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안중근 의사의 얼을 기릴 수 있는 것은 재중동포(조선족) 사회가 버팀목이 돼 왔기 때문이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의 서명훈(78·사진)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하얼빈시 조선민족사업촉진회 명예회장인 서씨는 20년간 안 의사를 연구해 왔다.

서씨는 “어릴 때 어른들에게 안 의사 이야기를 듣고 너무 자랑스러웠다”면서 “1989년 한국을 방문해 독립기념관이나 안중근의사숭모회에서 받은 책을 읽은 뒤 안 의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서씨는 안 의사가 의거를 실행한 하얼빈시 현장에 사는 이점을 적극 활용해 한국 중국 일본의 각종 자료를 실증적으로 검증해 왔다.

서씨는 “안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사이의 거리에 대해 어떤 자료는 1m, 어떤 자료는 2m, 또 어떤 자료에는 8발짝, 5발짝, 10발짝 제각각이었다”면서 “직접 하얼빈역 플랫폼에 가서 플랫폼 길이를 재보고 각종 자료와 상황을 종합해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5m였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안 의사가 한국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세계의 영웅임을 강조했다. 그는 “안 의사가 애국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얼을 대표하는 특출한 인물임에는 분명하다”면서 “하지만 동시에 그가 평화사상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 의사는 자신의 동양평화론에 대해 ▲일본은 주변국 침략을 중지하고 ▲뤼순항을 개방해 한·중·일 3국 대표로 구성되는 동양평화회의를 건립하고 ▲3국 공동군단 설립과 3국 통용화폐 발행 등을 거론했다.

서씨는 “안 의사의 100년 전 평화사상은 오늘날 유엔이나 유럽연합(EU)의 설립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면서 “한국에서도 안 의사의 독립정신과 함께 평화정신을 부각함으로써 안 의사를 국제화하는 데 더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하얼빈=김청중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