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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김학송의 삶의 궤적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3월19일 14시58분    조회:7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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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도》, 《아버지에게 드리는 노래》 등 여러수의 대중애창가요를 작사한 김학송씨는 연변에서도 몇명 안되는 전직작사가의 일원으로 연변가무단창작실에서 꼬박 10년간 근무한 경력도 있고 2007년에 진행된 제3회 연변생태문화예술절에서 가요부분과 시부분의 1등상을 동시에 따내는 영광을 안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근 30년을 시단에서 활약하고 선후로 20여부의 시집을 펴낸데다  연변시인협회 부회장, 연변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등 직무를 맡고있는 까닭에서인지 그는 출중한 시인으로 문학인들에게 널리 알려져있을뿐 우수한 작사가로 대중들속에서 이름을 날리지는 못하고있다 …

첫번째 《아기》를 출산하기까지

1980년에 우연하게 쓴 시 한수가 《연변문예》에 발표되면서 문학의 꿈을 키운 김학송씨는 7년간 실농군으로 살아온 경력, 광산에서의 로동생활, 상업부문에서의 경력, 가난과 고생 등등이 창작에서의 밑거름이 되였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1952년, 도문시 곡수촌에서 소학교 교원가정의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여난 김학송씨는 아버지의 빈번한 전근으로 룡정, 로투구 등 연변내의 여러 곳을 전전하며 소학교를 다니다가 초중 2학년때 전례없는 《문화대혁명》을 맞아 학업을 포기하는수밖에 없게 되였다. 1968년 8월에 초중을 졸업하고 귀향지식청년으로 도문시 홍광향 홍휘6대(곡수촌)에 내려가 농민으로 된 그는 소방목원, 논물관리원 등으로 지내며 숱한 고생을 경험하였다.

1975년에 추천을 받고 장춘야금지질힉교에 진학하여 지질학을 전공할 행운을 얻었지만 1977년에 졸업하고 훈춘 소서남차금동광에 배치받아가니 그를 기다리는건 심오한 기술사업이 아니라 1년이상 로동단련을 해야 할 건축대였다…

장기간의 로동생활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한 보람이라 할가 2년후 도문시석유공사에 전근하여 물가원이 된 김학송씨는 우연하게 쓴 시 한수가 《연변문예》 1980년 11월호에 실리면서 문학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그후 도문시사탕술담배공사에서 적사공 등으로 근무하다 1983년 연변대학 문학반에 입학한 그는 학교에서 배운 문학리론의 도움으로 루적한 생활소재들을 알뜰하게 다듬으면서 주옥같은 시들을 부지런히 창작해냄으로써 문학인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살아가게 되였다.

1984년에 조시 《산촌의 배움터》로 《연변문예》 문학상을 수상, 그해에 연변작가협회에 가입한 김학송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도문시문화국 창작실에 배치받아 전직창작원, 창작실 주임으로 사업하게 되자 부지런한 감농군처럼 시창작에 전념하는 한편 가사집을 묶고 또 자기가 앞장서 가사를 쓰느라 분주히 보냈다.이렇게 처음으로 창작한 가사가 바로 《사랑은 바다》였다.

당시 이 가사는 도문시가사집에 실렸는데 작곡가 렴승학씨가 발견하고 곡을 붙여준 덕분에 완정한 노래로 태여나게 되였고 연변인민방송에서 매주일가로 방송되여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워지고있다. 그런데 우스운것은 공동의 노력으로 《아기》를 《출산》시킨 김학송씨와 렴승학씨가 《첫 아기》가 태여난지 20년이 훨씬 넘도록 한번도 만나본적 없다는 사실이다.

가사창작의 단맛

가사 몇백수를 창작하고 100여수를 노래로 완성한 20여년의 창작실천을 뒤돌아보며 김학송씨는 《노래 한수의 탄생은 생면부지의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고 〈아기〉를 낳아키우는 과정과 비슷하지만 특이한것은 부부쌍방이 한평생 서로 만나지 못할수도 있다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가요창작과정을 살펴보면 작사가들은 일반적으로 가사를 쓴후 직접 맘에 드는 작곡가를 찾아 곡을 붙여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극히 적고 고작해야 어느 가사집에 수록된다는것만 알뿐이다. 하기에 때로는 자기가 쓴 가사에 곡이 붙어 방송되거나 어느 가수가 그 노래를 불러 상을 타도 감감 모르고 지낼수도 있다.

