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문 프로필
1988년 연변영화발행공사 성우
1992년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
1997년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연수
2006년 한국KBS방송국 연수
현재 연변인민방송국 아나운서실 실장
주임 아나운서 겸 연변대학 예술학원 연극학부 방송학과 겸직교수
연변10대수석아나운서사회자
연변사회자협회 부회장
주요방송작품
YBTV실황방송 《연변아리랑》(40부)
《혈흔》(20부)
라지오련속극 《청춘극장》(39부)
음반 《장백산기관》, 《중국연변조선족민속》, 《장백의 정》.
방송경력
《라지오뉴스》, 《연변의 아침》, 《대중무대》, 《가요대행진》, 《서태문의 토요데이트》 등 라지오프로그램.
《두만강 1번지》, 《주말극장》, 《화요스포츠》 《땀으로 쓰는 삶의 보고서》 등 TV프로.
현재는 주로 라지오 《뉴스생방송》과 《청춘 플러스》, 《우리 방송 한마당》 등 《특집 생방송》.
《텔레비죤방송진행자의 역할과 자질》 등 수십편의 론문을 발표. 그중 여러편 론문이 성급우수론문으로 평의.
금마이크로 소문높은 서태문씨는 일찍 《라지오뉴스》, 《연변의 아침》, 《대중무대》, 《서태문의 토요데이트》등 라지오프로와 《두만강 1번지》, 《주말극장》, 《땀으로 쓰는 삶의 보고서》 등 TV프로를 진행하면서 많은 인기를 누리였다. 요즘은 4월부터 진행된 《봄프로개편》과 더불어 신진아나운서의 양성에 정력을 기울이고있는 서태문씨는 이렇게 말하고있다. 《내가 아나운서로 된것은 성우로 있으면서 아나운서가 될만한 적당한 소양과 바탕을 가지고있다는 동료선배님의 권유가 있었기때문이였는데 어찌보면 끈기와 노력, 천부적인 재질 그리고 학교시절부터 즐겨듣던 라지오방송이 나를 매료시켰기때문이다.》
아련하게 키웠던 꿈
소학교를 연길시공원소학교에서 다닌 서태문은 랑독을 특별히 잘했다. 학교에서 랑독대회를 하면 번마다 1등을 하였다. 그뿐만아니라 노래경연에서도 이야기경연에서도 언제나 앞자리를 차지했다. 그무렵 그는 아침에 눈만 뜨면 라지오부터 틀어놓았다. 어찌나 들었던지 하루 방송프로순서까지 고스란히 외운 그는 라지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다 배워서 불렀고 재미나는 프로를 본따 여러가지 배역을 혼자서 맡아하면서 제법 근사한 모방력을 키웠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가슴속에 서서히 아나운서의 꿈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업운동선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단호히 거부해나섰다. 아버지는 아들이 커서 자신처럼 운동선수가 되기를 바랐다. 겨우 아버지를 설득하였지만 이번에는 운동선수는 못되더라도 체육교원이 되기를 원했다.
연길시제2중학교에서 초중, 고중 6년을 다닌 서태문씨는 그 시기에 조금씩 과묵해지면서 성격이 많이 변하였다. 챙챙하고 맑지던 목소리도 변성기를 넘으면서 우렁우렁하고 선명하게 굵어졌다. 그때 라지오방송에서 연변연극단의 연극 《심청전》을 방송하게 되였는데 서태문씨는 극에 나오는 심봉사역을 모방하면서 대사처리나 언어률동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였다.
그 당시 소품배우 김홍옥씨가 한 동네에 살았는데 둘은 쩍하면 함께 연기를 해보군 했다. 그때 연기는 대부분 모방이였다. 어머니들이 모인 장소나 친척모임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극대사를 잘 모방하는 그를 두고 모두들 참 재주 많은 아이라고 칭찬해주었다.
늘 뒤심이였던 어머니
사내아이라 무조건 강하게 키우고싶었던 서태문씨의 어머니는 꾸중을 자주 받으면 기가 죽는다며 철부지일 때부터 알아듣건말건 차분히 타이르기만 했다. 남들이 애를 그렇게 키우면 버릇을 굳히게 되여 나중에 사람구실을 못하게 된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내 낳은 자식 내가 모르겠냐》며 고집스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어머니의 특별한 자녀교양이 서태문씨에게 웬만한 어려움을 이겨낼수 있는 강인함을 주었다.
어머니가 옷장사를 하던 나날, 서태문씨는 짬을 타서 어머니를 도왔다. 어떤 옷이든 입고 나서면 불티나게 팔려서 장사를 배워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그에게 엄마는 타일렀다.
《안돼, 넌 나처럼 장사를 하면 안돼. 고상한 직업을 가지도록 해.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고상한 직업말이다.》
아들에게 돈에 연연하지 말고 하고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친 어머니덕분에 서태문은 꿈을 버리지 않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도 20여년 세월을 옷장사로 땀을 흘려온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서태문씨는 어머니가 준 사랑만큼 아니, 그 반만큼이라도 돌려드리고싶은 마음 간절하다고 한다.
