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연변사위'국옥현- 한국 풍무뀀점 대표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2월25일 13시51분    조회:926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밀입국 동포 ‘딱 한번만 더 구제 해주자’ 호소

2002년 1월초엔 노무현 새정부 <국민정책참여센터>에
‘불법체류 동포 구제방안’ 정책 건의서 제출…현실로 이루어져


연변의 대표 브랜드(상표)로 통하는 ‘풍무뀀성’을 처음으로 한국에 진출케 한 국옥현 한국분점 대표(사진)와 인터뷰를 가졌다.
 국 대표는 전남 광주출신의 한국인으로 연변의 풍무뀀성 대표의 여동생과 결혼한 사이로 일명 ‘연변 사위’로 통한다.
  연변 풍무뀀성은 본점이 중국 연길시 단결로에 위치해 있으며 1500평방미터 크기에 종업원이 105명이 근무하는 대형식당이다. 연길시에만 6개의 분점이 있다. 연길시내에서만 풍무뀀성에 근무하는 종업원이 500여명이 넘는다. 연변의 대표적인 기업형 식당이라 말할 수 있다. 연길뿐만 아니라 2003년 11월엔 용정 1분점을 시작으로 안도시, 화룡시, 매하구시, 왕청현, 도문시, 산동성 청도시, 길림성 장춘시 등 중국대륙 곳곳으로 진출하고 있다.
한국분점이 들어선 것은 2001년 4월, 서울 구로구 대림역 1번출구 가에 지하식당으로 시작되었다.
  기자는 그때부터 그곳을 즐겨 찾았었다. 언제나 가면 연변에서 온 동포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만남의 장소였고, 당시 기자는 중국동포를 처음 접한 때라 기회의 장소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생활하는 중국동포들이 대부분 불법체류 상태였기 때문에 편안한 장소가 아니면 대화하기 어려운 때이기도 하였다. 결국 중국동포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국옥현 대표와 같은 제3자를 만나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한국인으로써 국옥현 대표만큼 중국동포와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온 이도 드물 것이다. 기자를 만나면 항상 중국동포들이 현재 갖고 있는 애로사항을 들려준다. 밀입국으로 들어와 고생하는 중국동포 이야기며, 중국 현지에서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허위 초청 내지 위장결혼을 알선해 돈을 벌려는 브로커들의 행태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느 정도 심각한 지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타향의 봄’을 부른 연변의 대표 가수인 김성삼 씨의 사망소식을 기자를 통해 한국에 처음 알려준 이도 국 대표였다.
------------------     -----------------------       -----------------       ---------------------

 기자가 국옥현 대표를 정식으로 만나 인사치레를 하게 된 때는 2002년 1월초이다. 당시 노무현 새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인수위원회에서는 서울중심가 광화문에 <국민정책참여센터>를 설치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새정부에 새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었다. 그때 국옥현 대표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중국동포 정책 관련 제안서를 작성해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취재 중이던 기자가 그 사실을 알고 정식으로 국옥현 대표를 만나 중국동포 관련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던 것이다.

 국 대표가 작성한 제안서 내용은 “지금의 동포정책 이대로는 안된다. 중국동포들이 고국에 와서 불법체류하며 생활을 하지만, 한국사회에 와서 힘든 일을 하고 숙련공으로 잘 적응해 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력이다. 정부는 불법체류 하고 있는 중국동포를 강제추방하고 나가라고 하고, 필요한 인력 수요 때문에 1년씩 연장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지금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을 무조건 나가라고만 하면 안 나간다. 재입국을 보장해주는 출국 정책을 펼쳐 불법체류 동포들을 구제해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국 대표는 300여명으로부터 서명을 받고 이런 내용의 제안서를 국민정책참여센터에 제출했다. 

