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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진출한 소설가 허련순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3월14일 08시31분    조회:7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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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연예인에 비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못하고있다. 연예인을 손꼽으라면 자신있게 단숨에 10~20명씩 줄줄 외우는 분들이 많지만 작가이름을 말하라면 1~2명도 말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 중국조선족가운데는 우수한 연예인도 많지만 우수한 작가들도 많다. 그중에는 허련순도 있다.

허련순은 누구인가? 허련순은 소설가이다. 허련순은 어떤 소설가인가? 허련순은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소설가이면서도 한국의 유명한 문인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소설가이다. 중국조선족이라면 우리에게도 허련순처럼 우리 민족을 빛내고있는 유명한 소설가가 있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여기서 그녀를 녀류소설가라고 특별히 지칭하지 않은것은 그녀가 남성작가들에 비해 조금도 짝지지 않기때문이다.

밥짓는 남편과 글쓰는 안해

허련순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마친후 습관적으로 컴퓨터앞에 마주앉아 메일함부터 검사해본다. 날마다 이역만리에 가있는 딸 홍예화에게서 온 편지를 읽어보는것이 그녀에게는 글쓰는것과 마찬가지로 하루일과였다. “엄마, 안녕?”으로부터 시작되는 딸의 편지는 날마다 새로운 정보를 전하고있는데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심도있고 예리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독특한 견해까지 상세하게 밝히고있어 한편의 론문같기도 하고 한편의 수필같기도 했다. 과연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대학( 克 大 )에서 박사공부를 하고있는 류학생이 다르긴 달랐다.    

딸의 편지를 다 읽고나서 허련순은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가족과 주위에서 생긴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고나서 딸과 엄마만이 주고받을수 있는 화제를 편지에 담았다. 그녀가 부지런히 컴퓨터건반을 두드리고있는데 주방에서 밥을 짓고있던 남편 홍성빈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어서 와서 아침식사를 하오!”

“네,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허련순은 답장에 종지부를 찍고 보내기를 클릭(点 )하고서야 일어나 밥상으로 다가갔다. 남편은 벌써 밥상을 다 차려놓고 수저까지 받쳐놓고서 그녀가 와서 식사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허련순의 가정은 여느 가정과는 달리 남편이 가정주부(家庭主夫)로 되여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서 꾸려가고있었다. 허련순의 남편 홍성빈은 원래 기자생활을 하던 청년시절에 시인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시를 썼다. 그런데 허련순은 두 사람이 모두 글을 쓰면 살림살이를 돌볼 시간이 없다면서 남편이 시를 쓰는것을 반대했다. 홍성빈은 안해의 재주를 미리 알아보는 혜안이 있었던지 자신을 희생하고 안해의 문학을 지지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로부터 그는 수십년간 소설가인 안해를 위해 쌀과 남새를 사들이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등 집안일을 도맡아했다. 집안일뿐만아니라 안해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10년전까지만 해도 컴퓨터가 보편화되지 않아서 허련순은 창작한 소설원고를 우편으로 부치군 했는데 매 원고마다 남편이 직접 가지고가서 부쳐보내군 했었다. 허련순이 장편소설 《바람꽃》을 흑룡강신문에 련재하고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허련순은 완고된 소설을 보낸것이 아니라 쓰는족족 련재하고있었는데 한번은 우편으로 부치면 제시간에 편집부에 도착하지 못하게 되였다. 안해가 안달아하고있는것을 본 홍성빈은 직접 기차를 타고 할빈에 있는 흑룡강신문사까지 찾아가서 원고를 전해주었다. 이렇게 3개월간 련재된 장편소설 《바람꽃》은 나중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였는데 중국조선족작가가 쓴 책중에서 제일 잘 팔리는 책으로 되였으며 한국에서도 출판되여 대인기를 끌기도 했다.

허련순은 “우리 남편은 나의 문학을 100%가 아니라 150%로 지지해주는 분”이라고 말하면서 남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여 미안하단다. 허련순은 쌀가격이 얼마인지, 남새가격이 얼마인지, 두부값이 올랐다고 하는데 지금은 얼마인지도 모른다. 그런것은 응당 남편의 몫으로만 생각했다. 허련순은 퇴직후 할일이 없는 남편이 할일이 많은 안해를 위해 헌신하고있는데 자신은 자신이 하고싶은 일만 하기때문에 리기적이라고 말하면서 연길시조선족장기협회 회장으로 있는 남편을 위해 뭔가 좀 해주고싶어 한국으로 나갔을 때 적극적으로 뛰여다니면서 후원을 받아다가 남편이 4년동안 한해에 평균 2차씩 국제장기대회를 열수 있게 해주었다.