김학송씨와 작곡가 박학림씨 역시 선후로 20여수의 노래를 만들어낼 때까지 서로 면목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이들 둘의 공동작품인 노래 《세월은 흘러도》는 1980년대에 고고성을 울렸는데 박학림씨 역시 가사집을 뒤적이다가 이 가사를 발견하고 곡을 단것으로서 지금은 연변대학 예술학원 학생들이 론문을 쓰면서 제일 많이 인용하는 노래로 점찍혀져있다. 당시 연변가무단 김은희가수의 독창으로 선보인 이 노래는 크고작은 무대에서 불리워져 묵직한 상을 여러차 탔으나 작사가와 작곡가는 전혀 얼굴을 모르는 사이였다. 그후에도 작사가 김학송씨와 작곡가 박학림씨는 여러번 합작을 하고 서로 문안편지를 주고받는 가까운 관계로 발전했지만 7,8년이 지나서야 한자리에 앉게 되였다고 한다. 지난20여년간 박학림씨와 더불어 무려 40∼50수의 노래를 창작한  김학송씨는 그래도 면목을 모르고 지내던 1980년대의 공동작품이 더 우수했다고 실토정한다.

한수 또 한수의 가사가 노래로 탄생하면서 창작의 단맛을 맛보게 된 김학송씨는 끓어넘치는 의욕으로 가사창작의 나래를 한껏 펼쳐갔다. 많은 작곡가들 또한 이런 가사들에 눈독을 들이다보니 김학송 작사로 된 노래는 여기저기에서 불리워지게 되였다.

가사 《아버지에게 드리는 노래》는 1990년 도문에서 조직된 가사창작강습반에서 창작한것인데 당시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근무하던 리창길선생이 모처럼 찾아왔다가 맘에 든다면서 뽑아갔다. 그날 연길로 돌아가게 된 리창길선생은 기차에서 작곡을 마무리, 김향가수의 노래로 연변인민방송의 매주일가에 올리여 크게 환영을 받았고 지금도 요청가요로 너무 올라와서 편집들이 성가실 정도라고 한다.

1994년, 한국의 최고오락출판사에서 펼친 가사응모활동에서 김학송씨의 가사  《락엽을 밟으며》가 가작상을 탔다. 그후 한국작곡가 김기표선생이 이 가사에 곡을 달고 노래 《갈색추억》을 불러 중국노래애호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한국가수 한혜진의 독창으로 레코드에 취입되였다. 덕분에 김학송씨는 해외동포중 첫사람으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가입하게 되였고 1998년 6월에 초청을 받고 한국에 갔을 때는 한국의 연예인신문들에 크게 보도되는 영광을 누리였다.

1998년 연변가무단에 전근하여 전직작사가로 뛸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김학송씨는  더욱 불타는 창작의욕으로 가사창작에 정진하였다. 그 시기에 창작한 가사들로는  림성호 작곡, 임향숙 노래로 된 《연변아리랑》,  리규남 작곡, 장옥단 노래로 된 《아리랑처녀》, 리규남 작곡 박해림 노래로 된 《해바라기련가》, 김경애 작곡의 《웃으면 예뻐집니다》 등 여러수가 있지만 21세기를 맞으며 창작한 가사 《아침찬가》처럼 창작한지 10여년이 지난후 볕을 본 가사들도 있다.

이밖에 김학송씨는 동요가사도 많이 창작하였는데 최학주 작곡으로 된 동요 《2천년은 나의 세계》는 제1차중국조선족소년아동예술제에서 유일하게 특등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따내였다.

다채로운 취미생활

시인으로서의 김학송씨는 해내외에서 선후로 20여부의 시집을 출간한외 2006년도에는 윤동주문학상 시부분의 본상을 타고 2007년에는 제3회 연변생태문화예술절에서 한꺼번에 가사부분과 시부분의 대상을 따내여 유일하게 두가지 항목의 대상을  획득한 수상자로 되는 등 자랑거리가 많다. 그러나 그는 이미 거둔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훌륭한 작품을 많이 창작하기 위해 닫는 말에 채찍질하는 한편 다채로운 애호를 키워가면서 삶을 여유있게 가꾸어가고있다.