 그때 제출한 제안이 받아들여졌는지, 노무현 정부는 2005년, 2006년 두 번에 걸쳐 동포귀국지원정책을 펼쳐, 불법체류 상태에 있던 8만여 중국동포들이 구제를 받고 지금은 방문취업체류자격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국옥현 대표는 이 점에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안타깝고 아쉬운 점이 있다. 밀입국자로 들어온 동포들 문제이다. 현재는 밀입국으로 한국에 오는 동포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2000년 초까지만 해도 밀입국해 들어온 동포들이 적지 않았다. 국 대표는 밀입국으로 들어와 생활하는 동포들의 현재 상황을 사례를 통해 들려주었다. 

 첫 번째 사례, 98년 에스파니아 선박 선원으로 취업해 선원증으로 한국에 들어와 머물게 된 동포이다. 이것 역시 정식 한국여권을 갖고 출입국사무소를 거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밀입국자에 해당한다. 그는 한국국적 동포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아 살고 있다. 그러나 밀입국자이기 때문에 결혼신고를 못하고 사실혼 관계에서 동거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 밀입국으로 들어와 건설현장을 돌며 일해온 동포이다. 그는 청춘을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가 겪고 있는 애로사항은 건설현장에서 반장급으로 일하며 회수 못하고 깔려 있는 돈이 3억원 정도, 최근 건설 불황으로 그 돈을 당장 거둬들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돈을 줘야 하는 사람들은 그의 신분적 약점을 이용해 신고하여 추방시키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신고 당해 강제추방 당하면 3억원이라는 돈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된다. 

 세 번째 사례, 온 가족이 한국국적자로 한국에서 생활을 하지만 홀로 밀입국자로 한국에서 생활하는 사례도 있다. 중국에 가면 부모 형제 아무도 없다.

 국옥현 대표는 “내가 만난 대부분의 밀입국자들이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고 막가파식 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며 “밀입국자에 대한 구제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빗대어 이런 주장도 펼친다. “북한의 남파 간첩인 경우, 예전에 홍보문구에도 ‘자수하여 광명찾자’ 라는 말이 있어 한국사회를 전복시키려 들어온 간첩이 자수할 경우 포상도 해주지 않았냐”며 “중국동포들이 밀입국으로 들어왔지만 한국사회에 인력으로 기여한 자들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국 대표는 올해에는 밀입국 동포들의 구제를 위한 목소리를 높이는데 관심을 쏟겠다고 말한다. ‘연변사위’로 통하는 국옥현 대표의 심정을 담은 이야기라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한국분점은 지난 1월 8일 대림동에 제 3 분점을 내었다. 중국에서 한국에 정식으로 진출한 중국 식당으로서 제일 큰 규모로 성장해 가고 있다. 국 대표는 한국음식업협회 구로지회 감사를 맡고도 있다. 그는 올해 4월경 치러지는 구로지회장 선거에 출마할 뜻도 내비쳤다. 그 이유는 구로구내에 중국식당이 많은데, 여기에 관심을 갖고 중국식당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국옥현 대표의 연변동포 사랑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한 때는 연변에서 자녀를 두고 한국에 온 동포들의 동영상을 찍어 연변의 한 학교에 학생들에게 보여주어 부모와의 만남의 장을 만들어주고 장학금을 몇 해 동안 지원해주기기도 하였다.  