소설을 쓰면서 소설속에 사는 소설가

허련순은 문학속의 현실을 자신의 삶이라고 여기고 문학을 자신의 생명처럼 생각하는 소설가이다. 허련순은 집안일은 나몰라라 하고 글만 쓰는 소설가이다. 그녀는 출판에 교부할 소설을 제때에 완고하기 위해 친척들의 음력설모임에는 물론 시부모가 사망됐을 때도 가보지 못했다. 이렇게 가정에서 문학이 중요한 위치이기때문에 남편 홍성빈도 식사가 끝나면 설겆이를 마치고 집안청소를 하고나서 안해가 글쓰는데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집에서 나간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저녁에 돌아와서는 늘 “오늘은 또 뭘 썼소?”라고 물어보는가 하면 안해가 컴퓨터앞에 마주앉아있지 않고 휴식하고있으면 “왜 쓰지 않소? 이제 또 뭘 쓰려고 하오?”라고 물어보군 한다. 그리고 또 어느 작가는 무슨 소설을 쓰고있는중이고 어느 작가는 새로운 장편을 련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안해더러 빨리 쓰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안해의 글쓰는 모습을 보는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여기고있는 남편이기때문이다. 그러나 허련순은 남편의 이런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그녀는 온종일 글을 쓰느라고 지쳐있는 자신에게 왜 쓰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더 쓰기를 바라는 남편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면서 “남편은 그저 쓰면 되는줄 아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1975년부터 시, 희곡, 가사를 쓰던 허련순은 1986년에 첫 소설 《안해의 고뇌》를 쓰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창작에 들어갔다. 허련순은 중국조선족작가중에서 한국에 제일 먼저 나갔고 한국문단에 제일 먼저 진출한 작가이다. 1989년에 처음 한국에 나갔을 때 허련순은 한국의 대형서점인 교보문고에 가보고 한국문인들과 접촉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되였으며 자신은 여태껏 우물안의 개구리였구나 하는 느낌이 들면서 단편소설 몇편을 써서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였다. 그리고 중국조선족문학이 살아남으려면 국제적인 시각을 가지고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느꼈다.

귀국후 우물안에만 갇혀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허련순은 즉시 사직서를 냈다. 당시 그녀가 몸담고있던 연길시문화관의 책임자는 철밥통을 버리려고 하는 그녀의 결정에 깜짝 놀라면서 나가더라도 적을 남겨두고 나가라고 권고했다.

그후 허련순은 2년동안 석사공부를 하면서 한국문학을 연구했으며 자기만의 개성있고 독특한 문학을 확립하게 되였다. 1991년에 한국 동아일보사에서는 허련순의 중단편소설집 《사내 많은 녀인》을 출판했다. 그리고 허련순은 륙속 한국에서 《바람꽃》, 《바람을 몰고 온 녀인》, 《뻐꾸기는 울어도》,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등 책을 출판하여 한국에서 소설을 가장 많이 출판한 중국조선족작가로 되였다. 금년에 54세인 허련순은 1년에 적어도 두번정도는 한국으로 나간다. 꼭 무슨 일이 있어서만 가는게 아니다. 작품 한편을 끝내면 허전해서 다시 한국으로 가고싶어 견딜수가 없다고 한다. 어느 한 평론가는 “한국에 한번 갔다오면 허련순의 소설은 달라진다”고 말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글을 담아가지고 왔기때문이다.