아나운서로 거듭나기까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체육중등전문학교에 붙은 서태문씨는 후에 연길시 중앙소학교 체육교원으로 취직했다. 체육교원으로 있던 나날 서태문씨는 하학하여 학교가 조용할 때면 혼자 마이크에 대고 소설랑독을 했다. 누가 옆에서 지켜보는것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할수가 없었다.
소설랑독이 끝나면 시집을 펼쳐들고 감정껏 읊었다. 때로는 반주도 없이 흥겨운 민요를 부르기도 했고 어릴 때 했던 연극 《심청전》의 한 대목을 하느라 혼자 울고 웃었다. 그것이 최초의 방송실기련습이였다.
1988년 9월, 성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연변영화발행공사를 찾아간 서태문씨는 단번에 합격되였다. 하지만 그의 직업적인 성우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성우로 있으면서 그는 선배님들의 권고로 공부를 시작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워낙 자식사랑에 유난했던 어머니인지라 모든 학비를 선뜻 대주었다. 3년간의 대학생활에서 리론을 배우고 실천을 해보니 수준은 눈에 뜨이게 높아지기 시작했다.
연변발행공사에서 4년이 넘는 시간을 배음과에서 보낸 사이 그는 무려 150여부의 영화배음을 했는데 그중 50여부의 영화에서 주인공배음을 했다.
1992년 8월 15일, 서태문씨는 서방흥선생님의 권고로 연변인민방송국 입사시험을 보게 되였고 아나운서 꿈을 이루었다. 시험에 합격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서태문씨는 벅찬 심정을 억제할수 없었다.
1992년 9월 10일, 연변인민방송국에 입사하여 아나운서의 첫걸음을 시작한 서태문씨앞에는 가로놓인 벽이 많고 많았다. 높낮이, 률동, 끊기, 소리빛갈, 속도, 소리마루 등 방송에 있어서 빼놓을수 없는 모든 억양요소들의 특성을 나름대로 잘 익혀가며 뉴스를 해도 선배들은 별로 만족해하는 눈치가 아니였다.
《내가 과연 아나운서의 자질을 갖추고있는걸가?》
이렇게 서태문씨가 커다란 회의와 불안, 초조감에 시달릴 때 서방흥선생님이 한글자한글자 차근차근 읽어주며 흠잡을데 없이 방송할수 있게끔 가르쳐주었다. 서방흥선생님의 엄격한 요구와 극진한 가르침으로 하여 서태문씨는 그해 11월 무난하게 첫방송을 진행할수 있었다.
부지런한 노력끝에 그는 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바 후에는 《대중무대》, 《라지오노래마이크》, 《문학광장》 등 많은 중요한 프로그램 사회를 맡아하였다.
서태문씨가 해설을 맡은 39집으로 된 라지오대형련속극 《청춘극장》은 예술적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이였는바 방속국련속극 50년력사에서 가장 큰 성과작으로 평가받았다. 따라서 그때로부터 《서태문》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994년부터 서태문씨는 라지오방송과 텔레비죤무대에서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텔레비죤프로 《두만강 1번지》로부터 시작하여 《주말극장》, 《땀으로 쓰는 삶의 보고서》 등 많은 텔레비죤프로 사회도 맡아하였다.
부지런히 일한 보람으로 서태문씨는 1995년에는 공청단연변조선족자치주위원회, 주경제무역위원회, 주로동국으로부터 《일터능수》란 영예를 받아안았고 그해에 전 성 아나운서우수방송평의에서 두번째로 전 성 1등상, 전 주 특등상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그후에도 서태문씨는 《연변 10대 아나운서》등 여러가지 상들을 획득하였다. 특히 서태문씨가 해설을 맡은 40부로 된 실황방송 《연변아리랑》은 전국프로평의에서 유일하게 특등상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지금 아나운서실 실장직을 맡고있는 서태문씨는 그동안 바삐 뛰느라 후배아나운서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배려를 베풀지 못해서 미안하다면서 신인아나운서 양성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있다. 그는 《서방흥선생님과 선배님들에게서 받은 사랑이 나에게 큰 힘이 되였듯이 나도 신인아나운서, 후배아나운서들에게 힘이 되여주고싶다》고 말했다.
리해심 많은 안해
1992년 3월, 서태문씨와 결혼식을 올린 오인선씨는 소학교시절부터 중학교까지 쭉 동창으로 지냈다. 당시 연변철물제품공사에서 부기원으로 일하였던 오인선씨는 지금 전직주부로 가정에서 내조를 다하고있다. 가정속에서 서태문씨는 어떤 남편이고 어떤 아빠일가?
이미 결혼해서 16년이 되도록 오인선씨가 남편에게 내린 평가는 그냥 똑같은 한마디이다.