김학송씨의 취미생활에서 제일 부러움을 자아내는것은 수석에 대한 집착과 등산을 꼽을수 있다.

1993년 아시아시인대회에 참가하고저 한국땅을 밟은 김학송씨는 한국의 지성인들이 한사람같이 수석을 애지중지하는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짬을 타서 유명한 수석소장가들을 따라 수석수집에 참가해보면서 점차 수석에 대한 리해를 깊이 하게 된 그는 지질학을 전공한 밑천으로 수석수집사업에 몸담그어볼 타산을 했다.

수석문화는 3000년전 우리 나라에서 시작된 문화로서 광활한 중국대지 어느곳에나 다 귀중한 수석이 있고 또 우리가 살고있는 연변땅에 널려있는 수석의 질이 으뜸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김학송씨는 1995년에 중국에 찾아온 한국수석총련합회 정형태부회장 등 일류의 수석소장가들을 안내하여 1개월간 수석수집을 하면서 기술을 전면적으로 전수받았다.

그후 김학송씨는 훈춘, 돈화, 안도 등 연변각지를 참빗질하며 차원이 높은 수석을 수천점 수집한외 해당자료들을 알뜰히 묶어서 중국조선족 최초의 수석전문저서 《재미나는 수석》을 출간함으로써 해내외에 연변수석을 널리 알리고 연변의 수석을 문화의 차원으로 끌어올리였다.

김학송씨네 서재에 들어서면 창문턱이며 책장안에 수석들이 줄느런히 진렬되여있는것을 볼수 있다. 까만 바탕에 녹두알만큼한 흰점이 무수히 박혀있어 《우주공간》을 련상시키는 수석, 당금 올리솟구치려는 개구리의 모양을 방불케 하는 수석…  돌마다 독특한 형태를 자랑하는데 룡의 머리를 꼭 빼여닮은 수석은 나무로 만든 몸뚱이우에 얹혀있어 진짜 거룡이 꿈틀거리는 형상였고 외딴섬우에 호수가 있는듯한 수석은 호수가에 아담한 정자며 한가로이 낚시질하는 중의 모습을 담은 조각을 얹어놓고 바다를 상징하는 모래판에는 손가락만한 쪽배까지 띄워놓아 너무나 인상적이였다. 그런데 김학송씨의 해석 또한 어찌나 해학적인지 들을수록 구수하고 재미있었다.  

김학송씨는 연변에 등산문화를 보급시킨 공로자의 한사람이다. 1996년 1월에 연변의 첫 산악회인 백두산문인산악회를 일떠세운 그는 초대회장을 맡고 매주 토요일마다 산행을 견지하는 한편 문학신인양성에도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다. 지난 10여년간 김학송씨와 백두산문인산악회는 선후로 뾰족산, 일광산, 사방산, 마반산, 망향봉, 성자산, 장백산 등 무수한 산에 오르면서 의지를 련마함과 동시에 자연보호와 환경운동에서도 한몫을 감당해왔다. 산악회에서 김학송씨는 또 김관웅, 김호웅 등 문학선배들과 힘을 합쳐 류광철, 신영애, 리정옥 등 유망한 문학신인들을 키워내였는데 그중 류광철과 신영애는 선후로 윤동주문학상 수필부분의 신인상을 타고 리정옥은 한국에서 조직하는 수필응모에서 상을 받았다.

가정에서 김학송씨는 또 부모님께 효도하는 미더운 장남이다. 80고령 부모님들의 건강상황이 그닥잖은 형편에서 그는 지난해부터 아예 고향 곡수촌에 호구를 붙이고 부모님시중을 도맡고있다.

그럼에도 김학송씨는 창작만은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가사도 끈질기게 쓰고 시집도 부지런히 펴내고있는데 지난해말에 《당신에게 사랑을 노래할 자격이 있습니까?》 등 시집을 출간한 뒤를 이어 16년의 애석생활을 바탕으로 문학, 지질학, 광물학, 미학, 미술 등 종합지식을  유기적으로 결부시킨 수석전문저서 《중국장백산기석(한문)》을 저술하여 이미 출판에 교부하였다.

지천명의 사나이답게 삶의 보람을 만끽하는 김학송씨가 너무너무 돋보인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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