가족이 함께 쓰는 소설

허련순은 남편에게는 훌륭한 안해가 못되여 미안하지만 딸에게만은 좋은 어머니로 되려고 애쓰면서 딸에 대한 교양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딸이 대학공부를 할 때에는 영양보충을 위해 최소 4가지 반찬은 보장했다. 어머니를 닮아 총명하고 글도 잘 썼던 딸 홍예화는 연변대학에서 비교문학석사공부를 끝내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대학에서 사회학을 연구한지 벌써 3년철을 잡고있다. 홍예화는 연변대학에서 석사론문을 발표할 때도 쉬운 조선어를 포기하고 어려운 중국어로 론문을 발표했는데 론문을 읽는것이 아니라 원고를 보지 않고도 줄줄 내리 외우기도 했다. 홍예화는 낯선 뉴질랜드에 가서도 이악스레 달라붙어 영어관부터 넘은후 오스트랄리아에서 론문을 발표했는데 저명한 교수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 그번의 론문발표회에서 전례가 없던 최우수론문발표자상을 수상받기도 했다.

낯선 고장에서 아는 사람이 없는 홍예화는 매일 엄마와 편지로 대화를 하는것이 하루일과중의 중요한 부분이였다. 조선족결혼이민의 총체성을 연구하고있는 홍예화는 연구가 깊고 사유가 새로와서 엄마한테 보내온 편지마다 한편의 론문이면서도 따분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수필이라고 할수 있었다. 홍예화는 “엄마는 소설로 조선족총체성문제를 다루고 딸은 론문으로 조선족총체성을 연구하기때문에 엄마는 뿌리고 딸은 거둔다”고 하면서 자신의 연구와 엄마의 창작을 아주 재치있게 비유했다. 허련순은 남편은 후원자이고 딸은 동반자라고 말하면서 가족이 함께 소설을 쓰는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허련순은 딸한테서 온 편지를 《연변녀성》잡지에 련재중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책으로 출판하여 딸의 졸업선물로 주려고 한다고 했다. 허련순은 딸은 늘 새로운 견해로 세계적인 추세와 세계적인 흐름을 관찰하면서 가치있는 정보를 보내주기때문에 자신의 소설에 힌트를 주기도 하고 무게의 깊이를 더해주기도 한다고 하면서 문학이란 영원히 변화과정에서 창조되기때문에 내 문학이 살아남자면 한곳에 영원히 머물지 않고 부단히 새로운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허련순의 장편소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며 한국으로 밀항을 시도한 조선족동포들의 실패한 도항얘기이다. 허련순은 한국에서 문학팬들을 가지고있는 유명한 문인들만 가능한 싸인회까지 가졌는데 1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는 싸인회에서 400권이나 팔았다. 한국의 유명한 문인들도 보통 200권정도 나가면 표준인데 독자권을 가지고있지 못한 연변작가가 400권을 팔았다는것은 기적이 아닐수 없었다. 허련순의 책은 인기판매도서매대에 진렬되기도 했다.

녀성문제와 중국조선족의 총체성을 주로 다루고있는 허련순은 문학인생을 살면서 “문학에는 정상이 없고 부단히 새로운 글을 창작하는것”이라고 말하면서 “문학은 남과 비기지 말아야 한다. 남과 비기는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하여 내가 나를 넘어서는것이 문학의 성공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허련순은 한국문학의 우수성과 연변문학의 전통성을 결합하여 한국에 발을 붙이고 자신의 문학세계를 넓혀가고있다.

연변대학교 조선어학부를 졸업한 허련순은 중국작가협회 회원이고 국가1급작가이며 연변녀성문인협회 회장이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잃어버린 밤》, 《바람꽃》, 《뻐꾸기는 울어도》,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등과  소설집 《사내 많은 녀인》, 《유혹》, 《우주의 자궁》, 《바람을 몰고 온 녀인》 등외에 텔레비죤련속극 《갈꽃》, 《녀자란 무엇입니까》,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6막 장막극 《과부골목》 등이 있다. 중국소수민족문학상, 길림성정부소수민족문학상, 동북3성금호상, 연변문학상, 도라지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신춘문예상, 윤동주문학상, 김학철문학상 대상, 제8회작가협회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한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조선족작가로서는 한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낸 허련순은 한국의 유명한 문인들과 동등하게 선 소설가이며 새로운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항상 사유가 열려있는 소설가이다. 그녀에게서 앞으로의 타산같은것은 물어보나마나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소설을 쓸것이기때문이다. 어떤 소설을 쓰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건강이 허락되는 한 언제나 자신을 넘어서고 앞서가는 문학을 하려고 하는 자세가 갖추어져있는 소설가이기때문이다.      

연변라지오TV신문 김희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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