《그인 밖에서나 집에서나 너무 반듯해요.》
아침 일찍 나가 저녁 10시 5분 진행되는 생방송을 마치고 퇴근하느라면 일찍해도 10시반, 그것도 휴일, 명절이 따로없이 하는 출근이지만 안해는 언제 한번 원망없다.
전기세, 물세 등을 한번도 물어본적 없고 돈을 저금해본 일도, 학부모회에 참가해본 일도 없는 서태문씨는 심지어 핸드폰료금도 안해에게 부탁하여 문다고 한다.
모든 가정일을 도맡아하면서도 아무 투정없는 안해, 안해덕에 집걱정없이 사업을 잘 할수 있다며 좋아하는 서태문씨, 그러나 그들도 다툴 때가 있다. 그것도 작은 일로 옴니암니하는데 바로 키 넘어가는 아들 일봉이때문이다. 아들이 점점 자라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더 너그럽고 인자하지만 엄마는 엄하게 단속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서 자주 잔소리한다. 그러는 안해에게 서태문씨는 불평을 토로하고 오인선씨는 나름대로 아들이 걱정스럽기만 하기에 《자식한테 너무 평등하고 고무격려밖에 모른다》고 항의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뿐 얼마 안지나면 싹 잊고 다시 오손도손 의사가 되겠다는 아들의 미래를 담론한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생활상문제는 엄마를 찾고 경제적문제는 아빠를 찾는다. 어릴 때에는 아빠를 《돈 버는 사람이다》고 말하던 일봉이는 자라면서 점점 아빠사랑 진하게 느낀다. 또 언제 어디서나 남들이 알아봐주는 아빠로 인해 자호감을 느낀다.
16년동안 한번도 함께 려행을 다녀오지 못한 오인선씨는 금년 늦가을에는 남편이 심수, 향항쪽으로 가족려행을 다녀오자고 했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계획은 언제나 계획일뿐 늘 바삐 보내는 서태문씨때문에 계획하고 가보지 못한적이 어디 한두번이였던가? 그럼에도 시간을 짜내 다녀오자는 말 한마디에 그냥 기쁘기만 했다. 또 가지 못한들 어떠하랴, 그냥 함께 가고싶어하는 마음이면 족했다.
이렇게 리해심 많은 안해이기에 일년에 세번씩 세집을 옮겨도 투정 한번 부린적이 없었다. 제일 어렵던 그 시절 달랑 밀차 하나로 끝나는 이사짐을 끌고 조금이라도 따뜻한 단간방을 찾아 여기저기 옮기다가 가스중독에 걸린적도 있었고 전기선으로 화재의 봉변까지 당한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오인선씨는 한번도 남편과의 결혼을 후회한적이 없었고 남편의 능력을 의심한적이 없었다. 생활이 펴인 지금 오인선씨는 이렇게 감개무량하게 말한다.
《지금 너무 행복하다. 남편이 사업에서 성과가 있고 아들이 공부 잘하는것외에 바라는것이 없다.》
이렇게 쉽게 만족을 느끼는 안해한테 서태문씨는 그냥 사랑스럽고 고맙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하루는 술을 마시고 귀가해서 안해한테 이런 롱담을 했다.
《여보, 우리 이미 16년 함께 살았구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50년은 살고 리혼하자.》
50년 세월이 흐르면 90세도 넘지 않는가? 꼬부랑할아버지, 꼬부랑할머니 될 때까지 함께 살자는 고백이 아닌가? 오인선씨는 그 말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오인선씨는 《뭐나 다 좋은 남편이 불같은 성격만 고쳤으면 좋겠다》며 웃으면서 이전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한번은 열쇠를 집에다 두고 출근한 서태문씨는 안해한테 전화를 걸어 열쇠를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당시 오인선씨도 출근한 상태라 몸을 뺄수 없었기에 안된다고 말하려는데 글쎄 저쪽에서 《10분내에 가져다줘!》하고는 전화를 덜컥 끊는것이였다. 하는수 없이 집에 달려가 열쇠를 가지고 남편 회사에 찾아갔더니 남편은 온데간데 없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기다리다가 급하다면서 나가셨어요. 어쩜 성격 저리도 급할가요》하면서 웃었다. 오인선씨는 올리미는 밸을 가라앉히고 출근했다. 저녁에는 따끔하게 말해줘야지 하면서… 저녁에 남편이 퇴근한후 그 말을 꺼내면서 따지려는데 서태문씨는 언제 그랬냐 하는 표정으로 시무룩히 웃고만 있었다. 멋없어진 오인선씨도 그만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방송일을 하노라면 방송에 질리기도 하련만은 서태문씨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피곤하다가도 방송을 하거나 이미전에 한 방송을 들으면 피곤이 가뭇없이 사라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 서태문씨는 천상파아나운서였다. 그런 서태문씨가 앞으로 더 좋은 방송을 시청자들에게 선물하기를 바란다.
연변라지오TV신문 최설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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