히 이런 미성년들이 법제의식이...
  • 2008-06-11
  • 돈화시제2중학교에는 휴식시간이 따로 없이 항상 학교사업을 위해 팽이처럼 열심히 돌아가는 교원이 있는데 그가 바로 정계화(54세)교원이다.1977년, 서란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돈화시 현유진조선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93년 8월 돈화시제2중교에 전근하여 사업하게 되였다. 이 기간 그는 사업의 수요로 학교의 도서관리...
  • 2008-06-09
  • 엄마로 된 김춘희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사업과 가정 두마리 토끼 다 잡아야죠》사람들에게 친근함을 안겨주는 아나운서 김춘희가 6월 2일 3.4킬로그람되는 딸을 보아 행복한 엄마로 되였다. 제왕절개수술로 출산후 고통이 몰려올 때마다 아기를 들여다보면 그 아픔이 가신듯 사라진다는 김춘희는 엄마로 된 행복감에...
  • 2008-06-08
  • 길림시에 사는 최길호﹙47살﹚씨는 80여가지 고대조선민속무용기자재와 전통놀이기구를 살려내 후대들에게 좋은 유산을 남기고있다.최길호씨가 고대조선무용기자재를 우연하게 접하게 된것은 1994년 길림시에서 랭면부를 운영할 때였다. 최씨성을 가진 한 70세 로인이 매일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려 삼륜차로...
  • 2008-06-04
  • “무용은 저의 삶의 전부이자 또 유일한 락입니다. 저는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이 그저 제가 좋아하는 무용을 위해 혼신을 살라왔습니다.”이 글의 주인공인 리신자의 “수기”가운데서 옮겨온 한구절이다.그랬다. 60여년의 그의 인생행로를 펼쳐보면 무용이란 두글자를 빼고보면 정말 말그대로 바지...
  • 2008-06-04
  • 2005년 2월, 연길시 소영진양로원의 로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대문입구에 서서 새로 부임된 양로원 원장을 맞이하였다. 오전 8시, 한 남성이 자전거를 타고 양로원에  왔다. 그가 바로 소영진양로원을 표준화농촌복리중심으로 건설하겠다고 다짐한 새로운 원장 강성춘이다.그가 양로원 원장으로 부임된후 전부 열...
  • 2008-06-04
  • 지난 5월30일, 연변대학예술학부 주귀화양(25세)의 《단소연주회》가 연변텔레비죤방송국 공개홀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9살에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예술계에 첫발을 디뎌서부터 우리 민족악기를 전공하려는 일념으로 단소를 잡았고 그렇게 시작된 단소와의 인연은 계몽교원 장익선선생님과 주귀화양의 끈질긴 노력하에 오...
  • 2008-06-03
  • 10년간 연변의 강과 계곡을 누비면서 수석사랑에 심취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연변두만강수석협회 회장 김봉세입니다.    1998년 <<연변일보>>에서 우연하게 <<평양수석전시관에 대한 소개>>를 보게 된 김봉세는 연변에도 좋은 돌이 많다고 인정하고 돌을 찾기 시작했...
  • 2008-05-29
  • 연변결핵병예방퇴치소 김옥녀부소장 인터뷰결핵병(結核病)은 결핵균의 감염으로 일어나는 만성 전염병으로서 페,콩팥,창자 등 내장이나 뼈,관절,피부,후두 등에 감염되며 결핵성 뇌막염,복막염,륵막염 등 질병을 일으키고 온몸에 퍼지기도 한다. 매년 3월중순부터 7월까지는 결핵병 고봉기이다. 결핵병이 인체건강에 미치는...
  • 2008-05-2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