<인터뷰=김용필 중국동포타운신문 편집국장>

@중국동포타운신문 제144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심양시영결쿠크도구경영판매부 전복녀경리의 창업이야기 1990년대초기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나가기 위해 갈팡질팡할 때 심양시 황고구 명렴지역의 전복녀(56)씨는 남편과 함께 15평방메터의 영결쿠크도구생산공장을 꾸리고 부지런히 기업을 키워 지금은 여러개의 경영판매부를 가진 경리로 활약하고있다. 영결쿠크도구공장...
  • 2008-04-08
  • 두 발과 오른손까지 잃은 1급장애인 조화녀의 창업담 왕청현 시가지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고있는 조화녀성은 두 발과 오른손을 잃고 왼손밖에 없는 1급장애자이다. 하지만 그녀는 생활에 대한 더없는 열애와 용기, 완강한 의지력과 끈질긴 노력으로 장애자라는 담벽을 뛰여넘고 대학공부까지 마쳤으며 또한 간거한 창업을 ...
  • 2008-04-03
  • 2008년 북경올림픽 성화환영식 및 성화봉송가동식에 이어 우리 나라 31개 성 자치구, 직할시의 113개 도시가 성화봉송행사로 들끓고있는 가운데 연길시지체장애인 협회 회장 정영철﹙49살﹚씨도 우리 주 성화봉송행렬에 참가할 영광스러운 사명을 짊어지게 됐다.어려서 소아마비후유증으로 지체장애자가 된 정...
  • 2008-04-03
  • 룡정시 덕신향 숭민촌 제6촌민소조의 리산옥(48세)녀성은 1998년에 남편과 함께  향공급판매합작사에서 정리실업당하였다. 밭 한뙈기 없이 도시에서 공부하는 딸애와 중학교를 다니는 아들애의 공부 뒤바라지한다는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준엄한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손에 쥔 돈도 없는 그녀는 한동...
  • 2008-03-31
  • 【서울=뉴시스】 " 어렸을 적 꿈은 병아리 감별사, 바퀴벌레가 무섭다... " 지난 2월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를 마친 후 '인민 루니', '인간 불도저' 등의 별명으로 한국 축구계를 들썩이게 했던 정대세(24,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솔직담백한 자신의 일상을 공개했다. 정대세의 소속팀인 일본 J-리그 가와사키 프론...
  • 2008-03-29
  •    훈춘시 화원세통경제무역유한회사 총경리 고련숙은 우리 주 대 로씨야무역분야에 녀 강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2003년, 고련숙녀성은 다니던 무역회사가 불경기에 처해 정리실업 할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남들이 현실을 비관할 때 고련숙녀성은 직접 무역회사를 차려보려고 마음을 먹고 대...
  • 2008-03-28
  • ——— 아성직업교육중심 차미자부교장 사업실적 할빈시 아성직업교육중심에는 '벽돌공장'교정을 '화원식'교정으로, 학생을 '못생긴 오리에서 '고니'로 변신하게한 공신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아성직업교육중심(한족학교) 200여명 교원 가운데 '우뚝' 선 조선족 부교장 차미자씨(46세) 이다. 그가 학교건...
  • 2008-03-25
  • "형님, 제 스윙 좀 봐주십시요"사상 처음 한국프로골프 코리안투어와 중국프로골프 오메가차이나투어가 공동으로 치르는 KEB인비테이셔널골프대회 2라운드가 열리고 있는 21일 중국 상하이 실포트골프장 연습장에서 투박한 북쪽 사투리를 쓰는 한 청년이 눈에 띄였다.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나 자란 조선족 청년 최...
  • 2008-03-23
  • “중국에 사는 소수민족으로서 우리 민족은 중국어도 잘해야 하지만 조선어도 잘 지켜나가야 한다.” 일전 기자는 200명의 방대한 “량회”문건 번역팀을 주야 진두지휘하고있는 중국민족어문번역국(아래 번역국으로 략칭) 오수자국장(57세)을 인터뷰하였다. 1975년 중앙민족대학(전 중앙민족학원)을 졸...
  • 2008-03-21
  • 강철원씨(21)는 중국 조선족이다. 2001년에 귀화한 뒤 국내에서 대전에서 공업고를 졸업한 뒤 올 9월에 중국 10대 명문대 중 하나인 하얼빈공대에 입학할 예정이다. 강철씨(20)는 중학교때 컴퓨터 게임에 빠져 공부와 담을 쌓았지만 뒤늦게 정신 차려(?) 세계 최고의 요리사를 꿈꾼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전문계고에서 ...
  • 2008-03-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